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1998년 3월에 득법했다. 당시 나는 매우 젊었고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였다. 속인의 마음(常人心)에 이끌려 법을 깊이 이해하지 못했고, 속인 업무와 생활을 중시했다. 수련이란 그저 여가 시간에 조금씩 하는 것이라 여기며 정진실수(精進實修)하지 못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1999년 7.20 이후, 천지를 뒤덮는 공포 속에서 나도 구치소로 납치되었다.
구치소에 15일간 갇혀 있는 동안 사부님의 경문 15편을 외웠다. 《무엇이 참음인가》, 《건의》, 《대폭로》, 《수련은 정치가 아니다》 등이 그때 외운 것들이다. 이 몇 편 안 되는 경문을 수없이 복습하며 대법에 대한 확고한 정념을 강화했고, 그 후 노동교양소와 세뇌반 등에서 3년 넘게 이어진 어둠의 나날을 버텨냈다. 그 기간 함께 갇힌 동수들과 서로 격려하며 함께 정진했다. 한번은 세뇌반 방문을 넘어 나가 간부 사무실에서 소책자 《전법륜》 한 권을 가져와 동수들과 함께 법을 공부하기도 했다. 그때 법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행복했다.
정념으로 마귀 소굴을 나왔을 때는 2004년 초여름이었다. 내가 보기엔 수련의 요구가 더욱 엄격해져 있었다. 당시 나는 적지 않은 나이였고, 부모님의 재촉으로 곧 현지 동수와 결혼하여 이듬해 딸을 낳았다. 그러나 남편은 딸을 낳은 지 90일 만에 박해로 세상을 떠났다. 갓난아기인 딸은 젖을 달라고 울어대는데, 나는 직장도 생활비도 없었다. 마치 영은사에서 쫓겨난 제공(濟公)처럼 우리 모녀는 생존이 가장 큰 문제가 되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남편의 가족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들은 나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줄 능력이 충분했다. 하지만 그들은 어떠한 경제적 원조나 물질적 도움도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남편이 죽은 건 네 팔자다”라는 식의 모진 말로 내 가슴에 못을 박았다. 심지어 나에게서 돈을 속여 뺏어가기까지 했다. 당시 정말 너무나 힘들었다. 나는 당시의 상황을 감정 없이 객관적으로 묘사하려 노력한다. 속인에 대한 원한심을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남편 가족에 대한 원한을 닦아내는 데 수년이 걸렸다. 다 버렸다고 생각했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미워졌다. 마치 양파 껍질을 벗기듯, 한 겹을 벗기면 또 한 겹이 나왔다.
나는 고생하는 것을 몹시 싫어했기에 마음속으로 고난을 거부하고 저항했다. 남편 가족이 무정하게 나를 돕지 않고 오히려 어려움을 주는 것에 대해 엄청나게 원망했다. 그들과 연락을 끊고 위챗과 전화도 차단했다. 이는 법을 잘 공부하지 못한 표현이었으며, 고생을 대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心性(씬씽)이란 무엇인가? 心性(씬씽)은 德(더)[德(더)는 일종 물질이다]를 포괄하고, 참음(忍)을 포괄하며, 깨달음(悟)을 포괄하고, 버림(捨)을 포괄하는데, 속인 중의 각종 욕망과 각종 집착심을 버리는 것이며, 또한 고생을 겪을 수 있어야 하는 등등 여러 방면의 것을 포괄한다.” 수련자로서 마음속 깊은 곳의 원한은 “고생을 낙으로 삼노라”(《홍음》)라는 법리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것이었다.
사실 고생 좀 하면 어떤가? 고생하면 하는 대로 마음을 평온하게 유지하며 웃으며 고생하는 그것이 수련자가 마땅히 해야 할 바가 아닌가? 나는 고생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해 원한심 속에서 너무 오래 헤맸다. 나는 어떻게 원한의 뿌리를 캐냈는가? 얼마 전 딸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 덕분이었다. 당승(唐僧)이 서천으로 경을 가지러 갈 때, 부처님이 계산해 보니81난(難)뿐이었다. 한 개의 난이 모자라자 강을 건네던 자라가 강 한복판에서 이들을 물속으로 빠뜨려 버렸다. 경서와 사람 모두 물에 젖었는데, 이것이 당승 일행이 겪은 마지막 고난이었다.
딸이 나에게 물었다.
“엄마 당승이 그 자라를 원망해야 할까요? 그건 자기 자신의 고난 아니었을까요?”
이 이야기가 단번에 나를 깨우쳐 주었다. 그렇다, 내가 어찌 속인을 원망할 수 있겠는가? 속인들은 모두 우리가 대법의 선(善)으로 구도해주기를 기다리는 존재들이 아닌가! 게다가 속인이 하는 일은 조종당하기 쉬우며, 그들의 사유는 때로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모를 때가 있다.
내가 원한심의 집착을 찾았다고 생각했을 때, 그 아래에 또 다른 것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주 완고한 속인의 관념이었다. 속인의 일생은 이 관념에 통제되어 고통스럽게 분투하며 업을 짓는다. 그러나 우리 수련은 속인에서 뛰어져 나오는 것이다. 더 깊이 파헤쳐 보니, 잘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의 기점은 ‘위사(爲私)’였다. 위사위아(爲私爲我)하는 마음이 만족되지 않을 때 원한, 질투, 분개함 등 수많은 사람마음이 생겨난 것이다.
줄곧 이렇게 비틀거리며 걸어왔다. 딸도 법공부 속에서 성장하여 수양 깊은 수련생이 되었고, 품행과 성적이 우수할 뿐만 아니라 재능도 출중하다. 이제 스무 살이 된 딸은 경제적으로도 거의 독립했다. 나의 형편도 더 이상 어렵지 않고 오히려 여유로운 편이다. 가난이라는 관을 마침내 넘겼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놓으려던 찰나, 나는 내가 이 관을 제대로 넘기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신(神)이 보면 가난하게 사느냐 부유하게 사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신은 오직 당신이 고험 속에서 승화했는지, 사람에게서 뛰어져 나왔는지만을 본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속인의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이것은 초상적인 사람으로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관이다. 진수제자는 사람마다 모두 넘어야 하는바, 이것이 수련자와 속인의 경계선이다.” (《정진요지》 〈진수〉) 산처럼 높은 마난(魔難) 앞에서 자신의 근본 집착을 깊이 파내어 버리지 못했다면 사람에게서 뛰어져 나온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서 나오지 못했다면 여전히 속인일 뿐이다. 단지 가난한 속인이냐 부유한 속인이냐의 차이일 뿐이다.
참으로 뼈아픈 교훈이다. 늦게라도 깨어나는 것이 끝까지 미혹된 것보다는 낫다. 하지만 지난 세월 세 가지 일을 하는 정진의 의지가 느슨해졌고 많은 기회를 잃었다. 돈을 버는 데 마음을 쏟았지만, 노력할수록 기운만 빠지고 돈은 발이 달린 듯 쫓을수록 도망갔다. 결국 마음을 내려놓고서야 형편이 나아졌다.
이것이 지난 수년 동안의 수련 여정이다. 며칠 전 책을 읽다 다음 구절을 보고 마음속에 큰 울림이 있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수련인의 이 공, 특히 心性(씬씽) 표준을 더한 이것은, 사람이 일생 동안 무수한 고생을 겪고 간고한 환경 속에서 연마(魔煉)ㆍ수련해 낸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극히 진귀하다.”(《전법륜》) 수련인의 삶이 고달프긴 하지만 또한 매우 위대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생명이 대법으로 구도받을 자격이 있는지를 알게 해주셨다. 우리는 수련인이며 정법시기 대법제자다. 사명과 큰 서원을 품고 왔음에도 속인 사회에서 너무 깊고 오래 미혹되어 있었으니, 다시는 사전(史前)의 홍대한 소원(洪願)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제 제자는 사람을 구하는 책임과 세 가지 일을 하는 것의 위대한 의미를 깨달았으며, 다시는 과거처럼 살지 않을 것이다. 제자는 반드시 남은 길을 잘 걸어 사부님의 고심한 구도에 부끄럽지 않도록 하겠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09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