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몽골 대법제자
【정견망】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동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시간이 화살처럼 빨라 어느덧 또 2026년이 되었다. 여기서 내가 심성을 닦은 약간의 체험을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동수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먼저 시아주버니에게 돈을 빌려준 일에 대해 말해 보겠다. 10여 년 전, 우리 집은 집 한 채를 팔아 약간의 돈이 생겼다. 시아주버니가 이를 알고 우리 집에 와서 말했다.
“지금 아들에게 집을 사주려는데 10만 위안이 부족하니 좀 도와주세요. 10만 위안만 빌려주면 연말에 퇴직할 때 주택적금을 찾아 바로 갚겠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당시 나는 빌려주고 싶지 않았다. 이제 막 생긴 돈을 손에 쥐어보기도 전에 빌려달라고 하니, 요즘 세상에 누가 남에게 돈을 빌려주고 싶겠는가? 기간이 짧든 길든 빌려주기 싫은 법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나는 수련인인데, 남이 어려울 때 도와야 하지 않겠는가. 위타(爲他)한 마음을 닦아야 하지 않겠는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무사무아(無私無我)를 요구하셨으니 이것 역시 곰험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돈을 빌려주었다. 당시에는 너무 가까운 친척이라 차용증도 받지 않았다.
1년이 지나 시아주버니도 퇴직했지만 돈을 갚겠다는 말은 전혀 없었다. 만날 때마다 집에 이런저런 일이 있어 돈을 써야 한다는 소리만 했다. 그런 말을 계속 들으니 우리도 차마 돈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고, 그렇게 5년이 흘렀다. 어느 날 시아주버니가 며칠 뒤에 5만 위안을 갚고 나머지 5만 위안은 나중에 갚겠다고 했다. 나는 겉으로만 “서두르지 마세요, 천천히 형편이 되면 갚으세요”라고 인사치레를 했다. 그래서 5만 위안만 돌려받았다.
그사이에 내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들은 돈을 갚지 않았다. 또 5, 6년이 지났을 때 시어머니로부터 “큰아주버니가 3만 위안을 갚으려 한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속으로 ‘여전히 전부 갚지는 않는구나’라고 생각했지만, 조금이라도 갚는다니 다행이라며 기뻐했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그 3만 위안은 오지 않았다. 그러다 작년 연말에 이르러서야 시아주버니가 아들을 찾아와서 말했다.
“내가 너희 집에 갚을 돈이 2만 위안 남았는데 오늘 이 2만 위안을 줄 테니 이제 빚은 없는 거다. 다 청산했다.”
아들은 원래 빚이 얼마인지 몰라 그 돈을 받아 와서 말했다.
“큰아버지께서 2만 위안을 갚으셨어요. 이제 다 끝났대요.”
나는 깜짝 놀라 말했다.
“아니야, 아직 5만 위안이 남았는데 어째서 2만 위안만 주면서 다 끝났다고 하지?”
아들은 큰아버지가 그렇게 말했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고 했다. 확인해 보니 2만 위안에서 100위안이 모자랐다. 나는 2만 위안도 안 되는 돈이라며 100위안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여기서 고험이 왔다. 마음이 요동쳤다. 이 돈을 받아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차용증이 없으니 돈을 달라고 하면 얼굴을 붉혀야 하고, 달라고 하지 않으면 상대는 고마워하기는커녕 다 갚았다며 관계를 정리했다고 한다. 이렇게 명백하지 않게 3만 위안이 사라진 것이다. 월급 생활자에게 3만 위안은 적은 액수가 아니다. (나는 작은 도시에 살아서 월급이 높지 않다.)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나는 수련인인데 어찌 재물에 이토록 집착하는가.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는 이치를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전생의 어느 생에 그에게 빚을 졌고, 이런 방식으로 갚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수련인은 마땅히 베풀어야 하며,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제자는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행해야 하기에 결국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 이익을 포기하고 이 마음을 내려놓았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 제4강에서 말씀하셨다.
“즉 말해서, 당신이 버리는 것은 좋지 못한 것인데, 이래야만 비로소 당신으로 하여금 반본귀진(返本歸真)하게 할 수 있다. 얻는 그것은 무엇인가? 바로 층차를 제고하고, 최후에 정과를 얻어 공성원만(功成圓滿)에 이르는 것으로서, 해결되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다.”
나는 겉으로 재물을 잃은 것뿐만 아니라, 심층에서 생각하면 진정으로 잃은 것은 나의 이익심과 집착심이다. 수련인에게 이것은 좋은 일이 아닌가. 층차를 높이는 것이 관건이다. 만약 수련하지 않았다면 나는 절대로 이렇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번에는 우리 남동생과 여동생을 말해 보겠다. 나와 아버지는 같지만 어머니는 다른 형제자매들이다. 내가 6살 때 아버지가 계모와 결혼하면서 나를 할머니 댁으로 보냈다. 나는 19살이 되어서야 아버지와 계모의 집으로 돌아왔는데, 당시 세 아이는 이미 다 성장해 있었다. 그들은 나를 잘 대해주지 않았다. 같은 어머니에게서 난 자식이 아닌 데다 어릴 때 같이 자라지 않아서 마치 나를 이방인처럼 보았다. 아버지는 자주 출장을 가셨는데 돌아오실 때 좋은 것을 사 오시면 그들은 내가 오자마자 그것을 숨겼다. 어떤 좋은 일에도 내 몫은 없었으며 집안의 맛있는 음식이나 장난감, 좋은 물건은 나에게 주지 않았다.
계모 역시 나에게 냉담했고 아버지도 나를 대하는 것이 그저 그랬다. 집안에 물건이 없어지면 모두 내 탓으로 돌리며 내가 훔쳐갔다고 했다. 아버지도 그들의 말을 믿고 내가 한 짓이라고 하셨다. 그들은 똘똘 뭉쳐 나를 고립시켰다. 그때 느낀 모욕감과 괴롭힘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우며 정신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심지어 죽음이나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다. 매일 눈물로 세월을 보냈는데, 친한 친구 집에 가면 친구 아버지는 늘 나를 달래며 임대옥처럼 맨날 눈물을 달고 살지 말라고 하셨다. 나중에 가정을 이루고 그들을 떠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하셨다. 그때 나는 직장을 구하면 영원히 이 집에 돌아오지 않고 그들 누구도 만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수련하기 전에는 기본적으로 서로 간섭하지 않고 왕래도 하지 않는 사이였다. 그러나 나는 수련을 하게 되었고, 원한을 덕으로 갚으며 가장 좋은 사람이 되어야 했다. 당신들이 나를 좋지 않게 대해도 나는 당신들에게 잘해줄 것이다. 그들은 집마다 실직자가 한 명씩 있어 생활 형편이 좋지 않았다. 남동생 아이가 대학에 갈 때 나는 매년 2만 위안을 내놓아 졸업할 때까지 도와주었다. 큰 여동생 집 수리 때는 4만 위안을 주었고, 작은 여동생 아이가 학교에 가고 결혼할 때도 전후로 4만 위안을 주었다. 평소에도 맛있는 것이나 좋은 물건이 있으면 자주 챙겨주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앞장서서 더 많이 부담하고 돈을 더 냈으며 그들과 따지지 않았다.
아버지가 70대부터 80대 돌아가실 때까지 매년 생신 때마다 내가 돈을 내어 친척과 친구들을 초대해 성대한 식사를 대접했다. 아버지와 계모가 집을 수리할 때 그들의 다른 자식들은 돈을 내지 않았지만 나는 수만 위안을 드렸다. 재물뿐만 아니라 다른 일에서도 그들에게 어려움이 있으면 힘껏 도왔다. 아버지는 나를 칭찬하셨고 계모도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남동생과 여동생들도 매우 감동하며 배다른 누나(언니)가 있어서 정말 좋다고 했다. 나도 자주 그들에게 나는 수련인이기에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며 대법의 아름다움을 전했다. 그들은 아이들까지 포함해 모두 당, 단, 대 조직에서 탈퇴했다. 수련하지 않았다면 나는 절대로 이렇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 나는 그렇게 부유한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수련인이기에 재물을 너무 무겁게 보아서는 안 된다. 내가 스스로 해내야만 사람들에게 파룬따파를 닦는 사람의 선(善)을 체득하게 할 수 있고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여 실제 행동으로 대법을 실증할 수 있다. 나는 앞으로의 수련 길에서도 계속 이렇게 행할 것이며, 더욱 잘해서 무사무아(無私無我)한 대법제자가 될 것이다. 수준이 한정되어 있어 법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동수들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허스(合十).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09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