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수련 중에 작은 일은 없다

미국 대법제자

【정견망】

수련의 길을 걸어온 지 이토록 오래되었음에도, 그동안 스스로 작은 일이라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모두 나의 집착이자 닦아버리지 못한 사람 마음(人心)이었음을 깨닫지 못했다.

수련 중에 사람의 마음이 있기만 하면 곳곳에서 그것이 체현되어 나온다. 내가 공장에서 일할 때, 반장은 늘 나의 결점을 들추어내곤 했다. 고추 밑부분에 곰팡이가 피었기에 내가 그것을 버리면, 그녀는 그것을 다시 집어 들고 나에게 화를 냈으며 심지어 책임자에게 가서 고자질까지 했다. 나는 당시 고추에 곰팡이가 피었고 식품 안전 요구가 이토록 엄격한데, 고객에게 곰팡이가 핀 음식을 주는 것은 매우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윗부분은 곰팡이가 피지 않았으니 잘라내고 먹을 수 있다고 했다. 곰팡이 핀 부분만 버리면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가 요구한 대로 하지 않고 고추를 전부 버렸다. 속으로 ‘이 반장은 왜 이럴까, 자기가 낭비하는 물건은 생각지도 않고 일할 때 어슬렁거리기나 하면서 여기저기 고자질만 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그녀에 대한 불만을 품었다.

어느 날, 그녀가 고추를 네 조각으로 썰어 놓은 뒤 나에게 기계에 넣어 채를 썰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고추가 아주 짧게 썰렸는데, 작업 공정상 고추가 너무 짧으면 제품 표준 요구에 도달하지 못한다. 책임자가 그녀를 찾아와 오늘 고추는 왜 이렇게 짧으냐고 묻자, 그녀는 내가 썬 것이라고 말했다. 나의 마음이 일어났다. 나는 “이건 내가 썬 것이 아니라 그녀가 썬 것이다”라고 했고, 그녀는 내가 썬 것이라고 우겼다. 책임자가 “당신들 둘 중 도대체 누가 썬 것이냐?”라고 묻자, 그녀는 나라고 했고 나는 그녀라고 했다. 나는 기계로 써는 것만 담당했을 뿐이라고 했지만, 그녀는 바로 당신이 썬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녀가 이미 짧게 썰어 놓은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일이 있은 후 매니저가 다시 나를 찾아와 “반장의 말을 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나는 마음을 조용히 하고 나 자신을 생각해보았다. 도대체 어디가 틀렸을까? 어디서 잘못이 있을까? 사부님의 《홍음3》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중의 법리가 생각났다.

“수련인이여
스스로 자신의 과오를 찾으라
갖가지 사람 마음 많이 제거하고
큰 고비 작은 고비 빠뜨릴 생각 말라
옳은 것은 그이고
잘못된 건 나이니
다툴 게 뭐 있느냐”

법공부를 통해 이것은 나의 쟁투심과 원한심(怨恨心)이 나온 것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또한 평소에 나는 이 반장을 얕잡아 보며 뒤에서 그녀에 대해 말하곤 했다. 일할 때는 늘 가벼운 것만 골라 하고 엉터리로 지시만 한다며 내 마음이 일어났고, 나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자 불만이 생긴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나의 사람의 마음을 제거하는 과정이 아니겠는가? ‘나도 그녀와 똑같지 않은가? 똑같은 결점을 가지고 있구나. 원래 모두 나의 집착이었고 그녀는 나에게 그것을 연기해 보여준 것이었구나’라고 생각하니 명백해졌다. 원래 나도 그녀와 같았던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있기만 하면 이런 일을 겪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자아가 옳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겠는가? 후천적인 관념으로 형성된 것이니 나는 그녀와 같아서는 안 된다. 내가 어떻게 속인과 같을 수 있겠는가?

이 마음을 찾아내고 나니 다시 그녀를 봐도 짜증이 나지 않았고 그녀를 탓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사부님의 고심 어린 점화(點化)로 나의 집착과 부족함을 보게 해주심에 감사드린다.

사부님께서는 《2003년 애틀랜타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당신이 정법의 이 길을 잘 걷고, 수련 속에서 당신이 당신의 속박을 벗어나 당신의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고, 정념 속에서 중생을 구도할 수 있으며, 정념으로 당신이 마주한 일체를 대할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위덕이다.”

때로는 자신의 사람 마음을 줄곧 의식하지 못해 제거하기가 매우 어렵다. 늘 자신의 생각은 옳고 다른 사람의 생각은 틀렸다고 여기는데, 이는 나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방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임대한 집에서 동수와 주방을 같이 쓰며 서로 어울리는 과정에서도 많은 사람 마음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의식하지 못하고 그저 생활 습관이 다르다고만 여겼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내가 틀렸음을 의식했다. 내가 어찌 다른 사람을 바꾸려 한단 말인가? 마땅히 자신을 수련해야 한다.

어느 날 A동수에게 이런 일들을 이야기했더니, 그녀는 “일체가 다 이익(利)을 위한 겁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번쩍 정신이 들었다. 그녀가 나를 깨우쳐 준 것이다. 원래 다 나의 잘못이었다. 모든 것이 나의 개인적인 이익을 위한 것이었고, 모두 나를 높여주기 위한 것이었는데 나는 깨닫지 못하고 원망만 했으니 사부님께 죄송할 따름이다. 수련을 너무나 못했고 너무나 한심했으며 아직도 남 탓만 하고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그러나 흔히 모순이 생길 때, 사람의 심령(心靈)을 자극하지 않으면 소용없고 쓸모없으며 제고하지 못한다.”(《전법륜》)라고 말씀하셨다.

하나하나의 작은 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모두 내게 보여주기 위해 연기한 것이다. 내게 이런 마음들이 있기에 전부 확대해서 나에게 보여준 것이다. 나는 나에게 제고할 기회를 준 모든 사람에게 감사해야 한다. 여기서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며 여러분께 사죄드린다. 내가 틀렸다. 나를 포용해 준 것에 감사하며 여러분의 헌신에 깊이 감사드린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법해》 〈광저우 설법 문답풀이〉에서 “더(德)가 작은 사람은 심지어 밥을 빌어먹자 해도 빌어먹지 못한다. 왜냐하면, 남들이 당신에게 밥을 줄 때 당신도 그에게 더(德)를 주고 교환해야 하는데 당신은 그에게 줄 더(德)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신은 그 밥조차도 빌어먹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어떻게 마음대로 남의 이득을 취할 수 있겠는가. 이득을 얻는 것도 덕으로 교환해야 하며,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하는 법이다. 자신의 이러한 마음들을 보고 관념을 바꾸니, 어떤 물건이든 남의 이득을 취하려 하지 않게 되었다. 다시는 그들을 원망하지 않으며 그녀를 얕잡아 보던 사람 마음도 제거했다. 모두 나의 잘못이었고, 작은 일을 크게 확대해 나에게 보여주셨음에도 나는 고치지 않고 욕까지 했으니, 나의 오성이 어찌 이리도 부족하단 말인가?

어느 날 꿈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오셨기에 나는 너무 기뻐서 어머니의 목을 껴안았다. 그런데 고개를 들어보니 나와 함께 사는 아주머니로 변해 있었다. 그녀는 “내가 바로 네 친엄마다”라고 말했다. 내가 어떻게 그녀의 목을 껴안을 수 있었을까. 이 꿈은 나에게 무엇을 점화해주시는 것일까. 나는 점차 그녀를 원망하지 않게 되었다. 어떤 일이나 사람에 대해서도 선타후아(先他後我), 무사무아(無私無我)를 해내야 하며, 모두를 친엄마처럼 대하고 누구에게나 자비롭고 잘 대해주어야 한다.

모든 일에는 인연 관계가 있다. 사부님께서는 이런 방식으로 나를 깨워주셨고 그녀를 친엄마처럼 대하게 하셨다. 생각해보면 그녀도 친엄마와 다를 바 없다. 평소에 욕하고 싶으면 욕하고 안색을 바꾸고 싶으면 바꾸는데, 내가 아직 깨닫지 못하자 꿈에 시험을 본다고 하셨다. 시험이 끝나고 각자 줄을 서서 성적표를 받는데 나도 갔다. 다른 과목은 모두 90점 이상인데 물리만 59점으로 낙제였다. 물리가 낙제라고 하기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물리(物理)’, 즉 깨달은 법리(法理)가 부족하고 법공부가 부족하다는 의미였다.

[역주: 중국어로 ‘物’과 ‘悟’의 발음이 같으니 ‘物理’는 ‘悟理’ 즉 이치를 깨닫는다는 의미로 풀 수 있다.]

이제야 알겠다. 나의 오성이 어찌 이리 부족한가. 이토록 점화해 주셨음에도 깨닫지 못하고 남과 똑같이 화를 냈으니 말이다. 이 관을 넘기는 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부님께서 다시 점화해 주셔서 깨닫게 해주신 것에 감사드린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그는 그때 머리가 ‘윙’ 울렸다. ‘나는 연공인(煉功人)인데, 어찌 이런 것을 구할 수 있는가? 내가 이 부당한 재물을 얻음으로써 나는 그에게 얼마나 많은 德(더)를 주어야 하는가?’” 나는 이제 이해했다. 1원 한푼의 이득도 취해서는 안 되며 동시에 상을 받은 후의 마음도 내려놓아야 한다. 나에게는 게으른 버릇과 청결하지 못한 버릇도 있는데, 나에게 사람의 마음이 있기만 하면 누군가 나타나 나를 가르쳐주고 나의 부족함을 보게 해준다.

마지막으로 사부님의 《홍음 2》 〈끊다〉의 법리를 동수들과 공유하며 함께 격려하고자 한다.

수련은 어렵지 아니하나
마음 버리기 어렵노라
그 많은 집착 어느 때나 끊을꼬
고해(苦海) 끝없음을 모두 알거늘
의지 확고하지 못하면
고비는 산과 같나니
어이 속세를 벗어나랴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0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