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제자
【정견망】
처음으로 남방에서 설을 보냈는데 북방과는 느낌이 달랐다. 남방은 설 분위기가 담담하고 폭죽도 터뜨리지 않으며 대련도 붙이지 않아 북적거리는 명절 분위기가 없었다. 창밖을 내다봐도 지나다니는 사람이 드물고 단지 안은 썰렁해서 마치 빈 성 같았다. 나와 가깝게 지내던 동수들도 설 인사를 전하는 전화를 한 통 주지 않으니, 마음이 허전하고 집이 좀 그리워졌다.
우리 고향에서는 매년 정월이면 친한 동수들이 모이곤 했다. 식사는 부차적이고 주로 교류를 하며 서로 격려하고, 새해에는 어떻게 더 정진할 것인지 논의했는데 그런 분위기가 나에게는 큰 촉진제가 되었다. 그러나 남방에 오니 낯선 곳이라 사람도 환경도 익숙지 않고 명절다운 기분도 나지 않으며 썰렁하기만 했다. 동수를 만날 수 없어 혼자 고립되니 갑자기 심리적 상실감이 컸고 무언가 결핍된 느낌이 들었다. 이때에야 비로소 집이 그립다는 생각 이면에 닦아내야 할 사람 마음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적막함을 견디지 못하고 쓸쓸함을 두려워하는 마음, 동수에 대한 정(情), 동수를 떠나면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마음, 명절을 중시하며 시간에 대해 분별심을 갖는 마음 등이다. 기점이 사람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신(神)이 집을 그리워하겠는가?
수년 전 나는 정견망에 글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 대륙에서 외국으로 나간 동수들이 귀국하고 싶어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해, 외국은 박해 환경도 없는데 그곳에서 안심하고 수련하면 될 것이지 무엇 때문에 집을 생각하느냐며 고만한 정(情)도 내려놓지 못하느냐고 가볍게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제삼자 입장에서 함부로 말하며 동수를 이해하고 포용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고향을 떠난 지 겨우 2년 만에 집이 그리워졌다. 누군가 내게 설 인사 전화를 해주길 바라고, 전화를 해주는 이가 없으니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처럼 괴롭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대륙에서 외국으로 나간 동수들이 수만 명인데, 그들이 명절에 대륙의 가족을 그리워하지 않겠는가? 집이 그리울 때 그들은 또 어떻게 법으로 가늠하며 제고했을까? 박해가 시작된 지 28년이 되었고, 줄곧 대륙의 친인을 만나지 못하면서도 꾸준히 외국 땅에서 정진하며 사람을 구하고 있으니 정말 머리가 숙여질 정도로 감탄스럽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예전에 쓴 글이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고 그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을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나는 진심으로 그들에게 사과한다! 이제 나는 동수가 어떤 심리적 매듭에 부딪히든, 그것이 집이 그리운 마음일지라도 제삼자라면 마땅히 자비롭게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배려하며 위로하고 일깨워줘야지, 상대를 지탄하거나 공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또 생각해보았다. 대륙에서 집을 나와 떠도는 동수들은 설을 맞이할 때마다 어떤 심정일까? 집이 그립지 않겠는가? 사실 집이 그립고 그렇지 않고는 경지에 달려 있다. 누구를 생각하든 결국 의지할 수 없는 법이다. 가족을 생각하는가? 만나봐야 며칠간 반가울 뿐 지나고 나면 다시 평범해진다. 동수를 생각하는가? 누가 당신의 수련을 대신해 줄 수 있겠는가? 어디서든 스스로 착실하게 닦아야 한다. 자녀를 생각하는가? 누가 자녀인가? 어느 것이 진짜 (당신 자녀)인가? 우리가 제고되어 대자비심이 나올 때 집이 그립다는 생각은 부지불식간에 사라질 것이다.
집이 그립다는 것은 정마(情魔)이자 밧줄이며 사(私)다. 인간 세상의 ‘집’이 아무리 좋다 한들 쓰레기장 속의 여관일 뿐이다. 진정으로 아름다운 집은 천상에 있으며, 그곳의 친인들은 시시각각 우리가 돌아오기를 고대하고 있다. 올해 션윈의 마지막 프로그램에서 사회자가 “돌아갈 때가 바로 눈앞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여기까지 쓰니 마음이 확 트이며 밝아진다. 정법이라는 큰 연극의 막이 내릴 때가 바로 눈앞에 있으니, 내가 생각해야 할 것은 어떻게 올바른 일(正事)을 잘하여 유감을 남기지 않을 것인가이지 집이 그립다는 생각이 아니다.
이상은 얕은 소견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2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