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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군에 수년간 이어진 가뭄과 ‘쌀산 밀가루산’의 원인과 계시

초약미(楚若薇)

【정견망】

《서유기》 제87회에서는 하늘을 공경하고 신을 공경하는 것과 관련된 인과 이야기가 펼쳐진다.

원작에서는 이렇게 묘사한다.

사도 네 사람이 서쪽으로 가다가 천축국 봉선군에 이르렀는데, 성안에 들어서자마자 군후(君侯)인 상관 씨가 3년 연속 가뭄을 만나 방을 붙여 백성을 구제할 기우사를 구하는 것을 보았다.

삼장이 “도제들아, 누가 비를 빌 수 있느냐? 한 차례 단비를 내려 백성의 고통을 구제해 준다면 이야말로 아주 선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비를 비는 것이 뭐 그리 어렵겠습니까! 이 노손(老孫)이 강을 뒤집고 바다를 휘저으며, 별자리를 옮기고 하늘을 걷어차며, 안개를 토하고 구름을 뿜으며, 산을 메고 달을 쫓으며, 비바람을 부르는 것은 어린 시절 장난치듯 하던 일입니다!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라고 했다.

그 군후는 원래 매우 청렴하고 어질며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 보고를 받자마자 달려와 “당승을 보고 제자들의 모습이 추악한 것을 겁내지 않으며 거리 한복판에서 몸을 굽혀 절했다.” 그리고 “천금의 돈으로 후한 덕에 보답하길 원합니다”라고 했다.

행자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

“됐소! 그만두시오! 만약 천금으로 사례하겠다고 하면 단비는 한 방울도 없을 것입니다. 다만 공덕을 쌓는 일이라면 노손이 큰비 한 차례를 보내드리지요.”

“행자가 진언을 외우고 주문을 읊으니 즉시 정동쪽에서 검은 구름 한 조각이 서서히 대청 앞으로 내려앉았는데, 바로 동해 노룡왕 오광이었다.”

손오공이 “이곳은 봉선군인데 수년간 가뭄이 들었거늘 어찌하여 비를 내려주지 않는 것이오?” 라고 물었다.

용왕은 하늘의 어지(禦旨)를 받지 못했다며, 비를 내리려면 “대성께서 천궁에 가서 주청해 비를 내리라는 성지를 받아오셔야 합니다”라고 했다.

이에 “행자가 근두운을 타고 곧장 서천문 밖으로 가서” 사대천사의 인도하에 영소전 아래에 이르러 어지를 청하니, 옥황상제가 말씀하셨다.

“그놈이 3년 전 12월 25일, 짐이 온 하늘을 감찰하고 삼계를 노닐며 그곳에 이르렀을 때, 그 상관 아무개가 불인(不仁)하게도 하늘에 제사 지내던 제물을 밀어뜨려 개에게 먹이고 입으로 더러운 말을 내뱉어 범죄를 저질렀기에, 짐이 즉시 세 가지 일을 세워 피향전(披香殿) 안에 두었노라.”

“사대천사가 행자를 피향전 안으로 인도하여 보게 하니, 약 열 장 높이의 쌀 산(米山)과 약 스무 장 높이의 밀가루 산(面山)이 있었다. 쌀 산 곁에는 주먹만 한 닭 한 마리가 쪼다 쉬다 하며 쌀을 쪼아 먹고 있었다. 밀가루 산 곁에는 금털을 가진 강아지 한 마리가 혀를 늘렸다 줄였다 하며 밀가루를 핥아먹고 있었다. 왼쪽에는 철가방 하나가 매달려 있고 그 위에는 한 자 서너 치 길이의 금 자물쇠가 걸려 있었는데, 자물쇠 고리가 손가락 굵기만 했고 그 아래에는 밝은 등불 하나가 있어 등불 불꽃이 자물쇠 고리를 그슬리고 있었다. 행자는 그 뜻을 알지 못했다.”

천사가 설명하기를 닭이 쌀 산을 다 쪼아 먹고, 개가 밀가루 산을 다 핥아 먹으며, 등불 불꽃이 자물쇠 고리를 다 태워 끊은 후에야 비가 내릴 것이라고 했다.

행자가 그 말을 듣고 크게 안색이 변해 더는 주청하지 못하고 전을 나와 창피한 마음이 가득했다. 사대천사가 손오공을 위로하며 말했다.

“대성께서는 번뇌할 필요 없습니다. 이 일은 오직 선(善)을 행해야만 풀릴 수 있습니다. 만약 한 생각이라도 선하고 자애로워 하늘을 감동시킨다면 저 쌀 산과 밀가루 산은 즉시 무너지고 자물쇠 고리도 즉시 끊어질 것입니다. 가서 그자에게 선으로 귀의하면 복은 저절로 찾아올 거라고 권하십시오.”

일찍이 천궁에서 큰 소란을 피웠던 손오공이 언제 ‘크게 안색이 변하고’ ‘창피한 마음이 가득한’ 곤혹스러운 적이 있었던가? 이는 자신이 다소 망령되고 무례했음을 발견했음을 설명한다. 본래 천정에서 용왕을 시켜 백성을 구제하는 것이 본분이라 여겼으나, 생각지도 못하게 봉선군후가 하늘과 신을 공경하지 않아 초래된 화(禍)였던 것이다.

공자는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獲罪於天, 無所禱也)”(《논어·팔일》)고 했다. 즉, 사람이 만약 하늘에 죄를 지으면 아무리 기도해도 소용없다는 뜻이다. 이는 세간의 모든 것이 본래 고층 생명에 의해 안배된 것이며, 사람의 복분(福分)이나 고난은 그가 쌓은 복덕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만약 선량함을 지키고 도덕을 승화시킨다면 자연히 신의 보호를 받게 된다. 만약 사람의 마음이 원망과 분노로 가득 차 ‘자신을 닦아 공경함(修己以敬)’의 좋은 심태를 잃는다면, 그것이야말로 타락과 고난의 시초가 된다.

상고 시대부터 중국인들에게는 이런 관념이 있었다. 즉 천제(天帝)가 아주 높은 곳에 계시며 민간을 주시하여 선에는 상을 주고 악은 처벌하신다는 것이다.

《상서》에도 ‘경(敬)’에 관한 논술이 있는데, 대체로 ‘자신을 닦는 경[修己之敬]’, ‘하늘을 섬기는 경[事天之敬]’, ‘백성을 대하는 경[臨民之敬]’, ‘일을 다스리는 경[治事之敬]’ 네 방면으로 나눌 수 있다.

《주서·소고》에서는 “왕은 공경(敬)으로 거처를 삼아야 하니, 덕(德)을 공경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했다. 즉 왕은 어디서나 덕을 공경하지 않음이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주서·무일》에서는 “소인이 너를 원망하고 욕하거든 곧 스스로 덕을 공경하라”라고 했다. 소인이 마음으로 너를 원망하고 욕하더라도 더욱 자신의 덕을 공경하게 닦아야지 남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언제부터인지 후대의 해석에서 이 ‘경(敬)’자 뒤에 ‘외(畏)’자가 붙어 ‘경외(敬畏)’가 되었고 그 의미도 변했다. 공자가 《논어·헌문》에서 “경으로 자신을 닦음[修己以敬]”을 말하고 《논어·계씨》에서 다시 “군자에게는 세 가지 두려움(三畏)이 있다”고 했으나, 전자는 군자의 수양과 승화 차원이고 후자는 치국과 처세 차원이다. 즉 이는 서로 다른 층차의 이치다. ‘경외’는 본래 있던 어휘가 아니라 후대 사람들이 조합한 단어이다.

유가에서는 하늘을 최고 존재로 여기는데 하늘은 신성(神聖)한 생명 창조의 근원이자 가치의 근원이기에 하늘을 공경하는 경천(敬天) 사상이 있었다. 나중에 송명(宋明) 이학(理學)이 형성된 후 정호의 ‘성경(誠敬)’은 인(仁)을 보존하기 위함이었고 정이의 ‘함양용경(涵養用敬)’은 마음속의 성품을 함양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주자가 말한 경, 특히 경이 송연히 두려워하는 바가 있는 듯한 뜻임을 강조하여 ‘외(畏)’를 ‘경’의 극단적인 형태로 여겼다. 실제로 이러한 상태는 선을 향해 덕을 지키고 진리를 탐구하는 중정(中正)과 중화(中和)의 상태에서 벗어나, 외적이고 감정적인 두려움이 된 것이다. 자신보다 더 거대하고 강력하며 초상적인 사물 앞에서 느끼는 무력한 공포와 복종이며, 생명과 우주 진리에 대한 바른 믿음(正信)이 아니다.

그 속에는 불가피하게 무언가를 구하는 등의 부면(負面)적인 사상 의식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따스하고 밝은 햇살을 쬐는 심태와는 다르다. 그러므로 하늘이나 신에 대한 ‘경외’ 속에는 실제로는 부면(負面)적인 불경과 모독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오직 마음속 마성(魔性)의 일면만이 불광(佛光)이 널리비침과 원명(圓明)을 두려워할 뿐이다.

다시 손오공이 봉선군으로 돌아와 그 군후에게 마음을 씻고 선을 향하라고 일러주자 “군후가 무리를 거느리고 향을 피워 우러러 절하며 하늘에 답하고 땅에 감사하며 죄를 자책하니”, 성안팎의 크고 작은 집들에서 “일제히 선한 소리가 귀에 가득했다.” “세워두었던 쌀 산과 밀가루 산이 모두 무너져 순식간에 사라지고 자물쇠 고리도 끊어졌다.”

그러자 옥황상제가 전지를 내렸다. “풍부(風部), 운부(雲部), 우부(雨部) 각 부서는 각기 호령을 준수하여 하계로 내려가 봉선군 경계에 오늘 이 시각 즉시 뇌성을 울리고 구름을 펴서 3척 42점의 비를 내리라. … 좋은 비가 하천을 쏟아붓고 바다를 뒤엎듯 들판을 덮고 허공을 메웠다. 처마 앞에는 폭포가 걸리고 창밖에는 옥소리가 들렸다. 수많은 가구의 사람들이 불호를 읊고 온 거리와 시장에 물이 홍수처럼 흘렀다. 동서 하천은 마디마디 가득 차고 남북 계곡은 곳곳이 통했다. 마른 싹은 윤기를 얻고 마른 나무는 생기를 되찾았다. 밭에는 삼과 보리가 무성하고 마을마다 콩과 곡식이 자라났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갈 때 인생의 많은 고난은 사실 자기 안의 심념(心念)이 투영된 것이다. 마음속에 구름이 없는데 어찌 비바람이 있겠는가.

원작 시에서 말한 것과 같다.

사람의 마음에 한 생각이 일어나면
천지가 모두 다 아나니,
선악에 만약 응보가 없다면
건곤(乾坤)에 반드시 사사로움이 있으리라.

人心生一念
天地悉皆知
善惡若無報
乾坤必有私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49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