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시아버지는 ‘문화대혁명’을 겪었던 세대로 중공이 얼마나 사악한지 알고 계셨다. 1999년 중공이 파룬궁에 대한 잔혹한 박해를 일으켰을 때, 그는 매사에 보수적이셨고 세상 물정에 어두운 우리 젊은이들이 사악한 박해 속에서 자신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할까 봐 늘 걱정하셨다.
시아버지는 내심 대법을 굳게 믿고 계셨다. 진상을 모르는 가족들이 우리를 향해 ‘완고하다’거나 ‘미혹되었다’며 질책할 때면 아버지는 자주 우리를 변호해 주셨고, 때로는 침묵을 지키기도 하셨는데 결국 본인도 사회 각 방면에서 오는 압력을 감당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동시에 사악에게 납치되어 노동교양소에서 박해를 받을 때, 시아버지는 몸과 마음이 지치셨고 사악에 의해 교통사고로 육신을 잃으셨다. 이 일에 대해 처음에 내 마음은 줄곧 내려놓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인정(人情)’에 빠져 중공의 탄압 속에서 아버지가 늘 부친의 역할로 우리를 가려주셨다고 생각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수련상에서 그분과 정체를 형성하지 못해 교류할 환경을 만들어 드리지 못했고, 법에서 함께 제고할 기회를 드리지 못해 홀로 떠돌다 생명이 무거운 짐을 감당하기 어렵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들었다. 그래서 매번 시아버지의 묘소에 다녀올 때마다 마음이 매우 괴로웠다.
나중에 나는 수련인의 기점에 서서 생각했다. 시아버지도 수련인이니 그분의 모든 것 역시 사부님께서 관장하신다. 그분이 수련 성취한 일면은 스스로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것이고, 수련 성취하지 못한 일면 역시 모두 구도를 기다리는 중생들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람마음을 내려놓고 하루빨리 법 위에서 자신을 잘 수련하여, 함께 사부님을 도와 사람을 구하겠다는 홍대한 소원을 완수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서서히 마음을 내려놓게 되었고 더는 괴롭지 않았다.
처음 직장에 나갔을 때 집안 형편이 비교적 넉넉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첫 달 월급 전부를 털어 시아버지께 정교한 공예 돛단배를 사 드렸는데, 돛에는 ‘일범풍순(一帆風順, 모든 일이 순조롭기를 기원함)’이라고 적혀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가 언젠가 했던 약속이었을지도 모른다. 함께 법선(法船)에 올라 집착을 내려놓아야만 순조롭게 사부님을 따라 돌아갈 수 있다는 의미였으리라.
지난해 연말 시아버지 묘소에 갔던 날은 날씨가 음산했고 모두 침묵을 지켰다. 종이돈을 태울 때 나는 장쩌민을 고소했던 그해를 떠올렸다. 저승 화폐가 불속에서 조금씩 재로 변하는 것을 보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읊조렸다.
‘우리는 전 세계 대법제자들과 함께 대마두를 고소했어요. 당신이 박해받아 돌아가신 일도 우리가 다 적어 넣었으니, 당신이 겪은 억울함은 곧 밝혀질 겁니다. 편히 쉬세요.’
이때 나는 문득 내 사상 속에 중공과 대마두에 대한 원한을 여전히 품고 있음을 의식했다. 이는 수련인에게 있어서는 안 된다. 내가 심태를 바꾼 그 순간, 주변의 검고 그을음 같은 연기 무리가 즉시 흩어지는 것을 보았고 분위기도 한결 가벼워졌다.
이번 청명에 성묘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남편이 “위가 불편하고 메스꺼우며 토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나는 “따뜻한 국을 마시면 좀 나을 거예요. 내가 음식을 만들 때 ‘9자 진언’을 생각했거든요”라고 말했다. 말을 하는 동시에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츠뻬이(慈悲)로 매개 음표를 연주하나니”(《홍음 6》 〈생명을 위해 노래하노라〉)를 떠올렸다. 또한 션윈 예술가가 연주하는 얼후 소리가 다이아몬드 같아서, 그 다이아몬드가 사람의 업력을 소멸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관객의 피드백도 생각났다.
이로써 나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게 되었다. 한 명의 대법제자로서 어떤 일을 하든 마땅히 자비로 대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하는 말과 우리가 만든 생산품에 사람의 업력을 없애 주는 에너지가 담길 수 있을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87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