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신(復一新)
【정견망】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한 연공인(煉功人)으로서 우선 마땅히 해야 할 것은,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을 먹어도 대꾸하지 않으며, 참아야 하는 것이다.”라고 가르쳐 주셨다. 20여 년의 수련 기간 동안 나는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을 수 있었고, 대법제자의 자비심으로 상처를 준 세상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려 그들을 구도할 수 있었다. 본래 나는 스스로 이 방면에서 이미 매우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수년간 법을 외우고 베껴 쓰면서 심성이 크게 제고되자, 단지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을 먹어도 대꾸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수련인의 인(忍)에 도달하기에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다.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 〈무엇이 참음인가〉에서 “참음(忍)은 心性(씬씽)을 제고하는 관건이다. 화가 나 원망하고, 억울해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참는 것은 속인이 해를 입을까 염려하는 참음이다. 화를 내거나 원망함이 전혀 생기지 않으며 억울함을 느끼지 않는 것이야말로 수련자의 참음이다.”라고 가르쳐 주셨다.
그렇다면 수련자로서 다른 사람이 손을 들어 나를 때리는 경우를 몇 번이나 마주하겠는가? 설령 마주친다면 정말 맞대응하지 않고 대꾸하지 않으며, 억울해하지 않고 화내지 않으며 배려하는 마음이 있을 수 있는가? 만약 그렇게 할 수 없다면 그것은 수련인의 인이라 할 수 없다.
사존께서는 《파룬궁》에서 또한 “특히 ‘인(忍)’할 수 있음을 강조하는데, 오직 ‘인(忍)’해야만 비로소 대덕지사(大德之士)로 수련할 수 있다. ‘인(忍)’은 아주 강한 것으로서 ‘진(真)’과 ‘선(善)’을 넘어선 것이다. 수련의 전 과정에서 당신에게 ‘인(忍)’하라고 하며, 心性(씬씽)을 지키고 함부로 행동하지 말도록 한다.”라고 가르쳐 주셨다.
사부님의 설법을 통해 나는 인(忍)이란 단순히 억지로 참는 것이 아니라, 선(善)과 진(真)의 기초 위에 세워진 자비의 인(忍)임을 깨달았다. 자비가 없다면 수련자의 인을 논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이 나에게 예의 없이 굴어 상처를 줄 때 앞에서는 참았으나, 등 뒤에서 분개하며 이리저리 말한다면 이 또한 당신이 그 사람에게 상처를 준 것이 아닌가? 이런 행동은 비록 앞에서는 참았을지라도 수련자의 인이 아니다. 뒤에서 남을 비방하는 것 역시 덕을 잃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행위는 선(善)도 아니고 진(真)도 아니다. 수련자의 인(忍)에 도달하지 못하면 진정한 인이라고 할 수 없다.
인 속에는 선(善)이 있고 또한 진(真)이 있다. 오직 선(善)과 진(真)의 기초 위에서 탄연히 참을 수 있어야만 비로소 수련자의 인이라 할 수 있다. 대선(大善)이 있어야만 대인(大忍)이 있다. 인은 어찌할 도리가 없어 참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자비를 품고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 참는 것이니 그것이 바로 수련자의 대인(大忍)이다.
사실 인은 수련 속에서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그것은 바로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참아야 하고,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참아야 하며, 남이 나에게 상처를 줄 때 참아야 하고, 동수가 나를 오해할 때도 참아야 한다. 자신의 건의가 동수들에게 인정받지 못할 때 참아야 하며(안으로 찾기), 어떤 부면(負面)적인 일에서 명확히 밝혀지지 않아 모두 나를 의심할 때도 참아야 한다. 즉, 자신의 전체 수련 과정에서 나타나는 심성을 고험하는 모든 언행(言行)에 대해 참아야 하는 것이다. 오직 자비롭고 탄연(坦然)하며 어떠한 사람마음도 없는 인을 해낼 때만이 진정으로 각자의 대인지심(大忍之心)을 닦아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수련자의 인이다.
수년간의 법암기, 법베끼기 그리고 사부님의 거듭된 일깨워 주심을 통해 나는 이제 모순 속에서 기본적으로 탄연히 참을 수 있게 되었다.
개인의 얕은 체득이므로 법에 맞지 않는 부분은 동수들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