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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더우(拼豆, 컬러 비즈)”에서 생각한 것

석문(惜文)

【정견망】

얼마 전, 많은 친구들이 핑더우에 매료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수많은 다양한 색깔의 작은 플라스틱 공들을 함께 맞춰 하나의 간단한 그림을 만든 후, 열을 가해 성형하는 것이다. 물론 목적은 손의 민첩성을 기르기 위한 것이다. 사실 나는 성형된 핑더우를 많이 보았지만 그리 예쁘지 않았고, 플라스틱이 가열된 후에는 일부 독성도 있었다. 정말로 득보다 실이 많다.

반대로 조상님들이 남겨주신 기예(技藝)를 돌이켜보면 훨씬 더 좋지 않은가? 예를 들어 자수는 핑더우와 보기에 다소 비슷하다. 자수 역시 똑같이 손의 민첩성을 기를 수 있고, 게다가 이상한 냄새도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수 작품은 영성(靈性)으로 가득 차 있어서 단순히 한 폭의 그림일 뿐만 아니라 하나의 예술품이며, 사용 가치와 소장 가치를 겸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수와 관련된 것으로는 또 각종 바느질 기술도 있다. 수선하는 작용을 하는 것, 인성(靭性 질긴 성질)이 있어 튼튼한 것, 그리고 뜯어내기 쉬운 것 등이 있어 각기 다른 환경에 적응한다. 외과 봉합, 옷 수선, 심지어 신발 수선 등이다.

예전의 할머니들은 스스로 신발 밑창을 꿰매고 천 신발을 만들기 좋아했다. 실용적일 뿐만 아니라 노인의 손을 단련시켜 노인성 치매를 예방할 수도 있었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가치로 저울질하며, 한 켤레 사는데 겨우 몇 위안밖에 안 하니 그럴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의 진정한 가치는 무시하고 있다.

비단 자수뿐만 아니라 전지(剪纸, 종이 오리기), 매듭 등의 기예도 모두 방법은 달라고 비슷한 효과가 있다. 전지에 필요한 것은 바로 심령수교(心靈手巧, 마음이 영활하고 손재주가 있음)이며, 똑같이 손의 유연성을 키울 수 있다. 매듭이 옥석(玉石)과 생활 방면에서 가지는 가치 역시 더욱 무시할 수 없다. 몇 천 근의 무거운 물건도 매듭이 풀리지 않고, 작은 장식품은 정교하고 아름다우며, 어망이나 채소 모종 지지대를 묶는 데도 모두 적용된다.

그렇다면 왜 핑더우는 보기에 영성이 조금도 없어 보이는데, 수공예품인 전지, 매듭, 자수 등은 모두 영성이 있는 것일까? 여기에도 원인이 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어떠한 물체든지, 나는 이런 한마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어떠한 물체든지 생겨날 때 곧 생명이 주입된다. 공장에서 만들어낸 제품, 어떤 물건이라도 당신이 그를 볼 때는 이러하지만, 모두 생명이 있다.” (《미국법회설법》〈뉴욕좌담회설법〉)

자수, 매듭, 전지 등의 기예는 모두 신(神)이 인간에게 전해주신 기예이며, 모두 우리의 근원과 관계가 있는 것이다. 배후에 관련 요소가 존재해야지만, 우리로 하여금 영성(靈性)의 일면을 느끼게 할 수 있다.

신이 우리에게 전해주신 모든 것은 우리와 관계가 있는데, 특히 정법(正法)과 관계가 있다. 자연히 보기에 매우 아름다울 것이다. 핑더우처럼 현대화되어 형성된 물건이 어찌 비길 수 있겠는가? 인간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오늘날의 사람이 법을 얻고 법을 실증하는 바탕을 다지기 위한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2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