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올해 85세로, 96년에 득법한 대법제자로 대법에서 수련한 지 이미 30년 세월이 되었다. 내 기억에 96년 여름이었는데, 남편이 동료에게 《전법륜》 한 권을 빌려왔고, 나와 남편이 교대로 봤는데 보면 볼수록 더욱 보기 좋아 손에서 놓지 못했다. 몇 차례 보고 난 후, 나는 이것이 사람을 수련으로 지도하는 보서(寶書)이며, 사람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칠 뿐만 아니라 신불(神佛)로 수련 성취될 수 있게 한다는 것을 알았고, 마음속으로 몹시 기뻤는데, 이것이 당시 나의 생각이었다.
그때 내 업무는 간부들에게 밥을 해주는 것이었는데, 여름이라 방 안이 더웠기 때문에 나는 솥을 밖의 마당으로 옮겨와 채소를 끓였다. 그날 솥 안에서 끓이던 것은 꼬투리콩이었고, 마당에 심어놓은 것은 대파였는데, 나는 불이 너무 가까워 파가 타서 망가질까 봐 걱정되어 솥을 걸어둔 받침대를 한쪽으로 잡아당기다가 중심을 잡지 못했다. 그리하여 끓어 넘치던 꼬투리콩 솥이 국물과 건더기째 전부 나의 오른손 등 위로 쏟아졌다. 나는 당시 마음속으로 ‘이젠 끝장났구나! 이토록 높은 온도이니 손이 데어 망가지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조금도 아픔을 느끼지 못했고 오직 약간 화끈거리는 느낌만 있었으며, 상하지도 않고 물집도 잡히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나는 겨우 책을 몇 차례 보았을 뿐인데 사부님께서 나를 돌보아주신 것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이 대법을 내가 반드시 수련하기로 굳게 결심했다.
그때 나는 매일 아침 모두 동수들과 함께 밖에 나가 아침 연공을 했고, 저녁에는 단체 학공부에 참가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여러 해 동안 괴롭히던 고혈압, 심장병, 위장병, 피부병, 부인과 질환, 불면증, 그리고 부체(附體) 등의 질병이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때부터 나는 병이 없어 온몸이 가벼워졌고, 잘 먹고 잘 잤으며, 일을 해도 지치지 않아 온몸에 다 쓰지 못할 정도로 힘이 넘쳐났다. 그때 저녁에 정공(靜功)을 연마할 때 책상 다리를 하면 다리가 아주 높이 떴는데, 빨리 결가부좌(雙盤)를 하기 위해 적잖은 고생을 겪었다. 온몸에 땀이 비 오듯 흘러 옷이 전부 젖기도 했다. 점차 나는 결가부좌를 한 시간 동안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매일 적어도 법을 한 강씩 공부했고, 연공은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다. 그 기간에는 자신의 심신이 매우 빨리 제고된다고 느껴졌다.
99년에 장쩌민 깡패 집단이 사부님과 대법을 유언비어로 모함했으나, 나는 직접 대법의 수혜를 입었기에 사악한 유언비어가 중생을 독해하게 할 수 없었다. 그때는 진상 자료가 긴박했으므로, 나는 스스로 붉은 천 위에 노란 페인트로 “파룬따파하오(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진선인은 좋습니다)”라고 써서 눈에 띄는 곳에 걸어두었다. 혹은 매직펜으로 스티커에 써서 전신주나 다리 등 눈에 잘 띄는 곳에 붙여 지나가는 행인들이 모두 대법 진상을 볼 수 있게 했다. 그 후에는 시내의 동수들과 연락이 닿아 시내에서 자료를 가져와 현지 동수들과 전체를 형성해 집집마다 다니며 진상 자료를 배포했다. 우리 주변의 단층집과 아파트단지에는 모두 우리가 사람을 구하는 발자취가 남았다. 나중에는 사람을 구하는 자료의 종류가 점점 더 많아져 《9평 공산당》, 《당문화 해체》, 《장쩌민 그 사람》, 그리고 각종 진상 소책자들을 우리가 직접 집집마다 배포했다. 한 번은 나 혼자 《9평 공산당》을 65권이나 배포하기도 했다.
처음 자료를 배포하기 시작했을 때는 두려운 마음(怕心)이 매우 무거워, 매번 나갈 때마다 심장이 쿵쾅거려 마치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고, 매번 사부님께 나를 가해(加持)해 주시기를 청했다. 그 후 끊임없이 학법하고 발정념을 함에 따라 마음이 안정되었고, 사람을 구하는 것은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하라고 하신 것이며 가장 바른 일이고 그 누구도 교란할 자격이 없으며, 사부님께서 바로 내 곁에 계시고 시시각각 제자를 보살피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자 두려운 마음은 점점 더 적어졌다.
어느 날 저녁, 나는 자료를 등에 지고 나가 배포했는데 가장 많을 때는 가가호호 300여 권을 배포하기도 했으며, 매번 문을 나설 때마다 사부님께 제자를 가지해 주시기를 청했다. 그다음에는 두려운 마음을 돌파하여 대면하여 진상을 알리고 삼퇴(중공의 당, 단, 대 조직 탈퇴)를 권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나면 논밭으로 가 농사짓는 농민들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그들은 대부분 매우 소박하고 선량하여 진상을 알아듣고 모두 삼퇴를 하여 자신을 위해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했다. 때로는 기차역이나 시내의 번화한 구역에 가서 진상을 알리기도 했는데, 가방을 많이 들었거나 횡단보도를 건너는 나이 많은 노인을 보면 다가가 도와주고 자연스럽게 진상을 알렸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면 적게는 2, 3명, 많게는 십여 명이었고, 한 달 동안 누적하면 백여 명에 달했다. 나는 내가 단지 입을 움직이고 다리를 움직였을 뿐이며 모두 사부님께서 하고 계시는 것임을 알고 있다.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사람을 구하려는 마음이 있는 것을 보시고 인여 있는 사람을 내 앞으로 보내주신 것이다.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잘하지 못했을 때도 있어 사악에게 빈틈을 보여 납치당한 일도 있었다. 기억하건대 그것은 막 진상을 알리기 시작한 초기 몇 년간의 일이었다. 한번은 내가 몇 명의 동수들과 무리를 지어 나가 대면 진상을 알리다, 진상을 모르는 세인에게 신고당해 경찰들이 우리 몇 사람을 파출소로 납치했다.
당시 나는 사부님의 설법이 떠올랐다. “어떤 환경이든지 사악의 요구, 명령과 지시에 협조하지 말라. 여러분이 모두 이렇게 한다면 환경은 이렇지 않을 것이다.”(《정진요지 2》 <대법제자의 정념은 위력이 있다>) 그리하여 그들이 무엇을 묻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마음속으로 거듭 사부님께 우리를 가지해 주시기를 청했다. 이곳은 대법제자가 머물 곳이 아니며 아직도 수많은 중생이 우리가 구도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안으로 찾아보며 자신에게 어디에 누락(漏)이 있는지 보았다.
알고 보니 나의 마음이 바르지 못해 초래된 것이었다. 매번 동수들과 나가 진상을 알릴 때마다 늘 내가 말하고 그들은 옆에서 발정념을 했는데, 때로는 동수가 나와 꽤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썩 화가 나 ‘당신들은 말하지 않고 나에게만 말하게 하는가, 이렇게 구한 중생은 누구의 것이 되는가?’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동수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고, 또 명예를 구하는 마음(求名心), 과시심, 사심(私心)이 있었다. 사람을 구하는 이토록 엄숙한 일을 내가 올바르게 대하지 못해 사악에게 빈틈을 보였고 이번 마난을 초래했던 것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가지를 청하며 이번 박해를 부정했다.
결과적으로 그곳에 도착해 혈압을 재니 190이 넘어 구류소에서 수용을 거부해 나를 돌려보냈다. 돌아온 후 경찰이 나에게 서명하라고 하며 서명하면 집에 보내주겠다고 하기에, 나는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라고 서명했다. 그들은 안 된다고 했다. 이때 한 경찰이 “이 사람은 이 몇 글자만 쓸 줄 알고 다른 글은 쓸 줄 모른다”고 말하며 더는 나에게 서명을 요구하지 않았다. 나는 이것이 내가 안으로 찾고 집착을 내려놓았기에 사부님께서 제자를 도와 이번 마난을 해소시켜 주신 것임을 알았다. 그러나 내가 몹시 유감스러웠던 것은, 동시에 납치당한 동수 중 어떤 이는 집으로 돌아왔으나 어떤 이는 불법 구류를 당했다는 점이다.
이 일을 통해 나는 수련이란 엄숙한 것이지만, 우리가 바르게 하기만 하면 사부님께서 제자를 위해 결정해 주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30년의 수련 길 위에는 아직도 허다하고 수많은 신기한 일들이 있으나 일일이 서술하지 않겠다. 앞으로 남은 많지 않은 시간 속에서, 제자는 반드시 법을 잘 배우고 자신을 잘 수련하며 사람을 많이 구하여, 자신의 사전 대원(史前大願)을 이행하고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30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