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삼(梅森)
【정견망】
한 달 전, 어떤 동수가 나에게 문자 메시지 한 세트를 전달해 주었다. 문자 메시지는 어떤 여자로부터 온 것이었는데, 그 여자는 나에게 내 아내가 그녀의 남편과 바람을 피운 지가 한두 해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한 것이었다. 증거는 확실했다. 나는 이 문자 메시지 들을 간단히 훑어보았고, 첫 일념(一念)은 이러했다: 이 일이 진짜든 가짜든 모두 너무 마음에 둘 필요는 없으며, 만약 진짜 그런 일이 있다면 그것은 속인들 사이의 전생의 은원과 인연으로 인해 초래된 것에 불과하다. 오히려 이 몇 명의 당사자 속인들이 이 풍파 속에서 겪는 수치심과 고통에 대해 나는 더욱 연민을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이 일은 나로 하여금 10년 전의 한 가지 일을 생각나게 했다. 그때 내가 아내와 북경의 한 무장경찰 군관이 문자 메시지 속에서 눈짓을 주고받으며 로맨스를 즐기는 것을 발견했을 때는, 지금처럼 평온할 수 없었다. 나는 먼저 꾹 참으며 상황의 변화를 조용히 관찰했는데, 점차 그들의 문자 메시지는 갈수록 말이 아니게 되었고, 반년 후 아내는 참지 못하고 아이를 데리고 북경으로 여행을 갔으며, 나는 아내가 북경에서 그 무장경찰 군관과 만났고 또 함께 밥을 먹었다는 것을 알아내어, 마음속의 불이 단번에 치밀어 올랐다.
아내가 북경에서 돌아오자마자 나는 즉시 단호한 조치를 취했다.
첫째는 집에서 이사해 나가는 것이었고,
둘째는 더 이상 월급을 갖다 주지 않는 것이었다.
내가 다시 들어오기를 바란다면 그 무장경찰 군관의 아내가 나에게 전화를 해야 할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다. 암튼 그때는 소동이 아주 크게 일어났고, 내 아이와 내 어머니 및 일부 동수들이 모두 알게 되어 안타까워 어쩔 줄 몰라 했다. 아내도 어안이 벙벙해졌는데, 그녀는 이전에 자신이 어떤 남자들과 가깝게 지내거나 혹은 일부러 제3자를 가지고 나를 자극했을 때 내가 모두 나무토막 같았는데, 왜 이번에는 이렇게 큰 반응을 보이는지 의아해했다. 그녀는 후회막급이었다.
이 일이 있은 후 두 달이 채 되지 않아, 같은 항목 동수들이 잇달아 납치되었고, 내가 마지막으로 납치되었다. 나는 밖에서 세 들어 살던 집 문앞에서 납치되었다. 이번에 불법적으로 4년 형을 선고받았는데, 감옥에서 동수가 면회의 기회를 이용하여 나에게 질투심을 제거해야 한다고 암시해 주었으며, 내가 이번에 박해를 받은 것이 내가 제3자에 대해 질투한 것과 관계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이때 나는 그 풍파에 대해 더욱 깊은 인식을 가지게 되었는데, 당시 화를 참지 못했던 것은 단지 질투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실 나와 아내가 결혼한 것은 대체로 한 생명을 구도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지, 속인식의 호감 때문이 아니었으며, 게다가 결혼 후 반년도 안 되어 결혼식도 치르지 못한 채 나는 감옥에 갇혔고, 감옥 안에서도 속인적인 그리움 같은 정이 별로 없었으며, 출옥 후에는 갈 곳을 잃고 떠돌아다녔는데 아내는 헤어지지 않고 나를 따라 생계를 유지하며 고생했기 때문에, 나는 다른 상대가 있고 없고에 신경쓰지 않았다. 그런데 왜 그때는 참지 못했을까?
사존께서는 《홍음 2》 〈슬퍼하지 말라)〉에서 말씀하셨다.
몸이 감옥에 갇혔다고 슬퍼하지 말라
정념정행하면 법이 있도다
조용히 생각해 보니 집착한 일 얼마이더냐
사람마음을 덜면 악은 스스로 패하리라
당시 4년의 감옥 생활 동안 나는 더 많은 일을 겪었고, 내면 깊은 곳에 숨겨진 집착을 반성할 더 많은 시간도 가졌다. 감금된 환경 속에서 집착을 고요히 생각할 때 나는 점차 깨닫게 되었는데, 당시 화를 냈던 것은 주로 무장경찰 무리에 대한 증오심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무장경찰 부대가 일찍이 감옥에서 나에게 직접적인 박해를 가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2002년 3월 15일 밤이었는데, 중국 초봄의 밤은 한기가 사람을 엄습했고, 감옥에서는 파룬궁 수련생을 겨냥한 첫 번째 박해 대회를 개최했으며, 회장 옆에는 한 무리의 무장경찰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는데, 무장경찰이 실탄을 장전하고 직접 경계에 참여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회의 중에 두 명의 동수가 “파룬따파하오(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높이 외쳤고, 즉시 무장경찰에 의해 회장 밖으로 끌려 나갔으며, 내가 막 “항의한다——”라고 외치자, 두 명의 무장경찰이 어두운 곳에서 날래고 사납게 뛰어나와 내 팔을 붙잡고 나를 회의장 외곽으로 끌고 가 강제로 꿇어앉혔는데, 울퉁불퉁한 시멘트 바닥에 꿇어앉혔고, 바지는 겨우 얇은 한 층이었으며, 무릎뼈가 시멘트 바닥의 모래와 돌에 눌려 몇 시간 동안 지속되니 온몸이 끊임없이 떨렸고, 나는 이번에 정말 뼛속까지 아픈 것을 느꼈다.
내 증오의 씨앗은 아마도 바로 그 한 번의 박해 속에서 심어졌을 것이며, 그 후 중국 무장경찰 부대의 전반적인 깡패 기질에 대한 인식이 깊어짐에 따라, 이 증오의 씨앗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싹이 트고 꽃이 피며 튼튼하게 자라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내가 그때 제3자를 직면했을 때 불을 참지 못했던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그 일이 마음에 충격을 주어 아내와 동수들은 내가 질투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했고, 한동안 나 역시 질투 때문이라고 오해했다. 그러나 뿌리에서는 질투가 아니었거나, 혹은 단지 질투만은 아니었으며, 주요한 것은 여전히 나를 직접 박해했던 무장경찰에게 은밀하게 원한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창춘보도원법회설법》에서 알려주셨다.
“현재의 사람은 이 마음을, 그는 엄폐(掩蓋)할 뿐만 아니라, 그는 엄폐함으로써 그 마음을 엄폐할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런 사람은 정말로 제도하기 어렵다. 당신이 그에게 점화해 주어도, 그는 심지어 자신이 감싸서 포장(包藏)한 그것을 의식하지도 못한다. 게다가 당신이 그의 실질적인 곳을 짚어주었을 때, 나의 법신이 그의 실질적인 그곳을 점화해 주었을 때, 그는 마치 속인을 대하는 것처럼 나의 법신을 속이고 있는바 그는 거짓된 모습을 한다. 아, 내가 잘못 했구나, 한 다음 그는 또 다른 엄폐로써 그의 엄폐 자체를 엄폐하고 있는바 또 다른 엄폐를 사용하는 것이다.”
제3자에 대해 질투하는 마음은 질투에 속하며, 수련자가 반드시 제거해야 할 중대한 집착이다. 어떤 여자 동수는 그녀의 남편이 외도를 한두 번 한 것이 아니라며 눈물을 흘리려 했다. 그러나 사람마다 상황이 다르고, 수련의 길이 다르며, 생명의 특징이 다르기 때문에, 제3자에 대해 질투하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는 약하거나 혹은 부차적인 것이었지만, 도리어 일종의 엄폐하는 도구가 되어 적에 대한 증오라는 이런 마음을 엄폐했다. 게다가 지난 몇 년 동안 반박해 속에서 끊임없이 사악한 당과 악경을 폭로할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 마음으로 이 증오의 씨앗을 양육했다. 적에 대해 증오하는 마음은 더욱 깊고 더욱 은밀하게 엄폐되었다.
사부님께서는 《오스트레일리아법회설법》에서 알려주셨다.
“그러므로 당신들이 어떠한 환경에서든, 어떠한 상황에서든 사람과 모순에 직면했을 때, 모두 선량한 마음, 慈悲(츠뻬이)한 마음으로 일체를 대해야 한다. 당신이 당신의 적을 사랑할 수 없다면 당신은 원만(圓滿)을 이룰 수 없다.”
“당신 개인수련 중에서 대하는 모든 사람을 용서하는 데까지 마음을 크게 먹어야 하는바 당신의 적을 용서하는 것을 포함해서다. 왜냐하면, 당신이 말하는 적은 인간이 구분한 적이며, 사람이 이익을 위해서 구분한 것이지 신의 행위가 아니다. 그러므로 요구도 높다. 신이 어찌 인간을 적으로 여기겠는가?”
그렇다, 내가 어찌하여 무장경찰을 원수로 여겼단 말인가? 그들이 고의로 악을 행한 것인가? 그들은 미혹된 중생이거나 혹은 악당에 이용당한 도구가 아닌가? 내 동창 중에도 무장경찰이 있지 않은가? 또한 무장경찰이 일찍이 우리 대법제자를 도운 적도 있지 않은가? 지난 몇 년 동안 잠재의식 속에서 무장경찰을 언급하기만 하면 내 무릎뼈가 은은하게 아파왔다. 이것이 무장경찰을 원수로 삼아 은밀하게 원한을 품은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내가 이 점을 깨달았을 때, 나는 사실 아직 무장경찰 무리들을 용서하는 것을 해내지 못했다. 얼마 후, 한 가지 특수한 경험이 있어 나의 수련을 “유암화명우일촌(柳暗花明又一村)”으로 이끌었다.
그것은 바로 간수소에서 사형수들과 아침저녁으로 반년간 함께 지낸 경험이었다. 한 감방에 13명이었는데, 9명이 사형수였다. 처음에는 사형수들의 무시무시한 사건 정황, 차가운 쇠사슬, 절망적인 눈빛, 비애 어린 말들을 마주하며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나 매일 마주해야 했고 도피할 수 없었기에,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끊임없이 심태를 조정하고 끊임없이 마음의 용량을 확대했다.
마침내 어느 날,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하나의 느낌이 생겨났다. 마치 천하(天河 은하수)의 홍수가 도도히 흘러내려 인간 세상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고, 홍수 속의 매 한 송이 물보라는 모두 하나의 생명이었으며, 이 생명의 홍수 속에는 속인, 동수, 사형수, 그리고 무장경찰이 포함되어 있었고, 내가 보았거나 보지 못했던 모든 사람, 동물과 식물, 유형과 무형의 생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매 하나의 생명이 모두 대법을 위해 왔고, 모두 구도되기를 기다리고 있으며, 대법을 놓치면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며 생명은 철저히 고갈될 것임을 느꼈다. 매번 이 정경이 나타날 때면 나는 일종의 무한히 아름다운 느낌 속에 처하게 되었는데,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없고, 원수에 대한 증오도 없으며, 미래에 대한 의구심도 없고, 오직 멈추지 않는 눈물과 말할 수 없는 행복감만 있었다. 어느 날 나는 문득 깨달았는데, 이 느낌이 바로 평소에 입에 달고 살던 자비(慈悲)가 아닌가!
비가 오는 어느 날, 나는 간수소 창밖의 부슬부슬 내리는 가랑비를 바라보며, 그것이 단지 신불이 자비롭게 눈물을 흘리는 것이라고 느껴져 이에 읊었다.
예전에는 법리가 깊은 줄 몰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자비를 말했었네
이제야 자비의 맛을 알게 되나니
하늘에 가득한 것이 모두 신불(神佛)의 눈물이구나
从前不知法理深
大言不惭说慈悲
而今识得慈悲味
漫天皆是神佛泪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이 4년의 억울한 감옥 세월 동안 적어도 법리상에서 두 가지 지극히 깊은 깨달음을 얻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자비였다. 이때부터 신체에서 내심에 이르기까지 모두 정체적인 제고와 변화가 있었고, 문제를 바라보는 완전히 새로운 척도와 각도가 생겼다. 이때에야 비로소 나는 내가 원수에 대한 증오를 담담하게 보았고 내려놓았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사존의 세심한 안배에 감사드린다. 내 마음속의 원수가 제3자의 신분으로 나타나게 하셨고, 또 나로 하여금 사형수 감방을 한 번 거치게 하여 뜻밖의 수확을 얻게 하셨으며,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나로 하여금 자신의 아주 무거운 집착을 깨닫게 하시고, 뼛속에서부터 이 “천백 년 이래 뼛속에 형성된 사람의 이치”(《정진요지》 〈경고하는 말〉)를 버리게 하셨다.
“천백 년 이래 뼛속에 형성된 사람의 이치”(《정진요지》 〈경고하는 말〉)는 원수에 대한 증오 외에도 아직 많이 있으며, 모두 내가 가서 그 “엄폐”를 발견하고, 그 “엄폐”를 털어내어, 뿌리에서부터 깨닫고 뼛속에서부터 집착을 제거함으로써, 끊임없이 깨끗이 씻어내어 진정으로 대법 표준에 도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함께 사부님의 《정진요지》 〈경고하는 말〉 중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복습해 보자.
“당신들이 속인의 그 천백 년 이래 뼛속에 형성된 사람의 이치를 개변하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사람의 표면적인 이 한 층의 껍데기를 벗어버릴 수 없으며 원만할 수 없다.”
“수련 중에서 당신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착실하고도 착실하게 제고함으로써 내재적으로 거대한 본질적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힘에 의거하고 외재적인 강대한 요소의 도움을 빌린다면, 이는 영원히 당신 사람의 본질을 불성(佛性)으로 전변시킬 수 없다. 만약 당신들이 사람마다 모두 내심에서 법을 인식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비로소 위력이 끝없는 법의 체현 ― 인간 세상에서 강대한 불법(佛法)의 재현(再現)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30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