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심(慧心)
【정견망】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전 세계 동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나는 1997년에 고맙게도 대법(大法)을 얻었다. 대법을 얻은 후 나는 몸과 마음으로 혜택을 입어, 병이 없어 몸이 가벼워졌을 뿐만 아니라 온전한 정신 상태도 완전히 새롭게 바뀌어 내심이 기쁨으로 가득 찼다. 99년에 사악이 극성스럽게 대법을 박해하고 탄압한 후, 신체적·정신적으로 커다란 고통과 압박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큰 박해를 당했다. 생계를 위해 우리 몇몇 대법제자들은 과거에 한 슈퍼마켓을 경영했는데, 가게 이름이 바로 ‘도의상점(道義商店)’이었다. 아래에 내가 ‘도의상점’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도의상점’을 언급하려면 내가 박해를 받았던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2000년은 사악이 대법제자들을 가장 광기 어린 모습으로 박해하던 시기였다. 나는 수련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직에서 불법 해고당했고, 이후 사악의 박해를 받아 구치소에 불법 수감되었다. 다른 공간의 사악한 박해로 인해, 불법 수감된 대법제자들의 대다수 몸에 옴(疥瘡, 개선충에 의한 피부병)이 돋아났는데 모두 고름이 잡혔다. 내가 그중에서도 가장 심했는데, 얼굴에만 없을 뿐 손바닥과 발바닥까지 온통 돋아났다. 커다란 마난(魔難)과 고통을 겪었고,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서야 점차 호전되었다. 그때는 함께 있던 동수들이 내 일상생활을 돌보아 주었다. 맛있는 음식을 먼저 나에게 주었을 뿐만 아니라 머리를 빗겨주고 감겨주었으며, 심지어 빨래까지 해주며 나를 돕고 격려해 주었기에 나는 확고하게 걸어 나올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내 옴은 아직 깨끗이 낫지 않은 상태였다. 막 집에 도착했을 때는 가사노동을 할 수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비록 여전히 옴이 돋아나도 그 양이 점점 적어지면서 나는 빨래와 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 동수가 갑자기 고열을 앓더니 몸에 옴이 돋아났는데 증상이 상당히 심했다. 그는 온몸뿐만 아니라 얼굴까지 옴이 번져 결국 출근을 할 수 없게 되었고, 단번에 생활 능력을 상실하여 수입원이 끊어졌다. 본래 저축해 둔 돈도 얼마 없었던 데다 사악의 경제적 박해까지 더해져 생활은 매우 곤궁해졌다. 나 역시 당장 적당한 일자리를 찾기 어려웠고 남편을 간호해야 했다. 내 생활이 가장 고달프던 시절, 동수 W 언니가 나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자신이 운영하는 가게에 출근하라고 했다. 한 달에 300위안을 주었기에 우리 부부의 기본적인 생활은 보장될 수 있었다.
W 언니는 똑 부러지고 유능하며 부지런하고 검소했다. 또한 의리가 있고 동정심이 많았으며 사람이 아주 선량하고 경제적 두뇌가 있었다. 그때 그녀는 경제적 조건이 비교적 좋아서 가게의 모든 자본금을 스스로 냈는데, 나중에 버는 이윤은 모두 똑같이 나눴다. 그녀 역시 우리와 똑같이 나누어 가졌고 한푼도 더 가져가지 않았다. 내가 그곳에 갔을 때는 이미 또 다른 동수 S 언니가 와 있었고, 나중에 작은 점포를 하나 더 열어 또 다른 동수가 그곳을 돌보게 되면서 우리는 이미 네 명의 수련생이 함께하게 되었다.
W 언니는 평소에 가게에 잘 없었고, 시간이 날 때 우리와 교대를 해주거나 손님이 많을 때 와서 물건 파는 것을 도와주었을 뿐이다. 수련인으로서 우리는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에 따라 선한 마음으로 모든 고객을 대했다. 한결같이 대하며 노인이나 어린아이도 속이지 않았고, 찾아오는 사람이 물건을 사든 사지 않든 우리는 모두 열정적인 웃는 얼굴로 맞이했다. 상품은 일률적으로 엄격하게 15%의 마진만 붙여 가격을 매겼고, 함부로 가격을 올리지 않았으며 돈을 더 받지도 않았다. 친절하고 인내심 있게 매 고객을 대했기에 신용이 매우 좋았다. 이웃 사람들도 모두 우리 작은 가게에 와서 물건 사는 것을 좋아했고, 시간이 나면 와서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아하며 매우 즐거워하고 기뻐했다. 대법제자들은 모두 매우 우호적이고 선량하며 남 돕기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당시 근처에 살던 한 고객은 가정에 커다란 마난이 닥쳐 큰 충격을 받았고, 정신도 약간 이상해진 듯 갱년기 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올 때마다 앉으라고 권해도 앉지 않고 그저 서 있었다. 조금 있으면 덥다고 외투를 벗었다가, 또 조금 있으면 춥다고 얼른 다시 입곤 했다. 그녀는 거의 매일 우리 작은 가게에 와서 한동안 머물렀다. 우리는 그녀를 싫어하지 않았고 매번 인내심 있게 대법의 법리로 그녀를 깨우쳐 주며 내면의 고통과 답답함을 최대한 풀어주려 노력했기에 그녀는 우리에게 무척 고마워했다.
그 시절에는 타지에서 온 노동자들이 비교적 많았다. 저녁때가 되면 그들은 무리를 지어 우리 가게로 물건을 사러 왔다. 대법제자로서, 특히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우리는 스승님의 말씀을 마음속 깊이 새기고 세 가지 일을 잘해 나갔다. 그리하여 우리는 잡화점의 유리한 조건을 이용해 물건을 사러 오는 모든 중생을 구도해야 할 인연이 있는 사람으로 여겼다. 기회가 생기면 그들에게 대법의 아름다움과 사악이 대법제자에게 가하는 박해를 이야기해 주었고, 많은 인연 있는 이들이 대법의 진상을 깨닫고 구도를 받았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만나면 우리도 최대한 도우려 했다. 한번은 어떤 소년이 와서 돈이 다 떨어져 고향으로 돌아갈 차비가 없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당시 내 돈을 꺼내어 그에게 주었다. 특히 외지에서 온 노동자들의 경우, 무슨 어려움이 있어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면 우리는 이익의 득실을 따지지 않고 온 힘을 다해 그들을 도와주었다. 우리 대법제자들이 운영하는 가게였기에 환경이 좋고 여유로워서, 손님이 없을 때 우리는 책을 보며 법을 공부하고 발정념을 했다. 때로는 다른 동수들도 가게로 찾아와 수련생들이 함께 심성을 교류하며 공동으로 제고하고 서로 도와주었으니 아주 편리했다. 지역 경찰들도 자주 방문(실제로는 교란)하곤 했으나, 우리는 모두 선한 마음으로 그들을 대했다. 서로 잘 아는 사이였기에 그들이 올 때마다 우리 사이에는 가벼운 대화가 몇 마디 오갔고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나중에 재개발로 인해 가게를 더 이상 열 수 없게 되자, W 언니는 번화가 대로변에 큰 매장을 세 얻어 우리는 슈퍼마켓을 열었다. 동시에 또 한 명의 동수가 들어와 우리는 다섯 명의 수련생이 함께하게 되었다. 사악의 박해가 가장 가혹하고 압박이 컸던 상황 치고는 인원수가 적지 않았다. W 언니는 가게 이름을 ‘도의상점’이라 지었고, 이름을 정한 후 간판을 만들어 걸었다. 아마도 이 이름이 너무나 바르다 보니 다른 공간의 사악한 생명과 요소들을 자극했던 모양인지, 그것들은 관련 부서 직원을 조종해 우리 슈퍼마켓으로 찾아오게 했다. 그들은 W 언니를 찾아와 이 이름을 쓰지 못하게 했다. W 언니는 두려워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조금의 겁도 없이 의롭고 준엄한 말로 상대방의 말문을 막히게 했고 이치에 궁하게 만들었다. 결국 그들은 어찌할 도리 없이 떠나갔다. 그렇게 ‘도의상점’이라는 간판은 당당하고 높다랗게 우리 슈퍼마켓 정문 위에 걸렸다.
슈퍼마켓이 번화가 대로변에 위치한 데다 우리가 친절하고 선량하며, 물건값이 정직하고 공정하게 거래할 뿐만 아니라 일거수일투족에서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의 풍모를 보여주었기에 슈퍼마켓은 늘 정돈되어 깨끗했다. 사람들은 금세 이 도의상점을 알게 되었고 앞다투어 찾아와 물건을 샀다. 시간이 흐르면서 지역 사람들은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연 상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의 신분이 공개되어 있었기에 우리가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지역 사람들은 우리를 더 이상 ‘도의상점’이라 부르지 않고 ‘파룬궁점(法輪功店)’이라 불렀다. ‘파룬궁점’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모두 ‘도의상점’인 줄 알았고, 지역 내에서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우리의 매출액도 매우 상당했다. 당시 W 언니는 다른 곳에 매점을 하나 더 열었고, 다른 수입까지 더해져 우리가 받는 급여는 당초의 몇 백 위안에서 나중에는 천 위안, 심지어 몇 천 위안에 이르렀다. 이는 당시 기준으로 아주 괜찮은 수입이었다. 매장이 커지다 보니 찾아오는 사람도 많아져 별의별 고객을 다 만날 수 있었다. 어떤 고객을 만나든 우리는 고객이 만족할 때까지 인내심 있고 선의로 대했다. 원래 우리 이윤이 낮았음에도 어떤 고객은 값을 흥정하며 기어이 더 싸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녀에게 설명을 해주어도 통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조금 깎아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리의 내면은 여전히 수련인의 표준에 근거해 타인에게 선하게 대하고 일이 생기면 남을 먼저 배려했기에, 고객에 대해 그 어떤 나쁜 생각도 품지 않았다. 어떤 상황을 만나든 우리는 대법의 원칙에 따라 행했고 우리의 서약을 이행해 나갔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지역에서 아주 유명한 건달이 있었다. 욕설을 일삼고, 술 먹고 싸움박질을 하며, 물건을 사고 돈을 안 내거나, 관리들에게 돈을 갈취하는 등의 짓을 하는 자였다. 그 역시 우리 슈퍼마켓에 자주 왔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에 대해 불만이 많았고 보통 사람들은 그와 접촉하기 싫어하며 반감을 가졌다. 그러나 수련인으로서 우리는 중생을 구도한다는 원칙에 입각해 그를 색안경을 끼고 보지 않았다. 그에게 대법의 아름다움과 사악의 박해를 이야기해 주었고 삼퇴(三退: 이전에 가입했던 공산당·공청단·소선대 조직에서 탈퇴하는 것, 당시 이미 삼퇴의 대조가 시작되었다)를 권했다. 사람에게는 모두 선량한 일면이 있기에 그는 대법을 몹시 인정했고, 우리 대법제자들이 모두 아주 선량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중국 공산당이 어떤 부류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우리에게 말할 때 매우 예의 바르고 정중하게 대했으며 심지어 탄복하기까지 했다. 대법과 사부님의 자비에 감사드리며, 이 생명 또한 구도를 받게 되었다.
슈퍼마켓을 찾는 다른 이들에게는 더더욱 그렇게 대했다. 특히 밤이 되면 외지에서 온 노동자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서로 다른 지역에서 왔으나 모두 인연이 있는 이들이며 우리가 구도해야 할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최대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인연 있는 사람을 한 명도 빠뜨리지 않기 위해 시간을 아껴가며 진상을 알렸다. 대법의 아름다움, 대법이 세계적으로 널리 퍼진 성황, 천안문 분신 자살 사기 사건, 삼퇴가 무엇이며 왜 삼퇴를 해야 하는지, 그리고 전통문화 등을 이야기해 주었다.
특히 2006년 파룬궁 수련생들의 장기 적출 악행이 폭로된 후, 우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여 사악의 하늘을 거스르는 대죄를 폭로했을 뿐만 아니라 광범위하게 소책자를 배포하여 더 많은 중생이 진상을 알게 했다. 그리하여 많은 인연 있는 이들을 구도했고 수많은 중생이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이 ‘도의상점’은 어느새 우리가 중생을 구도하는 훌륭한 장소가 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시간이 나면 모두 우리 가게에 와서 앉아 이야기 나누기를 좋아했다. 우리 가게에 자주 오던 한 아주머니가 말했던 것처럼 “나는 그저 당신들 이곳에 와서 앉아 있는 게 좋아요. 마음이 편안해집니다”라고 했다. 이것이 바로 “불광이 널리 비치니 예의가 원만하면서도 밝음”(《전법륜》)이 드러난 것이다.
당시 우리는 교대 근무를 했다. 오전 한 조, 오후 한 조였다. 오전 근무를 할 때 우리는 최대한 일찍 가서 일찍 문을 열었다. 다른 상점들이 아직 문을 열지 않았을 때 우리 슈퍼마켓은 이미 영업을 시작했다. 특히 여름에는 날이 일찍 밝았기에 일찍 일어나는 고객들이 물건을 사기에 편리하도록 했다. 동시에 청소를 하고 바닥을 닦고 진열대를 닦는 등, 고객에게 최대한 쾌적하고 밝은 좋은 환경을 제공하려 했다. 일찍 오고 늦게 가는 시간적인 면에서 우리는 조금도 계산하지 않았으며, 무슨 일이 생기면 모두가 서로 교대해 주고 도와주었다. 선량하고 포용하는 마음을 품었기에 수련생들은 함께 지내며 매우 화목했고 우리 슈퍼마켓을 일목요연하게 잘 꾸려나갔다. 외지인들이 무척 부러워하며 “당신들은 정말 보기가 좋다”고 말하곤 했다.
오늘날 물질적 욕망이 넘쳐나는 시대에 인류의 도덕은 크게 떨어지고 있다. 황금만능주의가 성행하고 돈을 최고로 여기며 무슨 일이든 돈으로 이야기하니 사람들의 마음은 모두 이기적이다. 친구, 친척, 자매, 형제 등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순식간에 낯을 바꾸고 서로 크게 욕하며 심지어 크게 싸우기까지 하는 등, 친정(親情)과 우정은 절박한 이익 앞에서 한 푼의 가치도 없게 변해버린다. 사악의 이 오랜 세월 동안의 박해와 탄압 속에서 나는 이를 직접 경험하고 체감해 왔다. 그러나 우리의 ‘도의상점’은 탁한 세상의 한 줄기 맑은 시냇물처럼 사람들의 심령을 씻어주고 정화해 주었으며, 사람들의 선념과 양지를 일깨워 주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가정에서 왔고, 서로 다른 생명의 특징을 지녔으며, 서로 다른 생활 습관을 지니고 있어 아무런 친인척 관계도 없었지만 매우 화목하게 지냈다. 우리는 한 가족이 아니었지만 한 가족보다 나았다. 우리는 진실하고 선량하며 인내했고, 사심 없이 봉사했으며, 명리를 담담하게 보았고, 일이 생기면 남을 먼저 배려했다. 우리는 자비롭고 상서로운 장(場)을 풍겼으며 대법의 바른 에너지를 지니고 우리 슈퍼마켓을 날로 번창하게 운영해 나갔다. 사람들로 하여금 파룬따파의 위대함과 아름다움, 그리고 초상성(超常性)을 보게 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대법의 위덕이 가져다준 결과다. 대법은 우리의 세계관, 인생관, 가치관을 바꾸어 주었고 사람이 세상에 온 진짜 목적이 인간 세상의 부귀영화가 아니며, 권력과 돈, 명리는 더더욱 아니고 바로 반본귀진(返本歸真)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인간 본연의 참된 본성으로 돌아가 우주의 특성인 ‘진·선·인’에 동화하는 것이다. 대법의 법리는 우리로 하여금 모순과 마찰, 심령의 부딪힘 속에서 일이 생기면 먼저 자신의 문제를 찾도록 했고 안으로 찾고 마음을 향해 닦음으로써(向心修), 자신의 심성을 제고해 모순과 은원(恩怨)을 해소할 수 있게 해주었다. 사람들도 매우 경탄하며 “당신들처럼 많은 사람이 함께 모여 슈퍼마켓을 이렇게 잘 운영하는 경우는 너무나 드물다”고 말했다.
그 당시 우리는 지역의 환경도 매우 바르게 정해 놓았다. 비록 지역 경찰들이 때때로 우리 슈퍼마켓에 자주 찾아왔지만, 그들 역시 우리에게서 아무런 문제도 찾아내지 못했다. 게다가 우리의 평판이 매우 좋다는 점을 그들도 잘 알고 있었다. 이토록 많은 대법제자가 함께 모여 슈퍼마켓을 열고 날마다 함께 있으면서, 운영을 잘할 뿐만 아니라 대법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 있었으니 ‘파룬궁점’의 명성은 날로 커져만 갔다. 당시 사악의 가혹한 박해 환경 속에서 이는 사악을 강력하게 위협했고, 그들이 함부로 행동하려 해도 감히 그러지 못하게 만들었다.
2008년, 지역 공안은 마침내 참지 못하고 외지의 공안 및 국보(국내안전보위국) 경찰들과 공모하여 갑작스럽게 우리 지역 대법제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불법 체포를 감행했다. 나는 당시 소식을 미리 접했기에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나 유랑하게 되었고, 가게에 있던 다른 동수들은 전부 불법 납치되었다. 이로써 우리는 밤낮으로 함께 정을 나누던 ‘파룬궁점’인 도의상점을 떠나게 되었다.
‘도의상점’은 비록 인간 세상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영원히 남아 파룬따파를 증명하는 역사의 긴 강물 속에 합류하여 우주에 기록되어 있다. 우리의 육안으로는 그것을 볼 수 없게 되었지만, 우리는 그것이 다른 공간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며 이미 그곳에 영원히 존재하며 반짝반짝 빛을 발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이 글을 쓴 첫 번째 목적은 대법과 사부님의 위대하신 자비를 증명하기 위함이다. 또 다른 목적은 먼저 세상을 떠난 동수 W 언니와 S 언니를 기념하기 위함이다. 동시에 나 자신을 채찍질하여 정진하고, 집착과 사람의 마음을 서둘러 닦아 버리며, 특히 안일함과 게으른 마음을 제거하기 위함이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살핌 아래 우리는 비록 많은 우여곡절과 마난을 겪었지만 모두 굳건하게 걸어왔고 오늘날까지 걸어왔다. 정법의 남은 날이 얼마 되지 않는 이때, 우리는 전과 다름없이 세 가지 일을 잘해 나갈 것이며 자신을 잘 닦아 자신의 역사적 사명을 완수하고, 더 많은 중생을 구도하여 사부님을 따라 끝까지 정법을 완수하고 천국 세계로 돌아가 인류 진짜 고향으로 회귀할 것이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에 감사드립니다! 사부님의 가없고 넓은 홍은(洪恩)에 감사드립니다! 동수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3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