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대법제자
【정견망】
최근 몇 년 동안, SNS와 1인 매체의 발전에 따라 사람들이 정보를 얻는 방식에 큰 변화가 발생했다. 많은 사람이 동영상, 라이브 방송, 평론 프로그램과 소셜 플랫폼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대법제자가 운영하는 매체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매체가 낳는 영향력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것은 우리가 진지하게 심사숙고해야 할 문제이다.
대법제자가 매체를 운영하는 것은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매체는 일단 비교적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되면, 하는 말과 내놓는 평론이 단지 소수의 사람에게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더 광범위한 사회적 대중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심지어 일반인들이 대법제자를 바라보는 관점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체득한 바로는, 매체가 영향력이 클수록 더욱 엄숙하고 신중하며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특히 중대한 사회적 사건, 정치적 사건, 혹은 일부 논쟁을 일으키기 쉬운 화제에 직면했을 때, 먼저 ‘이 화제가 과연 우리가 이야기하기에 적합한가? 이야기하는 것이 과연 사람을 구하는 데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가? 일반인들이 진상을 더 쉽게 이해하도록 만들 수 있는가? 아니면 사람들에게 반감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무슨 인기 화제라고 해서 모두 따라가야 하는 것은 아니며, 트래픽이 따르는 주제라고 해서 모두 이야기하기에 적합한 것도 아니다. 만약 진정으로 사람을 구하는 기점에 서서 말하지 않는다면, 트래픽에 이끌려 움직이기 쉽고, 명리심(名利心)에 이끌리기 쉬우며, “내가 관점을 표현하겠다”는 마음에 이끌리기 쉽다. 표면적으로는 매체를 하고 평론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미 수련인으로서 마땅히 지녀야 할 상태에서 벗어났을 수 있다.
만약 어떤 화제를 확실히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면, 자료와 인물, 그리고 사례의 사용에 있어서 더욱 엄격하고 신중해야 한다. 예를 들어, 매체가 소재를 인용할 때 표면적인 내용이 적합한가만 보아서는 안 되며, 인물 자체의 배경과 공개적인 입장이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오지 않을지도 보아야 한다. 어떤 이들은 일반인의 몇몇 영역에서 어느 정도 지명도가 있을 수 있고, 보기에 인용할 만한 말을 했을 수도 있지만, 만약 이 사람이 일찍이 대법을 공개적으로 공격했거나 사부님을 공격했거나, 혹은 중대한 시비(是非) 앞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면, 그를 정면(正面)적인 사례나 자료의 출처 또는 동영상 소재로 사용하는 것은 대단히 신중하지 못한 것이다. 수련인이 매체를 할 때는 표면적인 효과만 보아서는 안 되며, 더욱이 소재를 취하기 편리하다는 이유로 등 뒤의 요소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불필요한 교란을 조성할 수 있다.
다시 더 깊은 곳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왜 핫이슈에 쉽게 이끌려 움직이는가? 그것은 우리가 외부 형세, 정치인, 국제 사건, 심지어 어떤 예언에 대해 아직도 기대를 품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정세가 변화할 때마다 사람의 마음속에서는 쉽게 ‘형세가 변하는 걸까? 박해가 곧 끝나려는 것인가? 어떤 사람이나 어떤 국가, 어떤 사건이 전환점을 가져다줄 것인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많은 기대가 진정으로 실현되지는 않았다. 예언이든 정세 분석이든 흔히 맞지 않으면 다시 새로이 해석하고, 그러고는 또 다음번을 기다린다. 이 속에 또한 우리가 닦아버리지 못한 사람 마음(人心)이 있는 것은 아닌가? 마땅히 수련인 스스로가 잘해야 할 일을 속인 사회의 변화에 기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2002년 미국 필라델피아 법회 설법》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예전에 말했다. 내가 말하는데, 실제로 속인사회에서, 오늘날에 발생된 일체 일들이 모두 대법제자들의 마음에 의해서 촉성(促成)된 것이다. 비록 구세력이 존재해도, 당신들에게 그 마음이 없다면, 그것들은 방법이 없다.”
내가 깨닫기로는, 어쩌면 바로 우리 정체 속에 존재하는 이러한 사람마음들 때문에, 잔존하는 구세력 요소들에게 소위 대법제자를 계속 고험한다는 구실을 주었을 수 있으며, 심지어 본래 정면적인 요소로 작용했어야 할 사람이나 일이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동시에 내가 깨닫기로는, 이 단락의 법은 우리에게 시선을 늘 외부 형세가 어떻게 변화하는가에만 두어서는 안 되며, 마땅히 되돌아와 자신의 마음을 보아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연장해 주신 시간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을 잘 닦고 중생을 구도하라고 하신 것이지, 우리더러 어떤 외적인 사건이 와서 일체를 끝내기를 기다리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수련해 왔다면, 외부 형세가 어떻게 변화하든 모두 자신을 안정시키고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잘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외에, 속인 사회 중의 일부 격렬한 사건을 평론할 때도 이 기점은 매우 중요하다. 많은 사회적 사건의 이면에는 흔히 일반인들이 장기간 받아온 불공평, 억압, 상해와 무력함이 연루되어 있다. 속인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분노와 반항을 품게 되며, 심지어 어떤 격렬한 표현 방식을 정당하게 여기기도 하는데, 이것은 속인 사회 중의 상태이다. 수련인은 더 높은 이치(理)를 알고 있으며, 악으로 악을 제어해서는 안 되고, 원한과 보복심 속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이것은 우리가 수련 중에서 자신에게 요구하는 바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공개적인 평론 중에서 직접 수련인의 표준으로 속인의 반응을 비판한다면, 속인들은 흔히 알아듣지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않을 것이며, 반대로 우리가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끼거나, 심지어 우리가 도덕적으로 높은 곳에 서서 그들을 지적한다고 느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본래 바른 정보를 전달하려다 결과적으로 도리어 반대 효과를 낳을 수 있다.
그러므로 국제 형세를 평론하든, 속인 사회 중의 논쟁적인 사건을 평론하든, 모두 기점과 정도에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매체의 평론은 핫이슈를 쫓기 위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정서와 관점을 표현하기 위한 것도 아니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 사람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가, 사람들이 진상을 더 쉽게 명백히 알 수 있게 하는가를 보아야 한다. 만약 기점이 바르지 않다면, 비록 말한 것이 겉으로 도리가 있는 말이라 할지라도 좋은 효과에 도달하지 못할 수 있다.
동시에 시청자로서 우리 또한 자신의 기점을 지켜야 한다. 대법제자가 운영하는 매체는 우리가 지지할 만한 가치가 있지만, 지지가 맹종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매체를 하는 사람도 수련 중의 사람이며, 또한 부족함이 있을 수 있고, 선의의 일깨움이 필요하다. 만약 우리가 어떤 매체나 평론가에 대해 팬의 심리가 생겨, 내가 인정한 사람이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맞다고 여기거나,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줄곧 쫓으며 줄곧 따라간다면, 그것은 사실 이성적이지 못한 것이다. 문제를 보고도 말하지 않고 오직 한결같이 추종하고 부화뇌동한다면, 반대로 좋지 못한 요소를 조장할 수 있다. 마지막에 만약 어떤 언론이 속인의 반감을 자아낸다면, 상처를 받는 것은 단지 한 사람만이 아니며 정체적인 형상에도 영향을 줄 수 있고, 심지어 중생 구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법제자가 매체를 볼 수 있고 평론을 참고할 수는 있지만, 그것에 이끌려 움직여서는 안 되며, 더욱이 대량의 시간을 핫이슈를 쫓으며 감정 기복에 소모해서는 안 된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어떤 평론이 얼마나 멋진가, 어떤 사건에 또 어떤 반전이 있었는가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그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보았는가, 외부 형세에 의존하는 마음을 닦아버렸는가, 더욱 이성적이고 자비로우며 지혜롭게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가이다.
이것은 내가 최근에 체득한 몇 가지이다. 타당하지 못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33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