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正明)
【정견망】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동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교류할 내용은 주로 최근 한동안 동수들에게 나타난 병업(病業) 가상(假象)과 동수가 세상을 떠나는 현상을 겨냥해 개인적으로 깨달은 바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사부님께서는 《대법홍전 25주년 법회 설법》에서 제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제자: 최후일수록 더욱 정진해야 하지만, 아직 일부 수련생은 자신의 교란이 매우 커, 부동한 정도의 병업이 나타났는데, 세 가지 일을 하는 데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 부분 동수를 어떻게 도와줘야 합니까?
사부: 그렇다. 처음부터 끝까지, 구세력은 대법제자의 수련환경을 평온하게 하려 하지 않는다. 그것이 이런 지역의 대법제자에게 어떤 마음이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하면, 그것은 어떤 것을 만들어 여러 사람에게 보게 하여, 당신들을 수련하게 한다. 당신은 당신에게서 반응되어 나온 사상이 무엇인지 보라. 정념에서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람마음에서 생각하는 것인지를. 그것은 줄곧 이렇게 하고 있다. 일부 수련생은, 장기적으로 집착이 존재하는데, 자신은 의식하지 못한다. 심지어, 어쩌면 진상을 알리고 대법 일에 바빠 마음을 써서 자신을 생각해 보지 못했고, 자세히 자신을 생각해 본 적이 없을 수도 있는데, 이 문제가 엄중해지고 구세력이 가만두지 않게 되면, 곧 표현되어 나온다. 그러므로 이런 일을 당신들은 절대 주의하기 바란다. 그 사악이 어떻게 미쳐 날뛰든지, 당신이 만약 결함이 없으면 그것은 감히 당신을 건드리지 못한다.”
사부님의 설법을 공부하면서, 우리 주변의 병업 중인 동수의 표현을 우리는 수련인의 정념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아니면 사람의 마음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있는가! 병업 중인 동수의 제고 속도와 병업관을 잘 넘기는지 여부는 정말로 동수 한 사람의 일이 아니며, 우리 주변의 대법제자 개개인 모두와 관계가 있다.
우리 대법제자는 하나의 정체(整體)이므로, 그 어떤 때라도 우리는 구세력과 같아질 수 없다. 어떤 때는 우리의 행동과 말하는 태도가 그리 상화롭고 선량하지 못한데, 사실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대법이며 사부님이시다. 우리는 모두 수련 중인 사람이므로 동수에게는 선의로 일깨워 줄 수밖에 없다. 우리는 마난(魔難) 중인 동수에 대한 도움이 부족했고, 마난 중인 동수의 감정을 입장을 바꿔서 고려하지 못했다. 우리는 동수에게 너무 심한 말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동수가 아무리 잘못 표현하더라도, 그것은 닦아버리지 못한 집착심에 이끌린 것이지, 동수가 진짜로 그리 나쁘거나 그 생명이 나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단지 이 집착심이 좋지 않고 업력으로 인해 초래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마땅히 분별해야 하며, 동수의 부족함을 보았을 때 제때에 발정념(發正念)으로 가지해 주어야 한다. 즉, 조건 없이 묵묵히 정념으로 가지해 주어 구세력이 기회를 틈타 박해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아야 한다. 동수에게 집착이 있고 누락이 있다면 법에서 바로잡으면 되는 것이며, 구세력 너희는 관여할 자격이 없다고 줄곧 정념으로 동반해야 한다. 마난 중인 동수와 함께 법을 많이 배우고 법 안에서 바로잡으며, 법 위에서 교류하고 토론하는 것이 가장 좋다!
따지지 않고, 비난하지 않으며, 동수의 공간장에 좋지 않은 물질을 더하지 않고, 구세력이 기회를 틈타 교란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우리의 수련은 구세력과 아무런 연계가 없으며 우리는 사부님께서 관장하시기 때문이다. 때로 우리의 바르지 못한 생각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구세력과 같아지게 한다. 우리가 정념으로 일체를 대하고, 동수에게 선의로 일깨워 주며, 인내심 있게 돕고, 이성적으로 부족함을 찾으며, 부드럽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면, 동수는 우리가 매우 마음이 통하고 신뢰할 만하다고 느낄 것이다! 우리가 수련 상태에 더 있을수록, 법에 더 부합할수록 구세력은 더욱 발붙일 곳이 없어진다!
사실 우리는 동수를 돕는 동시에 자신의 제고이기도 하며, 자신의 수련을 검증하는 것이기도 하여 자신이 법리에서 명석한지 아닌지 보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동수와 똑같은 문제에 부딪힌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의 정념, 자비심과 선심(善心)이 얼마나 강한지, 우리의 말투, 선심, 도리가 마난 중인 동수를 눈물 흘리게 할 수 있는지 보아야 한다.
사실 병업 중인 동수만 닦아야 할 곳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우리 주변의 동수들 모두 제고해야 할 곳이 있으며, 다만 중점이 다를 뿐 모두 지극히 중요하다. 첫 일념이 구세력이 동수에게 가하는 박해를 부정하는가?! 그런 다음 동수가 법 위에서 자신을 바로잡도록 돕는다면, 만약 우리 지역의 동수들이 모두 정체를 형성할 수 있어서 동수가 마난에 부딪혔을 때 대륙 동수들처럼 모두가 첫 시간에 즉시 단체로 발정념하여 사악 배후의 요소를 해체하고 동수가 사악의 박해를 줄이도록 도울 수 있다면, 우리 지역에는 우리가 보고 싶지 않은 국면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구세력은 대법제자의 수련환경을 평온하게 하려 하지 않는다. “(《대법홍전 25주년 법회 설법》)고 말씀하셨다. 내가 깨닫기로는 수련은 엄숙한 것이며, 우리가 겪은 이러한 교훈을 통해 우리 모두는 자신의 수련을 살펴보아야 한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우리에 대한 법의 요구에 부합할 수 있겠는가?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수련 심태를 바로잡고, 법을 배울 때 형식을 걷지 않으며, 법을 배워 법을 얻어야 하고, 법을 배울 때 마음으로 몰입한 후 법으로 자신의 일언일행(一言一行)을 대조하여 진정으로 진수(眞修)·실수(實修)를 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부님께서는 《각지 설법 11》-〈2010년 뉴욕법회 설법〉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여러분이 이러한 일을 잘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나는 끊임없이 여러분에게 진정하게 법 공부를 하고 착실히 수련하라고 했다. 정념이 강해지기만 하면 정말로 신처럼 힘으로 산을 가를 수 있고, 일념으로 바로 산을 가를 수 있다. 그럼 당신은 구세력이 아직도 무엇을 감히 하는지를 보라. 정념이 올라오기만 하면 아무것도 가로막지 못한다. 그러므로 교란을 가장 많이 당하는 이와 박해를 가장 심하게 당하는 이들 다수는 그다지 정진하지 못하는 그러한 수련생이거나 늘 법 공부를 하지 않는 이, 법 공부를 하지만 사상은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이들인데, 모두 이러할 것이다. 그러나 수련이 잘 된 그런 진정한 대법제자는 정말로 교란을 받지 않고, 조금도 교란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념이 아주 족해서, 한편으로 다른 사람을 도와주며, 정말로 사부의 정법을 돕는다.”
장기간 병업 속에 있거나 세상을 떠난 동수들은 모두 매우 엄밀하고 긴 소업(消業) 과정이 있었는데, 1년, 2년 혹은 더 긴 시간 동안 구세력에게 조금씩 끌려갔다. 이 과정에서 동수는 자신이 어느 곳에서 사악에게 틈을 타게 했는지 찾지 못했고, 깊이 있게 법을 잘 배우지 못했으며, 어떻게 직면해야 할지 몰라 정념이 부족하고 소극적으로 감내하다가 아주 무력해 보였으며, 결국 어쩔 수 없이 구세력에게 육신을 끌려가 우리에게 가장 보고 싶지 않은 결과를 보게 했다!
사부님께서는 《2004년 미국서부법회 설법》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 생명 자신이 어느 일보까지 나아가는지 하는, 이런 것은 기본적으로 불안정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생명의 행위를 통하여 이 생명의 우주 중에서의 다음 일보, 다음 일보, 또 다음 일보를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이 공간의 시간환경을 떠나서, 다른 시간환경 속에서 그가 이후에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볼 수 있는데, 그것 역시 그의 오늘날의 상태에 따라 그 일보까지 연속된 것이다. 만약 그의 지금의 상태가 갑자기 변하였다면, 그다음 일보의 상태 역시 변하므로, 이것은 불안정한 것이다.”
사부님의 이 단락 설법을 공부하면서, 나는 병업 마난 중인 동수의 매 일념이 모두 관건이며, 동수가 어느 단계로 걸어가는가는 현재의 상태가 결정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는 정체의 일원으로서 마난 처한 동수를 위해 또 무엇을 했는가? 우리가 어떻게 동수를 사악의 박해에 맡겨두고 관여하지 않을 수 있는가? 우리 대법제자는 한 가족이며 가장 친한 친인이다!
사부님의 법리는 우리에게 선(善)의 힘은 거대하다고 알려주셨다. 내가 깨닫기로는 구세력이 동수에게 가하는 박해 역시 우리 자신에 대한 박해이며 법에 대한 박해이다. 대법제자 개개인은 모두 대법 중의 입자이며, 우리는 사부님을 도와 법을 바로잡고 중생을 구도하러 온 것이지, 구세력의 박해를 감당하러 온 것이 아니다.
마난이 올 때 우리 마음에 법이 있기만 하다면, 어떤 이른바 병업 가상이나 그 어떤 관난(關難)에 부딪히든 정념이 나오기만 하면 힘으로 산을 쪼갤 수 있어 사악의 박해는 형체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우리 마음에 법이 있어야 비로소 마음에 든든함이 생기며, 병업관은 사실 생사관이다!
국내의 한 동수가 병업관을 넘길 때 동수들이 그를 보러 갔는데, 그중 한 동수가 “아픈 것은 당신이 아니니 그것을 느끼지 말라. 당신이 아픈 것이 아니라 업력이 아픈 것이니 정념으로 대하고 그것을 따르지 말며, 사람의 사유로 그것을 느끼지 말라”고 했다. 그 동수는 정념이 매우 강하여 진아(眞我)와 가아(假我), 그리고 업력을 아주 명확히 구분했다!
나는 동수에게 말했다. 우리는 우주 대법에 동화하고 있으므로 우리가 대법에 동화하는 것을 가로막으려는 그 어떤 생명도 중죄(重罪)를 범하는 것이다! 누가 감히 우리가 대법에 동화하는 것을 가로막는다면 그것은 구세력을 따라 법에 의해 소멸될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박해 작용을 일으키는 생명들아, 너희는 내가 너희를 데리고 대법에 동화해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구세력과 함께 서서 한 길로 끝까지 달려가 정법에 의해 도태되기를 원하는가, 너희 스스로 선택하라!
동수가 병업 마난 중에 있을 때 갖가지 표현 형식들이 있지만, 사실 만 번 변해도 그 근본은 변하지 않으니 발생한 일들은 모두 우리 수련을 겨냥해 온 것이다! 우리의 마음을 겨냥해 온 것이다. 관건적인 시기에 우리 마음에 법이 없어 정념을 낳지 못하고, 구세력이 저지른 나쁜 일을 흔들지 못하며, 구세력의 음모와 험악한 용심(用心)을 타파하지 못한다면, 이 역시 법을 배우는 방면에서 문제가 나타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도 국내에서 한 번의 생사관을 겪었다. 어느 날 나는 음식을 먹을 수 없게 되었는데, 먹기만 하면 토했고 누울 수 없었으며, 토해낸 것은 모두 검은 물이었지만 설사는 하지 않고 토하기만 했다. 잠을 잘 수 없었고 누우면 견딜 수 없었으며, 고열이 동반되고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 계속 토하기만 했는데, 마치 밧줄 하나가 내 위장의 아랫 부분을 꽁꽁 묶어 놓은 것 같아 나는 줄곧 억지로 버티고 있었다. 나는 항상 내일이면 나아지겠지 하고 생각했으나 낮이나 밤이나 잠을 잘 수 없었고, 눈깜짝할 사이에 이레째가 되어 내 온몸은 눈에 띄게 수척해졌다. 나는 확실히 견디기 어렵다고 느꼈다. 당시 나 자신은 병원에 가서 검사할 생각은 하지 않았고, 내 가족도 나에게 병원에 한 번 가보자는 말을 하지 않았으며, 그녀는 마치 나에게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나는 이것이 반드시 목숨을 취하려는 것임을 느꼈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사부님의 설법을 그렇게 많이 공부했는데, 나는 대법제자이므로 억지로 버텨서는 안 된다. 이것은 나의 어느 방면을 겨냥해 온 것인가? 구세력으로 하여금 이러한 독수를 쓰게 한 것은 혹시 어떤 방면에서 법을 심각하게 벗어난 것이 아닌가? 위장이 괴로운 것은 먹은 어떤 음식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그리 신선하지 않은 음식을 먹은 기억은 없었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일이 떠올랐다. 가족이 길거리에서 튀김 꼬치를 파는데, 어떤 고기 패티가 그리 신선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고, 팔지 못하면 내가 먹으려고 양념을 바르면 이상한 맛도 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파는 과정에서 어떤 사람이 나를 찾아와 고기 패티가 신선하지 않고 좀 상했다고 했다. 나는 내가 파는 물건이 신선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지도 않았고 사과도 하지 않은 채, 돈은 환불해 주었지만 그 상한 고기 패티를 내가 먹어버렸다. 나의 이 마음은 법의 요구와 거리가 너무나 멀었고, 나의 이 이익심은 너무나 더러웠다. 속인조차 하지 않을 짓을 내가 저질렀으니, 대법제자의 요구를 심각하게 벗어나 구세력이 박해할 구실을 잡은 것이다! 나를 죽이려고 달려들어 깨우치게 하고 나더러 크게 곤두박질치게 해서 평생 잊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잘못을 뉘우쳤다. “사부님, 제자가 잘못했으니 제자에게 다시 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사부님 저를 구해주십시오!”
이때 내 마음속에 사부님의 한 단락 설법이 떠올랐다.
사부님께서는 《각지 설법 3》〈대뉴욕지역법회 설법〉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러나 당신은 왜 생각해 보지 않는가. 왜 당신을 교란하는지를, 무엇 때문에 당신을 교란할 수 있는지. 자신에게 무슨 집착이 있는 것이 아닌가? 내려놓지 못한 것은 없는가? 무엇 때문에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가? 진정한 원인은 자신의 이곳에 있기 때문에 그것이 틈을 탈 수 있다! 당신은 사부가 책임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설령 한 속인이 오늘 “파룬따파는 좋다(法輪大法好)”라고 한마디 외칠지라도 사부는 그를 보호하는데, 그가 이 한마디를 외쳤기 때문이며 사악 속에서 내가 그를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물며 당신들은 수련하는 사람이 아닌가? 또 극소수 수련생들은 정말로 불치병에 걸렸는데 여러분들 생각해 보라. 법을 배우기 전의 중환자들과 불치병에 걸린 많은 사람들이 대법을 배운 후 모두 좋아지지 않았는가. 그러나 무엇 때문에 일부 수련생들은 오히려 안 되는가? 설마 대법이 중생에게 차별이 있단 말인가? 내가 사부로서 수련생에게 다르게 대하는가? 나는 정말로 당신들에게 물어보겠다. 당신은 진수(真修)하고 있는가? 당신은 정말로 대법의 요구에 따라 했는가?! ”
“당신은 진수(真修)하고 있는가? 당신은 정말로 대법의 요구에 따라 했는가?!”
이 한 구절 법이 머리를 치는 천둥 번개 같았다! 내 마음은 활연히 깨달았고 나 자신은 깜짝 놀랐다. 나의 이 변이된 사상이 너무나 심각했고 법에서 너무나 멀리 벗어났으며, 나는 법에 따라 하지 않았으니 나는 진수가 아니었다. 변이된 생명은 그 어떤 사람의 감정도 고려하지 않으니 돈 몇 푼 때문에 목숨을 돌보지 않은 것이었다!
이때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부님, 제자가 잘못했으니 제자에게 다시 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부님, 저는 오늘 한 명의 신수련생입니다. 제가 단 하루도 대법을 배우지 않은 셈 치고, 저는 오늘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파룬따파하오를 외치겠습니다.”
당시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나자, 내 위장을 묶고 있던 것이 한순간에 풀리는 것을 느꼈고, 나는 즉시 편안해지며 단숨에 소통되는 것을 느꼈다. 내 눈물은 당시 실 끊어진 진주처럼 순식간에 흘러내렸다. 마음속으로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크게 감사드렸으며, 내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다시 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고, 생사관에서 나를 구하셨으며 나를 구세력의 손아귀에서 구해주신 것이다!
나는 거대한 관과 거대한 난 속에서는 오직 아무 조건 없이 안으로 자신을 찾고 백 퍼센트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어야만 비로소 생사관을 돌파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사부님께서는 《도법(道法)》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제자로서 마난이 올 때, 정말로 마음이 움직이지 않거나 또는 부동한 층차에서 당신에 대한 부동한 요구에 부합하도록 마음을 둔다면, 충분히 고비를 넘을 수 있다. 끝없이 끌고 내려간다면, 만약 心性(씬씽) 또는 행위에 다른 문제가 없다면, 사악한 마(魔)가 당신들이 방임(放任)한 틈을 탄 것이 틀림없다.”
사부님의 법을 공부하며 나 자신을 반성해 보니, 나의 심성과 행위 모두에 문제가 존재했다. 첫 시간에 나는 안으로 자신을 찾지 않고, 사람의 심태, 사람의 사유와 관념으로 수련 중의 마난을 대했으니, 즉 사람의 마음으로 짊어지고 억지로 버티다가 정말 안 되겠다 싶고 자신이 목숨을 잃을 것 같아서야 안으로 찾을 생각을 했고 사부님의 법을 생각했으니, 참으로 심성과 오성(悟性)이 너무 차(差)했다! 부끄럽다! 만약 내가 마난 중에서, 박해 중에서 정말로 마음을 써서 법을 잘 배우고 법을 철저히 깨달아 법으로 일체를 가늠하며 관건적인 시기에 안으로 자신을 찾을 줄 알았다면, 나 역시 이레 동안의 마난을 겪고서야 기사회생하지 않았을 것이며, 마땅히 당시 바로 깨달아 이러한 일이 아예 발생하지도 않았어야 맞다!
또 한 가지 일은, 일을 하는 것을 수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 어떤 사람을 구하는 대법 항목에 참여하든 그것이 자신의 수련을 대체할 수는 없다. 그것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하신 세 가지 일 중의 한 가지 일일 뿐이지, 나머지 두 가지 일을 대체할 수 없고 자신의 수련을 대체할 수 없다. 나는 이 방면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만약 일을 하는 것을 수련으로 삼는다면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박해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각지 설법 11》〈대법제자는 반드시 법을 공부해야 한다)》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대법제자가 미혹 속의 사회에서 속인과 함께 생활하고 있기에 사상에서, 적어도 어느 한 방면에서 가장 쉽게 흐름에 휩쓸릴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일을 함에 대법으로 자신을 가늠하지 않고 정념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문제에 부딪혔을 때 법에 서 있지 않으면, 당신은 속인과 다를 바가 없다. 당신의 외형이 속인이고 당신이 생활하는 환경 역시 속인 중에 있으며, 하는 일 역시 속인의 일이다. 설령 당신이 대법제자의 일을 한다 해도, 천상에는 텔레비전방송국이 없고 신(神)에게는 신문도 없다. 이것은 모두 속인사회의 형식이다. 만약 당신이 정념으로 당신을 지도하지 않고 대법제자답게 수련인의 표준으로 자신을 가늠하고 세상을 가늠하고 다른 사람을 가늠하지 않으면 당신은 바로 속인과 같다.”
내가 국내에 있을 때 사람을 구하는 많은 일을 했지만, 바빠지기 시작할 때 나는 자신의 법 공부를 소홀히 했고 자신의 수련을 중시하지 않았으며, 일을 하는 것을 수련으로 삼았더니 시간이 흐르면서 구세력에게 빈틈을 찔려 나는 3년 동안 박해를 받았다!
어떤 때는 자신이 일을 많이 했지만 시간이 길어지면 법에서 벗어나기 쉬우며, 알게 모르게 자신의 사상과 행위가 법을 벗어나 점차 일반 사람과 혼동되어 휴대폰 동영상을 보거나, 법 공부를 자주 하지 않거나, 법을 배울 때 마음이 몰입되지 않고, 연공도 게을리하며, 연공할 때 혼미하고, 색욕심도 무거워지며, 발정념할 때 손바닥이 쓰러지곤 한다!
내가 박해를 받기 전의 일이 기억나는데, 한 번은 발정념을 하다가 의자에서 바닥으로 떨어지기까지 했다. 나 자신이 아주 혼미했고 발정념할 때 손이 쓰러졌으며 연화장(蓮花掌)이 꽃봉오리로 오그라었으니, 자신의 공간장은 이미 구세력에 의해 각종 사람의 마음과 욕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비록 법을 공부했지만 법 공부가 아예 마음에 들어가지 않아 수박 겉 핥기식이었고, 형식에 흘렀으며, 대충 얼버무리고 자신을 속였으니 참으로 피의 교훈이었다!!!
이 기간에 사부님께서도 나에게 점화를 주셨는데, 우리 집의 전기장판이 침대 매트리스를 아주 깊고 큰 구멍으로 태워버려 하마터면 화재로 이어질 뻔했다. 이는 수련 중에 큰 누락이 있다는 뜻이었다. 내가 운전하는 차 타이어가 하루에 세 번이나 펑크가 났으니 갖가지 징후가 나에게 일이 터질 것임을 점화해 준 것이었다. 아내도 한밤중에 놀라 깨어나 나에게 악몽을 꾸었다고 말하며, 우리 많은 사람이 경찰에게 붙잡혀 갔다고 한밤중에 울다 깨어났고 깨어나서도 여전히 울면서 나에게 장면이 너무나 생생하다고 했다! 사실 대법제자가 사악에게 박해를 받기 전에 사부님께서는 모두 자비로운 점화를 주시건만, 단지 우리 스스로 깨닫지 못할 뿐이다!
외국에서는 비록 사악의 박해가 없고 경찰에게 붙잡혀 가 박해를 받지는 않겠지만, 만약 정말로 법을 벗어나 자신의 수련을 느슨히 하고 자신의 행위와 사상이 구세력과 가까워졌다면 그렇다면 사악 그것 역시 손을 쓸 것이며, 그것은 우리의 신체를 박해할 것이다! 최근 한동안 연달아 동수가 박해를 받아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으며, 또한 구세력에게 심각하게 박해를 받는 중이거나 병업 마난 중에 처한 동수들도 있다.
사실 대법을 잘 배우는 것은 일체의 근본적인 전제이자 보장이다. “도끼날을 가는 것이 장작을 패는 일을 그르치지 않는다”는 말처럼, 오직 법을 잘 배워야만 일을 할 때 반의 노력으로 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 어떤 때라도 법 공부에서 나태해져서는 안 되며, 사부님의 설법은 법 공부의 중요성을 반복해서 강조하셨다! 또한 법 공부를 하는 마음가짐과 마음을 써서 대법을 잘 배우는 긴박성도 강조하셨다.
사부님께서는 《각지 설법 2》〈미국 플로리다법회 설법〉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여러분 알다시피, 어떤 마음가짐으로 법을 보아야만 법리(法理)를 볼 수 있는가? 이는 내가 더 말하지 않아도 여러분이 다 알고 있다. 당신의 눈은 법을 보고 있지만 마음이 법에 있지 않다면 여러분 생각해 보라. 그럼 당신은 헛되게 본 것이 아닌가? 그럼 누구에게 보여준 것인가? 자신은 공부하지 않았다. 내가 여러분에게 반드시 당신 자신이 진정하게 공을 얻으라고 알려 주지 않았는가? 법 공부를 할 때, 마음이 법에 있지 않다면 당신은 누구에게 법 공부를 시키는 것인가? 나무라는 게 아니라 이는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바, 이 상황은 매우 중요하다.”
내가 깨닫기로 사부님의 이 단락 설법은 오늘날 대법제자가 마땅히 어떤 마음으로 법 공부를 대해야 비로소 대법의 표준에 도달할 수 있고 법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 사부님께서 손을 잡고 우리를 가르쳐 주시는 것이며,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잘 파악하지 못할까 봐,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깊이 깨닫지 못할까 봐 법리를 특별히 투철하게 말씀해 주신 것이다. 법을 잘 배우지 못하면 사람 마음으로 동수 사이의 모순을 대하게 되어 동수 간의 간격을 넓히게 된다. 우리가 어떤 사람 구하는 항목에 참가하든 마땅히 수련인의 상태가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사람을 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 모순과의 관계를 바르게 놓지 못해 자체도 교란을 받게 된다. 수련인 사이에 모순이 발생했을 때 우리가 모두 심성을 지키고 모두 안으로 찾는다면 매우 빨리 모순을 화해시킬 수 있어 구세력의 요소가 아예 끼어들 수 없다! 그렇지 않고 당신이 그를 무시하고 그녀가 그녀를 깔보며 서로 사람의 마음으로 상처를 준다면 구세력 역시 그 속에서 물을 흐려놓을 것이며, 우리 또한 하나의 정체를 형성하기 매우 어렵다!
만약 수련인이 모순 속에서 모순과의 관계를 바르게 놓지 못하고 자신을 닦지 않으며 질투, 원한, 마성(魔性)을 버리지 못해 한 층차에서 장기간 배회한다면 역시 사악의 박해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구세력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어 박해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니, 우리가 더 많은 중생을 구도하고 근본적으로 구세력의 박해를 부정하고자 한다면 오직 자신을 잘 닦는 수밖에 없으며 다른 지름길은 없다!
최근 명혜 편집부에서 통고를 발표했는데, 그 안에는 사부님의 20여 년 전 설법인 〈원만을 향해 나아가자〉가 언급되어 있었으며 통고의 마지막에는 동수들에게 〈원만을 향해 나아가자〉 경문을 외우라는 건의를 제기했다! 《원만을 향해 나아가자》 이 경문은 매우 길어 여기서는 지면이 제한되어 있으니 동수들은 시간이 날 때 스스로 읽어보기 바란다!
나는 정법이 마지막 단계로 걸어왔는데 지금 여전히 20여 년 전 사부님의 설법을 거론하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 아니라고 느낀다. 혹시 우리가 현재 여전히 자신의 근본적인 집착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혹시 사람 마음으로 법이 좋다고 느껴 떠나지 못하면서도 사람의 이 마음 때문에 자신을 법 속에 머물게 한 것일 뿐, 진심으로 대법 속에서 자신을 수련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대법 속에서 일을 흐려놓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자신의 수련 상태를 보니 정말 두려웠고, 놀라움 끝에 제때에 놀라 깨어났다! 신속히 자신의 마음가짐을 바로잡지 않으면 후과(後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두려울 것이다! 내가 국내에 있을 때 한 차례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이쪽은 “대법 애호가”들이었는데, 마지막에는 모두 하나의 흰 큰 무덤 속으로 들어가 전부 죽어야 했다!
반면 다른 쪽은 “대법 수련자”들이었는데, 금빛 찬란하게 빛나는 대도(大道)를 걸어가고 있었으며 그러고 나서 나 자신은 깨어났다. 나는 자신에게 물었다.
“나는 대법 수련자인가, 아니면 대법 애호가인가? 대법 애호가는 어떤 표현을 하겠는가. 일반 사람 속에서 좋은 나날을 보내고 싶어 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법이 좋다고 느끼면서도 능동적으로 자신을 닦지 못하며 온 마음으로 자신을 법 속에 녹여내지 못해 오직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실천하지 못한다! 만약 내가 사람 마음 때문에 자신을 법 속에 머물게 한 것이라면 그 결말은 가련할 것이다! 나는 매 순간 자신을 경각시켜야 한다!
내가 오늘 이러한 것들을 교류하는 것은 주로 어떤 손실을 피하고 싶어서이며, 또한 우리가 하루빨리 정체를 형성해 구세력이 빈틈을 타지 못하게 하고, 아울러 병업 마난 중의 동수가 가급적 정념으로 관을 돌파하게 하고 싶어서이다! 오늘날까지 걸어온 대법제자 개개인은 모두 대단하며 모두 우리가 소중히 여길 만하다!
교류할 내용이 많으나 지면이 제한되어 많은 부분을 삭제하고 이만큼만 말하겠다. 어떤 부분은 혹시 내가 말한 것이 그리 맞지 않을 수도 있고 혹시 극단적인 인식도 존재할 수 있으니 그저 보다 좋은 의견을 이끌어내기 위한 시도일 뿐이다.
이상은 자신의 개인 인식이니 여러분이 법을 스승으로 삼기 바란다. 만약 법에 있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동수들이 자빌로 지적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336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