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대법제자
【정견망】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동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수련 중에서 동수 사이에 의견 차이나 모순이 나타나는 것은 피하기 어렵다. 이때 우리는 흔히 억울하거 화가 나거나 괴로움을 느끼고 심지어 원한(怨恨)을 품게 되어 간격이 깊어지고 정체적인 협조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이는 사실 구세력이 우리가 아직 닦아버리지 못한 집착을 이용해 교란을 일으켜 정체를 파괴하고 우리가 사람 구하는 것을 가로막는 것이다. 깊이 있는 법 공부와 안으로 찾음을 통해 나는 다음과 같이 깨달았다. 자신과 동수의 ‘진아(真我)’와 ‘가아(假我)’를 명확히 구별하고 동수에 대한 관념을 제거해야만 비로소 구세력의 통제에서 철저히 벗어나 근본적으로 모순을 화해시키고 전체를 원융(圓融)할 수 있다.
1. ‘진아’와 ‘가아’를 명확히 인식해 자신의 교란을 배제하자
사부님께서는 《시드니법회 설법》에서 “사람은 사람이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返本歸真(판번구이쩐) 하는 것이 바로 목적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오스트레일리아법회 설법》에서는 또 “무엇을 반본귀진(返本歸真)이라고 하는가? 자신을 깨끗이 씻어서 바로 당신으로 하여금 원초적인 가장 순수하고 바르며 어떠한 사상관념도 없는 상태 속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총명한 것이며 세상의 일체를 똑똑히 볼 수 있게 된다.”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깨닫기로는, 수련이란 바로 반본귀진하는 것이다. 그 선천적으로 순정하고 아무런 관념의 오염도 없으며 가장 원시적인 상태가 바로 우리 생명의 ‘진아’이다. 마치 영화 《우리는 원래 신이었다》 펼쳐진 화면처럼, 다른 공간에서 모든 대법제자가 엄숙하고 장중하게 가부좌하고 앉아 반석처럼 움직이지 않으며 아무런 념(念)도 집착도 없는 상태와 같다. 그러한 신성한 ‘정(靜)’과 ‘순(純)’이 바로 우리가 노력하여 성취해야 할 궁극적인 상태이다. 반면 ‘가아’는 생명의 주체가 아니라 후천적으로 형성된 각종 사람 마음, 집착, 관념이 한 겹의 껍데기처럼 ‘진아’의 밖에 둘러싸인 것인데, 여기에는 생생세세 쌓인 완고한 관념, 행동 습관 및 아직 닦아버리지 못한 업력이 포함된다. 그것이 ‘진아’를 매몰시켜 우리를 인간 세상 속에 미혹되게 만든다.
사부님께서는 《오스트레일리아법회 설법》에서 자비롭게 지적하셨다. “당신의 관념이 당신 자신이라고 인정하지 말라.” “당신이 좋지 않다고 여기거나 혹은 당신이 보고 싶지 않다고 여기는 것은 바로 후천적으로 형성된 당신의 그 좋지 않은 마음, 좋지 않은 사상이 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당신이 아닌데 당신은 오히려 그것을 당신으로 여기고 있다.”
모순 속에서 생겨나는 억울함, 원한 등의 감정은 근본적으로 진정한 내가 아니라 ‘가아’가 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다. 진정한 나는 신성(神性)을 나타내고 ‘진·선·인(真·善·忍)’에 부합하는 생명인데, 어찌 인간 세상의 몇 마디 말과 몇 가지 일에 흔들리겠는가?
이러한 인식이 생긴 후 나는 자신을 훈련하기 시작했다. 부면(負面)적인 정서나 관념이 튀어나오기만 하면 즉시 자신에게 “이것은 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한 마디는 간단하지만 효과적이다. 이는 정념으로 ‘가아’를 부정하고 ‘진아’로 바로잡고 법으로 바로잡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이렇게 하자 법을 배우고 연공할 때 머릿속에 모순된 장면이나 각종 잡념이 떠오르면 나는 즉시 마음속으로 “이것은 내가 아니다”라고 염했고, 이로써 매우 빨리 고요해질 수 있었다. 평소 일에 대해 부면적인 생각이 일어날 때도 이 방법으로 자신을 바로잡아 사람의 마음이 주재하지 못하게 했다.
2. 사부님의 점화: 동수의 ‘진아’와 ‘가아’를 구별해 동수에 대한 관념을 제거하라
법리를 명백히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했으며, 나는 몇 차례의 격렬한 모순 속에서 비로소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점화 아래 심성이 진정으로 승화될 수 있었다.
한 번은 항목 협조 중에 법리에 대한 이해의 차이로 인해 나는 한 동수와 의견 충돌이 생겼다. 그의 어떤 언행은 나를 괴롭고 상처받게 만들었으며, 내심에는 강한 억울함과 원한이 치밀어 올랐다. 그 순간 나는 완전히 부면적인 정서에 휩싸여 정념이 전혀 없었다.
나는 자신의 상태가 옳지 않음을 알았지만 어떻게 해도 벗어날 수 없었다. 사부님께서는 내가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자비롭게 나에게 아주 선명한 화면을 보여주셨다. 비할 바 없이 장엄하고 신성한 한 생명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는데 표정이 엄숙했고 반석처럼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동수의 선천적으로 순정한 ‘진아’였다. 그러나 이 신성한 생명의 머리 위에는 투명한 주머니 하나가 매달려 있었는데, 그 안에는 온갖 어지러운 후천적 집착과 교란 물질이 가득 차 있었다.
이 한 장면은 나로 하여금 깊이 깨닫게 해 주었다. 원래 우리가 평소에 인간 세상에서 서로 싸우고 원망하는 것은 사실 대부분 상대방 머리 위의 ‘가아’와 겨루는 것이고, 진짜 동수는 줄곧 그곳에서 조용히 가부좌하고 움직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사부님의 점화(點化)는 나로 하여금 철저히 깨닫게 해 주었다. 알고 보니 ‘진아(真我, 참된 나)’와 ‘가아(假我, 가짜 나)’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은 자신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동수(同修)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동수의 말과 행동은 결코 그의 ‘진아’의 본의가 아니며, 바로 ‘가아’가 작용한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표현들을 동수의 ‘진아’의 몸에서 박리벗겨내고, 본질에서 수련을 갈망하고 사부님을 도와 정법(正法)하며 반본귀진(返本歸真)하려는 그의 순정한 마음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사람 대 사람’의 진흙탕에서 뛰어내려, 구세력(舊勢力)에 의해 이용당해 정체에 간격을 주지 않을 수 있다.
이제는 동수들이 다투거나 태도가 좋지 않거나 말로 사람을 상하게 하는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더 이상 원한에 빠지지 않고 즉시 자신에게 일깨워 준다. 동수의 ‘진아’는 순선(純善)하고 자비로우며 상화(祥和)한 것이며,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그런 표현들은 닦아 버려야 할 ‘가아’가 소란을 피우는 것이니 결코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
모순에 직면하여 나는 이제 세 가지 단계로 자신을 바로잡는다.
1) 안으로 자신의 집착과 사람 마음을 찾고, “이것은 내가 아니다”로 억울함, 불평, 원한 등을 배척한다.
2) 발정념을 하여 배후의 교란과 패괴(敗壞)된 물질을 제거한다.
3) 나를 불편하게 하는 동수의 표현은 단지 ‘가아’가 작용하는 것일 뿐이며 그의 ‘진아’는 본래 순정하고 사부님을 도와 법을 바로잡는 것임을 명확히 분별한다.
내가 동수의 ‘가아’에 대한 관념을 제거하고 그의 ‘진아’를 바라볼 때, 원한과 억울함은 자연히 연기처럼 흩어졌다. 우리는 이로부터 순정하고 사람의 정이 섞이지 않은 자비와 포용을 낳게 된다. 이렇게 하면 구세력의 파괴가 틈탈 기회가 없어 정체가 갈수록 원융해진다.
맺음말
사부님께서는 《2002년 워싱턴 DC 법회 설법》에서 자비롭게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특히 우리 대법제자 내부에서, 우리가 외부를 향해 진상을 똑바로 알릴 때 여러분은 모두 중생을 慈悲(츠뻬이)로 대해야 한다고 여기는데, 우리 대법제자 사이에도 慈悲(츠뻬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신들은 동문제자(同門弟子)이며, 여러분은 모두 우주의 정법을 위해 온갖 마음과 힘을 쏟고 있기 때문에, 서로 간에 잘 협력해야 하고, 도를 넘는 속인의 마음으로 문제를 보지 말아야 하며, 서로 간에 속인의 마음을 지니고 일부 일어나지 말아야 할 모순과 논쟁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이런 일은 모두 반드시 대법제자로서 관용(寬容)ㆍ선량(善良)ㆍ상화(祥和)한 표현이 있어야 하고, 그의 일이 바로 당신의 일이며, 당신의 일이 바로 그의 일이다. 우리는 그 무슨 속인식의 단결을 말하지 않는데, 그것은 일종 억지로 강요하는 표면 형식이며, 당신들은 수련자이고, 당신들은 더욱 높은 경지가 있다. 그렇다면, 아주 많은 일 중의 표현이 반드시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을 수 있어야 하며, 대법으로 옳고 그름을 가늠할 수 있어야 한다.”
정법의 최후 시각에 우주는 이미 말후(末後)에 도달했으며, 지금의 매 하루는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거대한 난을 감당하시며 우리를 위해 연장해 주신 것이다. 우리는 이 얻기 어려운 시간을 각별히 소중히 여겨 모든 관념을 내려놓고, 동수와 손을 잡고 함께 세 가지 일을 잘하여 사부님을 도와 더 많은 중생을 구도하고 신기원을 개창해야 한다. 동수와 공동으로 사부님을 도와 법을 바로잡는 이 기연은 비할 바 없이 소중하다.
진아와 가아를 명확히 구별하고 동수에 대한 관념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바로 수련인의 더 높은 경지로써 관용, 선량, 상화(祥和)를 띠고 법을 가늠하는 표준으로 삼아 상호 이해하고 협조하기 위함이다. 오직 이래야만 그 어떤 모순 속에서도 우리는 즉시 경각할 수 있다. 이것은 진정한 그가 아니며, 이것은 또 진정한 내가 아니다. 진정한 우리는 순정하고 자비로우며 ‘진·선·인’에 부합하는 생명이다. 이것이 바로 더 높은 차원에서 ‘진·선·인’을 실천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부님께서는 《관건 시각에 사람 마음을 본다》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잘 수련하고 대법을 수호하는 것이 제 일위이다.” “법을 최우선으로 보아야 하며, 대법 항목을 잘 수호함으로써 그것이 사람을 구하는 작용을 잘 발휘하도록 하는 것만이 유일하게 생각할 것이고 해야 할 것이다. 관건 시각에 어떤 사심(私心)이나 사념(私念)을 섞어 넣는 것은 모두 사악이 원하는 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정법 최후의 관건적인 시각에 우리는 매 순간 이것으로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고 법을 크게 여기는 것을 가슴 깊이 새겨 대법을 수호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을 제일위에 놓아야 하며, 절대로 그 어떤 사심(私心)이나 사념(私念)이 틈탈 기회를 주지 말아야 한다.
이상은 단지 내 개인 차원에서 법리에 대한 얕은 깨달음일 뿐이며, 목적은 모순 속에서 안으로 더 잘 찾고 집착을 제거하기 위함이다. 동수에 대한 관념을 제거하고 ‘가아’를 닦아버리는 것은 모두 끊임없이 법을 배우고 자비를 닦아내야 한다. 법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동수들이 자비롭게 지적해 주기 바란다. 나는 계속해서 안으로 찾고 정진하여 실수할 것이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동수 여러분 감사합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34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