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대법제자
【정견망】
최근 ‘관을 넘는 것(過關)’에 대해 수련상의 작은 체득이 있었는데, 이로 인해 대법제자의 일사일념(一思一念)이 모두 자신의 제고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되었다.
구세력은 호시탐탐 대법제자의 틈을 노리고 있다. 수련인이 조금이라도 해이해지거나 안일에 빠지고 나태해지거나 혹은 매 순간 자신을 수련인으로 여기지 않으면 그것은 곧 당신의 약점을 붙잡게 된다. 당신이 무엇을 두려워하면 그것을 하고, 당신이 무엇을 원하면 그것은 당신의 집착을 따라 당신의 욕망을 채워준다.
예를 들어, 당신이 편안하게 지내고 싶어 하고 삶이 행복하고 원만하기를 바라면, 그것은 당신이 순풍에 돛 단 듯 잘풀리게 만들어 준다. 설령 마난에 부딪히더라도 법리에 대한 당신 스스로의 인식을 낮게 만들어 집착심에 부합하게 하면서도, 당신은 여전히 바보같이 자신이 법 위에 서 있다고 여기게 만든다.
구세력이 우리를 교란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 자신에게도 바로 이러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정확히 구세력의 덫에 걸린 것이다. 그것은 바로 당신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고, 영원히 이 층차에 머물러 제고해 올라오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나아가지 않으면 퇴보하는 법이니, 사상이 법리에 있지 않기만 하면 하루 이틀… 당신은 곧 서서히 뒤로 물러나게 되는데, 많은 제자가 이 때문에 미끄러져 내려가면서도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
수련이 어찌 이토록 엄숙하거늘 어찌 함부로 대할 수 있단 말인가! 법은 모든 미혹을 타파할 수 있다. 수련인으로서 자신의 염두에 대해 삼가고 조심스럽게 바라보아야 한다.
나는 어떤 동수들이 관을 넘을 때 나타나는 일련의 현상들을 보았다. 난이 닥쳐오면 눈앞의 참깨나 콩알만 한 일만을 보고는 마음이 동요하기 시작하여 파도가 뒤집히듯 요동치고, 마침내 자신을 국면 속에 가두어 험난하게 관을 넘는다. 어렵사리 관을 통과하고서도 안으로 깊이 파고들어 자신이 어디를 잘하지 못해 구세력이 보고 틈을 타게 해서 본래 수련 길에 없었던 이 마난을 안배하게 했는지 찾아보려 하지 않는다.
왜 이럴 수 있는가? 당신이 속인의 심성과 사상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심성이 속인의 수준에 떨어져 있기 때문에 속인의 길로 다시 되돌아 걸어가기 때문이다. 만약 일이 발생한 당시에 수련인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자신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면, 비로소 진정으로 구세력을 부정하고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길로 돌아갈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당신의 인생행로를 개변해 줄 수 있으며, 또 오직 수련해야만 비로소 개변할 수 있다.”
이 대목의 법을 읽을 때, 나는 자신이 수련을 어느 위치에 놓는지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여전히 속인처럼 매일 좋은 날들을 보내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바로 인간 세상의 편안함, 행복, 안일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일상생활의 환경을 수련장으로 삼아, 이른 아침 연공에서부터 시작해 밤낮으로 법을 공부하고 교류하며 매일 법 속에서 녹아난다면, 제고하는 속도가 참으로 빠를 것이다.
나는 평소에 진정으로 수련하고 착실히 수련하며, 일사일념(一思一念)이 법에 부합해야만 문제에 부딪혔을 때 즉시 발견할 수 있고 설령 당장에 잘하지 못하더라도 곧바로 자신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느낀다. 이것이 바로 진정으로 정진하고 실수하는 것이다. 원컨대 동수들이 다그쳐 관념을 전환하고 구세력의 올가미에 빠져들지 말기를 바란다.
이상은 착실한 수련 중의 아주 작은 체득으로 이를 써내어 여러분과 함께 공유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