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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결정

정여(靜如)

【정견망】

나는 우리 시의 한 연구소에서 일하는데, 1999년 장씨(江氏) 집단과 중국공산당 사악한 무리가 파룬궁 박해를 시작한 이래로 여러 차례 북경에 상방(上訪)하여 대법의 억울함을 호소했기 때문에 불법 노동교양, 세뇌반 등 잔혹한 박해를 겪었다. 당시의 몇 명 연구소장들은 사악한 당국의 연좌제 정책을 두려워하여 마음속으로 극심한 압박을 느꼈고, 어렵게 얻은 관직을 잃을까 봐 겁을 먹었지만, 마침내 양심과 압박 앞에서 그들은 각자 자신들의 선택을 내렸다.

1. X 서기

X 서기는 다른 성(省)에서 우리 연구소로 부임해 왔는데, 그전에는 나와 일면식도 없었다. 나는 간부들 앞에 얼씬거리기를 좋아하지 않는 성향이어서, 북경에 상방을 갔다가 돌아온 후 연구소에서 운영하는 소위 전향 학습반에 감금되었다. 첫날 X 서기가 직접 나서 나와 면담을 했다. 나는 먼저 선의(善意)적이고 평화적인 태도로 파룬궁이 중국에 널리 퍼진 상황 및 내가 왜 파룬궁을 수련하게 되었는지, 수련 후 도덕성이 승화되고 심신이 건강해지며 가정 화목을 이루게 된 점 등을 이야기했다.

서기는 듣고 나서 콧방귀를 뀌며 자신은 유·불·도 삼교에 대해 아주 깊은 연구를 했다고 말하더니, 이어서 텔레비전에서 파룬궁을 모독하는 사실무근의 말들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나는 즉시 그에게 아무렇게나 함부로 말하지 말고 불법(佛法)을 비방해서는 절대 안 된다며 선의로 제지했다. 화를 부르는 것은 입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업(業)을 짓게 된다는 것이었다. X 서기는 만류를 듣지 않고 여전히 쉴 새 없이 떠들어 댔다. 떠나기 전에 그는 내일 또 오겠다고 말했지만, 막상 다음날이 되니 자취를 감추고 보이지 않았다. 동료들의 말을 들으니 그의 부인이 갑자기 병이 위독해져 입원하는 바람에 집에 가서 부인을 돌보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그가 불법을 비방한 탓에 현세 응보를 받았음을 알았고, 마음속으로 그가 안타까웠다.

후에 X 서기는 나와 여러 차례 더 대화를 나눴다. 나는 “서기님은 박학다식하시니, 부디 《전법륜(轉法輪)》이라는 이 책을 한 번 읽어보시고 우리 다시 이야기합시다”라고 말했다. 나중에 동료에게 들으니, X 서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이렇게 훌륭한 직원(나를 가리킴)을 내가 어찌 일찍이 몰랐을까”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이후로 X 서기는 더 이상 파룬궁을 헐뜯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기는 소원대로 자신의 가족이 있는 곳으로 발령받아 부임했는데, 그 부임지의 직급이 우리 연구소보다 높았다. 서기가 진상을 알게 된 후 복을 받은 것이다. 나중에 나는 그곳으로 출장 가는 동료들에게 부탁해 안부 인사를 전하곤 했다.

2. Z 소장

내가 노동교양소에서 나와 직장에 출근한 후, Z 소장은 매달 내게 400위안의 급여만 주고 업무는 배정해주지 않았다. 자신이 연좌되어 직책을 잃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구(區) ‘610’ 인원들이 삼일에 한 번 꼴로 연구소에 찾아와 간부들을 공포에 떨게 하며 소장을 독촉해 나를 해고하라고 했다. 전향하지 않으면 반드시 공직에서 파면해야 한다고 하니, 소장은 그들에게 대충 얼버무리며 규정에 따라 처리할 수 있도록 관인이 찍힌 공식 문서를 가져오라고 요구했다. 나도 틈을 타서 소장을 찾아가 진상을 알리고 그에게 진상 소책자를 주며, 파룬궁을 박해하면 악보를 받게 되니 장쩌민의 대변인이나 희생양이 되지 말라고, 문화대혁명이 바로 눈앞의 거울이라고 일러주었다. 소장은 내가 준 소책자를 쥐며 말했다. “내가 파룬궁의 것을 볼 수 있을까?” 나는 볼 수 있으며 보시면 시비(是非)를 분명히 알게 될 것이고, 앞날이 창대해지며 승진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당시 연구소 내의 간부들과 동료들은 보편적으로 나를 바보라고 했다. 내가 연공하면 월급도 없고 일도 없어지는데 그토록 좋은 가정 조건을 가지고도 오히려 소중히 여길 줄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두 번째 달에 원장은 나에게 급여를 전액 지급해 주었다. 큰 시비 앞에서 그는 올바른 선택을 내렸던 것이다. 또 두 달이 지나자 승진해서 북경 본사 부총재로 발령받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것은 바로 소장이 그토록 고대하던 수직 승진이었다! 떠나기 전, 소장은 특별히 우리 부서로 와서 나와 작별 인사를 나눴고, 사석에서 과장에게 나를 각별히 돌봐주어 월급과 상여금을 좀 올려주라고 당부했다. 내가 지난 몇 년 동안 노동교양소와 세뇌반에서 고생을 많이 했으니 보상을 좀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후 Z 소장은 북경에서 탄탄대로를 걸으며 은퇴할 때까지 승승장구했다.

3. W 소장

W 소장은 우리 연구소 역사상 가장 젊은 원장으로, 40대에 원장이 되어 매일 전용 승용차로 출퇴근했으니 그야말로 잘나가는 인물이었다. 그해는 마침 연구소에서 일괄적으로 급여를 조정하여 모든 사람이 두 급씩 승진하는 시기였는데, 내가 급여를 탈 때 보니 나는 겨우 한 급만 승진해 있었다. 나는 인사처장을 찾아가 왜 나만 한 급만 승진했는지 물었다. 처장은 내가 1년간 노동교양을 처분받아 고과(考課)에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에 두 급을 올려줄 수 없다고 했다. 협상이 효과가 없자, 나는 본사의 총재에게 진상 편지를 써서 항의했다. 본사 지도부 간부 7명에게 각각 한 통씩 편지를 보낸 것이다. 사실 나는 그 몇십 위안의 돈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단지 이를 계기로 중생을 구하려 했을 뿐이다.

나는 편지에서 본사 지도부에 이렇게 말했다.

“파룬궁을 신앙하는 것은 죄가 없으며, 이를 이유로 일반 직원을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 하물며 저는 노동교양소에서 매일 10시간이 넘도록, 명절과 휴일도 없이 노예 노동을 강요당해 원내 직원들보다 훨씬 더 힘들고 많은 대가를 치렀으며, 고문으로 인해 장애까지 입었습니다. 게다가 연구소에서는 노동교양 기간의 급여 전액을 삭감하기까지 했습니다. 부디 본사 지도부에서 저를 위해 바로잡아 주십시오.” 뜻밖에도 이 일은 마치 벌집을 쑤셔 놓은 격이 되었다. 나의 편지는 본사에서 연구원으로 되돌려 보내졌고, 연구소 중간 간부들이 번갈아 가며 나를 불러 면담을 했다. 그들은 화가 치밀어 나에게 왜 먼저 자신들에게 편지를 쓰지 않았냐고 따져 물었다. 나는 꼿꼿하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일찍이 인사처장을 찾아갔더니 연구소 간부들이 동의한 것이라고 하던데, 당신들을 찾아간다고 소용이 있겠습니까?”

결국 그 결과는 모든 사람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W 소장은 한 달 만에 본원에서 신속하게 전출되어 다른 성(省) 모 연구소의 부소장으로 발령을 받았는데, 가족도 동반할 수 없었다. 이는 우리 연구소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4. C 소장

C 소장은 북경에서 직접 낙하산처럼 내려온 인물로, 전문 능력이 아주 뛰어났다. 부임하자마자 연구소 과실 구조를 개편하기 시작했고, 신입 연구원들을 대거 채용하여 연구진을 충실히 다졌으며, 평소에는 우리 과와 기본적으로 교류가 없었다. 그해는 마침 우리 아들이 대학 입시에 응시할 때였는데, 학교에서 학부모 직장의 정치 심사표에 직장 도인을 찍어오라고 요구했다. 나는 표를 들고 인사처에 가서 도장을 찍어달라고 요청했다. 처장은 찍어줄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이유를 물었으나 처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나는 표를 들고 3층으로 올라가 소장 비서실장을 찾아갔다.

“아들이 올해 대학 입시를 보는데 도장을 찍어야 합니다. 인사처에서는 찍어줄 수 없다고 하는데, 제가 파룬궁을 수련한다고 해서 아들의 대학 입시마저 허락하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이것은 신앙을 가진 직원에 대한 지나친 차별이 아닙니까?”

그러자 비서실장은 두 하지 않고 도장을 집어 들더니 ‘탁’ 하고 찍어주었다. 나중에 나는 또 이 일을 계기로 원장에게 진상 편지 한 통을 써서, 파룬궁은 불가(佛家)의 고덕대법이며 개인의 신앙을 이유로 직원을 차별하고 직권을 남용해 제멋대로 굴어서는 안 된다고 일러주었다. 후에 동료들에게 들으니, C 소장이 인사처장을 교체하려 하자 그 처장이 너무 놀라 병원에 입원해 자신이 말기 암에 걸려 감당할 수 없다고 했다고 한다. 이 일은 그 후 그냥 무마되었다.

C 소장은 사람이 정직하고 처신이 올바르며 탐욕스럽지 않아 연구소에서 평판이 아주 좋았다. 우리 과와 나의 업무 성과도 크게 인정해 주었으며, 다른 간부들도 사석에서 내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주었고 평소 우리 과를 각별히 배려해 주었다. 3년 후 어느 날, 소장이 갑자기 우리 과로 와서 나와 작별 인사를 하며 자신이 이미 북경으로 발령받아 본사에서 근무하게 되었다고 말했고, 특별히 나에게 안전에 유의하라고 당부했다. 나는 C 소장에게 감사를 표하고 그가 영전하여 가족과 상봉하게 된 것을 축하했다. C 소장은 후에 큰복을 받았다.

맺음말

연구소 간부들과 동료들은 수년간의 관찰을 거쳐 지금은 모두 입을 모아 말한다.

“저기 파룬궁 하는 사람을 보라고, 몸도 건강하고 일도 잘하고 월급도 많고, 아들 대입 성적도 우리 연구소에서 1위라 우리 시 명문 대학에 들어갔을 뿐만 아니라 북경의 명문 대학원까지 마치고 졸업 후 대형 국유기업에 들어갔잖아. 역시 파룬궁을 수련하는 게 좋다니까!“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37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