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법제자
【정견망】
우리 소조 교류 중에서 발생한 최근의 한 사건과 결합해, ‘동수를 늘 칭찬해서는 안 된다’는 이 문제에 대한 나의 인식을 교류해 보고자 한다. 이 일은 그리 커 보이지 않지만, 나로 하여금 수련에는 작은 일이 없다는 것을 진정으로 체득하게 했다.
사부님께서는 《수련자는 자연히 그중에 있다》에서 말씀하셨다.
“한 수련자로서 속인 중에서 만나는 일체 고뇌는 다 고비를 넘는 것이고, 만나는 일체 찬양(讚揚)은 다 고험이다.”
1. 교류 중에서 나타난 한 가지 문제에서부터 말하다
우리 연공장에는 원래 스무 명이 넘는 동수들이 있었으나, 장기간 연공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이런 상황을 보고 나는 마음이 조급해졌고, 또 자주 무의식적으로 동수의 부족함을 보며 어떻게 하면 모두가 제고하도록 도울 수 있을지 생각했다. 나중에 한 번의 교류 중에서 나는 한 가지 현상을 언급했다. 어떤 동수가 단톡방에 자주 사부님의 설법을 올리는데, 동시에 교류 중에서도 어떤 동수들이 이 동수에 대해 찬양, 칭찬, 숭배, 심지어 의존하는 상황이 존재함을 명백하게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나는 단지 이러한 상태가 ‘별로 옳지 않다’고 느꼈을 뿐, 법리에서 진정으로 깊이 깨닫지 못했다. 교류 과정 중에서도 문제를 보는 각도가 다르기 때문에, 어떤 동수는 중간에 자리를 떠났다. 일이 끝난 후, 내 마음속에는 줄곧 내려놓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다.
2. 안으로 자신의 집착을 찾다
집에 돌아온 후, 나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었다.
‘혹시 내 말투가 나쁘지 않았나?’
‘혹시 내가 옳고 그름의 각도에 서서 말한 것은 아닌가?’
‘혹시 환희심이나 자신이 옳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이토록 반복해서 안으로 찾는 과정 속에서, 나는 문득 한 가지 핵심적인 문제를 깨달았다. 나 자신도 평소에 동수들을 칭찬하고 있었고 게다가 꽤 많이 칭찬하고 있었다.
나는 평소에 내가 했던 말들을 되돌아보았다.
“당신은 예전보다 훨씬 진보했어요.”
“당신은 오성(悟性)이 꽤 좋군요.”
“당신은 요즘 법을 암송하는 게 꽤 괜찮네요.”
당시에 나는 이 말들이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며 동수를 격려하는 것이라고 느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이 말들은 법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때, 단톡방에서 마침 한 동수가 ‘동수를 늘 칭찬해서는 안 된다’에 관한 수련생의 교류 문장을 전송해 주었는데, 이것이 단숨에 나를 진정으로 일깨워 주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며, 이것은 나를 점화하는 것이다.
3. 법에서 인식: 동수를 칭찬하는 것은, 사실 동수를 해치는 것이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을 공부하며 법과 대조해 보고서야 비로소 나는 점차 깨달았다. 동수를 칭찬하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격려이지만, 사실상 오히려 동수의 환희심을 자라나게 하고 의존심을 증가시키기 쉬우며, 동수를 높이 놓고 법을 낮게 두게 된다. 칭찬 받는 동수는 비록 표면적으로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내심으로 조금도 움직이지 않기는 매우 어렵다. 그리고 장기간 칭찬을 받다보면 일종의 상태를 형성하기 쉽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옳다’
‘모두가 나를 인정한다’.
동시에 다른 동수들도 무의식적으로 이 사람을 본받기 쉽지, 법으로 돌아와 가늠하지 않게 된다. 이렇게 되니 사람을 배우고 법을 배우지 않는 편차가 남모르게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수련인은 사람을 배워서는 안 되며, 법을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련 중에는 모범이 없고 오직 법만 있을 뿐이다. 모두의 시선이 어느 동수에게 쏠려 ‘그는 수련을 잘한다’ ‘그가 하는 말이 맞다’고 여길 때, 일단 이 동수에게 상태의 파동이 나타나거나 심지어 구세력에게 틈을 잡히게 되면, 이 동수를 해칠 뿐만 아니라 다른 동수들의 정념까지도 동요시키게 된다. 이것은 정체 수련 환경에 대해서도 일종의 교란이다.
동수의 개인 능력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무의식적으로 동수를 높이 놓게 되고 사부님과 대법을 낮게 두게 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전에 수련생들이 늘 말하기를, 우리 연공장에서 이 사람의 표현이 아주 좋기에 그가 어떻게 하면 우리도 그렇게 하자고 했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절대 이렇게 하면 안 되고 또 절대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수련하는 사람은 사람을 배울 수 없으며 법을 스승으로 모셔야 한다! (박수) 당신들이 일단 이렇게 하려고 하고 이렇게 생각할 때, 두 가지 문제가 나타난다. 하나는 아마 당신이 그 수련생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갈 수 있는데, 구세력이 아마 그로 하여금 문제가 생기게 하거나 심지어 먼저 가게 할 수 있다. 그리하여 기타 수련생을 고험한다. 당신들이 모두 그를 보는데, 이런 정황 하에서 당신들이 여전히 배우겠는지, 배우지 않겠는지? 수련하겠는지, 하지 않겠는지? 이런 정황 하에서 정말로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그 사람까지 안 되는데 내가 될 수 있겠는가? 그러면서 동요한다. 그럼 이것은 구세력이 빈틈을 탄 것이 아닌가? 나, 이 사부까지도 할 말이 없다! 그 구세력들은 말할 것이다. 당신이 보시오, 이 고험의 결과가 어떤지? 우리가 맞게 한 거지요. 그러므로 정념이 강하지 못할 때 사람의 마음은 안정할 수 없는데, 부디 주의하라! 법을 스승으로 모셔야 한다. 당신은 어떤 사람이 수련한 것이 어떻다 해서, 사람을 배워서는 안 되며 법을 배워야 한다.”(《2004년 뉴욕 국제법회설법》)
4. 계속해서 안으로 찾다: 내가 동수를 칭찬할 때 어떤 인심이 뒤섞여 있었는가?
한 층 더 깊이 안으로 찾아보니, 내가 동수를 칭찬할 때 사실 적지 않은 사람마음이 뒤섞여 있음을 발견했다.
• 원망을 살까 두려워하는 두려운 마음
• 분위기가 조화롭기를 바라는 안일심
• ‘교류를 잘하고 수련을 할줄 안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마음
• 심지어 무의식적인 보답을 바라는 심리
이러한 마음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그 자체로 수련 중의 장애가 된다.
내가 깨달은 것은, 동수를 칭찬하지 않는 것이 냉담하거나 동수를 부정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이다.
도리어 교류를 단단히 법 위에 두어야 한다. 예를 들어 교류 중에서 화제를 법공부와 마음 수련(心修)으로 이끌어 돌아오게 하며, “당신 정말 대단해요”가 아니라 “법이 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라고 일깨워 준다면, 긍정하는 것은 법에 대한 중시이지 사람의 능력이 아니다. 이렇게 하면 사람을 높이 세우지도 않고 동수를 다치게 하지 않는다.
이렇게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한 가지 일을 통해, 나는 진정으로 체득했다. 수련 중에서 안으로 찾는 것은 제고할 좋은 기회이며, 수련 중에 작은 일은 없고, 문제는 대개 일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사일념(一思一念)에 있다. 앞으로 수련 중에서 나는 더욱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할 것이다. 동수를 치켜세우지 않고, 법을 많이 공부하며 법을 잘 공부하고, 법으로 일체를 가늠할 것이다. 또한 우리 정체 수련 환경 속에서도 서로 일깨워 주며, 법에서 교류하고 법에서 제고하기를 희망한다.
이상은 ‘동수를 늘 칭찬해서는 안 된다’는 이 문제에 대한 나의 약간의 체득이며, 법에 부합되지 않는 곳이 있다면 동수들의 자비로운 시정을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