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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찾기를 해내다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수련 중에서 끊임없는 법 공부를 통해 나는 어떻게 안으로 찾는지 점차 알게 되었다.

안으로 찾는 것은 입으로만 말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억지로 하는 것도 아니며, 마음속으로 진정으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마음을 내서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고 성심껏 고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명혜망에서 동수의 교류 문장을 읽을 때, 어떤 때는 동수가 쓴 글이 매우 장황하다고 느껴져 마음속에서 짜증, 조급함, 화가 치밀어 오른다…… 본래 간단한 문장으로 서술하면 명확히 표현할 수 있을 텐데 왜 저렇게 장황하게 쓰는지, 이런 글을 보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여겨 마음속으로 아주 배척했다.

내가 또 동수의 그런 글을 읽고 그런 상황을 보았을 때, 마음속에서 또 싫증 나는 감정이 튀어나왔지만 나는 즉시 경각심을 가졌다. 나는 자신에게 일깨워주었다. 동수의 글에 있는 결점을 탓하지 말라. 모두 수련인이고 누구나 부족함이 있으며 모두 자신을 수련하고 있는 중인데, 핵심은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보았을 때 자신에게도 똑같은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고, 내가 원고를 쓸 때 그러한 장황한 문장들이 나타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문제는 자신을 수련하라고 있는 것이지, 다른 사람의 문제에 집착하여 짜증을 내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 부모와의 관계에 있어서 여태껏 늘 부모님이 이기적이고 그들은 결코 남을 위해 생각할 줄 모르며 부모로서 인자한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여겨왔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늘 수시로 머릿속에 떠올랐는데, 특히 그들이 화를 내고 마성(魔性)을 부리던 모습이 내 마음에 준 상처는 늘 나와 함께했으며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었다.

그들이 심리적으로 내게 준 상처는 당시 물질적 결핍보다 더 심각했다. 내 기억 속에서 어릴 때부터 자라면서 겪은 것은 늘 이런 것들이었다. 그들은 기분이 좋지 않으면 마구 화를 내고, 욕을 했는데 아주 악독한 말을 내뱉었다. 어머니의 입버릇은 흔히 “너는 왜 좋은 사람 대신 죽지 않느냐”, “너와 인연을 끊겠다”, “너는 죽으면 썩어 없어질 놈이다” 등등이었고, 구구절절 악에 찬 저주였다.

아버지가 화를 내며 욕할 때는 더욱 듣기 거북했다. 매번 고성을 질러가며 목청껏 욕을 해댔는데, 도대체 왜 그렇게 화를 내는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그가 화를 내며 욕을 하는 것은 불쑥불쑥 이루어졌다. 느닷없이 화를 내며 욕을 해댔기에 여러 번 크게 겁을 먹고 안절부절못하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부모의 온갖 마성적인 표현이 내 마음에 안겨준 상처는 나로 하여금 원망과 서글픔을 느끼게 했고, 심지어 마음속에 그들에 대한 증오가 쌓여 그 집안은 그야말로 지옥에서 사는 것 같았으며 가정의 따뜻함을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수련한 후, 나는 점차 그들에 대한 증오를 내려놓았고, 그들을 걱정하고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집에 돈이 없고, 농사일이 너무 힘들고, 먹는 것도 부실하며, 기분이 좋지 않아 그들의 감정이 통제력을 잃고 집에서 화를 내며 마음속의 울분을 발산했던 것이라고 이해하게 되었다. 사실, 그 시절(60~70년대)은 바로 사악한 공산당이 중국을 엄격히 통제하던 때로, 정치 운동을 벌이는 것이 경제 발전을 이겼고 구호는 “차라리 사회주의의 풀을 먹을지언정 자본주의의 싹을 두지 말라, 자본주의의 꼬리를 잘라내라” 등등이었다.

중국인들을 아주 가난하게 만들고 모든 물건을 통일적으로 공급하게 하여 기본적인 생활 물자마저 결핍되었으며, 먹는 것은 고기를 먹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채소조차 먹을 게 없었다. 집안 마당에 채소를 조금 심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고 닭을 기르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는데, 사악한 공산당은 그것이 모두 자본주의의 꼬리라며 다 잘라버렸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먹을 채소도 없었고, 달걀도 없었으며, 고기도 없었다. 집집마다 매우 가난했다. 식량조차도 머릿수에 따라 공급받는 그 얼마 안 되는 양뿐이어서 턱없이 부족했다. 80년대에 이르러 사악한 공산당은 경제 붕괴로 인해 멸망의 위기에 직면하자, 마침내 어쩔 수 없이 경제 개혁을 시작하여 백성들을 묶어두었던 밧줄을 느슨하게 풀었고, 중국 농민들의 근면함에 힘입어 비로소 농민들이 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80년대 중반에 성도(省都 성 정부 소재지)의 한 전문대학에 합격했는데, 이는 평범한 백성 가정으로서는 정말로 개천에서 용이 난 격이어서 비로소 농민 신분을 벗어던지고 농업 호구와 작별할 수 있었다. 졸업 후 발령을 받아 돌아와 지역에서 손꼽히는 국가 간부가 되었다. 90년대 중반(1995년)에 나는 파룬따파를 얻게 되었고, 그때부터 내 생명에는 천지개벽할 변화가 일어났다.

수련은 나로 하여금 자비심을 낳게 했고, 나는 부모님의 고생을 보았으며, 더 이상 그들의 예전의 그토록 좋지 않았던 행동들을 따지지 않게 되었다. 나는 되도록 경제적인 도움을 주고자 노력해, 월급을 타면 첫 몇 년 동안은 모두 부모님께 드렸다(당시 매월 200여 위안). 몇 년 후 그들은 내게 월급은 내가 갖고 자신들에겐 주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틈틈이 그들에게 물건을 사주었고, 채소와 고기, 옷을 사다 드렸다. 그들이 가정을 위해 땀 흘리며 고생하고 생활 조건은 그토록 어려운 것을 보았기에 정말로 너무나 고생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전부 사악한 당이 초래한 것이었다.

수련이란 바로 집착을 버리는 것이다. 집착심이 튀어나올 때면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매우 원망스러웠고, 해묵은 감정들이 위로 솟구치며 원망의 요소에 휘감기곤 했다. 어느 날 명혜망에서 한 문장을 보았는데, 어느 동수가 어렸을 때 집이 너무 가난해서 중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부모님이 자신에게 옷이나 신발을 사준 적이 거의 없고, 모두 형과 언니가 물려준 헌옷을 입었으며 그것마저도 기운 옷이었다고 했다. 신발이 없어 맨발로 걸어 다녔고, 중학교에 갈 때도 맨발로 먼 길을 걸어 학교에 갔으며, 선생님과 동료 학생들의 이해를 받지 못하고 차별을 당했다고 했다. 나는 여기까지 읽고, 세상에서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사람이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며 동수의 불우한 처지에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나는 내 마음에 아직도 원망심을 내려놓지 못했고, 여전히 인간 세상의 좋은 삶을 추구하고 있으며, 이 모든 경험을 소업(消業)하는 기회로 여기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사실은 사부님께서 내게 수련의 길을 깔아주고 계신 것이며, 아주 일찍부터 나를 위해 안배를 하고 계셨던 것이다. 나는 마땅히 모든 원망하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하고, 부모님에 대한 모든 불만스러운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이전에 내가 겪은 것들은 다 원인이 있는 것이며, 또 내가 어느 생엔가 그들에게 빚을 진 것을 이번 생에 갚는 것이다. 나는 도리어 그들에게 감사드려야 마땅하다. 이런 방식을 통해 생생세세의 은원(恩怨)을 매듭지을 수 있게 해주었으니 말이다. 사부님께서 이 방식을 통해 부모와의 원한 맺힌 인연을 선해(善解)하게 해주시고 수련상에서 내 심성을 제고시켜 주신 것에 더욱 감사드리며, 사부님께서 내게 마련해주신 수련 환경에 감사하고 사부님의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작은 깨달음이니 부디 지적을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40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