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녕 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1999년 7·20 이후에 정식으로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했으며, 올해 62세이다. 내가 파룬따파를 수련한 것은 병을 낫기 위해서가 아니었고, 나는 예전에 이미 수련이나 기공 같은 화제에 흥미가 있었다. 90년대 초반에는 또 당시 아주 유행하던 어떤 기공을 배운 적도 있었는데, 나중에 이것이 내가 찾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었다.
1996년, 아내가 병을 치료하기 위해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했고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그녀는 큰 이익을 얻었으며, 원래 온몸에 있던 병이 다 나았다. 천식, 두통, 현기증, 산후풍 등이 모두 나았고 성격도 좋아졌다. 예전에 우리 두 사람은 성격이 맞지 않아 늘 말다툼을 잘하곤 했는데, 그녀가 파룬따파를 배우기 시작한 이후로는 마치 사람이 딴사람으로 변한 것처럼 다시는 나와 말다툼을 하지 않았다. 가끔 내가 그녀를 나무라도 그녀는 나와 따지지 않고 늘 싱글벙글 웃었다. 그녀는 한두 번이 아니라 내게 이 공법이 정말 좋으니 네가 믿지 못하겠거든 《전법륜(轉法輪)》을 보라고 말했다. 그러면 당신도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어느 날, 나는 《전법륜》이라는 이 책을 집어 들어 한 번 펼쳐보았고, 마침 ‘불가공과 불교’ 절을 보게 되었다. 보고 나서 아내에게 말했다. “당신 이거 잘 배워요. 이것은 진법(眞法)이오. 바로 이 대목만 해도 다른 사람이 책 한 권을 쓴다 해도 이렇게 명백하게 다 쓰지 못할 것이요.” 99년 7·20에 장쩌민 집단이 광적으로 파룬따파를 모함하기 시작했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좋은 대법이 어찌 모함을 받을 수 있는가?’ 그리하여 나는 정식으로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1. 혼란 중에서도 맹종하지 않다
법을 얻은 때가 늦었기에 나는 목이 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 다급히 법을 더 많이 공부했고, 배울수록 마음이 더 탁 트였으며, 배울수록 소중히 여길 줄 알았고, 배울수록 이것이 만고에 만나기 힘든 진법임을 알게 되었다.
당시 환경은 아주 좋지 않았다.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은 하늘을 뒤덮을 듯한 거짓말로 가득했고, 직장, 경찰, 주민센터의 각종 교란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사악의 명단에 없었기 때문에 한 번도 교란을 당한 적이 없다. 예전에 아내가 자주 참가하던 단체 법학습, 단체 연공은 모두 강제로 해산당했다. 당시에 많은 외지 동수들이 와서 교류를 조직했는데, 나는 이 모든 일에 일절 참가하지 않았다. 당시 내 생각은 아주 단순했다. ‘모두가 똑같은 일을 하러 가서는 안 되고, 떼를 지어 몰려다녀서는 안 된다. 만약 일단 사악에게 붙잡히기라도 한다면, 그 뒤의 다른 일들은 해줄 사람이 없어지지 않겠는가? 나는 나를 드러내지 말아야 하며, 앞으로 일을 하는 데 오히려 더 유리할 수 있다.’
나중에 외지 동수들이 조직한 수많은 교류회는 거의 전부 누설되었고, 그로 인해 현지 동수들 중 많은 사람이 붙잡히고, 구타당하고, 불법 노동교양 처분을 받았다. 나는 이 일들을 단 한 번도 참가한 적이 없었기에 사악은 내가 파룬따파를 수련한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고, 이는 나중에 현지에서 법을 증거하는 일을 하는 데 비교적 좋은 기초를 다져주었다.
2. 정념으로 아내를 마굴(魔窟)에서 벗어나게 하다
2000년 하반기, 아내가 북경에 상방하러 갔다가 붙잡혀 3년간 불법 노동교화 처분을 받았고, 가장 사악한 마싼자(馬三家) 노동교화소로 보내졌다. 내가 처음 면회 갔을 때 떠나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다음번에 또 오게 되면 바로 당신을 집으로 데려가기 위해서요!” 나는 그때 나 자신이 왜 그토록 확신했는지도 몰랐다.
당시 두 아이는 아직 어렸고, 아들은 아직 열 살도 되지 않았으며 딸도 겨우 열두 살이었다. 나는 정말 아버지와 어머니 역할을 동시에 해야 했고, 출근도 해야 했으며, 쪼개어 법을 공부하고 연공도 해야 했고, 법을 증거하는 일도 힘 닿는 대로 해야 했으며, 친인척들로부터 오는 원망과 질책에도 지혜롭게 대처해야 했다. 비록 아주 바쁘고 힘들었지만 한 번도 고생스럽다고 여기지 않은 것은 내게 사부님이 계시고, 나는 자유롭게 법을 공부하고 연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굴 속의 아내는 나와 같은 행운을 누리지 못했다! 내 마음은 사부님께서 아내 동수의 정념을 가지해주시기를 청했고, 그녀가 하루빨리 마굴을 벗어나 정법 홍류 속으로 돌아오기를 바랐다. 그리하여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더욱 강한 힘으로 발정념을 했고, 아내 및 다른 박해받은 동수들의 정념을 가지(加持)하며 그들 모두 하루빨리 집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랐다.
하루는 내가 한창 출근하고 있는데, 갑자기 마싼자 교양원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저쪽에서 물었다.
“아무개(아내의 이름) 가족이 맞습니까?”
내가 맞다고 했다. 그녀가 말했다.
“당신 아내가 아픕니다. 돈을 가지고 와서 병을 치료해 주세요.”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병을 다 낫게 해준다고 해도 너희들이 계속 박해하지 않을 것인가?’
나는 대답했다.
“난 안 갑니다. 병은 당신들이 박해해서 생긴 것이니 난 상관하지 않겠소.” 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잠시 후에 또 대대장이라고 자칭하는 사람이 전화를 걸어와 말했다.
“그래도 한 번 오는 게 좋겠습니다. 다른 사람도 한 명 데리고 오세요. 혼자서는 감당 못 할 테니, 그녀를 데려가서 병을 치료하게 하세요.”
이 말을 듣자 나는 마음속으로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나는 수련인에게는 병이 없다는 것을 알았고, 이것은 사부님께서 환상을 연화(演化)하여 그녀를 나오게 하신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승낙했다. 그때는 이미 정오였다. 나는 곧바로 심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타고 마싼자로 직행했다.
다음 날 아침, 그들이 출근한 후 나이든 경찰 한 명이 나를 접견실로 데려갔다. 나는 어제 전화했던 그 대대장이 겨드랑이에 서류 봉투를 끼고 있는 것을 보았고, 다른 몇 명의 경찰도 자리에 있었다. 그 대대장이 고개를 돌려 그중 남자 경찰 한 명에게 물었다.
“그(나를 가리킴)도 연공합니까?”
그 남자 경찰이 말했다.
“그는 안 합니다.”
대대장이 내게 말했다.
“예전에 노동교화 인원을 집으로 데려가 병을 치료하게 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합시다. 당신이 그녀를 대신해서 보증서에 서명해 주세요.”
내가 말했다.
“나는 서명할 수 없습니다. 요즘 세상에 누가 누구를 보증합니까? 안 된다면 나는 그냥 돌아가겠소.”
그 대대장이 방 안을 이리저리 서성거리며 초조해하는 기색을 보였다. 나중에 그녀가 말했다. “이렇게 합시다. 보증서도 당신이 서명할 필요 없습니다. 당신이 그저 여기에 서명만 해서 사람이 당신이 데려간 것임을 증명만 해주면 됩니다.”
나는 승낙했다. 그들은 짐을 덜었다는 느낌을 받았고, 즉시 택시를 부르는 것을 도와주었다. 아내는 그때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였고, 기사와 내가 함께 그녀를 부축해 차에 태웠다. 역에 도착해서 택시가 멀어져 가는 것을 보고 내가 말했다.
“당신 일어나요. 이제 괜찮소.”
아내는 곧바로 눈을 뜨고 일어섰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계란 몇 개를 사서 먹고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후에 아내와 교류하며 물었다. 당시 마음속으로 어떻게 생각했었느냐고.
그녀가 말했다.
“나는 그때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빌었어요. ‘사부님, 이곳은 제가 머물 곳이 아닙니다. 저는 나가야 합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고, 아직 진상을 모르는 채 진상을 알려주어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제발 저를 구해서 나가게 해 주세요!’”
바로 아내가 이렇게 생각한 그 다음 날에 병업의 가상(假相)이 나타났던 것이다. 우리는 감개가 무량했다. 어쩌면 바로 아내가 그녀의 일념이 법의 요구에 부합했기에, 무소불능하고 법력이 무변(無邊)하신 사부님께서 그녀를 고해(苦海)에서 구출해 내신 것인지도 모른다. 사부님께 대한 제자의 은혜는 정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3. 어려움을 극복하고 진상을 알리다
당시 현지에는 아직 자료점이 없었고 자료가 턱없이 부족했다. 나는 문득 내 친구 한 명이 복사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기억이 떠올라 그를 찾아가 대법 자료를 복사하는 것을 도와줄 수 있는지 상의했다. 그는 돕겠다고 약속했지만, 요구하는 가격이 조금 비쌌다. 당시에 대법 자료를 복사하는 것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고, 정보(政保) 경찰들이 주기적으로 복사점에 찾아와 점검했으며 그들을 불러 회의를 열고 파룬궁 관련 물건을 인쇄하지 말라고 경고했기 때문이다. 중생들이 진상을 보고 진상을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비록 그가 요구하는 가격이 시장 가격보다 높았지만, 나는 인쇄해 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 해도 어디냐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거기서 대량의 진상 자료를 복사했고, 그것을 동수들에게 나누어주었으며, 밤에는 구역을 나누어 나가 배포했다. 돈이 부족할 때는 다른 동수들도 돈을 보태어 도왔다.
나중에 외지 동수와 연락이 닿았지만, 우리 곳에서 너무 멀어 천 리나 떨어져 있었다. 아내 동수가 자원하여 외지로 자료를 가지러 가는 막중한 임무를 떠맡았다. 그녀는 밥 먹을 겨를도 없이 이른 아침에 차를 타고 약 6~7시간 후에 도착하곤 했다. 그곳의 동수들이 우리가 요구한 자료를 미리 준비해 두고 그녀가 크고 작은 포장으로 된 자료를 차에 싣는 것을 도와주었다. 밤늦은 새벽 1시나 2시에 역에 도착했고, 그러면 내가 역으로 마중을 나갔다.
그때 신경문을 받아올 때도 외지에 가야 했고, 때로는 한 달에 몇 번씩 다녀와야 했다. 당시에 우리는 저축이 없었기에 직장 월급이 제때 나오지 않으면 때로는 차비조차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동수들이 쪼개어 모은 자료 제작비를 빌려 차비를 메꾸어야 했다. 하지만 비용을 지출한 후에는 최우선으로 즉시 채워 넣었으며, 자료 제작비의 한푼도 탐한 적이 없었다. 어떤 동수들은 우리를 대신해서 차비를 내주겠다고 했으나 우리는 모두 거절했다. 이토록 신성한 일을 하는데 차비는 반드시 스스로 내야 하며, 재물 방면에서는 반드시 분명해야 한다.
4. 사부님 가지로 기술을 배우다
진상 자료의 사용량이 점점 더 많아지면서 늘 천 리 밖으로 자료를 가지러 가는 것도 번거로웠고, 동시에 외지 동수들에게 부담을 주었으며 안전상의 위험도 있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직접 자료점을 세우기로 결정했다. 정말로 만사는 시작이 어렵다고, 당시에 나는 컴퓨터 지식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고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었다. 외지에서 기술 동수 한 명이 와서 먼저 현지의 어느 누님 동수에게 방면 방면의 기술을 가르쳐주었다.
그 누님 동수는 직장에 컴퓨터가 있었고 약간의 컴퓨터 기초가 있어서 아주 빨리 인터넷 접속, 다운로드, 자료 출력 등을 배웠다. 이로써 우리 현지에도 자료점이 생기게 되었다. 나는 소모품 구매를 담당했고, 위아래 층으로 자료를 날라 나르며 동수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나중에 자료점의 누님 동수가 외지 동수의 집에 컴퓨터를 수리하러 갔다가 불법 납치되었고, 그녀는 인터넷 접속 카드(모뎀)까지 가지고 갔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다른 외지 동수와 연락했고, 그들은 우리를 도와 컴퓨터와 인터넷 카드를 사주었으며, 인터넷 접속 및 출력 기술을 가르쳐주어 내가 현지 자료점의 운영을 도맡아 하게 되었다.
잇따라 현지에 또 많은 자료점이 세워지고 여러 개의 작은 꽃이 피어났으며, 나는 또 기술을 가르치는 책임을 맡게 되었다. 나 역시 새로 배운 사람이라 해결하지 못하는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어쩔 수 없이 외지 동수에게 번거롭게 부탁해야 했다. 나중에 나는 생각했다. ‘나는 수련인이고 사부님께서 돌봐주시는데, 늘 동수에게 번거로움을 끼쳐서는 안 된다. 나는 사부님께 지혜를 주시기를 청해야겠다.’ 조금씩 사소한 고장을 만나도 내가 직접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는 정말로 바빴고, 때로는 너무 바빠 밥을 먹을 겨를도 없었지만, 아무리 바쁘더라도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을 공부하는 것을 견지했다. 바빠서 겨우 한두 단락밖에 공부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공부했으며 딴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음을 가라앉혀 법을 공부한 후에는 겉보기에 해결하기 아주 어려워 보였던 문제들이 돌연 영감이 떠올랐고, 그 뒤에 이 사고방식대로 시도해 보면 난제가 뜻밖에도 술술 풀렸다. 어느 날, 내가 집에서 프린터를 수리하고 있었는데, 딸이 그것을 보더니 남동생에게 말했다.
“아빠 이 정도 실력이면 우리가 뭐 하러 대학 시험을 보겠어요?”
아들도 아주 놀랐다.
“아빠, 이런 수리까지 하실 줄은 몰랐어요!”
나는 그들에게 알려주었다. “이것은 대법이 내게 준 지혜란다!”
그들은 나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5. 외딴 산간지방에 감로를 뿌리다
우리 집은 경제 조건이 한정되어 있어 처음에는 차가 없었고, 오토바이에 동수를 태우고 시골에 가서 자료를 배포하거나 현수막을 내거는 등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나와 동수가 시골에 가서 현수막을 걸고 돌아올 때 큰눈을 만났는데, 헬멧이 눈으로 덮여 길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오르막길을 오를 때 오토바이 시동까지 꺼졌고, 동수는 비바람을 무릅쓰고 장갑 낀 손으로 점화 플러그 닦는 것을 도와주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빌었다. 마침내 시동이 걸렸다. 길을 잘 볼 수 없어 천천히 전진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속도가 걷는 것과 같았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새벽이었고, 춥고 피곤하고 배고프며 다리까지 굳어졌지만 마음만큼은 따뜻했다.
우리 지역은 산간 지역의 현으로 면적이 아주 넓고 인구도 많았다. 나이가 비교적 많은 동수들은 자료를 배포해도 현성(縣城) 안에서만 배포할 수 있었고 먼 곳은 갈 수 없었다. 내가 몰던 오토바이도 동수 두 명밖에 태울 수 없었다. 나중에 우리는 상의한 끝에 승합차를 한 대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여섯 일곱 명이 탈 수 있다면 시골의 외딴 산간지방에 가서 진상 자료를 배포할 수 있을 터였다. 마침 외지에서 돌아온 동수가 있어서 우리는 그와 승합차를 사는 일에 대해 교류했고, 그는 우리를 매우 지지해 주며 즉시 은행에 달려가 1만 위안을 찾아 우리에게 건네주었다. 그때는 2000년대였으니 1만 위안도 적은 돈이 아니었다. 나와 또 다른 동수가 돈을 좀 더 모아서 중고 승합차 한 대를 샀다. 이로써 우리에게 교통수단이 생겼다.
매번 우리는 사전에 7~8백 부의 진상 자료를 준비하여 자크 백에 담았다. 그리고 우리는 외딴 산간지방에 가서 자료를 배포했다. 내가 운전을 맡았고, 보통 상황에서는 동수 6명을 태웠으며 많을 때는 7~8명도 태웠다. 두 명씩 한 조가 되어 한 마을을 맡았고, 나는 그들을 조별로 마을 입구에 내려주었으며, 배포가 끝난 후에 다시 조별로 그들을 태워 데려왔다. 우리는 사전에 약속하여, 어느 조가 배포를 끝내든 가까운 큰길가로 돌아와 기다리기로 했다. 때로는 실수가 생기기도 해서, 어떤 동수는 밤에 방향을 분간하지 못해 늘 반대 방향으로 가서 기다리곤 했기에 동수들이 흩어져 찾아다녀야 했다. 보통 집에 도착하면 새벽 1~2시가 되었고 때로는 더 늦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동수들은 조금도 불평하지 않았고 고생스럽거나 피곤하다고 여기지도 않았다.
6. 수련의 엄숙함을 깨닫다
사람은 일을 하려는 마음을 일으키기 아주 쉽다. 비록 자주 자신에게 일깨워주며 일을 하는 것은 수련이 아니라고 타일렀지만, 때로는 바빠지기 시작하면 법 공부가 적어지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을 하는 것을 첫 번째 자리에 놓게 되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저쪽 동수의 프린터가 작동하지 않는데 동수는 급하게 쓰고 있다면 어찌해야 하겠는가? 어쩔 수 없이 자신이 법 공부를 하지 않는 한이 있더라도 먼저 동수의 프린터를 수리해 주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발정념을 아주 중시했고, 게다가 발정념을 할 때 손을 떨구지 않았으며 연공도 비교적 조용하게 했다.
그러나 내 성격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연공을 하기 전에는 불같은 성격이어서 아내의 말에 따르면 “불을 붙이면 바로 타오르는” 식이었다. 때로는 나이 많은 동수가 내게 기술을 배울 때 몇 번이나 가르쳐주어도 여전히 기억하지 못하면, 나는 참지 못하고 화를 냈고 목소리도 몇 옥타브 높아졌다. 그로 인해 일부 동수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야단을 맞을까 두려워 감히 직접 나를 찾지 못하고 다른 동수를 통해 전달하곤 했다. 생각해보면 이런 동수들에게도 아주 미안한 일이다. 이 자리를 빌려 동수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
수련은 엄숙한 것이다. 언젠가 나와 아내 동수는 외지로 디스크 케이스를 가지러 갔었다. 당시에 션윈(神韻) 디스크는 대륙에서 배포할 수 있었다. 우리는 승합차 가득 광디스크 케이스를 싣고 길을 떠났는데, 어느 사거리를 지날 때 도로 관리 차량이 길가에 서 있는 것을 보았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그냥 지나쳐 갔다. 사거리를 지나자마자 아내가 백미러를 통해 그들이 쫓아오는 것을 보았다. 나의 차 키와 운전면허증을 전부 압수했고, 벌금 3천 위안을 물리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그들은 차에 실린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았고 손으로 만지기까지 했다. 사부님의 가지 하에 나는 지혜롭게 그들과 옥신각신했다. 아내는 택시를 타고 돌아가 동수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우리가 수중에 그만큼 돈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동수와 그들이 아는 사람이 모두 왔고, 동수가 5백 위안을 내는 것을 도와주어 일을 마무리지었다.
일이 끝난 후 우리는 반성했다. 우리는 가장 신성한 일을 하는데 어째서 번거로움이 생겼을까? 나는 자신이 무슨 일만 생기면 화를 잘 내고, 조급한 마음과 원망하는 마음이 있으며, 문제가 생기면 습관적으로 아내의 흠집을 찾고 그녀가 엄숙하지 못하다고 탓하며 동수와 말할 때 낄낄거린다고 책망한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 아내 동수는 나보다 심성이 높았다. 그녀는 언제나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을 안으로 찾았고, 한 번도 나를 원망하지 않았다. 내가 정말로 심성 면에서 공을 들여야 함을 알았다.
사부님께서는 “작은 일마저 넘기지 못하고 화를 내면서도 공이 자라게 하려고 생각하는가.”(《전법륜》)라고 말씀하셨다. 생각해보면 정말 부끄럽기 그지없다. 이렇게 오랫동안 수련했으면서도 화를 내는 버릇을 줄곧 버리지 못했는데, 오늘 이 화를 잘 내는 버릇을 폭로하는 것은 바로 단호히 그것을 원하지 않으며 제거해 버리기 위함이다.
7. 사부님께서 험난(險難)을 넘도록 보호해 주시다
어느 해 집을 수리하게 되었는데, 돈을 아끼기 위해 내가 직접 할 수 있는 일부 일은 내가 직접 했다. 하루는 내가 전기톱으로 문을 켜다가 부주의로 왼쪽 손목에 10여 센티미터 길이의 큰 상처를 내고 말았다. 힘줄까지 끊어졌고 가장 깊은 곳은 뼈까지 보였으며 살이 양쪽으로 뒤집어져 보기에 아주 징그러웠지만, 피는 한 방울도 나지 않았고 통증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당시에 집에 나 혼자밖에 없었는데, 나는 사부님께서 내 곁에 계신다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 큰 난을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나를 대신해 감당해 주신 것이다. 당시에 손가락을 움직여 보니 여전히 움직일 수 있었다.
나는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아내를 찾아 차를 몰고 갔다. 그녀는 그때 친정 어머니 집에 있었다. 나는 다른 가족들이 놀랄까 봐 알리지 않았다. 차에 타서 나는 아주 차분하게 아내에게 말했다. “내 손에 상처가 났소.” 그녀는 보고는 깜짝 놀랐다. 평소 아주 든든하던 그녀가 오히려 좀 당황하며 나에게 물었다. “병원에 갑시다?!”
내가 말했다. “안 가오. 당신이 가서 거즈 한 뭉치를 사다가 나를 감아주기만 하면 되오.”
그녀는 그대로 했다. 집에 돌아온 후 나는 해야 할 일을 계속했고 이것을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저녁에 연공을 할 때 상처 부위에서 노란 진물이 배어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어제 바깥쪽으로 뒤집어졌던 살이 이미 아물어 붙어 있었다.
내 직업은 운전을 해야 하는 일인데, 나는 평소대로 출근했고 동료들은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며칠 후 집에서 겨울 저장용 연탄을 2톤 넘게 샀는데, 전부 내가 직접 삽으로 연탄 광에 옮겨 담았다. 상처도 전혀 아픈 줄 몰랐다. 나중에 서서히 다 나았지만 길쭉한 흉터 하나는 남았다.
친인척들이 나중에 이 일을 알고는 모두 대법을 배우는 사람들은 역시 다르다고 감탄했다. 만약 일반 사람이 병원에 갔더라면 2만 위안 없이는 해결되지 않고, 각종 검사와 수술 봉합을 거치며 고생도 하고 어쩌면 후유증까지 남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 일을 겪은 후 심지어 예전에 내가 대법 배우는 것을 가장 극렬하게 반대하던 친척조차도 사실 앞에서 더는 토를 달지 않았다.
맺음말
처음으로 교류 글을 써보는데, 예전에 늘 자신의 수련 길이 평범하기 그지없어 정말로 쓸 만한 것이 없다고 느꼈다. 동수들이 나를 격려하며, 체험을 쓰는 것은 자신을 실증하기 위함이 아니라 대법을 실증하기 위함이며, 세속 사람들에게 진선인(真·善·忍)의 아름다움을 나누어주는 것이고 또한 사부님께 답안지를 제출하는 것으로 여기라고 했다. 그리하여 수련 길에서의 기억에 비교적 깊이 남은 단편들을 회상해 보았다. 법에 부합하지 않는 곳이 있다면 동수들이 자비롭게 바로잡아 주기 바란다!
우리 함께 사부님의 가르침을 명심하고, 착실하고 착실하게 법에서 수련하며, 흔들림 없이 미래의 수련 길을 잘 걸어 나갑시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동수 여러분 감사합니다! 허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