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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

대법제자

【정견망】

관념(觀念)이란 무엇이며 어떤 표현 형식인가. 내게 있어서 관념이란 자아(自我)의 연속이다. 모든 표현은 자아가 어떠어떠함을 표현하기 위함이며, 자신의 의도에 부합하지 않는 일을 볼 때면 관념으로 저울질하고, 관념의 지배를 받아 연기하는 언행거지(言行擧止)다.

요 며칠간 자신이 관념에 의해 이끌리고 있다는 것을 명백히 느꼈다. 때로는 법리(法理)상으로 문제를 만나면 안으로 찾아야 하고, 법에 대조해 어디가 부족한지 살펴봐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막상 문제가 나타났을 때는 정념(正念)이 관념보다 빨리 나오지 못하고 관념이 먼저 주인 행세를 했다. 이는 관념이 인간이라는 표면에서 형성되었음을 설명한다. 문제가 나타났을 때, 사실 이 소위 문제란 관념이 반영해 낸 환상에 불과하다. 하나는 아마도 이 문제 위에서 제고되어야 함을 의미할 수 있고, 또 하나는 그것을 드러내어 정념으로 제거하라는 것이다. 최근에 겪은 문제들 중 몇 번은 모두 관념이 먼저 튀어나왔고, 그 후 관념에 따라 행동했으며, 지나고 나서야 자신이 속았음을 깨달았다. 소위 문제를 해결하고 문제를 바라보는 그 이유들이 반드시 법에 부합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법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이는 곧 구우주(舊宇宙)의 이치에 부합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관념 이후의 효과이다.

왜 늘 관념이 한 발 앞서 나가는가? 그것은 관념이 위아위사(為我為私)의 기초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사(私)를 지니고 있으면 변이된 요소, 즉 과시심, 원한심, 쟁투심, 타인을 강제로 개조하려 하는 마음,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 등이 따르게 된다. 어떤 물질이든 다른 공간에서는 모두 생명이 있으며 관념 역시 마찬가지이다. 정법이 그것을 건드릴 때 다른 공간에서는 미혹이 없으므로 정법에 의해 건드려진 후의 결과를 볼 수 있다. 그것들은 자신이 구우주의 산물이며 정법 속에서 도태되어야 함을 알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발악한다. 사람이라는 이 표면으로 반영되어 나오는 것은 자신이 집착하는 것을 고집하고, 내려놓기 원하지 않는 변이된 관념을 굳게 지키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만약 이 후천적인 관념이 아주 강하게 변하면 그는 곧 사람의 진정한 사상과 행위를 지배하는데, 이때에 사람은 아직도 자신의 사상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인은 거의 사람마다 이러하다.”(《정진요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고 말씀하셨다. 현재 층차에서 깨달은바, 만약 고유한 관념을 버리지 않으면 그것을 끊임없이 자양(滋養)하게 되며, 어느 정도 자양되었을 때 관념은 도리어 사람을 지배하고 좌우한다. 우리가 문제와 모순에 부딪혔을 때 법에 대조해 안으로 찾지 않고 자신의 관념을 굳게 지킨다면, 이러한 상태는 바로 관념에 지배당하고 좌우되는 것이다.

요 며칠간 계속해서 관념과 투쟁하는 단계에 처해 있었다. 원래 환경은 아주 좋았고 특별한 촉발점도 없었는데, 어째서인지 자꾸만 타인이 마음에 들지 않고 무엇을 하든 자신의 마음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비록 표면적으로는 그리 큰 반응은 없었으나 내면은 종종 쟁투와 번뇌로 뒤끓었다. 내재된 물질이 비록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으나 상대방은 그것을 느낄 수 있었기에 상대방은 더욱 강렬하게 반항했다. 이때 마음의 용량이 한계에 달해 더 이상 참고 싶지 않았지만,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이해했기에, 이렇게 끊임없이 튀어나오는 좋지 않은 사상을 배척했다. 집착의 뿌리를 찾지 못하니 문제는 여전히 존재했고, 점차 간극이 생겨 상대방과 소통하고 싶지 않았으며,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틀리지 않았고 상대방이 잘못했다고 여겼다. 이렇게 생각하자 간극은 더욱 커졌다. 집안의 장(場)이 억압적으로 변하는 것을 지켜보며 마음은 마치 커다란 돌덩이가 짓누르는 듯했다.

발정념을 할 때 나는 이 현상을 겨냥해 발정념을 했다. 우리 이 정체를 교란하는 일체의 사악을 제거하는 동시에, 상대방의 소위 부족함을 상대방의 진정한 본인(本人)으로 여기지 않으며, 이 일체를 환상으로 보고 관념에게 난동을 부릴 어떠한 시장도 주지 않았다. 사상 속에서 튀어나오는 부면(負面) 물질을 즉시 그것을 간파하고, 이 사상 염두가 진정한 자신이 아니며 관념임을 똑똑히 보았다. 진정한 나는 관념이 주인 노릇을 하도록 내버려둘 수 없고 관념에 지배당할 수 없다. 여기까지 깨닫자 눈앞에 마치 관념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 보이는 듯했다. 서로 다른 사상은 서로 다른 관념을 낳고, 서로 다른 가상(假相)을 환화(幻化)해 내는데, 그것이 아주 분명하고 한눈에 들어왔다. 이때 주의식(主意識)이 주인이 되니 명백한 그쪽 면이 주인이 되어 사람이 더욱 이성적이고 지혜로워졌다.

금방 이전의 상태가 바뀌어 먼저 상대방과 적극적으로 교류했고, 상대방 역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화를 나누는 도중 상대방이 마음속 생각을 털어놓았다.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 법으로 자신을 대조하는 것이 아니라 관념으로 상대방을 저울질했기 때문임을. 신우주(新宇宙)는 위타(為他)한 것이니 대법제자가 신우주의 각자(覺者)가 되고자 한다면, 인간세상에서 곧 사(私)를 내려놓아야 하며, 어떠한 관념과 잡질(雜質)도 없는 순수하고 깨끗한 생명이 되어야 한다.

관념은 마치 떠다니는 먼지와 같아서 선천 본성의 공간에는 애초에 들어갈 수조차 없다. 관념이 제거되지 않는 이유는 누군가 마음으로 그것을 보호하고, 누군가 염(念)으로 그것을 자양하며, 누군가 정(情)으로 그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현 단계에서의 작은 깨달음일 뿐이니, 적절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동수들이 자비로 바로잡아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43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