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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한 층차에 부동한 층차의 법이 있음’에 대한 작은 이해

대법제자

【정견망 2026년 10월 22일】

사부님께서는 《전법륜》 제1강에서 말씀하셨다.

“펼쳐 놓고 말하면 법은 매우 크다. 극히 높은 곳에 이르러 말한다면, 그것은 아주 간단하다. 왜냐하면 법은 마치 피라미드 모양과도 같기 때문이다. 극히 높은 층차에 이르면 세 글자로 개괄할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真(쩐)ㆍ善(싼)ㆍ忍(런)이며, 각개 층차에서 현현(顯現)하면 극히 복잡하다.”

역시 《전법륜》 제1강에서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불가는 자신을 제도하고 남을 제도하며 중생을 널리 제도함을 말한다. 자신을 수련할 뿐만 아니라, 또한 중생을 널리 제도하기에 다른 사람도 따라서 이로울 수 있는데, 무의식중에 다른 사람의 신체를 조정(調整)해 주거나 병 치료 등등을 해 줄 수 있다.”

나는 자신에 대하여, 타인에 대하여로 나누어 본다면, 다음 층차는 다음과 같이 나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진실함, 타인에게 진실함, 자신에게 선함, 타인에게 선함, 자신에게 참음, 타인에게 참음.

‘자신에게 진실함’에는 자신을 대충 대하지 않는 것,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 등이 포함된다.

‘자신에게 선함’은 ‘사(私)’와 구별이 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 제1강에서 말씀하셨다.

“사람의 진정한 생명의 생성(産生)은 우주공간 중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선함’은 사실 ‘타인에게 선함’ 속에도 포함되며, 본질적으로 역시 ‘타인에게 선함’이지만, ‘사(私)’는 그렇지 않다.

나는 만약 내가 어떤 물건을 사고 돈을 지불했는데, 상대방이 물건을 주지 않고 이득을 취하려 한다고 생각해보았다. 그렇다면 내가 그에게 물건을 주도록 강요하거나 돈을 돌려받는 것은 ‘자신에게 선함’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은 그가 덕(德)을 손상하는 것을 막아주기도 하므로, 실제로는 이것은 또 ‘타인에게 선함’에 해당한다.

만약 내가 어떤 지식을 알게 되었거나 어떤 좋은 물건을 갖게 되었을 때, 남에게 공유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이 일은 타인에게 선하지 않은 것이며, 그것이 바로 ‘사’이다.

또 다른 구별은, ‘사’는 본질적으로 볼 때 ‘자신에게 선함’에 속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만약 내가 어떤 음식을 먹기를 좋아하여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산다면, 보기에는 ‘자신에게 선함’ 같지만, 실제로 이런 행위는 집착심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덕을 손상하므로, 진짜 ‘자신에게 선함’이 아니며 역시 ‘사’에 해당한다.

법을 많이 공부하면 무엇이 진정으로 자신에게 선한 것인지, 무엇이 겉보기에는 자신에게 선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에게 선하지 않은 것인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자신에게 참음’에는 자기 몸의 통증, 연공할 때 다리와 손의 통증에 대한 참음이 포함된다.

개인 층차에서 본 바로는, ‘참음(忍)’에는 ‘포용(包容)’의 함의도 있으며, 자신에게 참는 것을 아래로 나누면 ‘자신을 포용함’이 된다. ‘자신을 포용함’을 해내지 못할 때는 흔히 ‘삶에 대한 두려움’, 즉 ‘살고 싶지 않다’라는 집착심이 생기곤 한다.

이후에는 계속해서 아래로 펼쳐질 수도 있고, 서로 조합될 수도 있다.

사부님께서는 《스위스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인간이라는 이 단계에 이르렀을 때 이 법의 체현은 아주 크고 아주 방대하고 복잡하며 수련형식도 아주 많으며 깨달은 이치도 아주 많다. 좋은 사람이 되려할 때 이 공간 중에 존재하는 요구는 바로 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智)ㆍ신(信) 등등이다. 그것도 모두 真(쩐)ㆍ善(싼)ㆍ忍(런) 중에서 분화(分化)되어 나온 것으로 아주 많은바 이것에 그치지 않는다.”

타인에게 선함이 아래 층차로 겹겹이 펼쳐져 사람이라는 이 단계에 도달했을 때, 내가 군주이고 ‘타인’이 신민(臣民)이라면 ‘신민에게 선함’은 바로 ‘인(仁)’이 되며, 내가 개체로서 ‘타인’이 친구라면 ‘친구에게 선함’은 바로 ‘의(義)’가 된다. 내가 자식이고 ‘타인’이 부모라면 ‘부모에게 선함’은 바로 ‘효(孝)’가 된다. 내가 신민이고 ‘타인’이 군주라면 ‘군주에게 선함’은 바로 ‘충(忠)’이 되며, 내가 연장자이고 ‘타인’이 아이라면 ‘아이에게 선함’은 바로 자애(慈)가 된다.

‘타인에게 선함’의 한 가지 표현은 타인에게 예의를 갖추고 예절을 지키는 것이므로, ‘예(禮)’ 역시 ‘타인에게 선함’에서부터 아래로 펼쳐진 것이다.

‘지(智)’는 옳고 그름을 명확히 분별하는 것 등이다. 옳고 그름을 명확히 분별하고 지혜가 있는 것은 그 자체로 자신에게 이롭고, 동시에 타인에게도 이로우므로, ‘지’는 ‘자신에게 선함’과 ‘타인에게 선함’이 아래로 펼쳐진 후 조합되어 나온 것이다.

‘신(信)’은 성실의 관점에서 보면 ‘타인에게 진실함’에서부터 아래로 펼쳐진 것이고, 신의를 지키는 관점에서 보면 ‘타인에게 선함’에서부터 아래로 펼쳐진 것이다.

이상은 단지 개인 층차에서 본 바이며, 부족한 점이나 법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동수들이 자비로 바로잡아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4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