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1998년에 법을 얻었으며, 이에 사부님께 보고드린다.
1. 친정관(親情關)
최근 보도원들과 교류할 때, 친정(가족 간의 정)은 동수들이 넘기 힘든 커다란 고비인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전에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 동수들이 보인 정(情)의 반응은 나를 놀라게 했으나, 내가 유일하게 관심을 가진 것은 어떻게 이 기회를 빌려 사람들로 하여금 대법의 소중함을 알게 할 것인가였다.
남편은 사회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이 있었는데, 구세력이 그의 수련상의 누락을 잡아 박해했다. 사부님의 자비로 그를 데려가신 것에 감사드린다. 수련하기 전에도 나는 운명은 하늘이 정하는 것이라 믿었고, 내가 과연 이를 확고히 믿는지 스스로를 관조(觀照)하곤 했다. 일찍이 달빛 아래 숲속을 산책하다가 돌 위에 커다란 뱀 한 마리가 있는 것을 보았는데, 이미 운명으로 정해진 것이라 여겨 담담히 지나쳤고 그것을 놀라게 하지 않았으니 선연(善緣)이었다.
법을 얻은 후에는 생명의 본질과 법의 안배, 그리고 구세력의 교란을 더욱 깊이 체회하였다. 20여 년 동안 반복해 체회하면서 정(情)이라는 물질은 더욱 옅어졌고, 남편의 갑작스러운 사망에도 담담하여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구세력은 이 기회를 빌려 박해하며 꿈속에서 몇 번이나 무형의 공포를 강제로 가했는데, 다행히 사부님께 구하시어 깨어날 수 있었으니 사부님의 은혜에 감사드린다.
남편은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쇼크를 일으켜 단번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평소 병업(病業) 상태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는데, 이틀 전 가부좌할 때 호흡이 가빠져 무슨 일인지 물었으나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늘 묵묵히 병업관을 넘겼기에 마음에 두지 않고 각자 자기 일을 바쁘게 처리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났지만 집안에 한 사람이 줄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고 감정의 동요도 없었다. 수련 전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셨을 때는 몹시 슬펐으나, 집착을 내려놓자 즉시 슬프지 않게 되었고 그들이 순간적으로 떠났음을 확실히 알았다. 법을 얻은 후 깨달은 것은, 친인을 잃은 고통은 친인에 대한 요구에서 비롯된 것으로, 대법을 수련하는 것이야말로 부모님에 대한 가장 좋은 보답이라는 점이다.
젊었을 때 이미 정(情)이라는 것은 사람을 명료하지 못하게 만든다고 느꼈고, 30대에는 정이 일종의 점유욕이며 그렇기에 정에 매여 피곤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물질을 닦아내기 위해 교직에 있으면서 20년 동안 스승을 찾고 도를 물었으며, 다행히 대법을 만나 사람의 마음을 직접 가리키니, 이때부터 대법만이 생명의 유일한 의지처임을 확신했다. 그러므로 남편이 떠났어도 나는 여전히 법공부, 법 암기, 연공, 발정념을 바짝 틀어쥐었고, 이 기회를 빌려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했다.
3년 반 전, 동아리 강좌 중에 남편이 병원으로 이송되어 응급 처치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즉시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부탁하여 강사에게 에포크타임스와 진상 자료가 들어있는 봉투를 전달하게 했다.
택시를 타서 기사에게 영업이 잘 되냐고 물었고, 대륙의 감염병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중공을 크게 욕하며 모두 에포크타임스를 본다고 말했다. 응급실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영안실로 옮겨졌다. 검시 의사가 떠나기 전 나는 에포크타임스를 나누어 주며 명함을 건넸다. 한밤중까지 바쁘게 일한 후 아들에게 혼자 돌아가겠다고 말하고, 남편의 배낭을 들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기사 역시 깨어있는 사람이었으며, 자신도 모두 인터넷으로 에포크타임스를 본다고 말했다
집에 돌아와 물건을 정리하고 동창에게 동문회 일을 맡아달라고 당부한 후, 밤새 상화하고 자비로운 장(場) 속에 둘러싸였다. 새벽 3시쯤 법을 한 단락 암기하고 잠시 쉬었다가 새벽 연공을 하고, 다시 법을 한 단락 암기한 뒤 지하철을 타고 남편의 대만대 연구실로 가서 공문서를 넘겼다.
학과장이 몹시 슬퍼하기에 나는 장 교수님은 소탈하게 떠나셨고 청복(清福)을 누리러 가셨다고 그를 위로했다. 그는 당신들이 수련하니 마음을 비울 수 있어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속속 찾아온 다른 교수들도 모두 같은 반응이었다. 위로 전화를 받을 때마다 나는 도리어 상대방을 위로했고, 그들 역시 당신은 수련을 해서 마음을 비웠다고 말했다. 5일 동안 정리를 마쳤을 때 자리의 새 주인이 마침 들어와 나의 매우 높은 효율성을 찬탄하며 물건을 집으로 실어다 주는 것을 도와주었다.
상조회사 직원이 방문했을 때 나는 대법의 신기함을 나누었다. 921 대지진 때 발원지 산꼭대기에 있던 우리의 차밭은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으며, 시아버지는 연공을 하시어 90세 가까운 연세에 평온하게 세상을 떠나셨고, 시신을 2주 동안 냉동한 후에도 여전히 부드러웠다. 장례를 위해 접촉한 장례업자들과 기사들은 거의 모두 에포크타임스 팬들이었고, 모두 인연이 있어 구원받은 중생들이었다.
동수의 배치에 감사드리며, 추모회가 신속하게 열렸고 조문객이 물밀듯 밀려왔다. 냐오쑹(茑松) 예술학교의 연주, NTD TV의 장 교수 인생 3부작, 그리고 나의 추모글은 대법의 소중함을 드러내어 많은 친구들에게 라인(LINE)으로 보냈더니 피드백이 아주 긍정적이었다. 얼마 후 기업 강좌에 참석하자 회원들은 나의 강인함을 칭찬했다. 동아리의 고위층은 친중 성향이었으나, 10여 년 동안 수업 중의 소통을 통해 무형의 격차를 해소했다. ‘관을 공략(攻關)’하려면 먼저 관계를 맺어야 마음의 장벽을 깨뜨리는 데 도움이 된다.
한 교수는 중국에 가서 회의에 참석한 후 사악한 당을 옹호하고 미제국주의를 욕하며 대법을 멋대로 논했으나, 내가 공유한 글을 보고는 이렇게 응답했다.
“장 교수님의 끊임없는 노력과 탁월한 학술적 공헌은 후학들의 영원한 모범입니다!”
평소 친중 성향으로 대만을 비판하던 몇몇 유학 시절 동창들도 장 교수님의 봉사를 인정했다. 어떤 사회 엘리트들은 진·선·인(真·善·忍)에 흥미를 가졌고, 심지어 직접 우리 집에 찾아와 파룬궁(法輪功)을 알아보기도 했다. 어떤 동수가 의사들의 단톡방에 내 글을 공유하자 몇몇 구성원의 태도가 현저히 바뀌었음을 발견했다.
사부님을 도와 사람을 구하는 것이야말로 대법제자가 해야 할 유일한 것이다! 정(情)의 얽매임을 닦아내고 기연을 움켜쥐고 더 많은 사람이 대법의 소중함을 알게 해야만 사부님의 자비하신 고도(苦度)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다.
2. 새벽 연공
재작년 11월 11일 대규모 교류에서, 한 동수가 션윈(神韵) 공연을 국립극장에서 성사시키기 위해 매일 먼 거리를 운전하여 음악당에 가서 연공하기로 결정했다는 말에 감동을 받았다. 다음 날부터 나는 극장 회랑으로 돌아가 새벽 연공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 연공장은 취소된 지 10여 년이 지난 곳이었다. 매일 캄캄한 새벽 3시에 집을 나서 3시 20분부터 홀로 2시간 반 동안 연공했고, 어쩌다 다른 동수가 합류하기도 했다.
새벽 연공을 오가는 길에 나는 진상 카드, 전단지를 나누어 주거나 심지어 공법을 가르쳤는데, 지금까지 22개월째다. 속인들은 날마다 꾸준히 견지하는 것은 정신적 표상이며, (연공) 음악이 사람을 안심시키는 것은 정해신침(定海神针) 같다고 말한다. 어떤 이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真善忍好)”를 읊조리고, 어떤 이는 캄캄한데 참 대담하다고 말하지만, 마음속으로 사부님께서 지켜보고 계심을 알고 있다.
수면은 관념임을 체회하고 나는 사람을 조종하는 수마(睡魔)를 극복하고자 극력 노력했다. 한밤중에 발정념을 하고 일을 마무리한 뒤 약 2시간을 자고 새벽 연공을 하러 갔다. 7시 30분 전에 집에 돌아와 뉴스 및 생활 정보를 수집하고 공유하는 데 약 2시간 반을 사용했다. 점심시간 발정념을 한 후 시간을 내어 쉬고, 외출할 일이 있으면 자지 않아도 괜찮았다. 장시간 컴퓨터를 사용하기 때문에 어쩌다 바르게 누워 등을 풀어줄 때면 더없이 행복함을 느꼈다.
새벽 연공을 나갈 때 가방을 집에 놓고 와 휴대전화, 방석, 연공 음악이 전혀 없었던 적이 있었으나, 사부님의 자비하신 가호 하에 제시간에 연공을 다 마칠 수 있었다. 즉시 음악당으로 가서 휴대전화를 빌리고 발정념에 참여했다. 와! 마치 천국에 있는 듯 모기에 물리지도 않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는데, 극장에서 새벽 연공을 하는 것은 마치 고대 관리가 서남쪽 풍토병 지역으로 유배되어 고통받는 것과 같았다.
대여섯 마리의 큰 모기가 얼굴에 꽂혀 떼를 지어 몰려왔을 때, 마음속으로 사악을 향해 외쳤다. “안심해라, 나는 내일 또 올 것이다!” 동시에 《논어(論語)》를 묵념하며 발정념을 일으켜 수동을 능동으로 바꾸었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자 그저 얼굴과 손이 따끔거릴 뿐 견디기 어렵지 않았다. 대륙 동수들이 겪는 혹형에 비하면 이런 고통이 뭐 대수겠는가.
캄캄할 때 문을 나서면서 바람이 많이 불면 기뻐하고 바람이 없으면 마음이 편치 않기도 했다(역주: 바람이 많이 불면 모기가 덜 문다고 생각했기 때문). 어느 날 바람이 없었는데 뜻밖에 모기도 없자, 마음속으로 ‘끝난 건가?’ 하고 생각했다. 다음 날 바람이 세게 불어 마음속으로 은근히 기뻐했으나 도리어 모기 떼의 공격을 받았다. 알고 보니 사부님께서 장계취계(將計就計)하시어 제자의 업을 없시는 동시에 제자가 세간의 이치로 가늠하는 것을 타파해 주신 것이다. 제자를 위한 사부님의 감당에 감사드리며, 제가 지은 업의 빚을 담담히 마주하고자 합니다!
3. 가부좌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우리 자리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확실히 아주 잘 수련했는데 당신들이 다리를 틀지 못하면 천상의 그 보살들이, 저 수련하는 사람 좀 보세요, 아직도 다리를 틀지 못하네 하고 입을 가리고 웃는다.” (《스위스법회설법》)
5·13 기념회 후 228 공원을 나오다가 구걸하는 노인을 만나 잠시 망설이다가 동전 하나를 주었다. 그는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따라 외우더니 금방 기억했다. 그는 “자면서 외워도 됩니까?”라고 물었다. 내가 파룬궁을 언급하자 그는 가부좌하는 것이 참 대단하다며 얼마 동안 해야 저리지 않냐고 물었다. 나는 개인 상황에 따라 다르며 먼저 우주의 이치를 알아야 한다고 말하니 그의 눈이 빛났다.
그에게 《전법륜》 한 권을 주자 그는 “집에서 봐도 됩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정갈하고 성의가 있으면 된다고 했고, 그는 연이어 날마다 보겠다고 했다. 그는 한 번 다 보고 나면 또 이어서 보겠다고 했다. 그에게 나중에 또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을 보면 어디서 공법을 가르치는지 물어보라고 일러주었다. 그는 반드시 누군가 연결해 줄 것이라며, 자신은 여기가 처음인데 참으로 인연이 있다고 말했다. 가방 속에 있던 복숭아 모양의 떡(壽桃)을 꺼내 주자 그는 “당신은요?” 하고 물으며 “사부님은 어디에 계십니까?”라고 물었다.
어느 날 연못가에서 류(柳) 언니가 나를 불러 앉아보라고 하기에, 나는 즉시 신발을 벗고 긴 의자 위에 결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그녀와 동반자는 약속이라도 한 듯 감탄하며 “대사님!” 하고 소리쳤다. 나는 급히 “(나는) 대사님이 아닙니다. 파룬궁을 연마하면 조만간 다 결가부좌를 틀 수 있습니다. 5천 명이 배자할 때 모두 결가부좌를 하고 앉잖아요?”라고 말했다.
뤼(吕) 언니는 80세가 넘어 수술과 항암 치료의 고통을 겪고 있었는데 기꺼이 공법을 배우는 데 동의했고, 배운 지 한 시간도 안 되어 다음 날 기뻐하며 아프지 않다고 말했다. 이후 그녀는 부지런히 반년 동안 배우고 연마했으며, 겨울에는 집에서 연마하고 봄에 다시 나타나 매일 집에서 한 시간씩 연공한다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반드시 법공부를 해야 하며 늘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라고 여러 번 당부했다.
며칠 연속 가부좌를 할 때 위쪽 다리가 자꾸 내려간 적이 있었는데, 안으로 찾아 보니 칭찬을 듣고 환희심(歡喜心)이 생겼음을 발견했다. 그러자 곧바로 가부좌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며칠 후 발을 붙잡아도 마찬가지로 미끄러지졌고 머릿속에 ‘교활(狡猾)’이라는 두 글자가 떠올랐다. 예컨대 부주의해서 일을 그르쳤으면서도 바빠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한다면,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째서 잘 원용(圓容)할 수 있겠는가? 이 교활한 생각을 붙잡고 나자 가부좌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수련은 매우 엄숙한 것이며, 시시각각 자신의 일사일념(一思一念)을 관조해야 한다.
4. 빈뇨
어느 날 오후, 끊임없이 화장실로 달려가 소변을 보아야 했고 통증이 있었다. 다행히 밖에 나가지 않아도 되었기에 전념하여 법을 5강 공부하니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외출해서 새벽 연공을 할 때 빈뇨에 대한 일을 잊고 있었는데, 연공을 마치자 갑자기 오줌이 마려워 즉시 화장실로 달려갔다.
다음 날 새벽 연공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심각한 빈뇨로 인해 외출하지 못했다. 내일 밖에 나가서 활동이 있다는 생각에 물을 적게 마셨고, 저녁에 약국으로 달려가 비상용으로 성인 기저귀를 샀다. 다음 날 아침 정상적으로 연공을 하고 오후에 퍼레이드에 참가했는데, 자비로운 에너지의 가호하여 별 탈이 없었다. 그 후 다른 지역에서 교류 및 동아리 활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성대한 국제 포럼을 앞두고 또다시 상태가 이상함을 느꼈으나 다행히 정념을 확고히 해서 나를 초대한 라인 친구와 만났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널리 선연(善緣)을 맺었다. 이때부터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고 외지 등산 모임에도 참가했다.
거의 3주 동안의 반복 되는 빈뇨에도 병이라는 개념은 없었으며, 성인 기저귀는 비상용일 뿐 쓰지 않았다. 어쩌면 ‘누설(漏)’의 형식으로 대법을 확고히 믿는지 고험한 것일지 모른다.
5. 수련을 처음처럼(修煉如初)
올해 국제 로타리클럽 연례회의기간 활동이 빈번했던 데다 영화 《초한전》 특별 상영회 홍보까지 더해져 어느 날은 피곤해서 거의 기진맥진할 지경이었으나, 로타리클럽 만찬에 많은 국제 인사들이 참석한다는 것을 알고 기운을 내어 나갔다.
같은 테이블에 필리핀 방문객 두 명이 있어 명함을 교환한 후 ‘깐징월드’ 인터넷 플랫폼을 공유했다. 옆 테이블의 호주 선배 회원과 인사를 나눈 후 캥거루 모양의 브로치를 선물 받았고, 동시에 깐징월드를 공유했다. 전(前) 회장이 마침 지나가다 엄지를 치켜세우며 내가 녹슬지 않고 추진력이 넘친다고 칭찬했다. 사실 그날 각 테이블과 적극적으로 소통하지 못해 깊은 아쉬움이 남았다.
만찬 중에 호주의 소박한 시골 춤 외에는 온통 시끄럽고 불경스러운 현대무용과 노래방 기계뿐이었다. 나는 과거처럼 포기하지 않고 테이블마다 돌아다니며 사람을 구하지 않고 일찍 자리를 떠났다. 수련을 처음처럼 하지 못하고 발걸음을 다그쳐 사람을 구하지 못했으니 참으로 사부님께 죄송했다. 지하철에 오르니 깊은 허탈감이 밀려왔다.
6. 맺음말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중생 구도는 당신들 현재 생활의 모든 일 중에 관통되어 있다.” (《각지 설법 4》〈2003년 애틀랜타법회 설법〉)
매일 새벽 연공 후 나는 일부러 연못가에 30분 동안 머물며 생태를 관찰하고 지식을 넓히며 인연이 있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적절하게 작은 카드와 션윈 팜플렛을 나누어 주며 글쓰기 소재를 수집한다. 대법제자가 천담을 무릅쓰고 세상에 내려온 것은 바로 사부님을 도와 사람을 구하기 위함이니 우리에게 마음만 있다면 사부님께서 모두 안배해 주실 것이다. 우리가 생활 속에서 만나는 일은 결코 우연이 아니니 반드시 기회를 잡아 사람을 구해야 한다.
사부님의 자비하신 고도에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점은 동수 여러분께서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허스
(2026년 대만 파룬따파 수련심득교류회 원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