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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북송 예언《매화시(梅花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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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사:
장강(長江)변에 서서 동쪽으로 도도히 흘러가는 강물을 보노라면 한번 지나간 것은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다. 2500년 전에 공자는 “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을 쉬지 않음이여.[逝者如斯夫! 不捨晝夜](『논어』「선진」)”라고 탄식했다. 소동파(蘇東坡)는 장강의 물결을 마주하고 “거대한 강 동으로 흘러 물결로 모조리 쓸어낼 듯 역사를 주름잡는 영웅들.[大江東去,浪淘盡,千古風流人物](소동파의 『염노교(念奴嬌)』중에서)라고 읊었다. 이 장강은 무정한 듯이 몇백 년, 몇천 년을 아무런 망설임 없이 앞으로 흘러왔다. 그러나 인류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장강은 얼마나 많은 충신과 간신, 선인과 악인, 애정과 증오, 얼마나 많은 희로애락, 이합집산과 냉랭한 세태를 보았던가. 초나라와 한(漢)나라가 패권을 다투던 때부터 삼국연의(三國演義)가 뒤를 잇고 당 태종의 정관(貞觀)의 치, 당 현종과 양귀비, 악비(岳飛)의 정충보국(精忠報國)과 진회(秦會)의 음험하고 악독함, 칭기스칸의 천하 정복에 이어 대명(大明)황제의 영락대전, 청나라의 강희제(康熙帝), 아편전쟁, 천안문 6.4 탄압에서 지금의 파룬궁 탄압에 이르기까지….

응축된 시공 속에서 바라본다면 역사란 쉼 없이 공연되는 한바탕 대형 사극으로 하늘을 막으로 땅을 무대로 한다. 그러나 연극중의 인물은 아무리 뛰어난 영웅이라 할지라도 모두 이 홍진(紅塵) 속에서 부침한다. 누가 진정으로 자신의 운명을 주재할 수 있겠는가?

제갈량의 뛰어난 재주와 나라를 위해 전심전력을 다했음에도 끝내 한나라 황실을 재건하려는 웅대한 포부는 끝내 물거품이 되었다. 악비의 웅대한 지략으로도 간신의 모함에 빠져 비참한 상처만 남긴 채 바람처럼 사라졌다. 역사라는 이 거대한 조류에서 도대체 누가 부침을 주관하며, 이 거대한 역사에는 도대체 주제와 극본이 존재하는가?

그러나 이 끝없는 속세의 시끄럽고 번잡한 속에도 한 곡조 초연하고 맑은 소리가 울려 퍼진다. 깨끗하면서도 확고한 세속을 초탈한 맑은 소리는 시시각각 세인들을 일깨우고 있다. 망망한 천수(天數)는 일찍이 운명이 정해져있으니 세도(世道)의 흥망성쇠는 자유롭지 못하다고. 그것은 바로 천고에 유전되어 온 예언이다. 북송(北宋)시대 소옹(邵雍)의 『매화시(梅花詩)』는 바로 이런 청곡(淸曲)에 해당한다. 이 시는 천 년 전에 수많은 중생들에게 미혹을 벗어날 나루터를 알려주었고 역사의 주제곡을 분명히 말해준다. 그럼 우리 한번 마음을 가다듬고 매화시를 음미해보도록 하자.

매화시를 알아보기 전에 우선 이 시의 작자인 소옹이란 인물에 대해 알아보자. 소옹(邵雍)의 자(字)는 요부(堯夫) 시호는 강절(康節)이며, 북송시대 진종(眞宗) 4년 1011년에 태어나 신종(神宗) 10년인 1077년까지 67년을 살았다. 원래는 하북(河北) 범양(范陽)에서 태어나 부친을 따라 공성(共城)으로 이주했고 만년에는 낙양(洛陽)에 은거했다. 소옹은 비록 삼국시대의 제갈공명처럼 누구나 아는 유명한 인물은 아니지만 그의 재주나 인품으로 볼 때 제갈량에 뒤지지 않는다. 단지 장기간 은거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이 후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송나라 이학(理學) 대가 중 한 명인 정호(程顥)는 소옹의 학문에 대해 “요부(堯夫)야말로 내성외왕(內聖外王)의 학문이다!”라고 찬탄했다.

소옹은 소년시절 큰 뜻을 품고 독서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읽지 않은 책이 없었다. 『송사(宋史)․소옹(邵雍傳)』에 의하면 “소옹은 처음에 공부에 입문하여 아주 근면했으며 겨울에는 불을 때지 않았고 여름에는 부채를 부치지 않았으며 수년동안 밤에 잠자리에도 들지 않았다.”라고 한다. 나중에 식견을 넓히기 위해 사방을 두루 돌아 다녔는데 황하를 지나 분수(汾水)를 지나고 회수(淮水)를 건너고 한수(漢水)를 지나 제(齊), 노(魯), 송(宋), 정(鄭) 등 각지를 다녔다. 집에 돌아온 후 “도(道)는 여기에 있구나.” 하면서 다시는 행각하지 않았다. 당시 이정지(李挺之)라는 고인(高人)이 있었는데 그가 학문에 정진하며 게으르지 않은 것을 보고 그에게 “하도(河圖)”, “낙서(洛書)”, “복희팔괘(伏羲八卦)” 등 역학(易學)의 비오(秘奧)를 전수해주었다.

과연 소옹은 이광지의 모든 학문을 관통하여 스스로 터득하고 마침내 역학대사가 되어 일세를 풍미하였으며.. 소옹은 자신만의 독특한 우주관을 정비하여 천지간의 모든 변화, 음양소장의 규칙을 손바닥 보듯이 정립하였다. 소옹은 총명하고 재질이 뛰어나 융회관통(融會貫通)시키고 스스로 오묘한 깨달음이 있어 마침내 일대 역학대사(易學大師)이자 일세를 풍미하는 큰 선비가 되었다.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우주관을 만들어 천지의 운행과 음양소장(陰陽消長)의 법칙에 대해 분명하게 파악했다. 『송사(宋史)』에 의하면 그는 “멀리로는 고금 세상의 변화 미세하게는 주비초목(走飛草木 역주: 각기 기어다니는 짐승, 날아다니는 새, 풀, 나무를 말한다)의 성정(性情)”에 대해 모두 깊은 이해가 있었고 통달하여 미혹이 없었으며 아울러 “지혜와 사려가 특출했고 일이 닥치기 전에 미리 알 수 있었다.” 북송 이학의 또 하나의 시조인 정이(程頤)는 “그 마음이 허명하여 스스로 알 수 있었다(其心虛明,自能知之).”라고 말했다.

이에 소옹은 『황극경세(皇極經世)』, 『관물내외편(觀物內外篇)』등 10여 만자를 저술했다. 그는 역사란 정해진 수(定數)에 따라 演化되는 것으로 여겼다. 자신의 선천역수(先天易數)로, 원(元), 회(會), 운(運), 세(世) 등 개념을 이용해 천지의 연화와 역사의 순환을 추산했다. 후세 역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철판신수(鐵板神數)』『매화심역(梅花心易)』등이 모두 그가 저술한 것이다. 후인들은 그를 일러 “소자(邵子)”라고 칭했다.

중년에 접어든 후 그는 명리(名利)를 담담히 여기고 낙양에 은거하여 책을 저술하고 후학들을 가르쳤다. 당시의 유명한 학자들 가령 부필(富弼), 사마광(司馬光), 여공저(呂公著) 등이 모두 그를 아주 존중했다. 그들은 일찍이 자금을 모아 소옹에게 정원이 딸린 주택을 한 채 사주었는데 이름을 “안락와(安樂窩)”라 했다. 소옹도 자신을 “안락선생(安樂先生)”이라 칭했다. 그는 단지 고금에 두루 관통하고 기재(奇才)가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인품 또한 후덕하고 다른 사람을 지극한 정성으로 대했다. 이리하여 그의 이름이 인근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그가 가는 곳마다 사대부(士大夫)들이 앞을 다투어 그를 모시고 싶어했다. 어떤 사람은 소옹이 머물던 곳을 “행와(行窩)”라고 일컫기도 했다. 그러니 당시 사람들의 마음속에 소옹의 위망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오늘날 소옹과 그의 작품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지라도 그가 말한 싯구절(詩句)이 민간에 유행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일 년의 때는 봄에 있고, 하루의 때는 아침에 있으며 일생의 때는 근면함에 있다(一年之際 際在於春,一天之際在於晨,一生之際在於勤).” 라는 말인데 바로 소옹이 한 말이다. 선견지명의 기재인 소옹은 후세 역사발전에 대해 놀랄만큼 정확한 예언서를 저술했는데 그것이 바로 “매화시”이다. 이것은 그가 사망한 후 중국에서 발생할 중대한 역사적 변화들을 예언한 책이다. 물론, 다른 예언서와 마찬가지로 대단히 은유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그 뜻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또 어떤 부분은 도학(道學)과 불리(佛理)를 이해하는 수련인(修煉人)이 아니면 쉽게 알 수 없는 것도 있다. 이 시는 전부 10개의 단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럼 지금부터 매화시를 함께 보도록 하자.

제1절

蕩蕩天門萬古開, 幾人歸去幾人來。
탕탕천문만고개, 기인귀거기인래

山河雖好非完璧, 不信黃金是禍胎。
산하수호비완벽, 불신황금시화태

 

“탕탕한 천문이 만고에 열리니 몇 사람이 돌아가고 몇 사람이 왔는가(蕩蕩天門萬古開,幾人歸去幾人來)”라는 이 구절에서 글자 뜻만 본다면 “탕탕한 통천문(通天門 하늘과 통하는 문)이 만고 이래 모두 활짝 열렸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인간 세상에 왔고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되돌아갈 수 있겠는가?”

그러나 구체적으로 이 두 구절이 가리키는 것은 무엇인가? 이 자리에서 단번에 뜻을 분명히 파악하기란 쉽지 않으니 시 전체를 음미한 후에야 진상(眞相)이 크게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이 첫 번째 구절에서 우리는 소옹의 재주가 비범하고 그가 세운 뜻이 대단히 높음을 알 수 있다. 그가 단지 사람들에게 미래에 발생할 사건을 알려주기 보다는 오히려 이 혼란한 역사의 최종 주제를 우리에게 알려주려고 했음을 알 수 있다.

송조(宋朝) 중국 역사상 조정이 연약하고 무능했다. 송 태조(太祖) 조광윤이 “술자리에서 병권을 박탈[杯酒釋兵權 역주: 송나라를 개창한 태조 조광윤은 후주(後周) 정권에서 절도사로 있다가 960년 진교에서 반란을 일으켜 스스로 제위에 올랐다. 그러나 무력에 의지한 창업에는 창업에 큰 공을 세운 장수들에 대한 뒤처리가 항상 고민되는 법이다. 이에 조광윤은 무장들을 자주 궁에 불러 주연을 베풀며 넌지시 병권을 내려놓고 은퇴할 것을 권했다. 대신 높은 관직과 후한 봉록을 조건으로 내걸자 그들은 모두 병을 핑계로 군대의 요직을 내놓았다. 역사에서는 이를 “배주석병권”(杯酒釋兵權)이라 하는데 곧 술잔으로 병권을 내놓게 한 것이다. 이리하여 조광윤은 암담하고 살벌했던 시대 분위기를 일소하고 태평성대의 문치주의를 확립할 수 있었다.]”하여 공신들을 제거한 후 송조는 줄곧 장수를 신뢰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나치게 병권을 억제하여 “병사들에겐 늘 함께하는 장수가 없었고 장수에겐 늘 함께하는 군대가 없었다(兵無常帥,帥無常師 역주: 군대의 반란을 우려한 송나라 조정에서 장수들에게 한시적인 지휘권만 인정하고 상시적인 지휘권을 박탈했다는 의미. 이런 강력한 군부 억제정책은 결국 국방의 약화를 초래한다).”

송나라는 처음부터 군사력이 약했으며 건국 이후 북방의 호인(胡人) 정권에 대해 자신을 신하로 칭하며 공물을 바쳤다. 북방의 영토인 “연운16주(燕雲十六州)”는 늘 다른 민족의 점령을 받았다. 때문에 “산하수호비완벽(山河雖好非完璧 산하는 비록 좋으나 완벽하진 않다)”이라 한 것이다. 본래 북방에 있던 금(金)나라의 여진족(女眞族)은 원래 약소한 민족이었으나, 점차 강성해지자 북송과 연합해 이미 쇠퇴해 가던 요(遙)나라를 타도하려 했다. 어리석은 송 휘종(徽宗)은 충신들의 권고를 듣지 않고 독단적으로 금나라와 연맹을 맺고 요나라에 보낼 공물을 금나라로 조공하는 것에 동의했다. 수도를 “황(黃)”룡부(龍府)에 대”금(金)”국이야말로 송나라의 진정한 재앙임을 믿지 않았다. 결국 송 휘종은 중국 역사상 보기 드문 “정강의 치욕(靖康之恥)”을 당해 황제, 비빈, 친왕, 조정 대신 등 3천여 명이 모두 금나라로 끌려가 노예가 되었다. 이리하여 강산의 절반이 금나라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된다. 이것이 바로 “불신황금시화태(不信黃金是禍胎)”의 의미이다. 즉, “不信黃金是禍胎”란 금나라가 북송을 멸망시키고 여러 차례 남송을 침범한 역사를 가리킨다.

제2절

湖山一夢事全非, 再見雲龍向北飛
호산일몽사전비 재견운룡향북비

三百年來終一日, 長天碧水歎彌彌
삼백년래종일일 장천벽수탄미미

 

남송(南宋)에 들어 황제는 더욱 용렬하고 무능해져 구차하게 반쪽짜리 강산에 만족하고 하루 종일 노래와 춤에 빠져들었다. 아울러 백성들의 전반적인 풍속도 퇴락해 위에서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모두 술과 색정, 가무에 빠져 나라를 강하게 분발시킬 생각이 없었다. 만 수에 달하는 송사(宋詞)는 대개 문인과 소요하는 객들의 애상적인 정을 읊었고 높이 떨쳐 일어난 것은 아주 드물다. 남송은 임안[臨安 지금의 항주(杭州)]에 도읍을 정했는데 임안은 서호(西湖) 가장자리에 위치해 산과 호수를 낀 곳이다. 여기에 남송황제는 종일 음란하고 술에 취해 있었으니 “호수와 산의 일몽 일은 전부 틀어지고(湖山一夢事全非)”라고 한 것이다. “운룡이 북쪽으로 날아감을 다시 본다(再見雲龍向北飛)”는 것은 천상의 기수(氣數 운수)가 북방에 있음을 가리킨다. 북쪽에 진짜 천자가 내려와 새로운 조대가 북방에서 생긴다는 의미이다.

남송 왕조가 취몽(醉夢)에 빠져 있을 때 북방에서는 칭기스 칸이 일어나 몽골을 통일하고 신속하게 자신의 판도를 확장시켰다. 금나라를 멸망시킨 후 대거 남송을 침략한다. “삼백년이 하루에 끝나니(三百年來終一日)”는 300년을 넘게 이어진 송나라 왕조(960~1279)가 끝내 멸망함을 말한다. 1276년 원나라 병사들이 임안을 침입해 송 공제(恭帝)가 포로가 되었다. “장천의 푸른 물 오래오래 탄식한다(長天碧水歎彌彌)”는 말은 송나라가 최후에 멸망할 때 연출된 최후의 비장한 장면을 가리킨다. 즉, 1279년 송군의 잔여부대가 전투에 패배한 후 막다른 골목에 몰리자 포로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아 대신 육수부(陸秀夫)가 9살 난 어린 황제를 업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대장 장세걸(張世傑)은 양태비(楊太妃)를 모시고 탈출하려 했으나 결국 갑자기 몰아닥친 폭풍에 휘말려 배와 함께 침몰했다.

제3절

天地相乘數一原, 忽逢甲子又興元
천지상승수일원 홀봉갑자우흥원

年華二八乾坤改, 看盡殘花總不言
연화이팔건곤개 간진잔화총불언

 

“천지상승수일원(天地相乘數一原)”이란 천간과 지지가 서로 승(乘)하는 연대가 또 시초로 돌아가니 바로 새로운 조대의 운이 도래했다는 말이다. “홀봉갑자우흥원(忽逢甲子又興元)”에서 홀(忽)은 원세조 쿠빌라이(忽必烈 홀필렬)을 암시하고 “흥원(興元)”이란 원나라의 흥기를 말한다. 쿠빌라이는 1260년 대칸에 즉위한 후 1264년(갑자년)에 원나라를 창립하고 연호를 지원(至元) 원년으로 삼았다. 나중에 연경(燕京 지금의 북경)으로 도읍을 옮겼다. 1271년 쿠빌라이는 류병충(劉秉忠)의 건의를 받아들여 역경에 나오는 건원(乾元)의 의미를 따서 국호를 대원(大元)이라 칭하고 중국을 통치했다. 원나라는 원세조 쿠빌라이의 웅대한 지략으로 발전할 수 있었지만 세조가 사망한 후에는 곧 극심한 권력투쟁의 혼란에 빠졌다. 원 세조부터 원 순제(順帝)까지 10명의 황제를 거치며 짧은 번영은 사라자기고 멸망으로 접어든다. 원나라는 1279년 송나라가 최후 멸망한 때부터 추산하면 1368년까지 약 88년 만에 멸망했다. “연화이팔건곤개(年華二八乾坤改)”란 바로 이것을 가리킨다. “간진잔화총불언(看盡殘花總不言)”이란 원 순제때 환관인 박불화(撲不花)가 원나라에 저항하는 군대가 일어나는 등의 불리한 일을 황제에게 말하지 않은 것을 말한다. 이것이 바로 “잔화(殘花)”가 “총불언(總不言)”한 것이다.

제4절

畢竟英雄起布衣, 朱門不是舊黃畿
필경영웅기포의 주문불시구황기

飛來燕子尋常事,開到李花春已非
비래연자심상사 개도이화춘이비

 

명 태조(太祖) 주원장(朱元璋)은 출신이 빈천하여 거친 베옷을 입었으며 수년간 승려로 지내다 나중에 농민들이 기의(起義)한 홍건군(紅巾軍)에 가담했다. 용감하고 전투에능해 영웅본색(英雄本色)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일개 사병에서 지도자로 승진하니 1368년 남경(南京)에서 황제를 칭했다. “주문(朱門)”은 더 이상 옛날의 황토농가가 아니기 때문에 “필경영웅기포의(畢竟英雄起布衣),주문불시구황기(朱門不是舊黃畿)”라고 한 것은 바로 이 시기 역사를 묘사한 구절이다. “비래연자심상사(飛來燕子尋常事)”는 연경에 거주하던 주원장의 넷째 아들 주체(朱棣)가 제위를 탈취한 역사를 말한 것이다. 명 태조 주원장은 태자가 일찍 죽자 황위를 황태손에게 넘겨주었으니 그가 바로 명 혜제(惠帝)이다. 당시 주원장은 10명의 황자들을 번왕(藩王)에 봉해 변방을 지키게 했는데, 그 중 연경에 있던 연왕(燕王) 주체는 병법에 능하고 수차례 공을 세워 실력이 가장 강했고 그 위망이 아주 높았다. 반면, 서생 기질이 다분했던 혜제는 모사들의 건의 하에 번을 줄일 생각으로 연왕 등 번왕의 지위를 파면했다. 연왕이 비록 나병환자로 위장하기도 하여 위기를 모면하려 했으나 결국 어쩔 수 없이 건문(建文) 원년에 군사를 일으켜 저항하니 이것이 바로 “정난지역(靖難之役)”이다.

연왕은 재주와 덕이 출중하고 지혜와 용기가 뛰어나 결국 4년 후 남경을 공략해 제위를 빼앗고 명 태종(太宗)이 되었다. 후일 다시 명 성조(成祖)라 칭하고 연호를 영락(永樂)이라 했다. 연왕이 천하를 얻은 것을 자세히 살펴보면 분명 “심상한 일(尋常事)”이요 이는 또 당 태종 이세민의 “현무문(玄武門)의 변(變)”을 연상케 한다. 명조(明朝)는 성조 주체의 통치하에 전성기를 누렸으나, 명조 말년의 쇠퇴와 더불어 다년간 농민 봉기가 일어나 결국 대명 왕조의 끝을 맞게 되니 이것이 바로 “개도이화춘이비(開到李花春已非)”이다. “이화(李花)”란 즉 명조 말 농민 반란을 주도한 틈왕(闖王) 이자성(李自成)을 가리킨다. 이자성은 1644년 봄 군대를 이끌고 북경을 점거했다. 숭정(崇禎) 황제는 자금성 뒤에 있는 경산(景山)에서 목을 매 자진했고 이로써 명나라가 멸망했으니 바로 “춘이비(春已非)”이다.

제5절

胡兒騎馬走長安,開闢中原海境寬
호아기마주장안 개벽중원해경관

洪水乍平洪水起,清光宜向漢中看
홍수사평홍수기 청광의향한중간

해설: “호아기만주장안(胡兒騎馬走長安)”:중국 역사에서는 “복호남만(北胡南蠻)”이란 말이 있다. 이런 문맥에서 보자면 “胡兒騎馬走長安”은 바로 동북 지방에 있던 만주족의 청나라가 중원으로 들어옴을 말한다. 명조 말 사회가 어지러운 시기에 이자성이 천하를 탈취한 후 아직 안정되지 못한 상태에 산해관(山海關)을 지키던 명나라 장군 오삼계(吳三桂)가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만주족에 투항해 청병을 끌어 들였다. 당시 청나라는 정예부대로 관에 진입한 후 파죽지세로 중국을 통일하고 1644년 북경에 수도를 세워 대청 제국을 일으켰다. “주장안(走長安)”에서 장안이란 원래 당나라의 수도이지만 여기서는 중국을 의미한다. 청나라 전기는 국세가 크게 흥하여 문치(文治)와 무공(武功)이 성행해 100여년 간 강건성세(康乾盛世)를 누렸다. 특히 후인들이 천고일제(千古一帝)라 칭하는 강희황제는 내란과 외침을 평정하고 중국의 판도를 크게 넓혔다. 또한 처음부터 대외적으로 대규모 통상을 하여 항구를 개방하니 소위 “해경관(海境寬)”이 이것이다.

“홍수사평홍수기(洪水乍平洪水起)”에서 첫 번째 洪水는 1851년 홍수전(洪秀全)이 이끈 태평천국(太平天國)을 가리키는데 마치 홍수가 중국대륙을 범람한 것을 상징한다. 태평천국은 13년 동안 청조의 통치를 심각하게 흔들어 놓았다. 태평천국의 난이 평정된 후(“乍平”) 청나라는 끊임없는 내우외환에 시달렸고 혁명세력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결국 1911년 무창(武昌) 기의가 성공하여 여원홍(黎元洪)이 중화민국(中華民國) 군정부(軍政府) 도독(都督)으로 추대되고 원세개(袁世凱) 사후 총통이 되니 청나라는 철저히 멸망한 것이다. 여원홍(黎元洪)의 이름 역시 홍(洪)이니 “洪水乍平洪水起”이다. “淸光宜向漢中看”이란 청조 최후의 전경(“淸光”)은 마땅히 “漢中(무창을 가리킴)”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니 중화민국 혁명기의에 성공한 “무한(武漢)”을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제6절

漢天一白漢江秋, 憔悴黃花總帶愁
한천일백한강추 초췌황화총대수

吉曜半升箕斗隱, 金烏起滅海山頭
길요반승기투은 금오기멸해산두

“한천일백한강추(漢天一白漢江秋)” 만주족이 약 삼백년간 중국을 통치한 것을 겪었으니 “한천(漢天)”에 또한 새로운 희망(一白)이 있음을 말한다. 즉 “일백(一白)”이란 새로운 희망을 암시하는 말이다. “한강추(漢江秋)”는 즉 1911년 가을, 10월 10일 무창 기의의 성공으로 중화민국이 성립되어 중국이 참신한 시대로 진입함을 가리킨다. 즉 1911년 가을 중국이 무한에서 새롭게 탄생한 것이다.

“초췌황화총대수(憔悴黃花總帶愁)”는 민국 혁명이 비록 성공은 하였으나 그 뿌리가 아직 불안정하여 마치 초췌한 황화(黃花)로 비유 되었다. 전통적으로 누런 꽃(黃花)은 연약한 생령(生靈)을 비유한다. 민국이 건립된 후 원세개(袁世凱)의 왕정복고와, 장훈(張勛)의 복벽(復辟) 운동, 이어서 장기간 군벌의 혼전이 있었으니 당시 국민정부는 한마디로 초췌한 황화 시름이 끊이지 않았으니 이른바 늘 시름에 잠겼다(總帶愁)는 것이다.

“길요반승기투은(吉曜半升箕鬥隱)”이란 “길요(吉曜)”는 중화민국의 국기인 청천백일(青天白日)기를 비유한 것이며, “반승(半升)”이란 국민당 초기에 장기간 봉건통치를 거쳐 이민족의 약탈과 군벌전쟁으로 시달리던 중국이 백가지 폐단을 없애고 다시 부흥함을 암시하는 것이다. 장개석(蔣介石)이 북벌전쟁에 성공하고 국가가 발전 중에 있을때 국민당 정권은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했다. 한편 공산당 세력 역시 은연중에 신속하게 발전하고 있었다. “기두(箕斗)”란 중국 고대 점성학에서 말하는 28수에 해당하는 별자리로 여기서는 별을 가리키는데 공산당 세력을 말한다. “기두은(箕斗隱)”이란 공산당이 내우외환의 기회를 틈타 그 세력을 빠른 속도로 발전시킨 역사적 사실을 말한다. “금오기멸해산두(金烏起滅海山頭)”의 “금오(金烏)”는 고대에 태양의 별칭으로 자칭 “태양의 나라”라고 하는 일본을 말한다. 즉, 일본이 이차 대전을 치르고 다시 흥기하여 중국에 침입하지만 결국 패전하여 투항하는 역사적인 운명을 예시한다.

제7절

雲霧蒼茫各一天, 可憐西北起烽煙
운무창망각일천 가련서북기봉연

東來暴客西來盜, 還有胡兒在眼前
동래폭객서래도 환유호아재안전

국공 내전을 거친 후 중국대륙과 대만에 각자 대립하는 국면을 맞이하니 소위 “운무창망각일천(雲霧蒼茫各一天)”으로 공산당과 국민당이 각자의 천지를 통치하는 것을 말한다. 이하의 세 구절은 공산당 통치하에서 대륙의 불안정한 국면을 가리키는 것으로, “가련서북기봉연(可憐西北起烽煙)”은 신강(新疆) 반란과 티베트 독립운동을 평정한 것을 말한다. “동래폭객서래도(東來暴客西來盜)”란 50년대 초 중국과 미국이 중국 동방에 위치한 한국에서 전쟁이 발생한 것과 그후 60년대 초 서쪽의 인도가 국경선을 넘어 중국영토를 침범하여 발생한 중국과 인도의 전쟁을 가리킨다. 한편 북방에서는 소련이 50년대부터 중공과 반목하여 중국을 위협해왔고 쌍방간에 진보도(珍寶島) 전투가 폭발하여 수십 년 간 대치한 상황을 말한다. 이것이 바로 “환유호아재안전(還有胡兒在眼前)”인데 胡란 북쪽 오랑캐를 지칭하는 전통적인 용어법에 따르면 “胡兒”는 소련이 확실하다.

제8절

如棋世事局初殘,共濟和衷卻大難
여기세사국초잔 공제화충각대난

豹死猶留皮一襲,最佳秋色在長安.
표사유류피일습 최가추색재장안

“여기세사국초잔(如棋世事局初殘),공제화충각대난(共濟和衷却大難)”이란 말의 대체적인 의미는 세계적인 정세가 마치 바둑판과 같음을 말한다. 여기서는 냉전시기에 공산국제연맹과 서방 자유민주주의 체제간의 대치를 상징한다. 90년대 이후 공산국가들이 분분히 무너졌다. 이것을 공산주의 측에서 보면 이미 패색이 짙은 바둑판의 형상이다. 공산국가의 연맹이 철저히 해체되고 절대 다수의 국가가 공산제도를 포기했으니 이것이 바로 “공제화충(共濟和衷 서로 돕고 뜻을 합한다)”이 도리어 하나의 큰 겁난이라는 것이다. “표사유류피일습(豹死猶留皮一襲 표범이 죽어 가죽 한 장 남긴다)”에서 표(豹)는 구 소련을 가리키는데 구 소련의 판도가 마치 한 마리 표범이 달리는 것 같다.

표범이 사망(豹死)한 후 즉 소련체제가 붕괴된 후 공산당 체제는 실질적으로 해체되었지만 단지 형식적으로 중국 집권자에게 계승되어 마치 표범이 죽은 후 가죽만 남는 모습과 같다. 이때 중국에는 이미 공산당을 믿는 자가 없으며 공산당 집권자를 포함하여, 그들 역시 공산주의란 형식을 이용해 자신의 통치를 유지할 뿐이다. “최가추색재장안(最佳秋色在長安)”이란 바로 중공 집권자가 자신의 정권형식에 합법성을 부여하기 위해 외관상 아주 좋은 형세인 것처럼 꾸미는 것을 말한다. 즉 불과 10여년이란 짧은 기간에 수천억불을 해외에 투자하고 대량의 재력을 모아 대대적인 토목공사를 일으켜 수도와 각 대도시를 장식한 것이다. “장안(長安)”은 중국의 수도로 즉 중국을 가리킨다. 그러나 추색(秋色)이 아무리 좋아도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다.

제9절

火龍蟄起燕門秋,原璧應難趙氏收
화룡칩기연문추 원벽응난조씨수

一院奇花春有主,連宵風雨不須愁
일원기화춘유주 연소풍우불수수

“火龍蠶起燕門秋” 화룡이 칩복하니 연문은 가을이요,
解 : 중공악당(中共惡黨)은 천상의 가장 낮은 공간에서는 붉은 색의 악룡(惡龍)을 표현형식으로 하였다. 이 한 구절은 “6·4″때 학생과 민중들이 천안문에서 청원한 후 도살당한 사건을 은유하고 있다.

“原壁應難趙氏收” 원벽이 난을 당하니 조씨가 물러난다.
解 : 원벽(原壁)은 무릇 오천 년 역사의 중국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 하나의 난(難)을 당한 것이다. 자오쯔양(趙紫陽)은 이로 인해 탄압을 받았다.

“一院奇花春有主” 뜰 안의 기묘한 꽃 봄은 주인 있으니,
解 : 1999년 7월 20일 이전에 중국대륙에서는 도처에 法輪大法 제자였다. 전국에 널리 퍼져 있으면서 모두 法輪功(파룬궁) 뱃지를 달고 있어서, 도처에서 大法 法輪(파룬) 도형을 볼 수 있었던바 모습이 마치 기묘한 꽃과 같다. “봄은 주인 있다”라는 것은 어떤 해(某年)의 봄날에 박해를 받은 대법제자들이 정정당당하게 사부와 만날 수 있음을 가리킨다.

“連宵風雨不須愁” 온 밤의 비바람 걱정해서 무엇 하리.
解 : 대법제자가 박해 받는 것을 역사적 안목으로 본다면, 사악이 아무리 미쳐 날뛰든 지를 막론하고 마치 온 밤의 비바람을 근심할 필요가 없는 것과 같다. 비바람이 일단 지나가면 날은 곧 밝아진다.

제10절

數點梅花天地春,欲將剝復問前因
수점매화천지춘 욕장박복문전인

寰中自有承平日,四海為家孰主賓
환중자유승평일 사해위가숙주빈

“數點梅花天地春” 몇 송이 매화 꽃 천지가 봄이라,
解 : 엄한 겨울의 고험을 겪은 제자들은 세계에 널리 퍼져 있고 중국대륙에 널리 퍼져 있는데, 마치 눈서리(霜雪)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 매화처럼 봄이 도래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법정인간(法正人間)의 시기이다.

이 구절은 이 시 전체에서 화룡점정(畵龍點睛)에 해당하면 시 전체의 제목이 이곳에서 나오는데 이때문에 “매화시(梅花詩)”라고 한다. 엄동설한의 시련을 겪은 파룬궁 제자들이 전 세계로 퍼지고 중국 대륙에 퍼져 마침내 눈꽃처럼 날리는 매화를 볼 수 있는 봄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이는 바로 正法이 인간세상에 전파되는 시기를 말한다. 천지에 봄이 돌아오고 혼란이 바로잡힌다. 여기서 우리는 매화시 첫 구절인 “蕩蕩天門萬古開,幾人歸去幾人來”의 의미를 비로소 명백히 알 수 있다.

세계적으로 어느 수련이거나, 불가거나, 도가거나, 서방 종교이거나 간에 모두 사람은 천상에서 왔다고 말한다. 수련의 목적은 즉 반본귀진(返本歸眞)이요 천국으로 되돌아감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아주 아름다운 곳에서 온 것으로 이곳에 온 목적은 대법을 얻어 수련하려는 것이다. 전반 인류 역사 역시 이번에 대법을 널리 전하기 위해 배치된 것이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법을 얻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법을 얻어 원만해 돌아갈 수 있을까?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흙먼지와도 같은 인간세상의 세파에서 자신의 진정한 목적을 잃고 영원히 인간 세상에 묻혀 다시는 원래 있었던 저 성결하고 휘황찬란함을 회복하지 못할 것인가? 이렇듯 큰 연극이 지상에서 맹렬하게 연출되는 동안 우리들 각자는 즉 그 희극을 보는 관중일 수도 있고 또 연기자일수도 있다. 어쩌면 이 작품 역시 연극 속에 등장하는 한편의 연극일수도 있고 또 어쩌면 많은 관중들이 갑자기 자신의 역할을 명백히 깨달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당신 심령 깊은 곳에 있던 영혼이 마침 우주에 메아리치고 있는 호소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欲將剝復問前因” 장차 박복이면 이전 까닭 물으리라.
解 : 박(剝)과 복(復)은 두 개의 괘(卦) 이름이다. 벗겨짐(剝)이 지극하면 반드시 회복(復)된다. 또한 사물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대로 된다(物極必反). 역사는 마치 바퀴가 돌아가는 것처럼 앞에 원인(前因)이 있으면 반드시 후에 결과(後果)가 있다. 인류의 역사는 모두 이번의 정법(正法)을 위하여 안배된 것이다.

“寰中自有承平日” 천하에 화평한 날 스스로 있으리니,
解 : 대법제자는 온갖 사악한 고험을 다 겪고 사악이 멸망하는 가운데 아름다운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四海爲家孰主賓” 사해를 집으로 삼는데 그 누가 주객인고?
解 : 1992년 파룬궁 창시인 리훙쯔 선생이 법을 전하신 이래, 기본적으로 도처에 법을 전해 사해(四海)를 집으로 삼았다. 후반의 “그 누가 주객인고(孰主賓)”라는 것은 누가 주인이고 누가 손님인가를 은유한 것이다. 역사의 무대에서 누가 조역 (配角)이고 누가 주역(主角)인가. 이번 인류의 문명은 모두 대법 을 위해서 육성된 것이며 대법을 위하여 창립(開創)된 것이다. 모든 것은 바로 미리 잘 배치된 연극에서 연기하는 것이 아닌가? 이번 차례 인류문명은 바로 우주대법이 널리 전해지기 위해 육성된 것이고 우주대법을 위해 창립된 것이다. 이것은 또한 매화시 전체 예언의 주제이기도 하다.

(끝)

발표시간:2002년 12월 25일

정견문장: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02/12/25/1834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