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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트라다무스의 <제세기>를 철저히 파헤치다 (26): 1999년 6.10과 7.20

작자: 역천균

【정견망 2008년 2월 5일】

제4장 박해진상

제3절 1999년 6.10과 7.20

1999년 사악의 두목 강택민은 중공 사악세력을 대표해 파룬궁에 대한 불법 탄압을 개시해 인류 역사상 보기 드문 인도(人道)의 재난을 가져왔다. 이번 탄압의 계책과 전개에는 두 개의 시간적 표지가 있다. 하나는 1999년 6월10이다. 중공은 이 날 파룬궁 탄압을 위한 파시스트 기구인 610 사무실을 만들었다.

또 하나는1999년 7월 20일이다. 중공은 이 날 공개적으로 파룬궁을 탄압하는 정책을 선포했으며 이후 파룬궁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1999년 4월 25일, 즉 파룬궁 수련생들이 대량으로 북경에서 평화적으로 청원하던 당일 밤, 강택민은 정치국 상무위원 및 다른 중공 지도자에게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서는 처음으로 “공산당은 파룬궁을 싸워 이겨야 한다”는 문제를 언급했다.

6월 7일 강(江)은 중앙정치국 회의에서 파룬궁 문제를 긴급히 처리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담화를 발표했는데 그중에는 파룬궁에 대해 “반드시 진지하게 대하고 깊이 연구하며 강력한 대책을 채택해야 한다. …중략…. 앞으로 특별히 파룬궁 문제를 처리하는 영도소조을 만들 것이다. 파룬궁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대응 절차와 조치를 통일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중앙과 국가 기구의 각 부서, 각 성, 자치구, 직할시 등은 긴밀히 협조해야 한다”는 등이 있었다.

삼일 후인 1999년 6월 10일 중공중앙은 “파룬궁 문제를 처리하는 영도소조”을 만들어 이람청(李嵐清), 나간 등을 책임자로 하는 610 사무실을 설립했다.

강택민이 전문적으로 파룬궁을 탄압하는 기구인 610 사무실을 설립한 이유는 헌법과 정상적인 법률 질서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이 기구는 성립, 조직 구조, 예속관계 운영과 경비 등 각 방면에서 모두 중공과 중국 정부의 현재의 틀을 타파했다. 아울러 중국 헌법과 법률을 초월해 임의로 자원을 사용하며 중공중앙 610사무실이하 각급 610사무실은 전국 각 성, 시, 자치구, 도시, 마을, 기관학교 등에 퍼져 있다.

이들 610 사무실은 전면적으로 파룬궁 관련 사무를 통제하고 있다. 때문에 강택민이 파룬궁을 박해하는 사조직의 성격을 지닌 지휘계통과 집행기구가 되었다. 어떤 법률에도 근거가 없이 조직된 이것은 성격상 나치 독일의 “게슈타포”나 중국 문화혁명 당시의 “문혁소조”와 비슷하다. 610 사무실은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는 전문기구이며 그것을 우두머리로 중공 정법, 선전, 군대, 문화교육, 외교 등 각 방면의 사악의 세포가 한데 모여 인류 역사상 가장 악랄하게 인간의 바른 믿음을 박해하는 원흉이 되었다.

<제세기> 예언 중 1999년 중공이 파룬궁 박해를 시작하는데 관한 예언이 많은데 대다수는 사악의 두목인 강택민에 관한 것이다. 이중 많은 예언은 이미 본 서 제1장 “사악의 우두머리” 편에서 이미 해석했으므로 본 절에서는 일부만 돌아보고 주로 다른 측면을 중심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탄압의 원인은 강택민의 질투

제4기 제57수

大王升起無知的嫉妒,
曠世奇書一律禁止:
他的妻不是他的妻,來自別的帳篷。
兩個的兩倍還要多,
既不能生育又不能聲張。

대왕은 무지한 질투심을 일으킨다
그는 경전을 금지할 것을 주창한다
그의 아내는 그의 아내가 아니며 다른 장막에 있다.
두개의 두 배보다 더 많이
생산할 수도 없고 큰 소리로 외치지 못한다

이 한 수의 시는 강택민이 단지 개인의 무지와 질투로 파룬궁을 탄압하기로 한 사실과 개인생활에서 그의 정부와 행한 황음무도한 추태를 예언했다. 본서의 제 1장 4절에서 이미 이 시를 해석했으므로 여기서는 강택민의 “무지한 질투심”만 다시 언급한다.

강택민은 자신이 폭로한 추악한 <강택민문선(江澤民文選)> 제2권에는 소위 “강택민이 파룬궁을 논하다”는 일부 문장에서 “1999년 4월 25일 강택민이 정치국과 기타 관련 지도자들에게 보낸 편지”가 있다. 우리는 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이 편지의 일부를 상세히 분석하는데 여러분은 강택민이 얼마나 무지하고 질투가 많은지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강택민이 이 편지를 쓴 시간을 보기로 하자. 그것은 파룬궁 4.25 평화상방 당일 밤이다. 당시 상방은 국무원 총리 주용기(朱鎔基)가 직접 나서고 국무원 직원이 처리한 것으로 당시 주용기는 파룬궁 대표자들을 중남해로 데리고 들어갔다. 이들 대표들은 밤 무렵 주용기 총리와 원만한 타결을 보았으며 나중에 국무원에서 문서를 보내 파룬궁의 연공할 권리를 승인했다.

그렇다면 강택민이 자칭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중공의 총서기임에도 중공의 사상노선과 일하는 방법의 기본 원칙 중 하나인 “조사하고 연구하지 않으면 발언권이 없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파룬궁 수련생들이 국무원에 상방한 기본상황을 아예 알아보지도 않았고, 일을 처리한 주용기 총리와 의견을 교환하지도 않았다.

자신은 방탄차에 앉아 중남해를 한바퀴 돈 후 돌아와 이 편지를 썼으니 이는 완전히 개인의 주관적 억측에 따라 이 사건의 본질을 규정한 것이다. 이런 일종의 “정치소질”은 중공의 표준에 비추어도 무지하기 그지없는 것으로서 정말 말단 과장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또한 명백히 국무원이 이미 선처하기로 타결한 일을 그는 조사도 하지 않고 임의로 뒤집어 완전히 개인주의의 극단을 드러냈고 주룽지의 처리 능력을 질투하여 개인종파주의의 전형적인 일을 공개적으로 하였다.

이어 우리는 강택민의 편지 내용을 좀 살펴보기로 하자. 그는 처음에 이렇게 썼다. “오늘의 일은 우리가 깊이 생각할 가치가 있다. 사람도 모르고 귀신도 모르게 갑자기 당과 국가권력 중심의 주위에 1만여 명이 모여들어 하루 종일 둘러쌌다. 이 조직은 규율이 엄밀하고 소식전달이 매우 신속하니 정말 보기 드물다. 그러나 우리의 관련부문은 인터넷으로 신속히 파룬궁 각지의 조직연락 계통을 찾을 수 있는데 사전에 전혀 눈치 채지 못했으니 이것은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 아닌가?”

여기서 강은 “귀신도 모르게, 돌연, 보기 드물다,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다” 등의 용어로 파룬궁 상방의 돌발성을 강조하는데 그렇다면 기왕 그렇게 돌연한 사건이라면 이치대로 정황을 더욱 자세히 연구해야 되는 것 아닌가? 왜 강택민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멋대로 결론을 내리는가? 설마 강택민은 돌발 사건의 처리에 특별히 무슨 예지능력이라도 있단 말인가? 그럼 왜 한달 후인 5월 8일 미국이 “귀신도 모르게, 돌연히” 유고슬라비아에서 중국대사관을 폭격했을 때 중국은 “그 조직은 규율이 엄밀하고 소식전달이 매우 신속하니 정말 보기 드물며 그러나 우리의 유관부문은 사전에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정황 하에 강택민은 한달이나 참다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는가?

사실 “유관부문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이 전체 사건은 유관부문이 정밀하게 계획한 하나의 음모이다. 나간과 그 친척인 하조휴가 천진 사건을 꾸며내고 천진의 공안은 파룬궁 수련생에게 북경에 가서 상방하라고 명확히 건의했으며 수련생들이 북경에 가자 경찰은 대량으로 상방하러 온 파룬궁 수련생을 고의로 중남해로 유도했으니 바로 나간의 무리가 고의로 강택민의 눈 밑에서 일을 일으킨 것이다.

이들은 일부러 강택민의 무지한 질투 심리를 자극한 것인데 그들의 의도는 전국적으로 파룬궁을 공개적으로 탄압하려는 음모를 이루려는 것이었다. 이는 마치 1기 제 42수의 시에서 말한 것과 같다. “악마는 운집한다, 동방 악마의 유골을 찾으려고”

바로 강택민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였다. 4월 25일 오후 천진사건을 꾸며낸 하조휴는 특별히 중남해 서쪽문에 도착했고 고의로 상방하는 파룬궁 수련생 앞에 빈둥거렸는데 애석하게도 파룬궁 수련생들은 근본적으로 그를 본체만체 하여 그는 중남해 입구에서 조금도 말다툼이나 소란을 일으킬 수 없었다. 그러나 강택민의 좁은 속은 자극을 받자마자 바로 과연 사리에 어둡게 나간 등의 외투 속에 들어갔다. 우스운 것은 강은 자기가 말하기로 “인터넷으로 파룬궁의 각지의 조직 연락 체계를 찾을 수 있는데 이는 깊이 반성해야 하는 것 아닌가?” 했는데 기왕 이렇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은 파룬궁은 완전히 공개적이고 광명정대한 단체이며 사람들에게 알리지 못할 일이 없고 무슨 비밀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는가? 사실은 바로 거기에 있는데 만약 반성할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강택민 자신의 마음에 문제가 있든지 지능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강은 또 이렇게 말했다. “… 이 일의 발생 후 서양 매체에서는 즉각 선동적인 보도를 했다. 도대체 해외와 서양과 관계가 있는지 없는지 막후에 “고수(高手)”가 계획을 지휘하는지? 이것은 새로운 신호이며 우리가 반드시 중시해야 할 것이다. 민감한 시기가 다가왔으니 반드시 빨리 힘있는 조치를 취해 유사한 사건의 발생을 엄밀히 막아야 한다.”

중국은 중공의 통치하에 언론의 자유가 없으며 국내 매체는 파룬궁이 상방한 사건을 감히 보도하지 못했는데 설마 강택민은 아직도 서양매체의 언론자율을 간섭하지 않으면 안된단 말인가? 하지만 나는 반대로 “서양 매체에서는 즉각 선동적인 보도를 했다”는 사실에 매우 회의적이다. 왜냐하면 서양매체는 보도 역시 시간의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신문은 빨라야 다음날 나오며 텔레비전 역시 편집할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강택민이 편지를 쓴 시간은 4.25 당일 밤이었으며 이 사건의 발생 후 몇 시간 내인데 우리가 도리어 물어보자.

당신은 4.25 당일 밤 언제 어느 시간에 “서양 매체에서는 즉각 선동적인 보도”를 보았는가? 설마 일을 하는데 완전히 개인의 망상으로 상상하여 판단한 것은 아닌가? 이것이 정확히 “하나의 새로운 신호”이다. 일개 무지와 질투를 지닌 추악한 히스테리의 신호이다.

강택민은 또 썼다: “이미 전국적으로 형성된 이런 조직은 상당히 많은 당원, 간부, 지식분자, 군인과 노동자, 농민의 사회 군체에 널리 퍼졌는데 우리는 경각심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나는 이 때문에 매우 가슴이 아프다.”

명백히 말하면 강은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이 너무 많고 너무 넓은 면적이기에 질투한 것인데 더욱 가소로운 것은 강이 최후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설마 우리 공산당이 갖춘 모든 마르크스 주의 이론과 신봉하는 유물론, 무신론으로 “파룬궁”이 선전하는 그 하나의 것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인가? 정말 그렇다면 어찌 큰 웃음거리가 아니겠는가?”

파룬궁은 근본적으로 공산당을 싸워 이기려는 것이 아니며 한 수련단체로서 수련환경만 있으면 되는 것이지 정치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공산당 자신의 “전투를 통한 경험”은 본래 “천만이 호호탕탕하게 적군 쪽에 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인데, 그러나 강택민은 질투심에 불타 “천만의 호호탕탕한 사람을” 공산당의 적으로 만들었다. 하나의 작은 추한 것이 “진선인”의 우주대법을 적으로 하여 중공이 “하늘이 중공을 멸하려는” 말로에 떨어지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니 이미 “큰 웃음거리가 되었다!”

610 전야, 강택민의 기념일

제1기 제50수

從三個水的符號,誕生了一個男人,
他把星期四作爲他的節日。
他的名聲,頌揚,統治和權力將增長,
在大地和海上,把災難帶給東方。

세 개의 물의 부호로부터 한 사람의 남자가 태어난다
그는 목요일을 기념일로 축하한다
그의 명성, 칭송, 통치와 권력은 자랄 것이다.
대지와 바다에서 동방에 재난을 가져온다.

이 시에서는 “세개의 물(水)”을 통해 강택민이 610 사무실을 만들기 전날인 1999년 6월 9일 목요일을 그의 기념일로 정하고 “동방에 재난을 가져온다”는 것을 예언한 것인데 본서의 제 1장 3절에 이미 해석했다.

강택민은 1999년 6월 9일 목요일을 그의 기념일로 삼았다. 이날 그는 파룬궁을 박해하여 “살인하여 위엄을 세우는” 것으로 자기의 핵심적 지위를 확립하고 전적으로 파룬궁을 탄압하는 기구인 610 사무실을 다음날 정식으로 설립하여 운영에 들어갔던 것이다.

1999년 초, 강택민은 여러 차례 당 중앙이 완전한 핵심을 형성하지 않았다고 원망했는데 4월 25일 상방은 주용기가 직접 나서서 해결했다. 5월 8일 미국이 유고 주재 중국대사관을 폭격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강택민은 거북이 목처럼 움츠리고 벌벌 떨었고 호금도(후진타오)가 나서서 국내의 국면을 무마했다. 이때 강택민의 인기는 매우 낮았으며 이 때문에 그는 파룬궁을 탄압해 공을 세우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러나 당초 중공중앙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단지 강택민 한사람만이 일심으로 파룬궁을 탄압하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모택동이 발동한 문화혁명의 수법을 채용해 4월 25일 당내에 고위층을 통해 정치국상위와 기타 유관한 영도들에게 편지를 보내고 6월 7일 정치국 상위 회의에서 파룬궁 문제의 긴급한 처리와 해결의 담화를 하여 개인의지를 중앙문건으로 강행했던 것이다.

그는 당내의 다른 의견을 평정하고 다른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반대하지 않도록 존재하지도 않는 “해외 적대지지 세력”을 만들었다. 그는 4월 25일 편지 중에 “서양 매체가 즉시 보도하고 선동했다”는 말을 했는데 이는 모두 사람을 겁주는 것이었다.

당시 나간이 통제하는 중국 국가안전부는 미국중앙정보국이 배후에서 파룬궁을 지지한다는 거짓정보를 제공했다. 사실은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이후 미국은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지지와 구조작업은 대다수 민간과 의회차원이었지 미국정부는 역대로 중공과 인권대화에서 전적으로 파룬궁문제를 언급한 적이 없다. 그러므로 미 정보국이 배후에서 파룬궁을 지지한다는 정보는 완전히 강택민이 혼자 지어낸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6.4 이후 미 중앙정보국은 민주학생의 활동을 구하는데 참여한 적이 있다. 만약 미 중앙정보국이 배후에서 파룬궁을 지지했다면 박해발생 후 대규모의 파룬궁 보도소 소장과 수련생들이 미국의 도움을 받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아예 일어나지 않았고 강택민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가짜 정보를 지어내어 다른 정치국 상무위원을 속였으니, 그들에 대해 중공 자기들끼리 희롱한 것이다.

강택민은 자신의 건달 수법이 성공적으로 정치국 상무위원들을 침묵시키는 것을 보고 마침내 개인이 하고자 하는 것을 할 수 있었고 개인의지로 정국을 좌우할 수 있었으며 독자적으로 탄압정책을 밀고 나갈 수 있었다. 그는 여기에서 비할 바 없는 쾌감을 느꼈다.

강택민이 만든 610 사무실은 중공의 정상적 조직구조와 중국의 현재 헌법과 법률을 능가하는 것으로 이것은 법치의 관념이 없는 추악한 강택민에게 법률의 제한을 받지 않고 극악무도한 짓을 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한 것이다.

더 사악한 것은 파룬궁이 4월 25일 평화적으로 상방한 것이 강택민이 파룬궁을 박해하는 주요 이유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상방은 필경 국무원과 이미 해결을 보았으니 강택민은 4.25 상방을 이유로 파룬궁을 탄압할 방법이 없었다. 때문에 강택민과 소위 중공중앙은 이미 파룬궁을 탄압하기로 결정해놓고 6월 9일 강택민이 스스로 중공 신방국에 소위 “사로잡기 위해 놓아주는” 추악한 건달 연극을 연출한 것이다.

그래서 1999년 6월 14일 중공중앙의 신방사무실, 국무원 신방사무실에서 공고를 발표했다. 즉, “중국 신방국 책임자는 파룬궁 상방인을 대할 때 담화요점”을 발표하며 동시에 국내 각 신문 텔레비전에 동시에 발표했는데 중앙에서는 종래 어떤 기공공파도 금지하지 않는다고 공언했다.

“각종 정상적인 연공, 건강 활동에 대해 각급 정부는 종래 금지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모두 어느 공법이던지 연습할 자유가 있으며 또 어느 공법을 믿지 않을 자유가 있다. 서로 다른 관점과 의견이 있으며 이는 모두 정상적이다. 정상적인 통로를 통해 반영할 수 있다.”

이는 바로 중공 중앙의 명의로 소위 중공이 파룬궁을 단속하려 한다는 소문을 반박한 것이다. “공안기관이 연공자에 대해 탄압한다, 당원, 간부가 파룬궁을 수련하면 당과 공직에서 제명한다”는 이런 말들은 근거가 없으며 인심을 미혹시키는 소문이라고 강조했다.

또 “각종 정상적인 연공, 건강 활동에 참가할 수 있다”고 승낙했는데 사실상은 강택민 일당은 오히려 7.20에 탄압을 시작할 준비를 끊임없이 울려대었으니 이는 전 세계와 전 국민에 대해 공공연하게 속이는 행위로서 강택민 일당의 체면을 가리지 않는 추태를 다 드러낸 것이다. 강택민의 음모는 4.25 상방은 이미 평화적으로 해결되었으니 파룬궁을 치려면 반드시 파룬궁의 더욱 큰 상방을 야기시켜야만 비로소 각급정부에 파룬궁을 탄압하는 정책을 이해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중공중앙 신방사무실에서 “중공이 파룬궁을 단속하려고 한다”는 소문을 반박한 후 7.20이 되어 중공이 파룬궁을 단속하려고 한다는 소문이 현실이 되면 반드시 더욱 많은 파룬궁 수련생이 각급 정부에 상방할 것이다. 이렇게 되어 중공 각급 정부에게 강택민이 파룬궁을 탄압하려는 결정이 전달되었을 때 각급 정부의 입구에는 상방하려고 서 있는 파룬궁 수련생이 있는데 그렇다면 각급 정부는 파룬궁을 탄압하려는 정책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오히려 강택민이 얼마나 똑똑한지 드러날 것이다. 가석하게도 이 때 이후에 중공중앙의 신용은 하나도 가치 없는 일로 변하게 될 뿐이다.

삼계에 비집고 들어온 “구(舊)세력”

제10기 제71수

大地,大氣和大海都要凝固,
可怕的星期四將來臨,
他們將來尊崇這個日子:
從來沒有塞進來這麼多的因素,
來自四方的他們表示自己的敬意。

대지와 대기는 대해를 얼려버릴 것이다.
그들이 이 두려운 목요일을 숭배하러 할 때에
이전에 이렇게 많은 것들을 꽉 채운 적이 없었다
사방에서 그들의 존경을 표시할 것이다.

이 시는 우리 본서의 제1장 3절에서 해석했다. 그러나 당시 우리는 아직 구세력의 개념을 설명하지 않았는데 그래서 간지와 오행으로 1999년 6월 9일이 무서운 목요일의 특수성을 설명하고 또 그날의 천간과 지지 오행으로 하나씩 상생 관계로 나중 2구를 설명한다.

사실 이 시의 “그들”은 우주 중의 “구세력”이다. “그들”은 “대법이 정법하는데 위덕을 수립할 환경을 만들어준다”는 기치를 들고 우주대법의 정법을 교란하고 파괴하는 “구세력”이다.

1999년 6월 9일은 우주중의 “구세력”이 사악한 힘을 모아서 대법제자를 박해를 통해 우주대법이 정법을 파괴하려고 준비한 날이다. 이런 상황은 인간에게 나타난 것이 바로 사악의 우두머리 강택민의 “기념일”, “두려운 목요일”이다. 그러나 구세력은 “대법이 정법하는데 위덕을 수립하는 환경을 준다”는 기치를 들고 온 것이다. 그래서 예언에서는 “그들은 숭배하려고 한다”, “사방에서 그들의 존경을 표시할 것이다”고 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대법에 대해 “경의”를 표하러 온 것이다. 그들은 파룬따파가 그야말로 너무나 좋은 것을 알았고 우주의 과거의 수련에 대하는 방법에 비추어 수련인에 대해 “고험”을 하여 “위덕을 수립하는 환경” 창립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앞에서 말했는데 파룬따파가 널리 전해짐은 우주의 정법을 위해서이며 이로서 빈사상태에 처한 우주를 구하여 새로운 생명을 얻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구세력이 우주 과거의 수련에 대하는 방식으로 우주정법을 대하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본시의 제 3구
“이전에 이렇게 많은 것들을 꽉 채운 적이 없었다” 것은 구세력이 정법에 교란을 하는 방식은 바로 그들이 허다한 각종 요소로 삼계 범위 내에 밀고 들어온 것을 말한다.

파룬따파를 창시한 이홍지 선생님은 <2003년 정월대보름 법회설법>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정법 중에서 낡은 세력의 참여로 하여 조성된 우주중생의 도태됨은 헤아릴 수 없다. 그렇다면 그것들의 구체적인 참여 중에서 채용한, 그들이 인정하건대 가장 능히 그들의 목적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 역시 그들의 가장 전형적인 작법이 바로 모든 방대하고 거대한 천체(天體)가 모두 우주 중에서 가장 낮은 층차 삼계에로 한쪽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이는 형용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모두 일부분을 삼계 속으로 압축해 왔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그처럼 방대한 천체, 거대한 생명들이 삼계에 진입한다면 삼계에 어떠한 상태를 조성해 줄 수 있는가? 오늘날의 인류는 역사의 과거와 대비할 수 없게 변이 되었다. 지상의 신선마저도 거대한 압력을 느꼈다. 나는 그들에게 이런 변화를 물어본 적이 있는데 그들은, 우리들은 우리의 수련상태가 조성한 것이라고 여긴다고 말했다. 지상의 신마저도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런 거대한 생명은 우주의 이 가장 낮은 층차 중의 일체에 대하여 모두 일종 억제로 되기 때문이다. 그럼 그들이 내려온 후에 삼계 내의 생명의 변이, 물질의 변이에 대하여 상상할 수 없는 파괴를 조성하였다. 만약 법이 인간세상을 바로잡아 최후에 철저히 그것을 조정하지 않는다면 이곳은 이미 수습할 방법이 없으며 누구도 방법이 없고 이미 구할 방법이 없게 되었다. 그것들이 통상적으로 취한 방법이란 바로 방대한 천체(天體), 무수한 대궁(大窮), 그들을 한 데로 압축시켜 삼계에로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다. ”

물론 이홍지 선생님이 설법하신 내용은 매우 높고 깊어서 여러분이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스스로 설법 원본을 공부해야 하며 여기서는 단지 <제세기> 예언 중 우주정법에 대한 예언이 이 선생님의 설법과 일치한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1999년7월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오다

제10기 72 수

1999年7月,
爲使安哥魯莫亞王複活;
恐怖大王將從天而落,
屆時前後瑪爾斯將統治天下,
說是爲讓人們獲得幸福生活。

1999년7월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오리라
앙골모아의 왕을 부활시키기 위해
전후로 마르스가 천하를 통치하리라
사람들이 행복한 생활을 얻도록

이 시는 1999년7월 중공사악이 파룬궁 박해를 시작한 것을 예언했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번 파룬따파 사부가 말한 2000년 6월의 <예언참고>를 보자.

“그가 이야기한 1999년 7월에 그 왕을 부활시키기 위하여 공포대왕이 하늘로부터 내려온 다고 한 것은, 바로 중공중앙(中共中央)의 몇 명의 딴 심보를 품은 사람이 손안에 쥔 권력을 이용하여, 대법과 대법제자에 대해 전면적인 사악한 탄압(鎭壓)을 시작한 것이다. 즉 사람을 잡아가고, 때리고, 노동 교양시키고, 판결하고, 책을 훼손하고, 군, 경찰, 특무, 외교 및 모든 라디오방송, 텔레비전방송, 신문을 이용하고, 깡패수단을 채용하여 천지를 뒤엎을 듯이 요언을 날조하고 박해하는데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질 듯한 기세인 바, 그 사악한 정도는 전 세계를 덮었다. 낡은 세력이 그것들의 부패한 관념으로 이 사건을 배치한 목적은 파괴성적으로 소위 대법을 검증(檢驗)하는데 있다. 사부님이 사람 속에서 법을 바로잡는 과정을 뭇신(衆神)들의 각도로부터 본다면 마치 죽었다가 부활하는 과정과도 같다.

그때를 전후로 해서 마르스(Mars:瑪爾斯)가 천하를 통치하게 하는데 “라는 이 한마디에 대해서 말한다면 1999년을 전후로 해서 마르크스가 세계를 통치한다는 것을 말한다. 사실 현재 공산당사회만 마르크스의 그런 식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상의 발달한 국가가 사회복지 등을 하는 것 역시 자본주의 제도하에서의 공산주의인 것이다. 표면상은 자유사회이지만 실질적으로 전 세계가 다 공산주의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공산주의 국가로부터 서방의 발달한 국가로 온 사람들은 모두 한 가지 같은 느낌이 있다. 즉 여기가 마치 공산주의와 같은 것처럼 느껴진다. 단지 폭력혁명 그런 수단을 하지 않을 뿐이다.

최후의 한마디 “사람들이 행복한 생활을 획득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라고 한 것 역시 공산당이 말한 전 인류를 해방시킨다는 설이고, 서방사회에서는 높은 세금으로 사회복지를 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7월 20일부터 22일까지 탄압이 시작된 상황

제 5기 83 수

영문:
Those who will have undertaken to subvert,
An unparalleled realm, powerful and invincible:
They will act through deceit, nights three to warn,
When the greatest one will read his Bible at the table.

中文:
那些敗壞的人們將進行破壞
一個”無可匹敵”的王國,”強大而不可戰勝”:
他們將靠謠言和欺騙行動,三個晚上不停的警告,
當最偉大的人在桌邊捧讀聖書。

저 손상된 사람들은 파괴를 진행할 것이다.
필적할 수 없는 왕국, 강대하고 쳐부술 수 없는
그들은 요언과 속임수로 행동하며 3일 밤 경고할 것이다.
가장 위대한 사람이 탁자에서 성서를 읽을 때

이 시는 1999년 7월 20 중공 사악이 대규모로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할 때의 광경을 정확히 예언했다.

제1구는 첫머리에서 요지를 밝히고 있다. “손상된 사람”으로 도덕과 인륜이 손상된 것을 가리킨다. 제2구의 “필적할 수 없는 왕국, 강대하고 쳐부술 수 없는”은 그 손상된 사람들이 알고 보면 자칭 “위대, 영광스럽고, 정확하다”는 중국 공산당임을 신랄하게 풍자한다. 이 공산당, 독재국가의 기구는 뜻밖에 맨손으로 진선인을 믿는 평민들에게 전쟁을 시작하고 사악의 우두머리는 소란을 피우고 떠든다. “나는 공산당이 파룬궁을 싸워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본 시의 3구는 강택민 일당이 파룬궁을 친 것은 완전히 요언과 속임수 행동임을 말한다. 그들은 “요언과 속임수”로 파룬궁에게 죄를 덮어씌웠으며 “요언과 속임수”로 당 내의 다른 의견을 잠재웠고 그들의 각종 각양의 선전 재료는 완전히 “요언과 속임수”였는데 목적은 전국 인민을 속이고 전 세계를 속이기 위한 것이었다.

제 3구 “3일 밤 경고할 것이다.”는 7월 20부터 7월 22까지 연속 사흘 간 중공은 전국적 범위에서 파룬궁 보도원에게 대규모로 체포와 가택수색을 개시하며 동시에 국무원 신방사무실에 상방하러 온 수만 명의 파룬궁 수련생을 체포했는데 이런 것은 모두 중공이 정식으로 탄압하는 경고였다.

사실 중공의 탄압은 610 사무실이 설립되면서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남은 것은 강택민 일당이 어떻게 거짓을 날조해 속임수를 실시하는가 하는 문제에 불과했다. 그래서 6월 13일 중공중앙 사무처는 <강택민 동지의 중앙정치국 회의상에서 파룬궁 문제를 급히 처리해야 할 담화>를 통지하고 6월 14일 큰 언론매체에 “중국 신방국 책임자는 파룬궁 상방인을 대할 때 담화요점”를 발표하며 파룬궁을 탄압한다는 소문에 대해 반박을 진행했다. 7월 19일 중공은 ㅡ<중공중앙은 공산당원에게 “파룬따파”의 수련을 불허한다는 통지>를 발표하며 “파룬따파”이 “한 조의 왜곡 사설을 선양하며 엄중하게 사람들의 사상을 침식했다”, “파룬궁 조직의 정치적 본질과 엄중한 위해를 충분히 인식하기 위해 공산당원에게 “파룬따파” 수련을 허락하지 않을 것을 명확히 요구한다” 등등을 발표했다.

7월 20일 중국 대륙에서는 전국적인 범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파룬궁 보도원들에 대한 대규모 체포와 가택수색이 시작되었으며 국무원 신방사무실에 상방하는 수련생을 체포했고 1999년 7월 22일부터 파룬궁에 대한 탄압이 정식으로 시작되었다.

중공 기관지 <인민일보>에는 파룬궁을 비판하는 장편의 문장을 게재했으며 민정부는 “파룬따파 연구회를 단속하는 결정에 관해”라는 통고를 발표하고 공안부는 “6금지” 통고를 발포하고 각지 공안은 계속 파룬궁 수련생을 체포했으며 그들을 강제로 경찰국에 데리고 가서 파룬궁을 모함하는 텔레비전 선전을 보게 하고 집을 수색하고 책을 뒤졌으며 파룬궁 서적과 음악 테이프 자료 등을 불태웠다. 동시에 수십만 명의 파룬궁 수련생은 북경과 각 지방 정부에 평화 청원을 시작했다. 청원하는 군중은 쫓겨나거나, 구타 혹은 체포되었다.

본 시의 최후의 구절 “가장 위대한 사람이 탁자에서 성서를 읽을 때”는 설사 중공이 미친 듯이 탄압해도 많은 견정한 대법제자는 박해에 움직이지 않고 법을 공부하고 수련을 견지하며 책상에서 <전법륜>을 읽는데 그들은 “가장 위대한 사람”인 것이다.

사악의 박해와 무수한 죄악

제 8기 80수

無辜人民的鮮血,孤兒和寡母,
紅色之首犯下了無數的罪惡,
聖像被投在燭火上焚燒,
令人害怕的恐怖,
卻沒有人看見動搖。

무고한 백성의 선혈과 고아와 과부
거대한 붉은 것의 수단으로 무수한 죄악을 저지르며
성스러운 상(像)이 불타는 촛불 위에 놓여지며
사람들을 두려움의 공포에 떨게 하지만
아무도 동요하지 않는다.

이 시는 중공 사악 세력이 파룬궁에 대해 박해하여 무수한 죄악을 범하는 것을 예언했다. 그러나 진정한 대법제자의 바른 믿음은 동요시키지 못한다.

여기서 “붉은 것”은 공산당을 대표하며 바로 중국공산당의 영도자이다. 사악의 우두머리 강택민과 뤄간 등의 중공 두목이며 그들은 파룬궁에 대해 미친 듯한 박해 중 무수한 죄악을 범했다. 그들은 허다한 무고한 파룬궁 수련생을 잡아가두고 살해했으며 “무고한 백성의 선혈”이 중화대지에 흐르게 했다. 그들은 허다한 가정의 가족이산을 조성했으며 가정을 파괴하고 사람을 죽였으니 남은 것은 “고아와 과부” 뿐이어서 어둠 속에서 어렵게 생활해야 했다. 그들은 파룬궁 사부의 법상(法像)을 거둬들여 불태우고 파룬궁 서적을 불태우는 등 사람을 공포에 떨게 했다.

그러나 이런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대법제자는 “아무도 동요하지” 않았다.

발표시간 : 2008년 2월 5일
정견문장 :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8/2/5/5083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