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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백온에 관한 여러 가지 전설

글/ 대륙인

【정견망】

NTD TV 진행자 석도(石濤)가 자신의 프로그램에서 부친이 직접 겪은 일을 말한 적이 있다.

1950년대 북경 전문(前門) 문루 밖에서 건물을 지을 때 사람들이 돌비석 하나를 파냈는데 비석 위에 한 구절 글자가 적혀 있었다. 즉 “이 비석은 모년 모월 모일 모시에 출토된다.”고만 적혀 있었는데 유백온(劉伯溫)의 낙관만 있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여기서 사람들이 놀란 것은 돌비석이 출토될 시점이 바로 정확하게 그 시진(時辰)이었다! 한 치의 차이도 없었다. 이 기이한 일은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보게 했고 석도의 부친 역시 직접 가서 이 일을 목격했다.

필자의 아버님도 살아생전에 유사한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옛날에 오당(吳堂)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강소성 회음(淮陰)사람이다. 그가 사람들을 데리고 건물[청강성(清江城)]을 건축할 때 공사 후반 예산이 부족해지자 특히 석재가 모자랐다. 오당은 이에 사람을 보내 인근에 있던 아치형 돌다리를 뜯어 석재를 가져오게 했다. 사람들이 돌다리를 뜯다가 보니 한 돌 위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내용은 “유기(劉基 유백온)가 만들고 오당(吳堂)이 뜯는데 여기까지 뜯고는 뜯지 못한다. 하나를 뜯고 또 10개를 뜯는다.”고 적혀 있었다.

오당이 이 글을 보고는 당장 중단시키고 더 이상 뜯지 말라고 했고 이미 뜯어낸 것은 일단 사용하게 했다. 나중에 가져온 석재를 다 쓰자 성도 잘 건설되었는데 단 하나도 남거나 모자라지 않고 정확하게 개수가 맞았다!

내가 직접 들은 이야기도 하나 있다. 유백온이 일찍이 강소(江蘇) 동해안의 어느 지역에 간 적이 있는데 인적이 아주 드문 곳이었다. 그곳에 도착한 후 그는 곧 돌비석을 하나 세우고는 비문 마지막에 “(내가) 처음 왔고 두 번째 오는 사람이 없다(一到無二到)”고 적었다. 이 구절 앞에 또 다른 말이 있었지만 전해지는 내용이 이미 명확하지 않지만 대략 이 지역이 어떠어떠하다고 하면서 다만 유백온이 이곳을 지나간 후 이곳에 올 다른 사람이 없을 거란 뜻이었다.

나중에 청나라 대장군 연갱효(年羹堯)가 이곳에 와서 비문을 보고는 속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어째서 한 사람만 오고 두 번째는 오지 못한단 말인가? 바로 내가 온 게 아닌가? 그는 한 다리를 들어 비석을 발로 찼다. 그러자 뜻밖에도 돌비석 아래에 또 하나의 비석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 위에는 “대청의 연갱효를 제외하고(除非大清年羹堯)”라는 구절이 적혀 있었다.

원래 이런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나는 정말 아주 신기하게 여겼고 유백온의 능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나중에 그가 왜 이렇게 했을까 생각해보았다. 잠재의식 속에서 나는 그가 후세인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려는 것이라 여겼다. 그러다 인터넷에서 유백온이 남긴 《금릉탑비문(金陵塔碑文)》, 《구겁비문(救劫碑文)》, 《추비도(推碑圖)》, 《소병가(燒餅歌)》 등 일련의 예언 및 사찰에서 비밀리에 전해지는 내용들을 보고 나서 나는 그가 왜 이렇게 했는지 명백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바로 말겁이 닥칠 때 오늘날의 사람들이 자신이 남긴 세상을 구하는 말을 믿지 못할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야기들의 세부적인 내용은 비록 완전하지 않다. 이야기 속의 장소와 인물 이름은 아마 발음이 같은 다른 글자일 수도 있다. 또 어떤 구절은 단순히 인상에 의지한 듯해서 의문부호를 띠기도 한다. 이곳에서 위 이야기들의 상세한 내용을 아는 독자가 있다면 보충해서 서술해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1529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