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사감
[정견망 2009년 11월 10일]
장삼풍은 명나라 때 수련하던 사람인데 그는 매우 가난했으며 도롱이(풀로 엮어 만든 비옷)를 옷을 입고 정착할 곳이 없어 사해를 떠돌아 다녔다. 때로는 하루 만에 천리밖에 나타나기도 했고 때로는 어느 곳에서 그가 죽는 것을 다른 사람이 직접 목격했는데 나중에 다른 곳에서 또 즐겁게 담소하고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홍무황제와 영락황제는 그를 매우 존경했다. 사자를 파견하여 그를 찾아 만나려 했으나 늘 만나지 못했다. 그의 생사는 알 수 업는 수수께끼가 되었다.
어느 날 장삼풍이 동냥하며 다니다 기양왕岐陽王(1339~1384, 명 태조의 조카)이 있는 곳에 와서 대접을 받았다. 장삼풍이 떠날 때 도롱이와 삿갓을 기양왕에게 남겨놓으며 말했다.
“당신 집에 1000일이 안되어 재난이 와서 전 가족이 굶어 죽을 것입니다. 위급한 난이 올 때 나의 도롱이를 뒤집어쓰고 삿갓을 덮고 화원에 돌면서 제 이름을 부르세요.”
기양왕이 생각했다: 우리 집은 비단 옷에 잘 먹고 잘살며 해마다 조정의 녹봉을 받고 밭에서 세금으로 바치는 곡식이 얼마든지 있으며 그저 땅만 팔아도 몇 대를 먹어도 끝이 없을 텐데 어찌 우리 전 가족이 그렇게 빨리 굶어죽는다는 말인가? 그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지만 그래도 장삼풍이 주는 것이라 할 수 없이 받아 잘 간직해 두었다.
2년이 지나 돌연 큰 옥사가 일어났으며 기양왕이 거기에 연루되었다. 기양왕과 전가족은 왕부에 연금되었고 곡식을 제공받지 못했다. 집안에 남은 양식은 점점 다 떨어져 가고 있었다. 집안에 있는 금덩어리고 보석이고 아무 소용이 없는 위급한 상황에 기양왕은 장삼풍의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그의 말을 따라 그렇게 장삼풍을 외쳐 불렀다. 그러자 즉시 화원과 공터에 빽빽하게 곡식이 자라났고 한 달이 안 되어 다 익었다.
전 가족은 이 곡식을 먹고 아사를 면할 수 있었다. 곡식을 다 먹자 조정에서는 비로소 사람들이 기양왕의 가족에게 곡식을 제공하자고 제의했다. 그 후 기양왕은 다시 장삼풍을 불렀으나 곡식은 다시 나지 않았다.
기양왕은 이때부터 장삼풍이 준 도롱이와 삿갓을 신물(神物)로 여겼다. 집안에 누가 아프면 도롱이의 풀줄기를 몇 개 빼어 물에 끓여 먹으면 즉시 병이 나았다. 창고를 맡은 어느 태감이 이질에 걸렸는데 이 권세를 믿고 도롱이와 삿갓을 빼앗아 가서 나뭇가지를 취해 물을 끓여 먹었으나 오히려 병이 더 심해졌고 비명횡사하고 말았다. 그 후 도롱이와 삿갓은 황궁에서 거두어 깊이 숨겨놓았다.
중공 사당의 무리와 강택민이 발동한 파룬궁 수련인에 대한 사악한 박해는 천지를 진노하게 했고 백성들에게 재난을 가져다주었다. 하늘이 중공을 멸하고 자연재해가 빈번한 이때 고향 사람들은 대법제자의 진언을 기억하기 바란다.
<금능쇄사>에 근거함
발표시간:2009년 11월 10일
정견문장 :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09/11/10/6251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