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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이야기: 권고를 듣지 않던 재상이 유배당하다

[정견망]

북송에 정위(丁謂 966-1037년)라는 재상이 있었다. 7년간 재상을 지냈는데 나중에 귀양을 갔다. 여기에는 한 가지 일화가 있다.

정위는 일찍이 번양(지금의 강서 파양현)의 부 현령으로 있을 때 어느 도인이 찾아와서 말했다. “저는 당나라 여위(呂謂)의 손자입니다. 당신의 모습을 보니 그때의 이덕유(李德裕)와 매우 닮았습니다. 그러니 그와 운명이 비슷할 것 같으니 부디 주의하십시오.”여위는 신선 여동빈의 조부였고 이덕유는 당나라 재상으로 있다가 좌천되어 해남도로 유배된 적이 있었다. 정위는 이 말을 듣자마자 알았다.‘눈앞에 있는 이 도인이 바로 전설에 나오는 여동빈이로구나.’하지만 그가 자신에게 장래에 유배의 재난이 있다고 말한 것이 듣기 좋지 않았고 또 불길했으므로 그를 잘 대해주지 않았다. 여동빈은 정위가 자신의 권고를 듣지 않는 것을 보고 끝내 탄식하며 떠나갔다.

나중에 정위는 다른 사람들을 뛰어넘는 재주와 지혜로 승승장구하여 마침내 재상의 지위에까지 올랐고 업적도 쌓았다. 그러나 정위는 심성이 바르지 못해 백성들의 어려움을 돌보지 않고 윗사람 뜻에만 맞게 행동하고 또 황제에게 나쁜 계책을 진언해 정의로운 신하들의 반대에 부딪히곤 했다. 특히 구준(寇准)이라는 신하가 그를 몹시 미워했다. 그러자 정위는 죄명을 날조해 구준을 쫓아냈다. 하지만 선악(善惡)에는 보응이 따르는 법이라 정위의 악행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밝혀졌고 해남도로 추방되어 사호참군(司戶參軍)이라는 말단직으로 강등되었다. 그의 네 아들도 전부 쫓겨났고, 재산을 몰수하기 위해 그의 집을 수색할 때 곳곳에서 뇌물로 받은 재물이 쏟아져 나왔는데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제서야 그는 비로소 여동빈의 예언이 들어맞은 것을 알았다. 그는 정말 이덕유와 마찬가지로 해남으로 쫓겨 갔다. 만약 그가 여동빈의 말을 존중했더라면 아마 여동빈은 그에게 난을 피할 무슨 방법을 가르쳐 주었을 것이나 이미 너무 늦었다. 역사상 권고를 듣지 않고 자신의 명운을 망치는 재난을 당한 사람은 다 이렇다. 현재 중공이 오늘날까지 철저하게 부패하여 백성들의 원성을 들으며 미움을 받는 까닭은 어느 방면에서 보면 바로 역사상 선의의 권고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또 마음대로 각종 무슨 정치 운동으로 선량한 사람들을 박해하여 초래한 결과다.

여동빈이 정위의 악행의 결과를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그가 수련 원만한 사람이며 각종 공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파룬궁 수련생들이 중공(중국공산당) 조직에서 탈퇴하라고 권하는 이유는 그들도 진정한 수련인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수련 중에, 중공 자신이 심은 미래의 악과(惡果)를 보았기 때문이다. 일찍이 중공의 조직에 가입했던 사람이 탈퇴하지 않는다면 필히 중공에 연루되어 희생물이 될 것이다. 그래서 수련생들은 대선지심(大善之心)으로 당, 단, 대를 탈퇴할 것을 권한다. 여러분은 그들의 권고를 듣고 역사의 비극이 자기에게 일어나기를 기다리지 말기를 바란다.

발표시간 : 2012년 8월 1일

정견문장 : http://www.zhengjian.org/node/112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