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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행을 하거나 음란물을 판 사람들에게 경계가 되는 이야기(6편)

작자: 정념행(鄭念行) 정리

【정견망】

1. 음행한 자가 나중 생에 보응을 받다

청나라 가선현(嘉善縣)에 지(支) 모라는 사람이 있었다. 을유년에 향시(鄕試 지방에서 치르는 1차 과거시험)를 보고 돌아와 자기 친구인 고(顧) 모에게 말했다.

“내가 최근 정신이 흐릿하며 좀 불안한데 마치 무슨 귀신은 것이 나를 감고 장난치는 것 같으이. 내가 절에 가서 큰 법사님을 찾아 부처님 앞에 참회해야 업을 면할 것 같네.”

친구가 말했다. “그런 일이라며 마땅히 늦어서는 안 되니 빨리 가보게.”

두 사람이 절에 가서 스님을 찾은 후 몇 마디 하기도 전에 지 모는 갑자기 흐리멍덩해지더니 이어서 미친 듯이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사실 채권자가 그의 입을 빌어 한 말이다). “나는 삼세(三世)에 원한을 졌는데 오늘에야 너를 찾아 원수를 갚는구나!”

스님이 물었다. “대체 무슨 원한입니까?”

상대방이 말했다. “나는 전세에 그의 부하였고 그는 대장군이었습니다. 그는 내 아내가 젊고 미인인 것을 보고 고의로 내게 소수의 약한 병력을 이끌고 몇배나 많은 강적을 대적하게 하여 나를 사지에 빠트렸습니다. 내가 사망한 후 그가 아내를 차지하려 했지만 아내가 따르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나중에 지모가 죽은 후 나라에서 충성을 인정받았으므로 그에게 원수를 갚을 길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그가 다른 사람으로 태어났는데 그는 또 출가 수행하여 고승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호법신이 그를 따라 다니며 호위하는 바람에 또 원수를 갚을 수 없었습니다. 그 다음 생에 그는 재상이 되었고 정책을 잘 써서 복록과 신의 보호를 받아 나는 또 원수를 갚을 수 없었습니다. 이번 생에 그는 마땅히 공명이 있어야 했으나 최근 여자를 강간한 죄업이 있어 천제에 의해 공명이 잘려 나갔고 복신(福神)과 녹신(祿神)이 모두 그를 떠났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제 손을 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 스님이 이 말을 듣고 다시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친구가 말했다. “하지만 원한은 풀어야지 맺어서는 안 됩니다. 이제라도 그만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러나 상대방이 말했다. “비록 그렇더라도 내 마음의 한은 풀 수가 없소, 원수를 갚지 않으면 안심이 안 되는 데 어찌 그를 쉽게 놓아줄 수 있겠소!” 곧 지모는 괴성을 지르며 비틀거리며 절문을 향해 달려가더니 땅에 쓰러져 일곱 구멍이 피를 흘리며 죽었다.

2. 음행을 저지른 자가 급사하다

강절(江浙)에 오(吳)모라는 서생이 있었다. 그는 늘 한 여인을 건드리려 했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의 친구 방모에게 계책을 논의하여 방모는 그에게 비법을 가르쳐 주었다. 어느 날 행동을 취하기로 했다.

얼마 안 되어 그의 부친이 꿈을 꾸었는데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이 그에게 말했다.

“당신 아들은 본래 진사에 붙어야 했는데 마음씀씀이가 나쁘므로 천제께서 이미 그의 갑과(科甲)의 공명을 다 삭제 했습니다. 그의 친구 방(方)모는 본래 천한 소인배인데 현재 다른 사람의 사악한 일을 도왔으니 염라왕은 이미 그를 ‘기름 끓는 지옥’에 쳐 넣기로 판결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장을 끊어 죽일 것입니다.”

부친이 꿈에서 깨어난 후 매우 놀라 날이 밝은 후 얼른 달려가 그의 아들을 찾았다. 아들의 말을 들으니 방모는 어제 갑자기 급성 복통으로 급사했다고 한다.

얼마 안 되어 오모는 정신분열증을 앓아 봉두난발을 하고 더러운 얼굴로 시내를 들락거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목숨을 잃었다.

3. 음란한 그림을 그려 참혹한 보응을 받다

청나라 때 복건성에 제갈윤(諸葛潤)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전문적으로 음란한 색정화(色情畫)를 그렸는데 아주 정밀하게 잘 그렸다. 이 재주로 그는 성내에서 먹고 살고 있었다. 그의 그림은 매우 진짜 같고 또 특히 음탕하므로 매우 유명해졌다. 그의 그림은 고가에 팔렸으며 많은 부유한 집 자제들과 귀공자들이 분분히 그에게 그림을 부탁하거나 구매했다. 그는 곧 부자가 되었다.

어느 날 밤 몇 명의 도적이 그가 사는 곳에 침입했다. 그가 소리를 지르자 강도는 어둠속에서 칼을 휘둘러 그의 한 손을 자르고 계속하여 몇 번 그를 찔러 그는 절명했다. 강도들은 그의 재물을 모두 가지고 도망쳤다.

나중에 광동의 이효렴(李孝廉)이 그의 친구 집에서 그가 남긴 그림을 보고 탄식하며 말했다. “이런 음화가 만약 유출되어 전해진다면 반드시 청춘남녀들이나 의지가 약한 사람들은 잘못 기로에 빠져 들거야.” 하며 이효렴은 이 그림을 친구에게서 모두 사서 불태워 버렸다. 그 결과 이효렴은 그해 진사에 붙었고 수년 후 두 아들도 차례로 과거에 붙었다.

음란한 그림(최근의 음란물이나 영화를 포함)이나 색정적인 것은 개인은 물론 사회에 대해서도 지극히 해롭다. 문화가 있거나 없거나 사람이 본 후에는 정신을 혼미하여 방탕하게 한다. 적지 않은 사람이 정이 새거나 양기가 빠지는 등 허약한 증세를 얻는다. 어떤 가정은 아내와 이별하고 어떤 사람은 목숨을 잃거나 감옥에 들어간다. 또 원대한 앞길을 망친다. 하늘아래 먹고 살 수 있는 길은 많은데 무엇 때문에 이런 짓을 구태여 하여 덕을 해치고 자기를 해치는가. 이렇게 하면 기술이 뛰어날수록 죄는 더 중하며 응보는 더욱 참혹하다!

4. 음란한 책을 써서 참혹한 보응을 받다

작가 예(艾)모는 남녀간에 애정과 음욕 일색인 음란한 원고를 쓰고 있었다. 원고를 거의 완성할 무렵 꿈에 한 신령을 보았는데 그를 매우 엄하게 야단쳤다. 그는 깬 후 매우 부끄럽게 여겨 글쓰기를 중단했다. 그러나 그 원고를 불에 태울 결심을 하지 못했다. 나중에 그의 아들이 세상을 떠나고 경제가 곤란하게 되었다. 예모는 계속 글을 써서 원고를 완성했고 서적상에게 넘겨주었다.

얼마 안 되어 그의 눈이 멀었고 손에 종기가 났으며 손가락이 구부러져 매우 고통스러웠다. 그는 그가 음서를 지어서 그런 보응을 받은 것을 알았다. 후회했지만 이미 늦어서 고통스럽게 죽었다.

5. 음란물을 팔다 참혹한 보응을 받다

강남 모 지역에 주상(朱祥)이라는 서적상이 있었다. 그는 폭리를 취하기 위해 도판으로 인쇄하고 또 음란 소설을 고가에 빌려주거나 팔았다. 그의 친구가 여러 차례 이런 음란물을 팔지 말라고 하며 악보나 재난을 당한다고 권했다.

주모는 이것은 가소롭고 낡아빠진 미신이라며 거들떠보지 않았다.

2년 후 주모의 시력이 흐릿해지더니 두 눈이 실명이 되었다. 많은 명의를 찾아가 보고 돈도 많이 썼으나 치료되지 않았다.

어느 날 서점에 화재가 발생하여 그는 눈이 멀었기 때문에 제때에 도망치지 못하고 하반신에 화상을 입었다. 근육이 썩고 악취가 진동했다 매일 고통으로 슬피 울다가 삼일 후 죽었다.

죽기 전에 그는 말했다. “나는 음란서적, 그림 등을 인쇄하고 팔았다. 비록 돈을 벌었지만 병치료 하느라 다 써버렸고 또 사람을 해친 것이 적지 않아 이런 참혹한 보응을 받는다. 정말 죄과를 받아야 한다. 당신들은 나를 교훈 삼아 다시는 덕을 해치는 음화 음서를 일을 하지 마시오.” 그의 아내는 나중에 생활이 곤란하여 돈을 빌리지 않을 수 없었고 나중에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인신매매단에게 넘어가 후사가 끊겼다.

6. 음란영화를 팔다 보응을 받다

광서(廣西) 북해시(北海市)에 황(黃)모라는 50대 인물이 있었다. 그는 돈벌이를 위해 겉으로는 테이프 복제하는 가게를 경영해지만 몰래 수단을 가리지 않고 항구 등지에서 색정적인 테이프를 대량 구매하여 빌려주고 또 대량 불법 복제하여 팔았다. 그의 보응은 뚜렷했다. 아들이 마약을 하다가 마약 수용소에 들어갔고 무수한 돈을 썼다. 딸은 고등학교 다닐 때 사회의 불량청소년과 어울려 다니다 가출했고 광동에 가서 매음을 하여 창기가 되었다. 그의 점포는 공안국에서 조사받아 영업 취소당했고 벌금형을 받았다. 장사를 할 수 없어 매우 곤란했다. 그는 매우 후회했다. 이는 음란물 영업하여 자기 일가를 해친 것이다.

(이상의 내용은 송대 담치도인(淡癡道人)의 《옥력보초(玉曆寶鈔)》의 부록자료 2004년 판본에 근거한 것임)

발표시간: 2012년 12월 18일

정견문장: http://www.zhengjian.org/node/1147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