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정중(鄭重)
【정견망】
청나라 때의 학자이자 정치인이었던 기효람(紀曉嵐)은 한당(漢唐)시기 문호들처럼 장편의 평론문이나 짧은 우화체의 철학적인 글도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에겐 사람들의 배꼽을 잡게 하는 말재주가 있었고 기록된 이야기 속에는 늘 철리(哲理)가 담겨 있었다.
한번은 그가 승덕의 피서산장에서 건륭황제를 수행했다. 건륭황제는 당시 한가하게 문진각(文津閣)에서 기효람 및 화신(和珅)과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건륭은 무엇이 생각났는지 갑자기 두 사람에게 물었다.
“경들은 천하에 어떤 사람이 가장 부자이며 어떤 사람이 가장 가난한 지 아시오?”
아첨을 좋아하는 화신이 건륭의 기분을 북돋워 주기 위해 얼른 대답했다.
“성상(聖上), 하늘 아래 왕의 땅이 아닌 곳이 없으며 왕의 신하가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신은 폐하께옵서 가장 부귀하다고 여깁니다. 가장 가난한 사람은 거지일텐데 그는 위로는 기와조각 하나 없고 아래로는 송곳 하나 박을 땅이 없습니다.”
물론 이 말이 틀린 건 아니다. 그러나 건륭은 듣고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얼굴을 기효람에게 돌려 말했다. “경이 한번 말해보시오.”
기효람은 권력이 큰 간신인 화신과 면전에서 다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말을 하지 않고 있는데 건륭이 자꾸 시키자 겨우 대답했다. “성상께 대답 올립니다. 신이 보기에 천하에 가장 부귀한 사람은 근검한 사람이며 가장 가난한 사람은 탐하는 자입니다. 오직 근검하기만 하면 집안이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어도 점차 부귀하게 될 것이옵니다. 만일 욕심이 많다면 가진 재물이 아무리 많아도 다 써버릴 것입니다.”
“아, 옳은 말이오!” 건륭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화신은 다만 현재 상황만을 고려해 건륭에게 아첨했고 높은 관점에서 입신의 규범을 고려해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냉대를 받은 것이다.
기효람의 빈부에 대한 이런 관점은 때때로 드러났다. 또 한가지 일이 있다. 기효람이 건륭황제를 모시고 피서산장 부근을 거닐다 어느 촌락을 지나게 되었다. 그 마을에는 겨우 2, 30호만 살고 있었다. 집들은 왜소하고 벽은 허물어져 몹시 가난해 보였다. 마을에 절 같기도 하고 사당 같기도 한 건물이 하나 있었다. 그 속에 신상(神像)을 모시는 방이 있었고 두 보살상 같은 것이 있었는데 하나는 (도교에서 모시는) 재신(財神)이었고 하나는 (불교에서 모시는) 약왕(藥王)이었다. 이렇게 모시는 일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었다.
건륭이 보고서 매우 신선하다고 느껴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상을 가리키며 기효람에게 말했다.
“경이 그들에게 대련을 하나 써주면 어떻겠소?”
기효람은 서로 다른 종류의 두 보살을 모신 사당에 감촉이 있어 나오는 대로 읊었다.
돈이 있어도 목숨을 사기는 어렵고 (재신을 가리킴)
가난을 고칠 약은 없구나 (약왕을 가리킴)
이 대련은 깊은 생활 철학을 가득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가난을 고칠 약은 없구나” 이 말은 근검절약으로 부자가 되는 그의 또 하나의 관점이 드러나는 실질적 예였다.
근검으로 부자가 되는 일은 중국의 전통 미덕(美德)이다. 청나라 사람 육이념(陸以恬)이 쓴 《냉로잡식(冷盧雜識)》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항주(杭州) 오산(吳山)에 어떤 사람이 노점을 하며 장사의 세 가지 비법을 팔았다. 그 세 가지란 바로 “살림이 반드시 핀다” “술을 마시되 취하지 않는다”, “이(虱)가 생기면 뿌리를 뽑을 수 있다”이었다. 이것이 비법중에 비법임을 표시하기 위해 두꺼운 종이로 밀봉하여 신중하게 바닥에 놓고서 가격을 300 전으로 해놓았다. 나중에 구매자가 집에 가서 열어보니 이 세 가지 답안은 “근검, 조산(早散), 근촉”이었다. 다시 말해 아낄 것, 술자리에서 빨리 흩어질 것, 부지런히 잡을 것이다. 비록 우스갯소리지만 뭐라 비난할 수 없었다.
기효람은 중국사람의 전통 미덕과 사회의 보편적 희망을 계승했다. 이것이 사회에서 정직한 관원이 표현한 품격이다
(근거: 청나라 시대 관련 기록에서 정리)
http://www.zhengjian.org/2016/01/19/150663.酌古鑒今:紀曉嵐論貧富.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