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찬란한 5천년 신전문화의 천고영웅인물 연구팀
만대시황제(萬代始皇帝)
백년 전쟁으로 도탄에 빠진 백성들 하루아침에 태평천하 얻게 하셨네.정도를 어지럽히던 혼란한 제자백가 일거에 재로 날려버리셨네.방치된 일들 다시 일으키고 대업을 시작하시니 모든 것 바로잡고 정통을 확립하셨네.백세(百世)의 기초 다지고 근원을 바로 잡으셨으니 만대에 찬양받을 진시황이여!
百年征戰(백년정전) 生靈塗炭(생령도탄) 一朝得太平(일조득태평)百家亂世(백가난세) 惑擾正道(혹요정도) 一炬化灰揚(일거화회양)百廢待興(백폐대흥) 大業初始(대업초시) 萬端啟正統(만단계정통)百世築基(백세축기) 本正源清(본정원청) 萬代讚始皇(만대찬시황)!
들어가는 말
4천여 년 전 전세계적인 대홍수가 인류를 거의 완전히 훼멸상태에 처하게 만들었다. 신주(神州)대지 중국에서는 창세주(創世主)의 안배 하에 요(堯), 순(舜), 우(禹) 세 성군이 나란히 인간 세상에 출현해 역사의 신기원(新紀元)을 개창했다. 이 반신문화(半神文化) 시기 중에서 화하(華夏) 자손들은 줄곧 창세주의 가호 하에서 수많은 신선(神仙), 진인(眞人)과 함께 있었다. 이들은 사람과 함께 거주하며 사람에게 각종 문화와 기예를 전수하고 인류도덕 및 사상내포를 육성하고 규범지어 인류에게 수련과 반본귀진(返本歸真)이야말로 사람이 되는 근본임을 가르쳐주었다. 이때의 인류는 도덕이 지극히 고상했으며 수련해서 신선이 된 사람이 도처에 있었다.
요, 순, 우 세 성군(聖君) 이후 중국은 또 눈 깜짝할 사이에 1천여 년이 흘러 하(夏)나라와 상(商)나라를 거쳤다.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주나라를 세운 후 서주(西周), 동주(東周)에서 진(秦)나라에 이르기까지 또 8백 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 시기 중국인들은 혼란과 분쟁이 심하면서도 풍부하고 다채로운 중요한 역사시기를 거쳤다. 특히 춘추전국시대 및 진나라를 건립하는 과정에 오패(五霸)와 칠웅(七雄) 대진(大秦)의 통일은 ‘무력으로 천하를 정벌하고 왕이 나라를 다스림’을 풀어내 인간 세상에 문화를 전파하는 수단이 되었다. 도가와 유가가 세상에 나타나고 백가가 분분해져 반본귀진과 수련득도가 바로 사람이 되는 근본임을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우주 ‘성주괴멸(成住壞滅)’의 법칙은 인류도덕이 점차 아래로 미끄러지게 했고 이때 사람들의 도덕수준은 삼황오제 시기와 비교하면 차이가 상당히 심했다. 매번 인류사회가 이렇게 도덕이 패괴한 때에 처할 때마다 창세주는 신(神)・불(佛)이 인간 세상에 내려가 법을 전하고 도를 말하게 안배해 인류도덕을 바로잡고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고 반본귀진하게 했으며 아울러 인연 있는 선비들이 천국으로 되돌아올 수 있게 했다. 노자는 함곡관에서 서쪽으로 나가며 오천 자의 진언(眞言)을 남겨 이번 차례 인류에서 세상을 벗어나는 도가 수련경전을 명백히 논술했다. 한편 공자는 여러 나라를 두루 다니며 중용의 도를 설명했고 중국천년유가를 수정해 입세(入世)와 위인(爲人, 사람됨)의 본장이 되게 했다.
하지만 음양과 선악에는 상생상극한다. 전국시대 말기에 제자백가가 일제히 나타나 세상을 혼란시키고 바른 이치가 불분명해져 사상이 혼란해진데다 수백 년의 전쟁이 더해져 사람의 심사(心思)를 고정시켰다.
진왕(秦王) 영정(嬴政, 훗날의 진시황)은 천시와 지리에 순응하고 인화에 부합해 일순간에 백가지 혼란을 다스리고 일시에 방치되었던 온갖 일들을 일으켜 강산을 통일하고 근원을 바로잡아 중국 천고(千古)에 정도(正道)를 지키고 좋은 기초를 다져 만고(萬古)에 불후의 업적을 세웠다.
제1장 분쟁국면 신전(神傳) 문화
세계의 각 민족은 역사 속에서 모두 신령(神靈)을 깊이 믿고 선과 악에는 보응이 따르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나쁜 일을 하지 않도록 자신을 통제하고 사회의 도덕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다. 사람들의 도덕이 아래로 미끄러지고 신에 대한 신앙이 약해짐에 따라 신 역시 사람에게 보여주는 신적(神跡)을 감소시켰다.
중국에서는 춘추시대에 노자(老子)가 세상에 나와 도(道)를 전했고, 다른 나라에서는 석가모니, 예수가 잇따라 출현해 이번 차례 인류가 부처란 무엇인지, 도란 무엇인지, 신이란 무엇인지 알게 했으며 어떻게 해야 수련을 통해 반본귀진하고 천국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지 알게 한 동시에 인류도덕이 되돌아 올라가게 했다.
이 단락의 역사를 거친 후 춘추오패가 번갈아 일어나고 전국칠웅이 패권을 다투며 진시황이 6국을 멸망시키고 천하를 통일한 것 역시 ‘무력으로 천하를 정복하고, 왕이 나라를 다스리는[兵征天下,王者治國]’ 이치를 풀어낸 것임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1. 도가·유가의 출현과 백가의 혼란
춘주시대 여러 나라들이 전쟁하며 세상이 어지럽고 혼란해 사람들이 혼란한 시국에 미혹되었을 때 창세주 및 뭇 신들(眾神)은 조용히 한 분의 대각자를 세상에 내려 보냈으니 바로 노자(老子)다. 성은 이(李), 이름은 이(耳), 자(字)는 담(聃)이다. 노자는 법(法)을 전하고 도(道)를 설파하는 한편 도가 수련의 경전 저작인 《도덕경(道德經)》을 남겼다.
노자는 인간 세상에 내려와 사람들을 제도하면서 사람이 세상에 온 가장 근본적인 목표가 바로 반본귀진(返本歸眞)임을 알려주었다. 노자 《도덕경》은 불과 5천 글자에 여래(如來) 층차에서 ‘도(또는 법)가 만물을 낳는(道生萬物)’ 진기(眞機) 및 일정한 우주공간 속의 상생상극 기제를 설명했고 수련인들에게 인간 세상에서 무위(無爲)의 경지에 도달해야만 비로소 도를 얻을 수 있고, 비로소 공성원만(功成圓滿)할 수 있으며, 비로소 신통을 두루 지니고 하지 않음이 없는 경지[無不為]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무형의 대도(大道)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지 않음이 없는 것으로, 도를 따르면 번창하고 도를 거스르면 망한다. 노자는 왕자(王者)의 도와 유가사상 및 용병(用兵)의 지극한 이치 등을 불과 몇 마디 말 속에 모두 담아냈다.
노자는 인간 세상의 험악함을 알고 있었고 또 후세에 장차 우주대법(宇宙大法)이 널리 전해질 것임을 아주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단지 5천 자 《도덕경》만을 남기고 총총히 서쪽으로 떠났다. 오직 한 제자에게만 전수하는 도가의 단전(單傳) 관행에 따라 노자는 석가모니나 예수처럼 중생을 널리 제도하고 불법(佛法)을 널리 전하지 않았다. 《도덕경》은 후인들에게 도가 수련이란 무엇인지 알게 했다. 이천여 년간 중국 및 세계 여러 나라들은 모두 《도덕경》에서 치국안민(治國安民)과 사람이 처세하는 정면적인 내포를 받아들여 왔다.
중국의 노자와 같은 시기 인도 아대륙에서는 석가모니 부처가 탄생했다. 그 후 500년이 흐른 후 서아시아 이스라엘에 한분의 대각자인 예수그리스도가 탄생했다. 노자는 물론이고 석가모니와 예수는 모두 인간 세상에 전생(轉生)해 법을 전하고 인류를 구원하며 수련문화를 다져주었다. 그 중요 원인은 바로 인류도덕이 쇠퇴하기 시작하는 것을 통찰한 창세주께서 마침내 천추만대(千秋萬代)의 안배를 하셨기 때문이다.
도가 수련문화의 가장 낮은 층에서 공자 역시 천운에 따라 태어났다.(기원 전 552년) 그는 학생들을 이끌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고 유세하면서 ‘중용지도’(中庸之道) 및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라는 입세위인(入世爲人, 세상에 들어가 사람이 되는)의 도리를 설파했다. 공자는 하, 상 및 서주의 예의제도를 깊이 연구했고 위로는 요·순 임금부터, 아래로는 진목공(秦穆公)에 이르기까지 선대 제왕들이 나라를 관리하고 다스린 역사와 문화를 정리해 편집했다. 후인들은 이를 가리켜 유가의 육경(六經)이라 한다.
노자가 설파한 것이 수련방법이라면, 공자가 사람들에게 남겨준 것은 오직 한 가지 사람이 되는 방법으로 바로 중용사상이다. 도법(道法, 도가의 법)과 유리(儒理, 유가의 이치)가 세상에 출현하자 제자백가(諸子百家)가 일제히 나타나 정(正)과 사(邪)가 서로 섞이고 참[眞]과 거짓[假]을 가리기 어려워졌다. 춘추전국시대에는 도가와 유가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일가(一家)를 이뤘다. 예를 들면 병가(兵家), 묵가(墨家), 법가(法家), 종횡가(縱橫家), 음양가(陰陽家), 명가(名家), 의가(醫家), 농가(農家), 잡가(雜家), 서화가(書畵家) 등 주요하게는 10여 개의 가가 있었고 또 안자(晏子), 손자(孫子), 관자(管子), 장자(莊子), 순자(荀子), 맹자(孟子), 묵자(墨子), 귀곡자(鬼谷子), 한비자(韓非子) 등의 제자(諸子)가 있었다.
물론 이들 중 일부는 인간 세상의 문화를 풍부하게 하기 위해 파견되어 내려왔지만 또 많은 이들이 정도(正道)와 정법(正法)의 전파를 교란하고 파괴하기 위해 왔다. 때문에 진시황은 단지 무력으로 6국을 정복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사상 방면에서 근원을 깨끗이 하고 바로잡아 중화 신전문화를 보호할 필요가 있었다.
중국에서 춘추 말기 군웅이 함께 일어나고 백가가 쟁명하면서 노자와 공자가 출현하던 시기에 창세주께서는 또 유럽에 고대 그리스 문명이 흥기하도록 안배하셨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탈레스, 피타고라스, 데모크리토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및 아리스토텔레스 등 일련의 철학자들이 출현했다. 동서방의 이들 지자(智者)들은 이번 차례 인류의 양대 문명체계를 창조했다.
선지자 소크라테스는 고대 그리스 문명을 개창했다. 신이 전한 고대 그리스 문명은 이후 로마제국에 크나큰 영향을 끼쳤고, 영웅 카이사르 대제(大帝 역주: 엄밀히 말하면 황제가 아니라 종신집정관)가 지중해 및 유럽 대륙을 정복할 때 신이 전한 고대 그리스 문명을 다시 지중해 주변지역 및 유럽 내 여타 지역으로 전파시킴으로써 전체 서양문명의 기초를 다져주었다.
카이사르 대제가 남긴 문치(文治)와 무공(武功)은 지구 전체 역사라는 큰 무대에서 AB중 B의 역할을 담당했으며 예비 역할을 완성하는 동시에 바로 역사가 되었다. 이후 1천여 년간 유럽의 사상, 철학 및 문화는 발전에 공백이 있었다. 그러다 13세기 초 르네상스 여명 직전의 유럽에 세계 제왕 칭기즈칸 가족이 이끈 대군이 충격을 주고 나서야 유럽의 사상과 문예는 다시 부흥하고 깨어나게 된다.(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언급한다.)
이 단락의 전체 역사를 보면 마치 중화의 도(道)유(儒)가 세상에 전해져 신에 대한 바른 신앙[正信]을 수립하고 진시황과 한무제가 신전문화 중의 한 판본을 발전시키고 드높이며 보호한 것처럼 보인다.
진시황은 황제이자 천자(天子) 즉 하늘의 아들이란 고귀한 신분으로 새로운 왕조를 개창하는 막중한 임무를 떠안았다. 인간 세상의 모든 이치[理]와 법(法), 도(道)는 모두 진시황에 의해 선택되고 진시황에 의해 사용되기 위한 것이다. 후세 사람들은 늘 진시황의 사상내원이 대체 법가에서 온 것인지 아니면 유가에서 온 것인지 아니면 도가나 음양가에서 온 것인지 확실히 알고 싶어 하지만 좀처럼 알 길이 없어 한다. 사실 이들 모든 문파와 사상은 전부 ‘오직 그만이 사용하고(唯其所用)’, ‘그에게 선택지로 제공된(供其選擇)’ 것에 불과하다.
진시황이 독창적으로 창립하고 민중을 교화하기 위해 사용한 법률체계는 상앙(商鞅) 등 소위 선진(先秦) 법가(法家)의 ‘법(法)’과는 사실상 동일한 체계가 아니었다. 이외에도 제자백가의 출현은 또 진시황이 장차 신전문화의 새로운 시대를 개창하도록, 각각의 천국(天國)체계들이 모두 신주(神州, 중국)와 인연을 맺고 제때에 자신들의 문화, 사상, 특징을 오천 년 중국역사라는 대무대로 가지고 들어와 선택받도록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2. 무력으로 천하를 정복하고 왕이 나라를 다스리다
‘무력으로 천하를 정복하고 왕이 나라를 다스린다[兵征天下,王者治國]’는 이치에 따라 정의의 전쟁이 악인(惡人)과 악세력(惡勢力) 및 악한 국가를 소멸시키는데 이용할 수 있다. 가령 황제(黃帝)가 치우(蚩尤)를 정벌하고, 상나라 탕임금이 걸(桀)을 정벌하고, 주나라 무왕이 상나라 주(紂)왕을 정벌하는 등이다. 인류가 점차 패괴(敗壞)됨에 따라 천재인화(天災人禍)와 전쟁 등이 갈수록 더 빈번해졌다. 춘추전국 시대와 대진(大秦)이 천하를 통일한 시대는 바로 이 규칙을 풀어내는 동시에 규범화시켰다.
사서에 따르면 하나라 때는 제후들이 아주 많아서 만국(萬國)이라 칭했지만 상나라에 이르면 3000개, 주나라는 800개, 춘추시대에 이르면 100여 개 국가로 줄어든다. 하지만 춘추와 전국시대에는 전쟁이 더욱 빈번해졌고 규모도 더욱 커졌다. 《좌전(左傳)》에 등장하는 춘추시기 국가는 모두 140여 개 정도다. 그러다 많은 소국들이 병탄됨에 따라 최후에는 비교적 강력한 7개 국가, 즉 진(秦), 제(齊), 초(楚), 연(燕), 한(韓), 조(趙), 위(魏)가 남았고 그 외 송(宋), 월(越) 등 몇몇 작은 나라들만 남게 되었다. 이후 역사는 후세에 소위 ‘전국시대’라 부르는 시기로 접어들게 된다. 이 시기에 전쟁은 규모가 한층 더 커졌고 전략, 외교, 합종, 연횡을 통해 소국의 분쟁이 대국 간의 전쟁으로 번지곤 했다.
진시황은 천시(天時)에 따르고 지리(地利)를 얻어 큰바람이 구름을 날려버리는 기세로 중국을 통일하고 춘추전국시대를 종결시켰다. 이 단락의 역사는 겉으로 보면 무척 복잡하고 어지러우며 무질서하게 보이지만, 신은 이 전쟁을 이용해 세상 사람들이 정의를 지키고 도를 존중하며 하늘을 공경해 분쟁을 처리하도록 가르쳤다. 또 진시황의 천하 통일이란 결말을 통해 사람들에게 하늘의 뜻을 알게 하고 하늘의 뜻은 거스를 수 없다는 이치를 깨닫게 했다.
(계속)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152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