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혜흔(慧欣)
【정견망】
시가(詩歌)를 언급하면 많은 이들이 성당(盛唐)시기 대시인 이백(李白)을 떠올리곤 한다. 이백은 자(字)가 태백(太白)이고 호가 청련거사(青蓮居士) 또는 ‘적선인(謫仙人)’으로 그의 작품은 깊고 두터운 공력과 비범한 조예로 후세인들에 의해 시선(詩仙)으로 불렸다.
《신당서》에 따르면 이백은 흥성황제[興聖皇帝, 양무소왕(涼武昭王) 이고(李暠)를 말하는데 나중에 당 현종 때 황제로 추존되었다]의 9세손이다. 이 말에 따른다면 이백은 당나라 황실의 종친이 되며 특히 태종 이세민과 같은 항렬의 족제(族弟)가 된다. 그 때문인지 그의 일생은 당나라 황실과 천 갈래 만 갈래 연계되어 있다.
당 현종 천보(天寶) 14년(755년) 안사의 난이 발발하자 이백은 처자식을 데리고 남쪽으로 피난길에 나서 여산(廬山) 병풍첩(屏風疊)에 은거했다. 당시 영왕(永王) 이린(李璘 현종의 16째 아들)이 동쪽으로 순행하다 이백이 여산에 은거한 것을 알고는 여러 차례 초빙했다. 이백은 몇 차례나 주저하다가 끝내 산을 내려가 영왕부의 막료가 되었다. 또 《영왕동순가(永王東巡歌)》를 써서 공을 세워 나라에 보답하려는 뜻을 펼쳐보였다. 하지만 이 순행은 영왕 이린이 황제의 허락 없이 독단적으로 나선 행동이라 당시 조정에서 모반으로 인정되었고 이백 역시 모반죄에 연루되어 야랑으로 유배당하는 처벌을 받았다.
다행이 이백은 야랑 유배지로 가던 도중 사면을 받았고 상원 원년(760년) 강하(江夏 지금의 호북성 무창)에서 심양(潯陽 지금의 강서성 구강)으로 돌아와 여산에서 노닐었다. 이때 한편의 시를 남겨 자신과 함께 여산에 갔던 벗 노허주(盧虛舟)에게 주었다. 이 시는 이백이 관료사회의 험악한 모습을 간파하고 신선을 찾고 도를 방문하면서 명산을 유람하고 싶다는 은일(隱逸)의 마음을 표현했다.
이 시에 나오는 노허주는 자가 유진(幼真)으로 범양(範陽 지금의 북경 대흥현) 사람이다. 숙종 때 전중시어사(殿中侍禦史)를 지내 노시어라고도 불리는데 전하는 말로는 “청렴을 지키는 것을 영예”로 삼았다고 한다. 이 시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여산요기노시어허주(廬山謠寄盧侍禦虛舟)–여산을 노래하여 시어사 노허주에게 부치다》
나는 본래 초나라 미치광이라 봉황노래 부르며 공자를 비웃었지.푸른 옥 장식 지팡이 손에 들고 이른 아침 황학루와 작별하고는,오악도 멀다 않고 신선 찾아서 한평생 명산에 들어가 노닐기를 좋아했네.여산은 남두성 부근에서 빼어나게 솟아 구첩 병풍에 비단구름 펼쳐져 있는데,그 그림자 명호에 비쳐 검푸른 빛이나네,금궐 앞에는 두 봉우리 펼쳐져있고 은하수는 삼석량에 거꾸로 걸렸구나.향로봉 폭포와 멀리 서로 마주 보는데 굽어 도는 절벽과 겹겹의 봉우리 하늘로 치솟았네.
我本楚狂人(아본초광인) 鳳歌笑孔丘(봉가소공구)手持綠玉杖(수지녹옥장) 朝別黃鶴樓(조별황학루)五嶽尋仙不辭遠(오악심선불사원) 一生好入名山遊(일생호입명산유)廬山秀出南斗傍(여산수출남두방) 屏風九疊雲錦張(병풍구첩운금장)影落明湖青黛光(영락명호청대광) 金闕前開二峰長(금궐전개이봉장) 銀河倒掛三石梁(은하도괘삼석량)香爐瀑布遙相望(향로폭로요상망) 迥崖遝障淩蒼蒼(형애답장능창창)
푸른 산 빛과 붉은 노을 아침 해에 비치는데 나는 새도 드넓은 오나라 하늘엔 이르지 못하네.높이 올라 천지 장관 둘러보니 장강은 망망한데 흘러가선 오지 않네.만 리 누런 구름 바람에 움직이고 아홉 줄기 흰 물결은 설산에서 흘러오네.여산 노래 짓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흥이 여산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라.한가로이 석경(石鏡 거울처럼 모습을 비춰주는 바위) 보니 마음이 맑아지는데 사령운 다니던 곳 푸른 이끼로 덮였네.일찍이 환단을 복용해 세속 정 사라지고 마음이 거문고 소리처럼 조화로워 처음으로 도를 이뤘네.멀리 비단 구름 속 신선을 보니 부용을 손에 들고 옥경에서 조회하네.한만(汗漫)과 구해(九垓) 위에서 만나기로 먼저 약속했으나노오를 맞이해 태청에서 마음껏 노닐고 싶어라.
翠影紅霞映朝日(취영홍하영조일) 鳥飛不到吳天長(조비부도오천장)登高壯觀天地間(등고장관천지간) 大江茫茫去不還(대강망망거불환)黃雲萬里動風色(황운만리동풍색) 白波九道流雪山(백파구도류설산)好爲廬山謠(호위여산요) 興因廬山發(흥인여산발)閑窺石鏡清我心(한규석경청아심) 謝公行處蒼苔沒(사공행처창태몰)早服還丹無世情(조복환단무세정)琴心三疊道初成(금심삼첩도초성)遙見仙人彩雲裏(요견선인채운리) 手把芙蓉朝玉京(수파부용조옥경)先期汗漫九垓上(선기한만구해상) 願接盧敖遊太清(원접노오유태청)
이 시에서 앞의 6구절은 서곡(序曲)에 해당한다. 여기서 “나는 본래 초나라 미치광이라/봉황노래 부르며 공자를 비웃었지.”는 첫 구절은 전고를 사용했다. 초나라 미치광이는 춘추시대 초나라의 육통(陸通)을 가리키는데 자(字)가 접여(接輿)다. 《논어》〈미자〉에 따르면 공자가 초나라에 갔을 때 접여가 그 앞을 지나며 “봉황아, 봉황아, 어찌하여 덕이 쇠했는가! 지난 일을 어쩔 수 없지만 앞날은 좇을 수 있으리라. 그만 두어라, 그만 두어라. 지금 위정자들이 위태롭도다.”라면서 벼슬에 연연하는 공자를 비웃은 적이 있다.
‘봉가(鳳歌 봉황가)’란 단어에는 깊이가 있고 내함이 아주 깊다. 여기서 말하는 봉황은 속세의 새가 아니라 선계(仙界)의 신조(神鳥)로 그것이 울면 사람의 마음을 계발하는 작용을 한다. 시속에서 이백은 자신을 육접여와 비교하면서 인생의 길을 잘못 걸었고 지금에 와서야 관료사회 벼슬길의 진실을 간파했음을 표현한 것이다.
이어서 시인은 짙고 무거운 필채로 “푸른 옥 장식 지팡이 손에 들고/이른 아침 황학루와 작별했다”고 했다. 다시 말해 신선이 사용하는 푸른 옥을 새긴 지팡이를 들고 이른 새벽 황학루를 떠나 풍치 좋은 여산으로 온 것이다. 먼저 산의 경치를 조감하며 “여산은 남두성 부근에서 빼어나게 솟아/ 구첩 병풍에 비단구름 펼쳐져 있는데/ 그림자 명호에 비쳐 검푸른 빛이 나네”라고 노래했다.
고대인들은 천상의 별자리를 지상의 주(州)나 지역에 대응시켰는데 여산일대는 바로 남두성에 해당한다. 구첩 병풍은 여산의 오로봉(五老峰) 동북쪽 구층 구름병풍을 가리킨다. 이 세 구절의 의미는 여산의 수려함이 빼어나 구름 속으로 우뚝 솟았고 푸르른 수목과 산꽃이 만발해 구층 구름 병풍이 마치 비단으로 수를 놓은 것처럼 펼쳐지면서 호수와 산이 서로를 비춰 아름다운 경치를 더욱 부각시킨다는 뜻이다.
앞에서 여산의 웅장한 아름다움을 거칠게 묘사했다면 다음에는 세부묘사에 해당한다. “금궐 앞에는 두 봉우리 펼쳐져있고 / 은하수는 삼석량에 거꾸로 걸렸구나 / 향로봉 폭포와 멀리 서로 마주 보는데 / 굽어 도는 절벽과 겹겹의 봉우리 하늘로 치솟았네.”
여기서 금궐, 삼석량, 향로봉, 폭포는 모두 여산의 절경들이다. 이 4구절은 위로 올려다보는 각도에서 묘사하고 있다. 금궐 앞에는 수직으로 우뚝 선 두 개의 봉우리가 있고 삼석량에는 은하수 같은 폭포가 걸려 아래로 날아가듯 떨어진다. 또 반대편에 향로봉 폭포와 마주 보는데 그곳에는 굽어 도는 절벽과 겹겹의 봉우리가 하늘을 찌를 듯 치솟았다.
이어서 다시 전체 장면을 묘사하면서 “푸른 산 빛과 붉은 노을 아침 해에 비치는데 / 나는 새도 드넓은 오나라 하늘엔 이르지 못하네.”라고 했다. 아침 해가 처음 떠오를 때 하늘 가득 붉은 노을이 푸른 산 빛과 함께 비춘다. 산세가 너무 험준해서 나는 새조차 닿지 못하는데 정상에 올라 오나라 하늘을 바라보면 그야말로 아득해서 끝을 알 수 없다. 시인은 붓을 다양하게 변화시켜 돌고 돌아 특별한 운치를 표현하면서 산의 매력과 수려함을 생생하게 표현해내며 사람을 끌어들인다.
그 후 시인은 높고 먼 곳을 조망하며 서까래처럼 큰 붓으로 장강의 웅장한 기세를 표현한다. “높이 올라 천지 장관 둘러보니 / 장강은 망망한데 흘러가선 오지 않네 / 만 리 누런 구름 바람에 움직이고 / 아홉 줄기 흰 물결은 설산에서 흘러오네.”
여기서 아홉 줄기란 장강의 흐름이 심양에서 9갈래 지류로 나눠지는 것을 말한다. 설산(雪山)이란 흰 물결이 세차게 솟아나 겹쳐진 것이 마치 산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이 4구절의 의미는 여산의 높은 봉우리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오직 도도한 장강만이 흘러와서는 직접 동해로 들어가 되돌아오지 않는다. 만 리에 걸쳐 있는 노란 구름이 바람에 흔들리다 하늘색은 순식간에 변화하고 망망한 아홉 줄기 흰 물결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마치 설산처럼 높다.
시인은 이제 호방한 정서로 붓을 움직여 장강의 경치와 풍경을 묘사하니 이 얼마나 웅장하고 얼마나 큰 장관인가! 대자연의 아름다움이 대시인의 무한한 시정(詩情)을 격발시켰다.
“여산 노래 짓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 흥이 여산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라 / 한가로이 석경(石鏡) 보니 마음이 맑아지는데 / 사공(謝公 사령운) 다니던 곳 푸른 이끼로 덮였네.”
여기서 석경은 전설에 따르면 여산 동쪽면의 둥근 바위로 밝고 투명해서 사람모습을 비춰준다고 한다. 사공(謝公)은 남조 송(宋)나라의 사령운을 말하는데 일찍이 팽려호에 들어왔다가 여산에 올라 ‘반애조석경(攀崖照石鏡 벼랑에 기어올라 석경에 비춘다)’(《사강락집(謝康樂集)·입팽려호구(入彭蠡湖口)》)이란 구절을 남긴 적이 있다.
당시 이백은 영왕 이린 사건으로 큰 좌절을 겪은 후 여산에 다시 올라 감개가 무량했다. 이 4구절의 의미는 자신이 여산에 관한 노래를 즐겨 짓는 이유는 여산으로 인해 흥이 일어났기 때문이며 한가로이 밝게 비추는 석경을 보니 마음이 상쾌해졌다. 전에 사령운이 다녔던 곳에는 지금 이미 푸른 이끼로 덮여 있다. 이는 인생무상과 성대한 일이 다시 이뤄지기 어려움을 느끼게 한다.
“일찍이 환단을 복용해 세속 정 사라지고/ 마음이 거문고 소리처럼 조화로워 처음으로 도를 이뤘네.”
여기서 환단이란 도가에서 말하는 소위 백일승천(白日昇天)하는 선단(仙丹)이다. 금심삼첩(琴心三疊)은 도가수련의 공부가 아주 깊어져 마음과 신(神)이 기쁜 경계에 도달한 상태를 말한다. 이 두 구절의 의미는 시인이 조금만 더 일찍 세상사를 간파해 도를 얻고 단을 복용하며 수련해서 신선이 되어 올라가 세속을 벗어나 마음과 심이 기쁜 경계에 도달하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것이다.
“멀리 비단 구름 속 신선을 보니 / 부용을 손에 들고 옥경에서 조회하네.”
여기서 옥경(玉京)은 도가에서 말하는 원시천존(元始天尊)의 거처다. 시인은 멀리 신선들이 비단 구름 속에서 연꽃을 손에 들고 옥경으로 날아가는 것을 본다. 이백이 기쁨의 술을 마시는데 이 장면은 마치 술에 취한 후의 꿈속에서 본 것 같다.
“한만(汗漫)과 구해(九垓) 위에서 만나기로 먼저 약속했으나 / 노오를 맞이해 태청에서 마음껏 노닐고 싶어라.”
이 구절은 《회남자(淮南子)》 〈도응훈(道應訓)〉에 실린 일화를 인용한 것이다. 진시황 때 박사를 지낸 노오가 신선을 만나 두루 세상을 돌아다니다 우연히 괴선(怪仙 기이한 신선)을 만났다. 그가 자신보다 훨씬 더 크고 넓은 세상을 다닌 것을 알게 된 노오가 그와 사귀려했지만 “나는 구해 밖에서 한만과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오래 머무를 수 없다.”면서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졌다. 노오는 그와 비교하면 자신은 하늘을 나는 고니와 땅에서 기는 벌레라면서 자신의 견문이 좁았음을 자책한다.
여기서 한만은 끝이 없어 알 수 없다는 뜻인데 여기선 신(神)을 비유한 것이다. 구해(九垓), 구천(九天), 태청(太淸)은 가장 높은 천공(天空)을 말한다. 이백은 이 시에서 자신을 괴선과 비교하고 노허주를 노오와 비교한다. 즉 노허주와 함께 신선의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의미다. 두 구절의 의미는 나 이백이 구천의 밖에서 만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노허주를 청해 함께 선경에 가서 노닐고 싶다는 뜻이다. 이에 이르러 전체 시가 문득 끝나는데 여운이 아주 깊다.
2020년 션윈예술단(神韻藝術團) 전세계 순회공연 중에서 션윈예술가들이 아름다운 춤과 노래로 이백의 이 단락 시를 무대에 올렸다. 삼차원 동영상과 함께 대형 스크린에 이 장면이 관중들 앞에 펼쳐지며 무한한 공간과 비할 수 없이 아름다운 감수를 주었다. 무용이 끝난 후에도 한동안 여운이 남을 정도였다.
사람들은 흔히 “시는 소리가 있는 그림이고 그림은 형체가 있는 시다(詩是有聲畫,畫是有形詩)”라고 한다. 가무(歌舞)는 더욱 입체적이며 동작과 소리가 있는 그림이다. 망망한 천지와 일체의 유형(有形)과 무형(無形)의 삼라만상, 어느 한 사람 또는 한 집단의 일생 내지는 여러 세대의 경험은 모두 시인이나 화가 무용 창작자들의 창작원천이 된다.
천상의 구름과 노을, 지상의 산과 하천, 다양한 식물과 동물, 아침햇살과 석양, 비바람과 눈보라, 생로병사, 속세의 화려함은 모두 우주의 큰 지혜와 큰 법칙에 순응해 조화로운 본진(本真 원모습)을 품고 있다. 시인, 화가, 무용가들은 이를 관찰하고 음미하거나 이해한 후 붓이나 무용을 통해 자신의 감수를 표현해낸다. 화가는 붓끝에서 온갖 변화를 만들어내고 시인은 또 붓으로 웅건하고 생동적인 묘사를 하며, 무용수는 형신(刑神)을 겸비한 신운(神韻)과 신법(身法)을 펼쳐내는데 이들이 공동으로 추구하는 것은 바로 만물의 신운(神韻)이다.
이를 통해 본다면 시, 회화, 무용예술은 각기 다른 형식으로 사물 공통의 의취(意趣 의지와 취향) 정수의 근본을 추구하며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천지의 큰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다시 말해 삼자는 서로 비슷한 정수와 의취의 근원을 갖고 있다.
“사람에게는 신진대사가 있고 오고감이 고금을 이룬다(人事有代謝,往來成古今)”고 한다. 인생은 무상하고 세상일은 끊임없이 변화하기에 소위 번화(繁華)란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연기에 불과하다. 오직 반본귀진(返本歸真)이야말로 인생의 진리다.
무용과 시가를 통해 아주 오랫동안 먼지에 덮여있던 사람들의 기억을 일깨우고 사람들의 내심 깊은 곳에 자리한 회귀(回歸)의 갈망을 일깨워준다. 이것이야말로 션윈예술단 예술가들이 이 혼란한 시기에 인류에게 주는 가장 소중한 선물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57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