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덕혜
【정견망】
중국 역사상 역대로 신선을 만났다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오늘 소개할 이야기는 청나라 때 절강성에서 전해오는 민간전설이다. 청나라 건륭 연간 절강 석문현(石門縣) 주천(洲泉)에 오맹거(吳孟舉)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집이 부자라 좋은 밭이 천 무(畝)나 되었고 또 관직이 내각중서(內閣中書 역주: 종7품으로 직급은 낮지만 내각에서 문서를 다루는 요직)에 이르러 부귀영화를 두루 갖췄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일심으로 수련을 동경했으며 선인이 도를 전해주기를 갈구했다.
오맹거는 소주(蘇州) 민간에서 사월 초파일 부처님 탄신일을 ‘신선절(神仙節)’로 여긴다는 말을 들었다. 전설에 따르면 매년 이날 하늘의 신선들이 속세에 한번 놀러 내려와서 인간세상을 관찰하고 인연이 있는 사람을 점화해준다는 것이다.
불탄일(佛誕日)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석가모니가 4월 8일 탄생했다는 것이고(소승불교에서는 석가는 보름달 밤에 출생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둘째는 미래불 즉 미륵불조(彌勒佛祖)가 4월 8일에 탄생한 후 대법(大法)을 전해 중생을 널리 제도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가 중국에 전해들어온 최초에는 모두 사월초파일을 미륵불의 탄생일로 삼았다. 나중에 전해지다가 변하여 이날이 석가모니의 탄생일로 변했다. 아마 신선들이 이 날을 택하여 속세에 내려와 구경하며 불타의 탄생을 예시하거나 기념한다는 함의를 지녔을 것이다.
그래서 4월 8일 온 소주는 매우 들떠 있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말했다. “여태껏 아무도 이 날 신선을 본적이 없고 다만 현지 속담에 ‘신선을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지만 부귀는 삼천 년을 간다’는 말을 이용해 길하다고 할 뿐이다.”
이렇게 신선에 대해 정면적인 설과 반대하는 두 가지 설이 있었는데 오맹거는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신선의 존재를 믿기로 했고 신선이 4월 8일 세상에 내려온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그해 4월 8일 일찍이 소주에 도착했다. 일산(日傘)을 펴지도 않았고 다리에 앉지도 않고 병사 넷만 데리고 즐겁게 거리 유람을 나갔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그는 들떠 있었는데 그는 속으로 자기가 신선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날 온 거리에는 각종의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무술을 보여주며 고약을 파는 사람도 있고 ‘연화락(蓮花落 역주: 한국의 판소리와 비슷하게 간단한 반주에 맞춰 노래하는 것)’을 부르며 예능을 보여주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이 계곡물처럼 쉬지 않고 밀려왔으니 정말 시끌벅적한 신선절이었다. 오맹거는 이런 시끄러운 경치를 감상한 생각이 없었고 유심히 왕래하는 행인의 행동거지를 관찰하며 그중 비범한 사람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오맹거가 골목을 지나갈 때 어느새 팔리교(八裏橋) 길목에 와 있었다. 다리를 올라가려고 생각했을 때 문득 다리 위에 남루한 옷을 입은 화자(花子)라는 사람이 손에 부서진 지팡이를 들고 흔들흔들하며 다리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화자는 입에 동전을 하나 물고 있었는데. 자기가 숨을 쉬는데 따라 헉헉하는 소리를 내었다. 오맹거는 화자의 모양과 거동에 이끌렸다. 그러다 그는 갑자기 마음이 활짝 열려 얼른 다가가서 그를 향해 깊이 읍을 했다.
화자는 연신 예의를 갖추고 놀라며 말했다.
“괴상하구나, 괴상해! 누가 당신이 당당한 내각중서 어르신임을 모르겠습니까? 어찌하여 저같이 궁핍한 사람에게 읍을 합니까?”
오맹거가 희색을 띠며 말했다.
“삼가 묻겠습니다. 어르신께서 여동빈 선인이 아니십니까?”
화자는 “어찌 그런 말을 하시는게요?”라고 물었다.
오맹거는 손으로 화자 입속의 동전을 가리키며 말했다.
“입(口)에 동전을 물고 동전에 구멍(口)이 있으니 口자가 두개 겹치면 바로 여(呂)가 됩니다. 그러니 어르신이 팔선 중 여동빈이 아닙니까!”
화자는 그가 자신의 내력을 알아낸 것을 보고 말했다.
“원래 그랬군. 오늘 만난 기념으로 몇 마디 싯구를 주지.”
하면서 다 헤진 죽간으로 다리 난간에 몇 구절의 시를 써주었다.
내가 소주에 몇 십 년을 있었지만아무도 내가 신선인 줄 몰랐네.오직 주천의 오맹거만이내가 신선임을 알았지만 나의 인연은 아니구나.신주선계(神州仙界)에선 청빈을 좋아하나니절대 벼슬이랑 돈을 탐내지 마시게.
我在蘇州幾十年 아재소주기십년無人知我是神仙 무인지아시신선唯有洲泉吳孟舉 유유주천오맹거知我是仙非我緣 지아시선비아연神州仙界愛清貧 신주선계애청빈切莫貪圖官和錢 절막탐도관화전
화자가 쓰기를 마치고 오맹거가 겨우 한번 다 읽었는데 글자가 사라지더니 화자도 사라졌다. 이때 오맹거는 더욱 그가 신선 여동빈임을 확신했다. 그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신선이 써 준 시를 음미하며 생각했다 ‘지아시선비아연(知我是仙非我緣)’이란 바로 비록 그가 신선임을 알지만 그와 사도의 연분은 없다는 뜻이구나.
“신주선계(神州仙界)에선 청빈을 좋아하나니”에서 이는 내가 너무 부귀해서 세간의 영화를 포기해야만 비로소 신선의 중시를 받는다고 여겼다. 그래서 오맹거는 자신의 깨달음에 따라 얼마 후 관직에서 물러나 주천으로 돌아왔다. 이곳에서 밭과 재물을 고향 사람들에게 다 나누어주었다. 자신은 책을 쓰며 청빈한 만년 생활을 지냈으며 사후 주천 서쪽의 마분두(馬墳頭)에 장사지냈다.
나중에 어떤 사람이 오맹거의 묘를 도굴했는데 무덤 속에서 귀중품이 전혀 부장되어 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 오맹거는 만년에 확실히 부귀영화를 포기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으로 생각하면 그가 부귀영화를 포기하여 신선을 만난 일을 더욱 믿을 수 있다.
중화 신주는 예부터 지금까지 신불(神佛)에 대한 신앙이 모두 절대적인 주류였다. 역대로 무수한 사례 역시 신불이 진실로 존재함을 증명한다. 오맹거가 신선을 만난 전설은 그중 한 가지 예일 뿐이다. 중화문화는 정말로 신전문화가 아닌가. 중공은 무신론으로 신불을 철저히 부정하고 신에 대한 신앙을 부정하려 한다. 그것은 중화문화를 파괴하며 도덕 교화를 파괴하는 역사의 죄인이다.
지금 세계적으로 널리 전파된 파룬궁(法輪功)은 불가의 상승(上乘) 공법으로 다른 말로 하자면 불법(佛法)으로 아주 대단한 한 부의 대법(大法)이다. 파룬궁 창시인 리훙쯔(李洪志) 대사는 1951년 음력 4월 8일(양력으로는 5월 13일) 태어나셨다. 어쩌면 최초 역사에서는 이날이 미륵불이 탄생한 날이었을 것이다. 또 위 일화에서 4월 8일을 신선절로 여겼다는 풍속이 있었다. 이것은 모두 파룬궁이라는 이 대법이 오는 것을 예시한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독자 여러분들이 한번 깊이 있게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깨달아보고 인연 있는 분들이 절대 기회를 놓치지 말기를 바라는 바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545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