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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의 면벽

글/ 왕양(王洋)

【정견망】

오유봉(五乳峰) 중봉 상부 정상에서 멀지 않은 곳에 천연동굴이 하나 있다. 이 바위굴의 높이는 3미터가 채 되지 않고 폭은 약 2장이다. 네모난 동굴 문이 정남으로 열려 있어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다. 동굴 바로 앞에 작은 풀밭이 있는데 주위의 짙은 녹음이 해를 가려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이곳에는 한여름이 없고 텅 빈 산에 새소리만 들렸다.(此地無盛夏,空山聽鳥鳴)”

달마가 소림사(少林寺)에 온 후 이 천연동굴을 자신의 수행처로 삼았다. 전설에 따르면 달마는 이 동굴 안에서 하루 종일 석벽을 마주하고 가부좌를 틀고 정좌(靜坐)했다. 그는 법(法)을 말하거나 계율(戒律)을 따지지 않았고 하루 종일 조용히 면벽하며 두 눈을 감고 결가부좌를 틀었다. 동굴 안은 마치 사람이 없는 것처럼 조용했고 온갖 소리도 잦아들었다.

달마가 입정(入定)에 들어간 후 심지어 나는 새마저 이곳에 사람이 있는 줄 모르고 달마의 어깨위에 둥지를 틀었다. 달마는 ‘출정’한 후 몸을 일으키자 사지를 한번 움직이고 신체를 단련하고는 좌선을 계속했다. 당시 달마의 생활은 “때가 되면 좌선하고 피곤하면 권법을 연마했으며 배고프면 먹었다.” 이렇게 입정과 출정하는 생활이 매일같이 반복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달마는 527년부터 536년까지 무려 9년(햇수로는 10년)간 면벽했다. 나중에 불교 역사상 아름다운 일화가 되었다.

달마가 석굴에서 9년을 면벽한 후 동굴을 나설 때 그가 마주보며 좌선했던 바위 위에 뜻밖에도 달마가 면벽하는 모습이 남아 실루엣이 은은히 드러났다. 마치 담백한 수묵화 그림 같았다. 사람들은 이 돌을 가리켜 ‘달마면벽영석(達摩面壁影石 달마가 면벽한 그림자 바위)’이라 하고 달마가 머물던 천연동굴을 ‘달마면벽동(達摩面壁洞)’이라 불렀다. 지금까지도 그 유적이 남아 있다.

이처럼 달마가 9년 면벽한 사적은 역대로 많은 이들의 추앙을 받았다. 나중에 소림사 승려들이 그림자 바위를 떼어내 사찰에 두고 공양했다. 명나라 만력 연간에 사람들이 면벽동 밖에 두 개의 기둥이 있는 돌로 만든 패방(牌坊)을 세웠다. 그리고 패방의 앞에는 ‘묵현허’(默玄虛) 뒤에는 ‘동래조적’(東來肇跡)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청나라 도광(道光) 연간에 소원길(蕭元吉)이 소림사에서 달마가 면벽했다는 그림자 바위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아 ‘면벽석을 찬양하다(面壁石贊)’란 시를 지었다.

소림사에 있는 바위 하나 모두들 사람이라 하는데
분명히 사람이고 분명히 돌이라네
돌은 어떤 돌인가? 면벽석(面壁石)이네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면벽불(面壁佛)이네
왕손(王孫)이 9년을 면벽해 9년 면벽에 성불했네
성불하니 온몸이 텅비네
온몸의 정이 바위에 들어가 신령한 바위가 완전한 형태를 닮았네
소림이 만고에 으뜸가는 문파가 되었네

少林一塊石,都道是傭人。
分明是個人,分明是個石。
石何石?面壁石。
人何人?面壁佛。
王孫面壁九年經,九年面壁祖佛成。
祖佛成,空全身。
全身精入石,靈石肖全形。
少林萬古統宗門。

청나라 때 고사립(顧嗣立)이 쓴 《면벽석(面壁石)》이란 시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홀로 우뚝한 바위 하나
속에 초조의 모습 담았네

천년 신기가 있으니
단청이 무슨 소용 있으랴?

一石獨亭亭,中藏初祖形。
千年神氣在,何用著丹青。

과거 역대 왕조의 수련은 모두 수련인의 부의식(副意識 부원신副元神) 수련이었고 달마 역시 예외가 아니다. 비록 사람들은 모두 대단하다고 여기지만 불교 역사상 미담(美談)으로 전해져오지만 수련의 최후에 정과(正果)를 얻는 것은 모두 진정한 자신(주의식主意識, 주원신主元神)이 아니다. 파룬따파는 이 만고(萬古)의 비밀을 드러냈으며 아울러 주원신이 수련하는 진법(眞法)진도(眞道)를 최초로 사람에게 전해 생명이 진정으로 영원히 고해에서 벗어나 육신을 지니고 성불하게 했다. 이것은 이 특수한 역사시기에 생명이 마땅히 몹시 소중히 여겨야 할 것으로 기연(機緣)은 만나기 어렵고 진법(眞法)은 얻기 어렵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60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