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요임금 (중)- 겁난을 지나가다
요임금 치세 시기 두 차례의 큰 겁난(劫難)이 나타났지만 중화문명은 기적적으로 연속해 내려올 수 있었다. 그 원인을 살펴보면 하늘의 심오한 안배로 귀결시킬 수 있는데 요임금의 큰 덕행(德行)이 천하에 복을 만들어준 결과이기도 하다.

(1) 예(羿)가 아홉 개의 태양을 쏘다
제곡(帝嚳) 시기에 신궁(神弓)이 나타났는데 그의 이름이 예(羿) 또는 대예(大羿)라 했다. 《제왕세기(帝王世紀)》의 기록에 따르면 예는 뛰어난 활솜씨를 지녔기 때문에 제곡이 그에게 활과 화살을 하사하고 서(鉏) 땅에 봉해 사관(射官 활을 주관하는 관리)으로 삼았으며 대를 이어가며 이 직위를 세습하게 했다.
나중에 하(夏)나라 때 태강(太康)이 황음무도하자 유궁씨(有窮氏) 후예(后羿)가 태강을 몰아내고 자립해서 왕이 되었다. 이 유궁씨 후예는 바로 제곡시대 예씨(羿氏)의 후손이다. 예의 자손들이 줄곧 이 직위를 세습했고 또 모두 예로 칭했다.
또 고본 《산해경》에는 요임금 때 하늘에 10개의 태양이 나타나자 예가 10개의 태양에 활을 쏘아 옥초(沃焦)란 지역에 떨어뜨렸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예가 9개의 태양을 쐈다는 전설의 최초 기록이다.
한나라 때 《회남자》의 기록에 따르면 요임금 때 하늘에 갑자기 10개의 태양이 나타나자 풀과 나무 및 곡식들이 말라 죽어 백성들이 먹을 양식이 없었다. 또 알유(猰貐), 착치(鑿齒), 구영(九嬰), 대풍(大風), 봉희(封豨), 수사(修蛇) 등의 요마귀괴(妖魔鬼怪)가 각지에서 나타나 백성들에게 해를 끼쳤다고 한다. 이에 요임금이 신궁 예를 파견해 각 지역에서 백성들을 위해 재앙을 제거하게 했고 각종 요마(妖魔)와 괴수(怪獸)들을 주살(誅殺)하게 했다. 아울러 진짜를 혼란시키고 인간 세상에 재앙을 끼치는 하늘에 뜬 9개의 가짜 태양을 쏘아 죽이자 그것들이 까마귀로 변해 떨어져 내려왔다.
《산해경》에는 예(羿)의 내력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천제(天帝)가 예에게 붉은 신궁(神弓)과 흰 신전(神箭)을 하사하고 인간 세상에 내려가 인간들을 도와 각종 흉험(凶險)을 제거하고 위난을 지나갈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즉 예는 천명(天命)을 짊어지고 세상에 내려와 사람이 된 것으로 요임금 때 자신의 사명을 완수했으니 직접 신력(神力)을 사용해 요임금을 도와 요얼(妖孼)들이 인간세상을 화란(禍亂)시키는 것을 물리쳤다.
(2) 인류문명을 훼멸시킨 대홍수
이어서 요임금 재위 시기 천하의 흥망이 걸린 또 하나의 대겁난(大劫難)이 발생했다.
《상서‧요전(堯典)》의 기록에 따르면 요임금 때 하늘에서 대홍수가 내려와 거세게 쏟아지는 물이 산을 삼키고 언덕을 넘어 하늘까지 닿았다고 했다.
요임금 때 발생한 이 훼멸적인 대홍수는 《수경주(水經注)》와 《한당지리서초(漢唐地理書抄)》에서도 인증할 수 있다. 지금 의창(宜昌)시 삼협에 아주 높은 절벽이 있는데 나는 새조차 살 수 없는 동쪽 절벽 중간에 몇 자에 달하는 불에 탄 흔적이 있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옛날 대홍수 시기에 사람들이 절벽에 다가갔을 때 남은 불을 꽂아놓은 것이 지금까지 남은 것으로 이를 ‘삽조(插灶)’라 부른다.
《군국지(郡國志)》에도 제주(濟州 오늘날 산동 제녕)에 부산(浮山)이 있는데 현지 전설에 따르면 요임금 때 대홍수가 났을 때 이 산이 물 위로 떠올랐다고 한다. 당시 어떤 사람이 배를 산 바위 사이에 매어놓았다고 하는데 지금도 당시 배를 묶었던 끊어진 쇠사슬이 남아 있다고 한다.
《예문류취(藝文類聚)》에는 의도(宜都) 이릉현(夷陵縣) 서쪽 80리에 고광산(高筐山)이 있는데 전설에 따르면 요임금 때 대홍수가 났을 때 이 산이 물위로 떠서 잠기지 않았고 마치 광주리 같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또 《송사(宋史)‧율력지(律曆志)》에는 우희(虞喜)의 말을 인용해 요임금 때 해가 가장 짧은 동지에 묘(昴)성을 관측했다고 하는데 세차(歲差) 변화를 감안하면 약 2700여 년 전이라고 했다. 우희는 동진(東晉)시기 저명한 경학자(經學者)이자 천문학자로 최초로 세차를 발견한 인물인데 281년에 태어나 356년에 사망했다. 그러므로 이를 바탕으로 추정하면 요임금은 기원전 약 2400년 무렵 재위했음을 알 수 있다.
서방에도 상응하는 시기가 있었으니 대표적인 것이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다. 《성경‧창세기》에는 “이 일은 2월 17일 발생했다. 그날 하늘의 창들이 크게 열려 큰비가 40일 밤낮 쏟아졌다.” “천하의 높은 산이 모두 물에 잠겼다.”는 기록이 있다.

많은 성경연대기 학자들은 노아의 대홍수가 기원전 약 3천년에서 2천년 사이에 발생한 것으로 보는데 심지어 어떤 학자는 연구 결과 기원전 2349년 또는 2370년에 발생했다고 추정한다.
이들 연구는 《상서》 등 고문헌의 기록과 기본적으로 일치하며 서로 증거로 삼을 수 있다. 아마도 요임금 재위 기간에 발생한 한 차례 대홍수가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대홍수이자 지난 차례 인류문명을 훼멸시킨 세계적인 대홍수였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동방과 서방의 전설 속에서 이 훼멸적인 대홍수를 기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의 여러 민족들 중에도 대홍수에 관한 전설이 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 지역에서 대홍수 전설은 아주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다. 1922년 영국의 고고학자 레너드 울리가 바그다드와 페르시아 만 사이에 위치한 메소포타미아 사막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 결과 기원전 3천 년 전 수메르 문명의 우르(Ur) 유적과 왕족의 무덤을 발견했다.
이 무덤 아래에서 울리 팀은 무려 2미터가 넘는 깨끗한 점토로 된 침적층을 발견했는데 이 침적층 위가 바로 우르 왕족의 무덤이었다. 이 속에서 투구, 악기, 칼 및 각종 공예품과 점토서판(書板)에 새긴 역사기록 등 각종 부장품이 발견되었다.
그렇다면 2미터에 달하는 이 깨끗한 점토층은 대체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점토를 분석한 결과 이 점토층은 홍수로 침적된 후에 쌓인 충적토임이 밝혀졌다. 이를 통해 인류가 점토판으로 역사를 기록하기 전 이 지역에 일찍이 한 차례 거대한 홍수가 있었고 이 홍수는 전체 수메르문명을 훼멸시키기에 충분했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울리는 자신의 발견이 메소포타미아의 오랜 전설 및 성경에 기록된 대홍수가 일찍이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사건임을 설명해줄 수 있다고 보았다.
(3) 하늘이 대홍수를 내린 이유
그렇다면 하늘은 왜 대홍수를 내려 인류문명을 훼멸시켰을까?
《상서‧대우모(大禹謨)》에는 “홍수가 나를 경계하였다(洚水儆予)”고 한 것은 요임금 때 하늘이 홍수를 내려 인류에게 경고했음을 말한 것이다.
《성경‧창세기》에서는 “야훼께서는 세상이 사람의 죄악으로 가득 차고 사람마다 못된 생각만 하는 것을 보시고 왜 사람을 만들었던가 싶으시어 마음이 아프셨다. 야훼께서는 ‘내가 지어낸 사람이지만, 땅 위에서 쓸어버리리라. 공연히 사람을 만들었구나. 사람뿐 아니라 짐승과 땅 위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모조리 없애버리리라.’라고 하셨다.”
그리스 신화에도 주신인 제우스가 인류가 갈수록 잔인무도해지고 정의와 예절이 아예 사라진 것을 보고는 홍수를 이용해 인류를 없애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이 있다.
마야인의 성경으로 불리는 《포폴 부흐》에는 신이 천지를 창조한 후 처음 인류를 만들었는데 나중에 사람들이 조물주의 존재를 망각하고 신에게 불경하자 한 차례 홍수를 일으켜 인류를 말살시켰다고 한다.
이상 세계 여러 민족의 기록과 전설을 통해 보자면 인류의 도덕이 보편적으로 패괴(敗壞)되어 하늘에 불경하고 신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하늘은 대홍수를 내려 도덕과 바른 신앙[正信]이 없는 인류를 훼멸시키고 오직 극소수의 선량하고 신을 믿는 사람들만 살아남게 만들어 새로운 문명을 발전시킨 것이다.
(4) 겁난을 건너간 중화문명
세계 여러 민족의 대홍수 전설에 따르면 홍수가 지나간 후 대부분 극소수 사람들만 살아남아 새로운 문명을 번창시켰다고 한다. 대부분의 전설 속에서 각 민족은 오직 남자 하나와 여자 하나만 살아남았고 성경의 기록에도 하느님이 의인(義人)으로 인정한 노아 일가족만이 살아남았다. 하지만 당시 고대 중국에서는 수많은 사람들과 문명이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겁난을 겪고 보존해 내려올 수 있었다.
《산해경》 등 고서의 기록에 따라 추측해보자면 상고(上古) 시기 중국문명의 중심은 마땅히 곤륜산(崑崙山) 일대였다. 그곳은 해발이 아주 높은 곳으로 곤륜산은 만산(萬山)의 조상으로 불리며 곤륜허(昆侖虛), 곤륜구(昆侖丘) 또는 옥산(玉山)으로도 불리는데 아시아 중심부에 위치한 큰 산계(山系)이자 중국 서부 산계의 줄기가 된다. 서쪽으로는 파미르 고원, 북쪽으로는 해발 1천여 미터의 타림 분지가 있고 남쪽으로는 티베트 고원으로 연결되어 히말라야 산맥과 함께 세계의 지붕을 이룬다. 전체 길이는 약 2500킬로미터에 달하고 해발평균 5500~6000미터다.
《산해경》에는 “제요대(帝堯台), 제곡대(帝嚳台), 제단주대(帝丹朱台), 제순대(帝舜台)가 각각 두 개의 대가 사방으로 있었고 여러 제대(帝台)가 모두 곤륜산 북쪽에 있다.”는 기록이 나온다.
여기서 제대란 제사를 지내고 천상(天象) 관측에 사용된 것으로 일반적으로 해당 나라의 수도 근방 문명과 경제 중심지에 설치한다. 이를 통해 보자면 당시 중화문명의 중심이 곤륜산 북쪽 지금의 신강(新疆) 사막 일대였을 것이다. 물론 당시에 이곳은 비옥한 토지였고 나중에 서서히 풍화되어 사막으로 변한 것이다.
대홍수 시기 곤륜산 근처에 살았던 중국인들은 거주지의 해발이 아주 높아서 제때에 곤륜산으로 피신할 수 있었다. 때문에 홍수에 매몰되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남아 이 큰 겁난을 지나갈 수 있었고, 오늘날 중국이 역사적으로 가장 유구한 문명을 지닌 나라가 되게 했으며, 하도, 낙서, 주역, 팔괘, 음양, 오행, 중의(中醫), 성상(星象) 등 대량의 사전문명(史前文明)을 남길 수 있게 했던 것이다.
우리가 마음을 조용히 하고 상상해보면 이런 것들은 또 하늘이 요임금의 성덕(聖德) 치세(治世)를 통해 고대 중국문명이 이 겁난을 지나갈 수 있게 하여, 의도적으로 인류에게 남겨준 것으로, 이를 통해 우리가 오늘날 인류 역사 배후의 배치와 목적성에 대해 사고하게 만든 것이다.
다시 말해 화하민족이 이 시기 두 차례 큰 겁난을 지나간 것은 모두 하늘이 의도적으로 배치하고 가호(呵護)한 것이다. 이를 통해 이후 중원 대지 위에서 여러 조대(朝代)가 다양한 기복을 거치며 다채롭게 펼쳐지는 것 역시 분명히 하늘의 극히 심오한 배치와 운행을 펼쳐낸 것임을 알 수 있다.
(5) 홍수를 다스리다
《성경》에는 대홍수가 150일째 되는 날 완전히 물러갔고 노아 일가가 방주에서 내려와 육지 위에서 생활했다는 기록이 잇다.

하지만 홍수가 물러간 후에도 중화대지 위의 수많은 분지와 저지대 지역이나 산맥으로 가로막힌 구역 등에서는 여전히 홍수물이 빠지지 않아 대량의 토지가 수몰되었다. 아울러 늘 물난리가 발생했기 때문에 요임금이 사람을 파견해 물을 다스리게 했다.
처음에는 공공(共工)이 치수를 책임졌는데 요임금은 그가 말만 화려하고 겉으로 받드는 척 하면서 속으로는 명령을 어기고 배후에서 제멋대로 군다고 보았다. 이에 여러 신하들에게 누구에게 공공을 이어 치수를 감당할 중책을 맡길지 문의했다.
그러자 모두들 곤(鯤)을 추천했다. 요임금은 곤의 성격이 제멋대로고 교만한데다 늘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며 또 동족의 이익을 망쳐 치수의 중임을 맡길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사악(四岳)이 모두 곤을 추천하면서 시험 삼아 한번 써보자고 건의했다. 이에 요는 곤을 파견해 치수하게 했고 반드시 조심하고 근신하도록 분부했다.
곤은 우(禹)의 부친으로, 제방을 쌓아 물을 가두는 방법으로 물을 다스리려 했다. 그러나 이것은 아래로 흘러가는 물의 자연스런 성질에 위배되었다. 결국 치수에 9년이 지났음에도 뚜렷한 성과가 없었다. 다급해진 곤은 심지어 하늘의 법을 어기고 천제(天帝)의 신토(神土)인 ‘식양(息壤)’까지 몰래 훔쳐 인간세상에서 치수에 사용했다. 결국 우임금에게 쫓겨나 우산(羽山)에서 죽임을 당했다.

이렇게 해서 천지를 개벽한 큰 덕행을 지닌 또 다른 성왕(聖王) 대우(大禹)가 세상에 와서 물난리를 다스리고 중원에 안정적인 지리환경의 기초를 다져주었고, 중원대지가 미래 수천 년간 문명을 풀어내고 전승(傳承)할 수 있게 만든 불세출의 공훈을 세웠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 나오는 관련 항목을 참고하기 바란다.
참고서적:
1. 《상서정의》
2. 《수경주(水經注)》 《한당지리서초(漢唐地理書抄)》
3. 《군국지(郡國志)》(《태평어람》에서 인용)
4. 《예문류취》
5. 《성경》
6. Noah’s Flood: The Genesis Story in Western Thought, by Norman Cohn
7. 《산해경》
8. 《회남자》
9. 고본 《산해경》(《금수만화곡(錦繡萬花谷)》에서 인용)
10. 《여씨춘추》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1557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