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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정술】 오제(五帝) 11: 덕으로 창생을 교화한 순임금

11. 순임금 (상)

(1) 순임금의 경력

전욱(顓頊) 임금이 궁선(窮蟬)을 낳았으나 덕이 없어서 동생인 망량(魍魎)과 제위를 다투다가 망량이 뇌택(雷澤)에서 죽었다. 결국 전욱은 제위를 사촌의 아들인 곡(嚳)에게 물려주고 궁선은 서인(庶人)으로 삼았다. 이때부터 궁선의 후손들은 대대로 평민으로 몰락했다.

궁선이 경강(敬康)을 낳고 경강이 구망(句望)을 낳고 구망이 교우(橋牛)를 낳고 교우가 고수를 낳았다. 고수는 원래 악등(握登)을 아내로 맞이했는데 어느 날 악등이 큰 무지개를 보고 감응해 임신한 후 순을 낳았다.

순은 요허(姚墟)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요(姚)를 성(姓)으로 삼았다. 또 규수(媯水)에 살았기 때문에 규(嬀)를 성으로 삼았다. 순이 태어날 때 눈 속에 눈동자가 두 개가 있었기 때문에 중화(重華)라 이름을 지었고 자를 도군(都君)이라 했다. 나중에 요임금이 두 딸을 순에게 시집보내면서 우(虞) 땅에 봉했기 때문에 우를 씨(氏)로 삼아 우씨(虞氏)로도 불린다.

청나라 사람이 그린 순임금의 초상화

순이 아주 어릴 때 모친이 세상을 떠나자 고수는 후처를 들였다. 어느 날 저녁 고수가 꿈을 꾸는데 꿈에 한 마리 봉황이 자신을 닭이라 칭하고 입에 쌀을 물고는 그를 먹이면서 아울러 그의 자손이라고 했다. 하지만 바라보니 여전히 봉황이었다. 꿈에서 깨어난 후 고수는 황제(黃帝)가 지었다는 《점몽경(占夢經)》으로 점을 쳐보니 자손 중에 장차 귀인(貴人)이 나온다는 점괘를 얻었다.

(2) 온갖 시련을 겪은 어린 시절

고수는 후처를 얻은 후 또 일남일녀를 낳았다. 바로 순의 남동생인 상(象)과 누이동생 과수(敤首)였다. 순의 계모는 아주 악랄하고 잔인해서 늘 순을 아주 미워했다. 고수 역시 후처 소생의 상을 편애하며 순을 미워했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순을 학대했고 심지어 순을 죽이려 했다. 늘 사소한 잘못을 구실로 무거운 처벌을 내리곤 했다.

순은 부모님이 벌을 줄 때 만약 작은 징벌이면 묵묵히 감당했지만 생명을 해칠 수 있는 큰 벌이라면 기지를 발휘해 피하곤 했다. 하지만 부모님이 일이 있어 자신을 필요로 할 때면 한 번도 제때에 옆에서 공경하게 모시지 않은 적이 없었다. 매번 벌을 받은 후에도 순은 늘 더욱 근신하면서 부모님을 모셨고 조금이라도 원망하는 마음이 없었다.

그는 늘 하늘을 향해 부모님이 마음을 돌리게 해달라고 기도하곤 했다. 때로 아무런 대책도 없을 때면 곧 하늘을 향해 눈물을 흘리며 늘 자신을 굽히며 남을 잘 대해주었다. 또 자신에 대한 요구는 늘 아주 엄격한 반면 남에 대해서는 아주 너그러웠다. 자신은 작은 잘못까지도 늘 마음에 두면서 두 번 세 번 거듭 반성했지만 한번도 남을 질책하거나 원망한 적이 없었다.

순임금의 순수한 효가 하늘을 감동시키다. 《성유상해(聖諭像解)》 삽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수와 계모 및 상 세 사람은 늘 순을 해치려 했다. 하지만 한 번도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웃들은 모두 순에게 탄복했고 불과 스물의 나이에 순의 덕행이 온 천하에 널리 전해져 길가는 사람들도 다 알게 되었고 심지어 천자인 요임금까지 알게 되었다.

(3) 덕으로 창생(蒼生)을 교화하다

순은 가족의 인정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집밖으로 자주 쫓겨났고 젊어서부터 도처로 다니며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그는 일찍이 역산(曆山)에서 농사를 지은 적이 있고 뇌택(雷澤)에서는 고기를 잡았으며 하빈(河濱)에서는 도기(陶器)를 구웠고 수구(壽丘)에서는 가구와 일상용품을 만들었으며 부하(負夏)에서는 장사를 했다.

순임금의 효가 하늘을 감동시키다. 명나라 구영이 그린 《24효도(二十四孝圖)》 대만 고궁박물관 소장.

순의 어짊과 효성이 하늘을 감동시켰기 때문에 역산에서 농사를 지을 때 큰 코끼리가 찾아와 농사를 도와주었고 새가 날아와 밭 사이의 잡초 제거를 도와주었다. 또 예전에 역산의 농부들은 늘 경계문제로 다툼이 발생하곤 했다. 하지만 순은 자발적으로 자신이 개척한 비옥한 토지를 노약자에게 양보하고 새로운 황무지를 찾아서 개간했다. 사람들은 모두 순에게 감화(感化)되어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꼈고 곧 서서히 새로운 기풍이 생겨나 모두들 좋은 땅을 남에게 양보했다. 이후로 더는 영역문제로 다툼이 없어졌다. 이 때문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역산에 모여와 농사를 지었다.

순이 뇌택에서 고기를 잡기 전에 어민들 역시 늘 어장(漁場) 때문에 다투곤 했다. 순이 뇌택에 온 후로 물고기가 많이 잡히는 곳을 남에게 양보하고 자신은 남들이 가려고 하지 않는 험한 곳에 가서 물고기를 잡았다. 순에게 감화된 어부들 역시 모두 좋은 어장을 서로 양보하며 더는 다투지 않았다.

순이 하빈에 와서 도기를 굽기 전에 그곳의 도기에는 늘 문제가 있어서 기술도 떨어지고 품질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순이 온 후로 몹시 신경 써서 도기를 제작했는데 이렇게 만든 도기는 품질이 아주 좋고 아름답고 튼튼했다. 그러자 도공들이 모두 순을 찾아와 가르침을 청했고 점차 현지의 도기 품질이 점점 더 좋아져서 더는 저질 물건이 나타나지 않았다.

순은 이처럼 어느 곳을 가든 늘 그 지역을 덕으로 감화시켰고 사람들은 모두들 그의 옆에서 함께 있길 원하며 그를 추종했다. 순이 어느 곳으로 가면 다른 지역 사람들도 모두 그의 명성을 듣고는 찾아왔으며 순이 사는 근처로 이사했다. 이렇게 되자 순이 머무는 곳은 1년 안에 촌락이 되었고 2년이면 작은 읍이 되었으면 3년이면 번영하고 화목한 도시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덕으로 만물을 감화시킨 힘이자, 제왕이 무위(無爲)로 세상을 다스린 기초였다. 종래로 백성들의 생활을 억지로 간섭하지 않으면서 소리 없이 사물을 윤택하게 만들고 도(道)로 천하를 교화하니 은연중에 천하가 모두 도(道)로 되돌아왔고 마치 제왕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 흡사했다.

(4) 원한을 덕으로 갚다

이때 요임금의 연세가 이미 많아졌다. 유일한 적자인 단주(丹朱)가 불초했기 때문에 요임금은 누구에게 제위를 계승시켜야 할지 근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임금은 여러 신하들에게 누가 제위를 이을 수 있을지 묻자 사악(四岳)이 모두 순을 추천했다.

요가 사람을 파견해 순을 데려온 후 나라를 다스리는 정책에 대해 대화를 나눠보니 순이 제출한 치국(治國)의 방법은 모두 아주 간단하면서도 실천이 어렵지 않았다. 또 순과 대도(大道)를 담론해보니 순이 담론하는 도리가 박대(博大)하면서도 무궁무진했다. 요는 이에 크게 만족하고 두 딸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을 순에게 시집보내 집안에서 그의 덕행을 관찰하게 했다. 또 아홉 아들을 파견해 순과 함께 일하면서 외부에서 그의 사람됨을 관찰하게 했다.

요는 또 순에게 한 세트의 갈포(葛布)로 만든 의복과 거문고를 하사했다. 또 그에게 창고를 만들어주었고 소와 양을 하사했다. 요임금을 만난 후 순은 원래 살던 규수로 돌아왔지만 이후에도 여전히 예전과 마찬가지로 공경하며 근신했다. 아황과 여영 모두 순의 배치에 따라 부인의 도를 지켰고 고귀한 신분이라는 이유로 순의 가족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요의 아홉 아들은 순과 함께 지낸 후로는 모두 공경(恭敬)하고 충후(忠厚)하게 변했다.

한편, 순이 천자가 하사한 영광과 재산을 차지한 것을 본 고수와 계모 및 상 세 사람은 몹시 질투하면서 또 다시 순을 해치고 그의 모든 것을 빼앗으려 했다. 다행히 이때는 순의 착한 여동생 과수가 이미 성장해 부모님과 상의 야심을 알고는 걱정이 되어 형수인 아황과 여영에게 몰래 알려줘 순이 대비할 수 있게 했다.

순임금의 효성스런 덕이 널리 알려지다. 명나라 때 장거정이 편찬한 《제감도설(帝鑒圖說)》삽화.

어느 날 고수가 순에게 식량창고를 수리하라고 했다. 순은 이를 아황과 여영에게 알려주었다. 아황과 여영은 과수로부터 이 일의 내막을 알고는 곧 순에게 말했다.

“당신이 창고 위로 올라가시면 그들이 아래에서 불을 질러 당신을 죽이려 할 것입니다. 조공복(鳥工服)을 입으시면 새처럼 날아 내려 무사하실 수 있습니다.” 말을 마친 후 여황과 여영은 조공복을 꺼내 순에게 입혔다. 과연 순이 창고에 올라간 후 계모와 상이 와서 아래에서 불을 붙였지만 순은 조공복을 입었기 때문에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어서 고수는 또 순을 불러 우물을 뚫으라고 했다. 순이 두 아내에게 이 일을 알리자, 두 사람은 곧 순에게 말했다. “빨리 지금 입은 옷을 벗고 저희가 드리는 이 용공복(龍工服)을 입으시면 마음 놓고 내려가셔도 됩니다.” 그리고는 순에게 용공복을 입혔다. 순이 우물 바닥에 내려간 후 과연 고수와 상이 순을 우물 안에 매장시키기 위해 위에서 흙으로 우물을 메웠다. 하지만 순은 용공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우물을 뚫고 다른 우물을 통해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후 부모와 상은 순이 죽은 줄 알고 순의 재산을 나눠가질 준비를 하다가 뜻밖에도 순이 무사한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하지만 순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예전처럼 부모님을 모시고 형제들도 너그럽게 대했다. 결국은 가족들도 이에 감동해 더는 순을 해치려 하지 않았다.

참고서적:

1. 《사기》
2. 《제왕세기》
3. 《통지(通志)‧씨족략(氏族略)》
4. 《태평어람》
5. 《역사(繹史)》
6. 《설원‧건본(建本)》
7. 《예함문가(禮含文嘉)》
8. 《열녀전》
9. 《이십사효》
10. 《한비자》
11. 《통사(通史)》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1558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