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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의 전설: 나한전세(羅漢轉世)와 고정운목(古井運木)

【정견망】

1. 나한의 전세[羅漢轉世]

제공[濟公 역주: 승려의 이름 뒤에 공(公)을 붙인 것은 특별한 존칭으로 역사적으로 동진시기 고승 혜원(慧遠) 스님을 원공(遠公)이라 칭한 적이 있다]은 원래 성이 이(李)씨고 이름은 수원(修元)이며 송조(宋朝) 천태(天台) 사람이다. 항주(杭州) 서호(西湖) 영은사(靈隱寺)에서 머리를 깎고 출가했으며 법명이 도제(道濟)였다. 그는 늘 미치광이나 바보처럼 가장하면서 이를 이용해 세인을 도화(度化)해 제전(濟癲, 미친 도제란 의미)이라 불렸다. 그러나 비록 미친 것처럼 보였어도 불법(佛法)이 무변(無邊)했고 곤경에 처하거나 위기에 빠진 많은 이들을 구제했기 때문에 백성들 사이에서는 ‘제공활불(濟公活佛)’로 불렸다.

전설에 따르면 이수원(李修元)은 18세 때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자 3년 상을 치른 후 서호 영은사로 가서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었다. 주지였던 원할당(遠瞎堂)은 그가 나한(羅漢)이 전세(轉世)한 것을 알고 자신의 제자로 받고 법호를 도제라 불렀다. 원할당이 세상을 떠난 후 제전은 남병산 정자사(淨慈寺)에 머물렀다. 남송 개희 2년(1206년) 5월 16일 단정히 앉아 원적했는데 다음과 같은 게송을 하나 남겼다.

육십년간 이리저리 다니며
동쪽 벽이 서쪽 벽을 무너뜨렸네
지금에야 수습해 돌아가려니
하늘은 여전히 파랗고 물은 푸르구나

六十年來狼籍
東壁打倒西壁
於今收拾歸來
依舊天青水碧

전설에 따르면 제공 부친의 이름은 이무춘(李茂春)이고 모친은 왕(王)씨로 두 사람이 서른이 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이에 밤낮으로 신불(神佛)께 기도를 올리며 아들을 주십사 청했다. 어느 날 밤 왕 씨가 한 나한이 꿈에 나타나 오색 연꽃을 주자 왕 씨가 연꽃을 받아 삼켰고 오래지 않아 임신했다.

남송 소흥(紹興) 3년(1133년) 2월 초이틀 아들을 낳은 부부는 크게 기뻐했다. 아이가 태어난 지 한 달이 되자 큰 잔치를 베풀어 많은 손님을 초대했다. 당시 성공(性空)이란 고승이 축하하러 왔다가 아이 이름을 수원(修元)이라 지어주었다.

전설에 따르면 세상에 내려올 때 제공의 사명은 여래불(如來佛) 불좌(佛座) 앞에 있던 대붕조(大鵬鳥)가 하늘의 법을 어기고 사사로이 속세로 도망쳤기 때문에 항룡(降龍)나한을 속세로 내려보내 대붕조의 향방을 찾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제공이 속세에 있으면서 또 각종 겁난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천신만고 끝에 마지막에 자신의 사명을 완수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민간전설에 등장하는 제공의 모습은 전기적인 색채가 아주 강하다. 예를 들어 일찍이 그가 진(秦)승상과 지혜를 겨루고 탐관오리를 징벌했다거나 길을 가다 불공평한 일을 보면 칼을 뽑아들고 나서서 도왔다는 등이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우스개든 욕설이든 유머러스하고 웃기게 묘사되었다. 이런 사적(事跡)은 세간에 널리 전해진 《제공전》에 아주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한편 소주(蘇州) 서원사(西園寺)에 있는 제공의 소상은 아주 특별하다. 몸에는 다 떨어진 옷을 입고 손에는 찢어진 부채를 들고 있지만 얼굴 표정은 살아 있는 것처럼 아주 생생하다. 그의 얼굴을 서로 다른 각도에서 보면 3가지 서로 다른 표정이 드러난다. 하나는 얼굴 가득 환하게 웃는 모습이라 ‘춘풍만면(春風滿面)’이라 불리고 다른 하나는 얼굴 가득 우수가 서려 ‘추미고검(愁眉苦臉)’이라 불리며 마지막 하나는 이 둘을 종합해서 마치 반은 울고 반은 웃는 것 같아서 ‘곡소부득(哭笑不得)’의 느낌을 준다. 이렇게 뛰어난 조각 기술은 매사에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면서 많은 이들을 울리고 웃겼던 제공의 태도와도 잘 부합한다.

2. 옛날 우물로 목재를 운반하다[古井運木]

전하는 바에 따르면 제공이 처음 서호에 왔을 때 영은사에서 불을 때는 화상이 되었다. 나중에 장로(長老)스님이 영성(靈性)을 일깨워주자 단번에 철저히 깨달았으나 혹 남들이 알까 우려해 미치광이처럼 행동하면서 세인들의 이목을 속였다. 나중에 정자사에서 경전을 베끼는 서기(書記)가 된 후 각종 기이한 일들을 했다.

그때 조정에서 소림사의 고승 묘숭(妙崧)선사를 정자사 제29대 주지로 파견해 사찰 중건의 책임을 맡겼고 여러 분야에서 급히 자금을 모집할 필요가 있었다. 장로는 제서기가 문장력이 뛰어난 것을 알고 그를 청해 자금을 모으는 방문(榜文)을 쓰게 했다.

그러자 제공이 말했다.

“장로께서 시키시니 어찌 사양하겠습니까? 단지 술에 취하지 않으면 좋은 문장이 나오지 않으니 장로께서 부디 술 한 병을 상으로 주시면 문필에 도움이 될까 합니다.”

장로가 사람을 시켜 술을 사오게 하자 제공이 즐겁게 마시고 흥이 오르자 단번에 문장을 완성했다. 그런데 이 방문 속에 이런 뛰어난 구절이 있었다.

“아래로는 중생을 구해 인심을 감동시키고 위로는 구천(九天)에 물어 직접 하늘과 통하려 하노라(下求眾姓,蓋思感動人心;上叩九天,直欲叫通天耳).”

이 방문이 붙은 후 항주성 전체에 큰 파장이 일었고 여러 사람들이 베껴가면서 전하니 심지어 황제까지 읽게 되었다. 황상은 이 문장에 쓴 “위로 구천에 물어” “직접 하늘과 통하려 하노라”는 등의 오묘한 구절을 보고는 사람을 파견해 정자사 사찰 중창에 3만관을 시주했다.

묘숭 장로는 황제의 은혜에 감사드리는 한편 또 제서기를 찾아와 어떻게 해야 사천(四川)에서 사찰 건축에 필요한 큰 목재를 운반해올 수 있을지 상의했다.

그러자 제공이 말했다.

“제가 정자사를 위해 일하면서 ‘천이(天耳)’마저 통했지만 사천까지는 길이 멀어서 크게 취한 후 족히 삼일이 지나야지만 목재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이에 또 곤드레만드레 술에 취했는데 장장 3일이 지났다. 깨어난 후에 갑자기 큰 소리로 “목재가 왔다! 목재가 왔어!”라고 외쳤다.

장로가 이 말을 듣고는 “목재가 어디에 있는가?”라고 하자 제공이 말했다.

“목재는 이미 전당강(錢塘江)을 거쳐 절 안에 있는 성심정(醒心井)으로 운반했으니 사람을 시켜 우물 입구에 나무로 선반을 설치하고 도르래를 달아 하나씩 끌어올리시면 됩니다.”

잠시 후 과연 우물 속에서 큰 목재 하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여러 승려들이 도르래를 이용해 목재를 끌어올렸는데 하나를 올리면 우물 속에서 또 하나가 나타났다. 이렇게 70개가 되자 옆에서 목재를 계산하던 대목장이 말했다. “이제 충분합니다!” 이 말이 떨어졌을 때 우물 안에 아직 끌어올리지 않은 목재가 하나 남아있었다.

이후 성심정은 ‘신운정(神運井 신통으로 목재를 운반한 우물)’이라 불렸고 또는 ‘운목고정(運木古井 목재를 운반한 옛 우물)’이라 불렸다. 우물 위에는 또 정자를 만들었다. 한편 마지막 목재 하나는 아직도 우물 바닥에 남아 있다. 촛불에 불을 붙여 긴 줄로 묶어 우물 속을 비춰보는 것이 정자사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자원이 되었다.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2/6/28/3244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