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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련春聯을 말한다.

류차오치

[정견망 2025년 02월 07일]

머리말

우리 여기서 전통 중국인이 설날을 보내는 ‘도부桃符’, ‘휘춘揮春’, ‘춘련春聯’, ‘대련對聯’의 변화를 소개하겠다.

황력(黄历 음력) 신년의 변천

하夏나라

상고시대 사람들은 “년수(年兽-해가 바뀌는 일을 짐승의 습격으로 비유)”라는 짐승이 겨울과 추위를 만나고, 신구세대가 바뀔 때마다 365일마다 인류를 습격하는데 정확히 1년이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하나라는 역법상의 일년으로 제정하여 “새해新年”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며, 이는 1년의 첫날이다. 선진先秦 시대 옛날 사람들은 새해 전날 밤에 북을 쳐서 악령을 쫓아냈다. “섣달그믐除夕”이라는 명칭은 서진西晋 시대에 겨우 있게 되었으며, “제除”는 “제거”이고, “석夕”은 “밤”이며, “제야除夕”는 “지난 해를 제거하는 하룻밤”이다.

주周나라

“년수年兽”의 “년관年關(세모)”를 거쳐 주나라에 이르러 점차 중국인의 “설날(過年 해를 지난다는 뜻)” 풍습이 발전했다.

상고 시대에 ‘년수’가 오기 전의 며칠 동안, 집집마다 집을 잘 수리했다. 주周나라에 이르러서는 ‘대청소’라는 풍습이 있었는데, ‘대청소’의 주요 목적은 전염병을 퇴치하고 귀신을 쫓는 것이었다.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사람들은 섣달 28일에 “대청소”, 역병제거, 귀신 쫓기를 하는데, 일명 “세탁洗邋遢 불결함을 씻는다는 뜻”이라고 한다. 속설에 “연말에 세탁한다”는 말이 있다. 심지어 새 집을 짓거나 새 집을 살 때도 장식을 잘해야, ‘새해’ 전에 이사한다.

춘련春聯의 변천

남북조

​상고 시대에는 사람들이 대문이나 정원 주위에 붉은 물감을 칠하여 ‘년수’를 놀라 달아나게 했고, 주변에는 기호와 부적을 그려 ‘년수’를 놀라 달아나게 했다. 남북조 시대에는 중국인들이 ‘입춘’에 ‘의춘첩宜春帖’이라 하여 글자를 색종이로 오려 문에 붙여 “의춘宜春”으로 만들었다. ‘입춘’은 ‘새해’와 매우 가까웠기 때문에 송나라 시대에는 ‘춘첩’을 붙이고 붉은색 쪽지에 길한 문구를 써서 문에 붙였는데 그것이 ‘휘춘揮春’과 ‘춘련春聯’의 기원으로 새해에 행운이 함께 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당나라

​상고 시대에 사람들은 문 양쪽에 부적을 그려서 ‘년수’를 겁주어 쫓아냈다. 당나라 당 태종 시기에 이르러 “문신門神”을 붙이는 풍습이 시작되었다. 당 태종의 두 명의 위엄 있는 장군을 붙였는데, “좌문신”은 진숙보(일명 진경)이고, “우문신”은 위지공(일명 경덕)이었다. 오늘날 사람들은 대문 양쪽에 ‘문신’ 한 쌍을 붙여 가택의 안녕과 출입의 평안을 기원한다.

옛날 대문 양쪽에 귀신을 쫓는 복숭아 나무판에 부적(符咒)을 그려 ‘년수(年兽)’를 놀라게 했다고 해서 ‘도부(桃符)’라 불렀다. 송나라에 이르러 ‘도부’는 ‘휘춘揮春’과 ‘춘련’으로 발전하였다. 당나라에 이르러 “도부”는 다시 “문신”을 붙이는 풍습으로 발전했다. 고대인들은 종종 “휘춘”, “춘련”을 “도부”에 붙였기 때문에, 후대 사람들은 “도부”를 음력 설날에 붙이는 모든 “휘춘”, “춘련”, “대련”을 통칭하게 되었다.

춘련

춘련을 붙이다

중국인들은 음력 설날을 보낼 때 종종 휘춘이나 춘련, 대련을 붙인다. 휘춘은 방 안에서 신위, 풍수, 가구의 위치에 따라 붙이는 반면, 춘련과 대련은 방문, 대문, 대문 양쪽에 붙인다.

춘련은 일반적으로 음력 12월 28일 또는 29월에 붙이며, 이는 음력 설날의 하루나 이틀 전이다. 전통적인 부착법은 문틀 양쪽에 수직으로 붙이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입구를 마주보고 서 있다면, 상련은 오른쪽 문(즉, 문의 왼쪽)에 붙이고, 하련은 왼쪽 문(즉, 문의 오른쪽)에 붙여야 한다. 횡으로 쓸때는 문지방에 붙여야 하며, 즉 문틀의 위쪽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고 읽어야 합니다. 사실 이 위에서 아래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고 읽는 방법이야말로 중국 문자의 전통적인 쓰기 및 읽기 방식이다.

첫 번째 춘련

원나라 말 지정至正 3년인 서기 1343년 승상 탈탈과 알루투가 차례로 당시 사관 <송사>를 지었는데 ‘송사(宋史. 촉세가蜀世家)’의 기록에 근거하면 이렇다. 서기 964년 황력신년에 오대 후촉의 마지막 임금인 맹창(孟昶)이 섣달그믐날 밤 대신 신인손에게 명하여 도부(桃符)에 글을 쓰라고 하였다. 맹창은 그가 잘쓰지 못하자 친히 붓을 들어 도부에 두 행의 글을 써서 침실문의 좌우에 붙였다고 한다. 이 글은 바로 :“新年納餘慶,嘉節號長春。” 인데 이 두 줄의 글자는 사실 하나의 대련으로, “이번 새해에는 선조들이 남긴 복을 받아들이고, 이 황력 설날에 영원한 복을 가져다준다.”라는 의미이다. 많은 대신들의 칭찬이 끊이지 않았으며, 그야말로 절묘한 구절이라고 생각하며 황력 설날의 기쁨과 호의에 부응한다고 여겼다. 중국 사학자들은 모두 맹창이 섣달그믐에 쓴 이 대련이 중국의 첫 번째 춘련이라고 생각한다.

어찌 알았으랴, 1년 후, 후촉이 망하고 맹창이 포로로 잡히자, 송나라의 개국 황제 송태조 조광윤은 여여경吕余慶이라는 신하를 보내 후촉이 남긴 땅을 관리하게 하였는데, 마침 맹창의 대련 첫 구절인 “新年納餘慶,嘉節號長春。”에서의 여경餘慶은 맹창의 대련에서 선조들이 남긴 복을 뜻하는 말인데 이후에 餘慶은 여경(吕慶)의 이름으로 변해버렸다. 맹창이 송나라에 항복한 날은 송태조의 생일이기도 했다. 《송사·가례》에 따르면, 송태조가 송나라를 건국한 첫 해에 군신들이 태조의 생일, 즉 황력 2월 16일을 “장춘長春”이라고 부르며, “장춘”은 “장수”라는 뜻이며, 이는 맹창의 대련 두 번째 구절인 “가절호 장춘”과 일치한다. 장춘은 맹창의 대련에서 영원한 복락이라는 뜻이었는데 오늘 날은 송태조의 장수를 기원한다는 의미로 바뀌었다. 맹창의 대련은 원래 후촉의 복이 만대를 가고 영원히 “장춘”하기를 기원했으나, 지금은 망국의 징조와 저주로 변모하여 마치 하나 참(谶 예언)의 말이 된 듯하다. “장춘절”은 송태조 개보 9년인 서원 976년에 송태조가 세상을 떠나면서 폐지되었다.

《원일元日》시.

송나라의 왕안석王安石에게는 황력 새해를 앞두고 도부를 교체하는 것에 관한 시 《원일》이 있다.

《원일》이라는 시는 이렇다: “폭죽 소리 속에서 한 해를 보내고, 봄바람이 따스함을 전해주며 도소에 들어간다.

수많은 가정에서 항상 옛 부적을 새 복숭아로 바꾼다.”

​이 시의 백화 의역은 다음과 같다:

천둥과 북소리 같은 폭죽 소리 속에서 지난 한 해가 지나갔고, 봄바람은 따뜻한 기운을 가져다준다.

이는 겨울의 발걸음이 떠난다는 것을 의미하며, 모두가 함께 도소주를 마음껏 마시며 분위기가 매우 활기차다. 아침 해가 떠오르며 수많은 가정을 비추고, 상황이 시끌벅적하다. 사람들은 항상 오래된 도부, 휘춘, 춘련, 대련을 새로운 도부, 휘춘, 춘련, 대련으로 교체한다.

이 시에서 당시 사람들이 황력 설을 보내는 것이 매우 활기차고 즐거웠으며, 집집마다 새로운 휘춘과 춘련이 붙였음을 반영한다. 휘춘과 춘련에는 항상 길한 글귀가 적혀 있으며, 내년에는 행운과 모든 것이 순조롭기를 바랐다.

​절경의 춘련

춘련 1: 폭죽 소리와 함께 묵은 해를 없애고, 집집마다 도부를 바꾼다.

횡서: 기상만천氣象萬千.

우리는 이제 이 대련과 관련된 옛 고훈을 볼 수 있다: “해가 가면 달이 오고, 달이 가면 해가 온다. 해와 달이 서로 밀면 밝음이 생긴다.”

이 몇 구절의 말은 《역경·계사》(하편)에서 나온 것으로, 백화문으로 하면 이 말은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해가 지면 달이 동쪽에서 떠오르고, 달이 지면 해가 동쪽에서 떠오르며, 해와 달이 차례로 떠나면 하루가 끝나고 다음 날이 다가온다.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가니 사람들에게 시간은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제 이 대련과 관련된 두 번째 고훈을 볼 수 있다. ”정기正气가 안에 있으면 사악이 일하지 못한다. 사악이 모이는 곳에 기는 반드시 허하다.”

이 네 마디 명언은 《황제내경》에서 나온 것으로, 뜻은 다음과 같다: 사람이 마음속에 바른 기운을 가지고 있으면, 마음과 생각을 바르게 하고, 행동이 바르게 된다. 외부의 어떤 사념, 비뚤어진 생각, 나쁜 생각, 나쁜 생각도 사람을 방해할 수 없으며, 잘못 행동하지 않고, 마음과 몸과 마음이 건강하다. 반대로, 마음에 사념이 있으면 기가 허해지고, 기가 허하면 병에 걸리기 쉬우며, 마음과 몸과 마음이 손상된다. 그러니까 사람은 마음이 바르면 기가 바르다.

춘련 2: 화목한 가정에 백가지 복이 더해지니, 평안이라는 두 글자는 천금의 가치가 있다.

횡서: 가정화목家庭和睦.

우리는 이 대련과 관련된 교훈을 볼수 있다:

“Where there is love there is life. ”

이 구절은 ‘인도의 성인 마하트마 간디(1869~1948)’에서 나온 말로 뜻은 “사랑이 있는 곳에 생명이 있다”는 것이다. 사랑은 의심할 여지 없이 사람들 사이의 감정을 유지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우리는 이 대련과 관련한 두 번째 고훈을 볼 수 있다.

“Peace begins with a smile. ”

이 구절은 1979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 마더 테레사(테레사 수녀)가 한 말이다.

“평화는 미소에서 시작된다. “

하나의 미소가 간단하고 쉬운 미소, 하나하나의 미소는 하나하나의 선한 생각을 담고 있으며, 하나하나의 선한 생각은 위대한 선과 사랑, 자애와 평화를 이룬다.

춘련 3: 하늘이 세월을 늘이면 사람은 장수하며, 봄이 세상에 가득하면 복은 가정에 가득하다.

횡서: 사계평안四季平安.

우리는 이제 이 대련과 관련된 옛 고훈을 보기로 하자: “사람이 선하면 복이 오지 않아도 화가 멀어진다; 사람이 악하면 화가 오지 않아도 복이 멀어진다.”

즉, 사람이 좋은 일을 하면 복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화는 이미 우리에게서 멀어졌다. 다시 말해, 화가 완전히 우리에게서 멀어지면 우리 곁에 남아 있는 것이 복이 아니겠는가? 사람이 나쁜 일을 하면 화는 아직 오지 않았지만 복은 이미 우리에게서 멀어졌다. 다시 말해, 복이 완전히 멀어지면 우리 곁에 남아 있는 것은 화뿐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사람은 시시각각 선을 행해야 한다.

이 대련과 관련된 두 번째 고훈(古訓)을 보자. ”동주공제同舟共濟”

‘동주공제’란 말은 ‘손자·구지편孙子‧九地篇’에 나온다. ‘손자·구지편’에 이렇게 말한다.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이 서로 미워하나, 그 사람들이 한 배를 타고 서로 도우면, 바람을 맞을 때 왼팔이 오른팔을 돕듯이 한다.” 이 이야기는 춘추 시대에 일어났으며, 오나라와 월나라가 사이가 나빴다. 오나라 사람들이 월나라 사람들과 함께 같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널 때 풍랑을 만났고, 모두가 서로 돕기를 마치 오른팔처럼 매우 잘 협력했다. 이 전고는 전통적인 중국인들이 모두가 고난을 함께하고, 마음을 합쳐 협력하며, 단결하고 서로 도와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우리는 현대의 중국인으로서 모두 “화충공제和衷共济”, “동심공제”, “동주공제”를 해야 한다.

춘련 4: 굳이 좋은 경치를 추구할 필요가 있는가, 자연히 기이한 만남이 이른 봄에 찾아온다.

횡서: 입덕입품立德立品.

​우리는 이제 이 대련과 관련된 옛 고훈을 볼 수 있다: “처세하는데 세상에 깊이 들어갈 필요가 있느냐? 각자의 인연이 끝나면 각자 근본으로 돌아간다. 약간의 동심을 가지고 있으면 야생 조류와 들꽃으로 곳곳마다 봄이네.”

이 시는 파룬따파 수련자인 철비라는 사람이 말한 것으로 보이며, 그의 《일비수필逸飞随笔》에 이 한 수가 있다. 백화로 이 시를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처세할 때 시시콜콜 따질 필요가 없으며, 모두의 만남은 각각 전생과 현생의 인연 관계를 가지고 있다. 마음속에 “진, 선, 인”이라는 순수한 마음이 있다면, 길이 험난하더라도 상황에 따라 편안하고 유유자적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대련과 관련된 두 번째 고훈을 보기로 하자

“사람이 하는 일을 하늘이 본다.”

​그 뜻은 다음과 같다: 삼척 머리위에 신명이 있다. 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 신이 지켜보고 있다. 사람이 나쁜 일을 하면 신은 반드시 그 빚을 나쁜 일을 한 사람에게 갚는다. 나쁜 일을 한 사람은 나중에 보응을 받는데 이번생에 받지 않으면 다음 생에 받는다. 사람이 좋은 일을 하면 신은 반드시 그 덕을 좋은 일을 한 사람에게 갚는다. 좋은 일을 한 사람은 복을 받는데 이번생에 받지 않으면 다음 생에 받는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을 엄격히 다스려야 한다.

춘련의 의미

과연 휘춘과 춘련에 길상, 축복, 긍정적인 문구를 쓰거나, 황력 설날에 길상, 축복, 긍정적인 말을 하는 것이 정말로 행운과 순경을 가져올 수 있을까? 아니면 순전히 무의미한 풍습인가? 아니면 사람을 힘들게 하는 허례허식? 아니면 미신적이고 진부한 것인가.

긍정심리학

심리학의 관점에서 볼 때, 휘춘과 춘련에 길상, 축복, 긍정적인 문구를 쓰거나, 황력 설날에 길상, 축복, 긍정적인 말을 하는 것이 약간의 행운과 순한 환경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은 물론 확실하며, 이는 일정한 심리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긍정 심리학”(positive psychology)의 관점에서, 자주 칭찬받고 인정받는 사람은, 그의 인생 태도가 반드시 비교적 긍정적이고 낙관적이며 자신감이 있게 마련이다. 성장 과정에서 반드시 건강하고 풍성하며 아름다울 것이다; 반대로, 자주 욕설과 꾸지람을 받는 사람은, 그의 인생관은 반드시 비교적 부정적이고 비관적이며 일을 할 때 비교적 비겁합니다. 사람이 전망에 대해 긍정적인 기대를 가지고 있으면 일을 적극적으로 하고, 반대로 전망이 보이지 않으면 일을 부정적으로 하고 인생관이 어두워진다.

식물 실험

클리프 백스터(Cleve Backster, 1924. 2. 27-2013. 6. 24)는 원래 미국 중앙정보국의 심문 전문가로 1960년대에 거짓말 탐지기를 사용하여 식물을 실험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식물이 감각 기능이 있어서 칭찬과 찬사를 받으면 무성하게 자라지만, 격리되고 비난을 받으면 시들어 병든 것처럼 보인다는 것을 발견했다.

물 결정체 연구

일본 IHM 연구소의 에모토 마사루 박사 등은 1994년부터 고속 촬영 기술로 물의 결정을 관찰해 왔다. 물은 ‘선량, 감사, 신성’ 등의 아름다운 정보를 보면 물 결정체는 아름다운 도형이 되고, ‘원망, 고통, 초조’ 등의 나쁜 정보를 보면 흩어지고 추한 모양이 나타나며, 문자, 소리, 생각 모두 동일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고마워”와 “나쁜 놈”

또 다른 학생 실험이 있었다. 밥을 유리병 두 개에 나눠 담아 한 병에는 ‘감사합니다’를, 다른 한 병에는 ‘나쁜 놈’을 붙여 매일 초등학생에게 ‘감사합니다’를, 다른 한 병에는 ‘나쁜 놈’을 붙여 ‘나쁜 놈’이라고 말하게 했다. 한 달 뒤 ‘감사합니다’를 붙인 병에는 밥 향기가 났고, ‘나쁜 놈’을 붙인 다른 한 병에 든 밥에는 검고 냄새가 났다는 실험도 있었다.

사람을 대하고 물건을 접하는 데 진선인으로

이를 통해 사람의 생각, 말, 행동은 물질에 일정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수 있다. 사람의 마음이 올바르고, 마음이 선량하며, 바른 생각을 하면 내보낸 메시지가 좋아지고, 마당이 바르게 되며, 사람은 자연스럽게 건강해지고 운명도 좋아질 것이다. 선심, 허심탄회, 관용은 체내에서 도파민, 건강한 물질을 분비하게 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진 세포를 이끌고 올바른 생각을 하게 하고 건강하고 장수하게 만든다는 연구 결과를 얻었다. 심성을 높이고, 안정된 정서를 유지하며, 사람을 대할 때나 물건에 대해 인내하고, 최선을 다하며, 진실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면 사람은 운이 트이게 되며, 이는 나의 개인적인 경험이다.

휘춘, 춘련의 의미

따라서 이렇게 볼 때, 중국인이 휘춘과 춘련을 쓰는 것은 확실히 그 의미가 있다. 물론 미신, 진부하고 구태의연하거나 무의미한 허례허식이 아니며, 현대의 과학과 심리학에서 모두 입증되었다.

‘전법륜’, ‘왜 인류가 존재하게 있는가’, ‘왜 중생을 구도하려 하는가’, ‘왜 인류사회는 미혹(迷)의 사회인가’

또한 여기에서 여러분께 파룬궁의 창시자인 이홍지 대사가 발표한 《전법륜》이라는 책과 《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는가》, 《왜 중생을 구도하려 하는가》, 《왜 인류사회는 미혹의 사회인가》라는 세 편의 경문을 인터넷에서 찾아볼 것을 건의한다. 진상은 바로 그 안에 있다. 어쩌면 어제, 오늘, 내일의 일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생길 수도 있고, 앞으로의 인생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작은 결론

여러분들 새해에는 진, 선, 인을 표준으로 덕을 세우고 품행을 바로 잡고 정념정행하여, 자연스럽게 해마다 순조롭고 순조롭기를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5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