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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보는 이 세상은 진실한가?

우화

【정견망】

만약 누군가가 자신이 눈으로 본 이 세상의 진실성을 의심한다면, 많은 사람들은 그가 정신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높은 빌딩과 분주한 교통 상황이 어떻게 진실이 아닐 수 있는가? 날마다 우리 눈앞에 나타나는 산과 강, 일출과 일몰 장면이 어찌 거짓 현상일 수 있는가?

이 문제를 깊이 이해하고 인식하기 전에 우리 먼저 눈과 시각(視覺)을 한번 분석해 보자. 눈은 빛을 감지하는 감각 기관이고, 시각이란 물체의 영향이 눈의 망막을 자극해 생성되는 감각이다.

눈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다.

1. 안점(眼點 눈점): 하등 동물에서 발견된다. 단세포 편모충은 안점을 가지고 있는데, 안점은 세포 내에 있는 작고 특수한 부분으로 다른 곳보다 빛에 더 민감하다. 지렁이는 체표에 안점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특수한 감각 세포다. 편형동물은 광(光) 세포 덩어리로 구성된, 더 복잡한 안점을 가지고 있다.

2. 홑눈(單眼 단안): 많은 광(光) 세포로 이루어져 있으며, 기본 구성 요소는 수정체와 망막이다. 광학 구조의 관점에서 볼 때, 외부 물체는 눈에 거꾸로 된 상을 만든다. 거미는 잘 발달된 홑눈을 가지고 있으며, 앞쪽 중앙 눈과 옆 눈의 두 가지 홑눈을 가지고 있다. 한 종류의 거미는 시각 축을 따라 4층의 감관(感官) 세포가 있는 앞쪽 중앙 눈을 가지고 있다. 서로 다른 거리에 있는 물체는 서로 다른 감광층(感光層)에 상이 맺힌다.

3. 겹눈(複眼 복안): 작은 눈이 여러 개 빽빽이 모여 있는 형태이며, 그 수는 다양하며, 어떤 것은 수만 개에 달한다. 작은 눈은 실제로 하나하나 독립적인 눈으로 육각형, 직사각형 또는 원형 튜브 모양이거나, 하나의 수정체와 하나의 감각 성분(간상체)로 구성된다. 간상체는 자신의 수정체를 통해 빛을 받을 수도 있고, 근처에 있는 여러 개의 수정체를 통해 빛을 받을 수도 있다. 어느 경우든 인접한 수정체의 시야가 겹치면서 뇌에 부분적으로 중첩된 다중 이미지가 나타난다. 파리와 잠자리는 겹눈을 가지고 있다.

4. 카메라 눈: 인간, 척추동물, 두족류 연체동물(오징어 등)이 이 유형의 눈을 가지고 있다. 광학적인 원리는 카메라의 원리와 매우 유사하다. 과학적 실험을 통해 생물이 빛을 감지하는 능력은 종마다 다르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예를 들어, 사람이나 일부 동물은 0.77~0.39마이크론 사이의 파장을 가진 가시광선을 감지할 수 있다. 일부 종은 파장이 짧은 자외선을 감지할 수 있다. 그리고 일부 종은 파장이 긴 적외선을 감지할 수 있다. 어떤 동물은 물체의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만 구분할 수 있고, 다른 동물은 물체의 색깔을 구분할 수 있다. 어떤 종은 물체의 이미지를 관찰하는 데 능숙하고, 어떤 종은 물체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데 능숙하다. 이는 각 눈의 구조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눈의 구조에 따라 우리 앞에 보이는 세상의 다양한 장면과 모습이 표현된다. 그들은 모두 카메라와 같은 눈을 가지고 있고 모든 것이 회색으로 보이는 색맹(色盲)이 존재한다. 다양한 동물의 눈은 크기, 모양, 구조 모두 크게 차이가 난다. 같은 세상, 같은 물체라도 그들의 눈에는 다르게 보인다. 동물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들은 사람들이 고층 빌딩을 짓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사람들이 그것의 집이나 둥지를 파괴할 때면 두려움, 공황, 분노를 느낄 것이다. 거의 모든 동물은 인류에 대한 감정을 나타내는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전한다.

사람의 시공관(時空觀 시공에 관한 관념)은 눈으로 사물을 관찰함으로써 형성된 관념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애초 시각과 청각 없이 태어난다면, 그의 머릿속에는 시공관에 대한 개념이 없을 것이다. 그는 오직 촉각을 통해서만 이 세상을 인식할 수 있다. 그는 비록 물질세계에 있지만, 마치 어두운 미로에 빠진 것과 같을 것이다. 그는 빛과 어둠, 아름다움과 추함 등의 존재를 모른다. 그가 느끼는 것은 오직 음식과 배고픔, 추위와 따뜻함뿐이다. 만약 그의 청각 장애와 시력 장애가 치료되어 세상의 그림을 보고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면 그는 세상이 참으로 놀랍다고 느낄 것이고, 그가 원래 지니고 있던 관념이 모조리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눈으로 보는 이 세상은 대체 어떤 모습일까? 왜 아직도 의심하는가?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인류의 눈은 구조가 다 같고 카메라 눈이므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일종의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동시에 물질세계는 이런 존재 방식이며 고정불변하고 자연스럽다는 강한 관념이 형성되었다. 만약 어떤 사람의 눈이 복안(複眼 겹눈)과 같은 구조라면, 그가 보는 물질세계는 다른 일종의 형태일 것이다. 같은 물체라도 서로 다른 눈으로 보면 서로 다른 형태로 표현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의 진정한 모습은 대체 어떠한가? 과연 어떤 눈이 진상(真相)을 볼 수 있는가?

두 번째, 눈은 일종의 시각적 잔상효과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영화와 텔레비전은 사람 눈의 이런 효과를 이용해 조금씩 변하는 일련의 정지 이미지로 움직이는 느낌을 주는 화면을 만든다. 사실 사람들이 보는 모든 물질과 모든 장면은 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지만, 눈의 시각적 잔상효과로 인해 마치 정지된 것처럼 보일 뿐이다.

예를 들어, 사람이 눈으로 식물의 싹이 트고 자라는 것을 관찰할 때, 사람은 식물이 움직이는 것을 알 수 없고 식물의 성장 과정도 볼 수 없다. 그 이유는 이러한 성장 과정이 인간의 시각으로는 너무 느려서 마치 정지해 있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슬로모션 카메라를 사용하여 전체 과정을 포착한 다음 식물의 성장 과정이나 꽃의 개화 과정을 보면 깜짝 놀랄 것이다! 눈이 이 물질세계의 모든 것을 슬로모션이나 고속 카메라처럼 볼 수 있다면 정말 놀라울 것이다!

셋째, 눈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고, 세포는 또 분자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세포나 분자보다 작은 물질은 직접 볼 수 없고, 미시적인 물질이 끊임없이 운동하는 형식을 볼 수 없으며, 원자, 전자, 원자핵 등의 미시적인 입자의 존재는 더더욱 볼 수 없다. 물리학자들은 일찍이 만약 당신이 물질이 표현하는 진상을 본다면, 당신의 정상적인 사유가 붕괴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사람의 관념을 바꾼다는 것은 그들의 일상생활 속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확실히 그렇다. 사람이 볼 수 있다면, 자신이 마시는 우유 속에 고속으로 회전하는 작은 입자들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 텐데, 누가 감히 우유를 마시겠는가! 만약 당신이 아주 작은 물체를 직접 볼 수 있다면, 즉 당신의 눈이 돋보기와 같다면, 당신은 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사람들의 얼굴과 피부를 볼 때 더 이상 매끄럽지 않을 것이고, 당신은 마음속으로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넷째, 눈은 빛을 감지하는 기관이고, 빛은 또 전자기파의 일종이므로, 특정 전자기파는 주파수나 파장의 크기에 따라 반사된다. 전자기 스펙트럼을 분석하면 주파수나 파장의 감수기관으로 볼 수도 있다. 사람의 눈은 시신경을 통해 사물을 관찰하고 그것을 뇌로 전송해 이미지를 만든다. 사람이 감지할 수 있는 주파수 또는 파장은 0.77μm에서 0.39μm 사이에 불과하다. 이 작디작은 가시광선 영역은 전체 전자기 스펙트럼에 비하면 너무나 좁다. 전자기 스펙트럼은 Fº에서 F∞까지 무한하기 때문에 말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제한적이다.

하지만 인류가 무한히 광활한 공간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은 바로 이 가시광선 영역이 매우 좁기 때문이다. 바로 이 좁은 영역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보는 세상을 오해하고, 이것이 우주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사유는 3차원 공간 내의 개념에 완전히 묶여 있고, 그 안에 갇혀 있어서 이 속박에서 뛰쳐나오거나 벗어날 수 없다. 현대 과학이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우주 물질이 우주 전체 물질의 0.01%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했을 때, 사람들은 이 현실을 이해하고 마음속으로 받아들이기가 정말 어려웠다. 과학자들조차도 이런 현실을 심리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사실이다.

만약 사람이 물질의 나머지 99.9%를 볼 수 있다면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그것은 어둠 속에서 진짜 빛을 보는 것이다. 돌아보면, 이 0.01%의 물질 공간이 얼마나 작고 어두운지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미혹[迷]의 세계다. 우리는 바로 미혹 속에 살고 있다. 우리가 사물의 진상을 이해하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물은 바로 사람의 관념이다.

위에서 우리가 논의한 내용은 단지 사람의 육안에 관한 것이다.

리훙쯔 대사님은 말씀하셨다.

“천목을 말하게 되었으니, 우리는 우선 우리 사람의 이 한 쌍의 육안을 말해 보자. 현재 어떤 사람은, 이 한 쌍의 눈은 우리 이 세계 중의 어떤 물질, 어떤 물체든 볼 수 있다고 여긴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은 일종의 고집스러운 관념이 생겨서 그는 눈을 통해 본 것만이 확실하고 확실한 것이라 여기며, 그가 보지 못하는 것은 믿지 않는다. 과거에는 줄곧 이런 사람을 오성(悟性)이 좋지 않다고 여겼는데, 일부 사람은 역시 왜 오성이 좋지 않다고 하는지 분명하게 말하지 못한다. 보이지 않으면 믿지 않는다는 이 말은 듣기에는 아주 이치에 맞는 것 같다. 그러나 조금 높은 층차 중에서 보면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어떤 시공(時空)이든 모두 물질로 구성된 것이어서 당연히 부동(不同)한 시공은 부동한 물질구조가 있으며 부동한 생명체의 각종 현현형식(顯現形式)이 있다.

내가 여러분에게 예를 들어 주겠다. 불교 중에서는 인류사회의 모든 현상이 모두 환상이고 실제적인 것이 아니라고 한다. 어찌하여 환상인가? 이 확실하고 확실하게 거기에 놓여 있는 물체, 그것을 누가 가짜라고 할 수 있는가? 물체가 존재하는 형식은 이런 것이지만, 그것의 표현 형식은 도리어 이런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눈은 오히려 일종의 공능이 있어 우리 물질공간의 물체를 우리가 지금 본 이런 상태로 고정시킬 수 있다. 사실 그것은 이런 상태가 아니며 우리 이 공간 중에서도 그것은 이 상태가 아니다. 예를 들어, 현미경으로 사람을 본다면 어떤 모양이겠는가? 온 신체는 성글고, 소분자(小分子)로 구성된 것인데, 마치 모래와 같은 과립(顆粒) 모양이고, 운동하는 것으로서, 전자(電子)는 원자핵을 둘러싸고 운동하고 있고, 온 신체는 모두 꿈틀거리며(蠕動) 운동하고 있다. 신체 표면은 매끄럽지 않으며 불규칙하다. 우주 중의 어떤 물체, 강(鋼)ㆍ철(鐵)ㆍ돌 모두 마찬가지로서, 그것 속의 분자성분은 모두 운동하지만, 당신은 전반 형식을 다 보지 못하는데, 사실 그것은 모두 안정된 것이 아니다. 이 책상 역시 꿈틀거리고 있지만 눈은 오히려 진상을 보지 못하는데, 이 한 쌍의 눈은 사람에게 일종의 착각을 조성해 줄 수 있다.

우리가 미시하의 것을 볼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이런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선천적으로 이런 능력을 구비하고 있어 일정한 미시하의 것을 그는 볼 수 있다. 바로 우리 사람이 이 물질공간의 이 한 쌍의 눈이 있게 된 후부터 곧 사람으로 하여금 보지 못하게 하는, 이런 가상(假相)을 만들어 주게 되었다. 그러므로 과거에, 사람들은 보지 못하면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으며, 수련계에서는 예부터 이런 사람을 오성(悟性)이 좋지 않아 속인의 가상에 미혹되었으며 속인 중에 미혹되었다고 여겼다. 이것은 종교 중에서 예부터 내려오는 말로서, 사실 우리가 보아도 역시 이치가 있다.

이 한 쌍의 눈은 우리 현존하는 물질공간의 물건을 이런 상태로 고정시킬 수 있는, 이것 외에 그것은 무슨 큰 능력이 없다.”(《전법륜》 제2강)

당신이 우주의 진상을 보고 싶다면, 당신은 반드시 반본귀진(反本歸真)해서 당신의 선천적인 선량한 본성으로 되돌아가야만 당신은 비로소 볼 수 있다. 당신이 《전법륜》을 읽기만 하면 모든 것을 똑똑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한 부의 천서(天書)이고, 동서고금에 가장 뛰어난 책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전법륜》을 읽기만 하면, 당신은 사람이 왜 이 세상에 왔는지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은 또 인생에 왜 쓴맛과 단맛이 동시에 존재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은 자신이 지금 왜 이런 상태인지 알게 될 것이다. 《전법륜》은 당신의 모든 미혹을 풀어줄 수 있을 것이다.

〈일깨움〉

자고로 인간세상 한 편의 연극이라
윤회전생하면서 장소를 바꿨네
세세생생 다양한 배역 맡았지만
쓸쓸한 무덤가엔 비바람만 오고가네
멀리 하늘 바라보니 하늘은 말이 없고
은혜와 원한 모두 미혹이라
인생이란 큰 연극 누굴 위함인가
진정한 나는 누구이기에 이곳에 왔는가
대법을 널리 전해 우주를 빛내고
신공(神功)으로 천백 억을 일깨웠노라
수레를 모는 나에게 마난(魔難)이 따르는데
나는 진상을 알려 사람 구하기 급하구나
대도(大道)는 줄곧 하늘 끝까지 닿으리라
(《홍음 3》)

[역주: 이 글은 우화(羽化)가 2014년 8월 10일부터 11월 20일까지 정견망에 연재한 총 29편 시리즈 문장의 마지막 편에 해당한다. 한글 번역은 정견망 검색창에 ‘우화’라고 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137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