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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동파와 왕안석의 시사(詩詞)에서 보는 서로 다른 목표와 선택

초약미

【정견망】

소동파(蘇軾)는 거대한 문학적 성취로 역사적으로 광범위한 칭송과 추앙을 받았다. 소동파가 창시한 호방한 풍격과 탁 트인 경계는 중국 고대 문학사에서 찬란한 성취를 이루었으며 후세에 큰 영향을 미쳤다. 명대 원굉도(袁宏道)는 동파를 ‘시신(詩神)’이라 불렸으며, 그의 시와 사의 초탈함과 생동함은 두보(杜甫)를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그의 정론(政論)은 이치가 투철하고 필력이 종횡무진하여 후인들에게 전형으로 받들어졌다. 그러나 이처럼 위대한 작가의 인생행로는 매우 기구하여 일반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풍파와 좌절을 겪었는데, 이는 당송팔대가의 일원인 왕안석(王安石)이 추진한 변법(變法)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

왕안석은 송 진종(真宗) 천희(天禧) 5년(1021년)에 태어나 송 철종(哲宗) 원우(元祐) 원년(1086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소동파(1037년~1101년)보다 열여섯 살 위다. 노년에는 강녕(江寧 지금의 남경)에서 거주했다. 문학사에서 시사(詩詞)의 영향력은 가장 주목받는 시인의 반열에 들지 못했으나 공묘(孔廟)에 배향되었다. 수천 년 동안 왕안석과 그의 변법을 둘러싼 쟁론은 멈춘 적이 없으며, 후세에 근 천 년에 걸친 포폄의 논란을 남겼다.

여기서는 소동파와 왕안석의 시사 속에 나타난 진실한 내면세계를 통해 그들의 인생 이념과 추구를 탐구하고 그 풍격의 특징을 살피며, 그들이 처한 시대와 인생 역정을 통해 인생의 선택에 직면해 나타난 필연적인 원인을 탐구해보고자 한다.

먼저 왕안석이 29세 되던 해에 지은 시 《등비래봉(登飛來峰)-비래봉에 올라》을 감상해보자.

비래산 위 천 길 높은 탑에(飛來山上千尋塔)
닭 울음소리에 해 뜨는 것 본다 들었네(聞說雞鳴見日升)
뜬구름이 눈 가림을 두려워하지 않노니(不畏浮雲遮望眼)
내 몸이 이미 최고층에 있기 때문이라네(自緣身在最高層)

이 시는 서기 1050년(송 인종 황우 2년) 여름, 왕안석이 절강 은현(鄞縣) 지현(知縣)의 임기를 마치고 강서 임천(臨川) 고향으로 돌아가던 길에 항주를 지나며 쓴 것이다. 비래봉의 해발 고도는 고작 168미터에 불과하지만, 그는 매우 과장되게 “천 길”이란 표현을 썼다. 고대에는 8척을 1심(尋)이라 했으니, 천심은 지극히 높거나 긴 것을 형용한다. 실제로는 봉우리 위 고탑의 높이를 빌려 자신이 서 있는 입지의 높음을 부각한 것이니, 내면의 ‘내 몸이 이미 최고층에 있기 때문이라네’라는 오만함과 ‘뜬구름이 눈 가림을 두려워하지 않노니’라는 고집스러움을 엿볼 수 있다.

이백(李白)은 “늘 뜬구름이 해를 가릴 수 있어, 장안이 보이지 않아 사람을 시름겹게 하네[總爲浮雲能蔽日,長安不見使人愁。]”라는 시를 남겼다. 이처럼 고인들은 늘 ‘뜬구름이 해와 달을 가리는’ 것을 우려했으나, 왕안석은 여기에 두렵지 않는다며 ‘불외(不畏)’란 두 글자를 더했다. 뜬구름을 쓸어버리겠다는 담력과 결심을 보여준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그가 처음으로 ‘불외(不畏)’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가 희녕(熙寧) 연간 변법을 추진할 때 내세운 ‘삼부족(三不足)’은 그의 무신론적 세계관을 더욱 극명하게 드러낸다. “천명을 두려워할 것 없고, 조종의 법도를 본받을 것 없으며, 사람들의 말을 가엽게 여길 것 없다(天命不足畏, 祖宗不足法, 人言不足恤).” (《송사·열전·권86》)

이것은 공자가 말한 ‘군자삼외(君子三畏)’와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군자에게는 세 가지 두려워하는 것이 있으니, 천명을 두려워하고 대인을 두려워하며 성인의 말씀을 두려워한다. 소인은 천명을 알지 못하여 두려워하지 않고 대인을 가볍게 여기며 성인의 말씀을 업신여긴다”라고 했다. (《논어·계씨 제16》)

이는 왕안석이 천명을 믿지 않고 천리에 순응하지 않았음을 설명한다. 인류 사회의 발전에는 내재된 규율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고 오직 인위적인 강인(强人) 정치만을 믿었으며, 마음속의 원대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눈을 가리는’ ‘뜬구름’을 제거하는 모든 수단을 동원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렇다면 그가 마음속에 품은 목표는 무엇이었을까?

그가 쓴 사 《낭도사령(浪淘沙令)》을 보자.

이윤과 강태공 두 늙은이(伊呂兩衰翁)
궁함과 통함을 두루 겪었네(歷遍窮通)
하나는 낚시꾼이었고 하나는 농사꾼이었지(一為釣叟一耕傭)
만약 그때 만나지 못했다면(若使當時身不遇)
영웅도 늙어 죽었으리라(老了英雄)

탕왕과 무왕을 우연히 만나(湯武偶相逢)
바람에 호랑이 구름에 용처럼 어울렸네(風虎雲龍)
왕업을 일으킴은 오직 담소 중에 있었으니(興王只在談笑中)
지금까지 천 년이 흐른 뒤에(直至如今千載後)
그 누가 공을 다투리오(誰與爭功)

이 사(詞)에서 이려(伊呂)는 이윤(伊尹)과 여상(呂尚 강태공)을 가리킨다. 이윤은 이름이 지(摯)이고 윤은 나중에 맡은 관직명이다. 원래 이수(伊水)가의 버려진 아이였으나 신(莘, 지금의 하남성 개봉) 땅에서 농사를 지었다. 후에 탕왕이 그를 발탁해 하나라를 멸하고 상나라의 개국공신이 되었다. 여상은 본래 성이 강(姜)이고 이름이 상이며 세칭 강자아(姜子牙)라 한다. 그는 만년에 위수(渭水)가에서 낚시를 하다 주 문왕을 만나 중용되었고, 무왕을 도와 상나라를 멸하고 제나라 제후로 봉해졌다.

이 사는 겉으로는 역사를 서술하고 논하면서 이윤과 여상의 곤궁했던 처지와 역사에 이름을 남긴 공업(功業)을 묘사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역사를 빌려 오늘을 기탁하며 개인의 지향과 목표를 서술한 것이다. ‘그 누가 공을 다투리오’의 이면에는 천추에 남을 왕업을 세우겠다는 진실한 사상의 흐름이 있다. 변법의 주지는 “천하의 힘으로 천하의 재물을 낳고, 천하의 재물을 취해 천하의 비용에 충당한다(因天下之力以生天下之財, 取天下之財以供天下之費)” (《송사·왕안석전》)는 것으로, 민간의 부를 조정으로 끌어모아 ‘왕업을 일으키는’ 웅장한 의도를 실현하려 한 것이다.

이는 법가(法家) 사상의 집중적인 체현으로, 군주의 패업(霸業)을 민생보다 우위에 두고 백성을 경작과 전쟁의 도구로 삼았으니, “백성이 귀하고 사직이 다음이며 군주는 가볍다”라는 전통적인 ‘인정(仁政)’ 사상과는 확연히 달랐다. 일하는 방식에서도 그의 고집스러움은 전통적인 중용 등 사람 됨됨이의 핵심 가치관에서 벗어나 있었다.

이제 소동파가 24세 되던 해(1061년)에 쓴 시 《화자유면지회구(和子由澠池懷舊)–자유(子由)의 ‘민지회구’ 시에 화답하며》를 보자.

인생길 어디로 가는지 아는가(人生到處知何似)
마치 기러기가 눈 덮인 진흙 밟는 것 같으리(應似飛鴻踏雪泥)
진흙 위에 우연히 발자국 남기지만(泥上偶然留指爪)
기러기 날아가면 어찌 동서를 따지랴(鴻飛那復計東西)
늙은 스님 이미 죽어 새 탑 세워졌고(老僧已死成新塔)
무너진 벽에 예전 글씨 볼 길 없네(壞壁無由見舊題)
지난날 험난한 길 기억하는가(往日崎嶇還記否)
길은 멀고 지친 나귀 울어대던 그 길을(路長人困蹇驢嘶)

이 시는 인생의 경험에 대한 사색을 읊고 있다. 인생에서 겪는 일이나 장소가 무엇과 같은가? 마치 날아가는 기러기가 눈 쌓인 진흙 땅을 밟고 지나간 흔적과 같다. 우연히 한 번 남긴 흔적에 무엇을 연연하는가? 기러기는 계속해서 먼 곳으로 날아갈 것인데, 어디로 갈지는 누가 주관할 수 있겠는가?

시의 앞 네 구절은 자유롭고 거침없으며 빼어나기 그지없다. “설니홍조(雪泥鴻爪 눈과 진흙에 남긴 기러기 발자국)”로 인생을 비유하며 인생을 기나긴 여정으로 보았다. 그는 미래를 전망함에 있어 경계가 넓고 멀어 공명과 공업(功業)에 대해 들뜨거나 초조함이 없으며, 세상을 반드시 어떻게 바꾸겠다는 고양감이나 아쉬움도 없다. 오직 천명에 순응하고 사람에 부합하는 달관과 소탈함을 보여준다.

그는 1070년에 쓴 송별시 《송안돈수재실해서귀(送安惇秀才失解西歸)–낙방하여 서쪽 고향으로 돌아가는 안돈 수재를 보내며》에서도 같은 사상을 표출했다.

“만사가 이미 운명임을 일찍이 알았거늘,

십 년간 헛되이 돌아다닌 것이 어찌 어리석음이 아니겠는가.”

萬事早知皆有命,十年浪走寧非癡

세상의 흥망성쇠에 모두 정해진 수가 있는가? 사람의 일생 역시 고층 생명이 안배한 것인가? 인생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 이는 인류가 존재한 이래 세인들 앞에 놓인 궁극적인 질문이며, 사람마다 저마다의 사고와 답변 방식이 있을 것이다.

소동파는 한편으로 인생에 대해 매우 냉철하고 명확한 인식과 사물 외적인 것에 구애받지 않는 광달함과 호방함을 지녔다. “인생은 여관과 같고, 나 또한 나그네일 뿐(人生如逆旅, 我亦是行人)” (《임강선·송전무부》).

이는 이백의 소탈함 및 태연함과 매우 닮았다.

“대체로 천지는 만물의 여관이요, 광음은 백대의 과객이라(夫天地者, 萬物之逆旅也, 光陰者, 百代之過客也)” (《춘야연종제도화원서》).

동파는 또 당당하고 세속을 벗어난 호연지기를 보여주며 어떤 처지에서도 태연자약했다.

“한 점의 호연지기 있으면, 천 리 길도 쾌재를 부르는 바람이로다(一點浩然氣, 千裏快哉風)” (《수조가두·황주쾌재정증장악전》).

천지 사이를 관통하는 이런 ‘쾌재풍’은 송옥(宋玉)이 《풍부(風賦)》에서 논한 부평초 끝에서 일어나는 ‘대왕의 웅풍[大王之雄風]’이나 후미진 골목에서 일어나는 ‘서인의 자풍[庶人之雌風]’에 국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소동파의 일생을 통찰해 보면, 언론으로 인해 거듭 변방으로 쫓겨나고 오대시안(烏臺詩案) 때는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으나 의연히 감히 말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천지 사이에 존재하는 호연지기이며, 이는 오늘날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기도 하다. 그저 입을 다물고만 있으면 높은 관직과 두터운 녹봉을 평안히 누릴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고인(古人)과 현대인의 경계와 시각 차이가 나타나니, 곧 당당한 대인(大人)과 구차하게 이익을 쫓는 소인(小人)의 차이다.

《송사·열전·권97》에는 왕안석의 변법에 관한 소동파의 상소문이 기록되어 있다. “국가가 존재하거나 망하는 까닭은 도덕(道德)의 깊고 얕음에 있지 강하고 약함에 있지 않으며, 국운이 길고 짧은 까닭은 풍속(風俗)의 두텁고 얇음에 있지 부유하고 가난함에 있지 않습니다.”

그의 활달함과 소탈함은 어쩔 수 없는 회피나 자위가 아니라 세상만사가 돌아가는 규율을 꿰뚫어 본 데서 나온 것이다. 도덕이야말로 국가의 존망과 사직의 안위를 결정하는 근본인데, 사람은 왜 도덕의 인도를 따르며 인사를 다하고 자연에 맡기지 않고, 기어이 하늘을 거스르고 대세를 거슬러 강제로 행하려 하는가?

당대(唐代)의 주담(周曇)은 “흥망은 덕에 달린 것이지 솥(鼎)에 달린 것이 아니니, 초나라 왕이 어찌 수고로이 무게를 묻는가.”라고 했다. 이는 기원전 606년 초 장왕이 군사를 일으켜 낙수(洛水)가에 이르러 주나라 왕실의 보물인 솥의 크기와 무게를 물었던 고사를 말한다.

주 양왕의 손자 왕손만(王孫滿)은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덕에 있지 솥에 있지 않다”라고 대답했다. 또한 소동파, 왕안석과 동시대를 살았던 북송 역리(易理)학자 소강절은 송 인종 가우 연간과 송 신종 희녕 초에 두 차례 천거되었으나 모두 병을 핑계로 나가지 않았다. 하루는 두견새 소리를 듣고 참담해하며 즐거워하지 않았는데, 그는 다음과 같이 감지했기 때문이다.

“2년이 지나지 않아 황상께서 남쪽 선비를 재상으로 등용하고 남쪽 사람들을 많이 끌어들여 오로지 변혁에만 힘쓰니, 천하가 이로부터 번잡해지겠구나!”

이는 북송 황제가 왕안석을 재상으로 삼아 변법을 추진할 것을 가리킨 것이다. 소강절은 또한 이런 시를 남겼다.

고금의 흥망을 살핀 뒤에 보니,
도(道)는 군신 사이의 나아가고 물러남에 있도다.
기이한 재능을 품었다면 반드시 기이하게 쓰일 것이요,
그렇지 않다면 일생의 한가함을 감내해야 하리라.

事觀今古興亡後
道在君臣進退間
若蘊奇才必奇用
不然須負一生閑

하늘로 통하는 길에 대해 소동파와 왕안석은 두 가지 완전히 다른 행보를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사람들은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하는가?

[역주: 망진천애로(望盡天涯路)를 직역하면 “하늘 끝까지 아득히 뻗어 있는 길을 끝까지 바라본다”는 뜻으로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지향을 갖고 어떻게 살아갈지 통찰하고 선택하는 것을 의미한다.

참고로 국학대사(國學大師) 왕국유(王國維)는 《인간사화(人間詞話)》란 자신의 유명한 문장에서 고금에 큰 사업이나 학문을 성취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거쳐야 할 세 가지 단계가 있다고 했다.

그중 바로 제1단계가 망진천애로로 홀로 높은 곳에 올라 자신이 가야 할 먼 길(목표)을 확인하는 단계이고, 제2단계는 옷띠가 헐거워질 정도로 몸이 야위어도 후회하지 않고 매진하는 단계이며, 제3단계 수없이 찾아다니다 문득 고개를 돌리니, 목표가 바로 그곳에 있음을 깨닫는 단계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10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