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
【정견망】
당대(唐代) 말기부터 오대십국 시기까지 복건 지방에 한 고승이 있었는데 법명은 보문(普聞)이며, 전해지는 바로는 본래 당 희종(僖宗)의 셋째 아들(혹은 둘째 아들이라고도 함)이었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그는 어려서부터 불교를 좋아하여 심지어 이를 위해 일 년 내내 채식을 했으며, 자란 뒤에도 인간 세상의 권세와 귀함에 뜻을 두지 않았다. 훗날 황소가 반란을 일으켜 당 희종이 사천으로 피난을 가자, 그도 이 기회를 빌려 황실의 신분에서 벗어나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다.
원래 황자였던 보문 스님은 먼저 호남 석상사(石霜寺)에서 참선 수행을 했고, 나중에 구름처럼 떠돌다 복건 소무(邵武)에 이르렀다. 그곳 산속에 초막을 짓고 수행했는데, ‘결려(結廬)’란 바로 임시로 움막을 짓는 것을 말한다. 세월이 흐른 어느 날, 한 괴이한 노인이 찾아왔다. 보문 스님이 상대의 신분을 물으니 노인이 말하기를 “저는 이 산속의 용인데, 비를 내리는 데 과오를 범하여 곧 하늘의 벌을 받아 죽게 되었으니, 부디 자비를 베풀어 제 목숨을 구해 주십시오”라고 했다. 그는 “형체를 바꾸어 오라”고 답했다. 노인은 그의 뜻을 알아듣고는 사라졌다.
잠시 후 작은 뱀 한 마리가 오더니 보문 스님의 소매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밤이 되자 비바람이 몰아치고 천둥 번개가 크게 일었다. 잠시 후 바람이 멎고 비가 그치며 먹구름이 흩어지고 날씨가 갰다. 이때 작은 뱀이 기어 나와 땅으로 내려오더니 산림 속으로 달아나 사라졌고, 잠시 후 노인이 형체를 나타내어 감사하며 말했다.
“만약 스님의 법력으로 구해주지 않으셨다면 저는 벌써 한바탕 핏물로 변해 산림을 오염시켰을 것입니다. 깊은 산에 물이 부족하니 제가 마땅히 물을 바쳐 공양하겠습니다.”
이에 노인이 바위 아래에서 맑은 샘 하나를 끌어내니 샘물이 점점 많이 솟아 나와 마침내 하나의 호수가 되었다.
후인들은 이 호수를 ‘용호(龍湖)’라 부르고, 이 산을 ‘용호산’이라 불렀으며, 보문 스님 또한 ‘용호선사’라 불리게 되었다. 용호선사는 이 산에서 30여 년을 수행했으며, 원적(圓寂)한 후 당시 조정으로부터 ‘원각선사(圓覺禪師)’라는 시호를 받았다. 이 기록을 통해 우리는 고대 중국에서는 위로는 황제부터 아래로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보편적으로 불도(佛道)와 신을 믿었음을 알 수 있으며, 그렇기에 당 희종의 아들이 궁중의 영화를 버리고 출가하여 스님이 된 사적이 있을 수 있었다.
오늘날 공산당이 선양하는 무신론은 결코 중국의 전통문화가 아니며, 전통에 반하는 정신적 독약일 뿐이다.
자료출처: 《건륭복건통지권60(乾隆福建通志卷六十)》, 《석씨계고략(释氏稽古略)》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0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