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월(青月)
【정견망】
《서유기》 속 당승(唐僧)의 서천취경(西天取經)은 세 제자와 백룡마의 동행, 그리고 관음보살이 내린 긴고주와 여러 법보(法寶)에 의지하며 신불(神佛)의 가호 속에 이루어진다. 하지만 역사 속 실제 현장의 서행 또한 신기함으로 가득 차 있다. 기록에 따르면 한 고승이 《다심경(多心經)》 한 권을 구두로 전해주어, 그것을 지니고 외우게 함으로써 가는 길의 평안을 보존케 했다고 한다.
《독이지(獨異志)》 및 《당신어(唐新語)》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현장 법사는 속가의 성이 진(陳)씨로 언사현(偃師縣) 사람이다. 그는 어릴 적부터 총명이 남달랐고 품행이 단정했다.
당 고조 무덕(武德) 초년, 그는 서역으로 가서 불경을 구하기로 결심했다. 계빈국(罽賓國)에 이르렀을 때 길은 지극히 험악했고 산중에는 호랑이와 표범이 출몰하여 거의 통행할 수 없었다. 현장은 한때 어찌할 바를 몰라 방문을 잠그고 방 안에서 정좌했다.
저녁 무렵 방문을 열자 한 노승이 보였다. 그 승려는 얼굴 가득 부스럼이 있고 몸에서는 고름과 피가 흐르고 있었는데, 어디서 왔는지 모르게 침상 위에 홀로 앉아 있었다. 현장은 그에게 공경히 예배하고 정성으로 가르침을 청했다.
노승은 《다심경(多心經) 역주: 반야심경을 말한다》 한 권을 입으로 전해주며 현장에게 외우도록 했다. 그 후 현장이 다시 길을 나설 때 산천은 평탄해진 듯했고 길도 새로 닦인 것처럼 열렸으며, 호랑이와 표범은 자취를 감추고 요괴와 귀신들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순조롭게 불국(佛國)에 도착하여 600여 부의 불경을 얻은 뒤 중국으로 돌아왔다. 그 《다심경》은 줄곧 전해 내려와 지금까지도 사람들이 독송하고 있다.
당초 현장이 서역으로 떠나려 할 때 영암사(靈岩寺) 마당에 소나무 한 그루가 있는 것을 보았다. 현장은 뜰에 서서 손으로 소나무 가지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내가 이번에 서쪽으로 불법을 구하러 가니 네 가지는 서쪽으로 자라거라. 만약 내가 장차 돌아오면 너는 다시 동쪽으로 돌아가라. 그래야 내 제자들이 알 수 있을 것이다.”
현장이 떠난 뒤 그 소나무 가지는 과연 매년 서쪽으로 뻗어 나가 점점 수 장(丈) 길이나 자랐다. 그러다 어느 해 갑자기 가지가 동쪽으로 돌아갔다.
절 안의 제자들이 이를 보고 말했다.
“교주님(敎主)께서 돌아오셨다!”
그리하여 그들이 마중을 나가니 현장이 과연 중토(中土)로 돌아왔다.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이 소나무를 ‘마정송(摩頂松)’이라 부른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4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