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약미(楚若薇)
【정견망】
당승 사도는 배를 타고 자모하(子母河)를 건너 서량녀국 지계(地界)에 들어서서 성 밖의 영양역에 머물렀다. 역승(驛丞)인 여관(女官)이 곧장 성안 오봉루로 들어가 여왕에게 보고했다. 여왕은 전상에서 역승의 보고를 들었는데 “어제(禦弟)의 용모가 당당하고 풍채가 영준하니 진정 천조상국(天朝上國)의 남아이자 남섬부주 중화의 인물입니다”라고 했다. 여왕은 곧 어제를 머물게 하여 혼인할 뜻을 품고, 관문을 갈아준 뒤 당승의 제자들만 서천으로 불경을 구하러 보내려 했다.
하지만 이 혼인이라는 일은 중매가 없으면 안 되는 법이라, 태사(太師)가 중매를 서고 역승이 혼주가 되어 함께 관역(館驛)으로 가서 어제에게 청혼했다. 《서유기》 원작 제54회에서는 당승의 반응을 이렇게 묘사한다. “삼장이 그 말을 듣고 머리를 숙인 채 말이 없었다.”
손오공이 나서서 혼사를 승낙했으나, 이는 ‘장계취계(將計就計)’의 계산이 깔린 것이었다. 희연(喜筵)이 끝난 후 성 밖으로 배웅할 때 “노손(老孫)이 정신법(定身法)을 써서 임금과 신하 등 사람들이 모두 움직이지 못하게 할 테니, 우리는 큰길을 따라 서쪽으로 가기만 하면 됩니다”라는 계획이었다.
태사가 돌아가 보고하자 여왕은 어가를 갖추어 당승을 맞이하러 왔다. 여왕은 “장로와 함께 봉련에 올라 나란히 앉아” 오봉루로 돌아왔고, “곧 장로와 손을 맞잡고 용차(龍車 용 모양의 수레)에서 내렸다.” 연회가 끝난 후 관문을 갈아주자 당승은 가짜로 성 밖까지 세 제자를 배웅하겠다고 했다.
“여왕은 그것이 계책인 줄 모르고 곧 전지를 내려 어가를 갖추게 하고 삼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봉련에 올라 서성 밖으로 나갔다.” 이때 “장로가 천천히 용차에서 내려 여왕에게 읍하며 말했다. ‘폐하, 그만 돌아가십시오. 빈승은 불경을 구하러 가겠습니다.’”
“여왕이 그 말을 듣고 크게 안색이 변하며 당승을 붙잡고 말했다. ‘어제 오라버니, 내가 나라의 부유함을 다 바쳐 당신을 남편으로 맞이하려 했고, 내일이면 보위에 올라 임금이 되게 하고 나는 당신의 왕후가 되려 했습니다. 희연까지 다 들었는데 어찌하여 다시 마음을 바꿉니까?’
생각지도 못하게 길가에서 한 여자가 불쑥 나타나더니 외쳤다.
‘당 어제, 어디를 가느냐! 나와 함께 풍월이나 즐기러 가자!’ … 그 여자가 한바탕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더니 우는 소리와 함께 당승을 채 가버리니 그림자도 종적도 없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당승에게 왜 이런 난이 닥쳤는가? 서량녀국에서 당승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살펴보자. 흔히 말하기를 “출가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고 하는데, 이는 스님이 거짓말, 큰소리, 허풍을 떨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불교 계율에서는 ‘불망어(不妄語)’라고 표현하며, 이는 재가거사의 오계 중에서도 지켜야 할 사항이다. 통행증명서를 교체하기 위해 서량녀국 여왕을 속였고, 게다가 혼인이란 대사를 장난처럼 여기며 서른여섯 가지 계책을 다 동원했다.
인간 세상에서 혼인이란 하늘이 정해준 것으로, 희연(喜筵 혼인잔치)은 곧 혼례가 성사되었음을 상징하고 당승이 이미 환속했음을 의미한다. 결코 ‘신혼밤’이나 ‘원양(元陽)을 잃는 것’만을 경계로 삼는 것이 아니다. 이미 환속했다면 비구의 구족계 구속도 받지 않게 된다.
2천여 년 전 석가모니불이 전한 그 한 문의 수련 방법은 바로 ‘계·정·혜(戒·定·慧)’였으며, “계에서 정(定)이 생기고 정에서 혜(慧)가 생긴다”는 것이었다. 부원신을 수련하는 것이었기에 출가하여 세속을 멀리하고 세상의 모든 유혹을 끊어야 했으며, 계율을 지키는 것이 가장 기본적이고 지극히 중요했다. 석가모니불 역시 말법말겁(末法末劫) 후에 세속에서 수련하는 불가 대법이 세상에 널리 전해질 것임을 알고 있었고, 그의 제자들도 전륜성왕(轉輪聖王)이 하세한 후 전하는 우주 대법 중에서 원만하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당승이 그대로 서량녀국에 머물면서 ‘출세(出世)의 마음으로 입세(入世)의 일을 하는 것’이 가능했을까? 이런 형식화된 표현은 대승불교의 《유마힐경》이 중국에 유입된 후 형성된 것이다. 재가거사인 유마힐을 중심인물로 하여, 집에 재산이 가득함에도 빈민을 구제하고 승려에게 보시하며 선행을 베풀고 대승 보살도를 천양하며, 적극적으로 입세하면서도 속세의 먼지에 물들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는 주류 사회 문인들의 문학적 취향에 매우 부합했기에 남북조 시대에 문인학사들이 청담을 나누는 화두가 되었고, 이로부터 불교 세속화의 흐름이 일어났다. 그러나 석가모니불이 설한 것이 아니라면 ‘경(經)’이라 부를 수 없다. 불교 내의 승려나 거사가 서로 다른 층차에서 말한 것들이 불경에 포함된 것은 법을 어지럽히는 시작이었다. 그러므로 “출세의 마음으로 입세의 일을 한다”는 식의 표현은 사회적으로 많이 유포되었으나 불교 중의 각인과 정보가 담겨 있어 우주 정법 시기의 대법 수련 속에 섞어 넣을 수 없다. 또한 대법 수련자가 세간의 정법 수련 중에서 승화하는 것은 그런 의미의 ‘보살행’이나 또는 공자 학설이 변천된 후의 ‘입세’가 아니다.
다시 당승이 그 여자 괴물에게 말려 들어가 독적산 비파동에 갇힌 일을 보자. 곧이어 손오공이 “주문을 외우며 몸을 흔들어 꿀벌로 변신하여 … 처마 안으로 날아 들어갔다.”
당승은 비단결 같은 고운 얼굴에 옥같이 부드러운 향기를 풍기며 서시보다 아름답고 나긋나긋한 여자 괴물과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당승은 깊이 생각했다.
‘내가 말을 하지 않고 음식도 먹지 않으려 하지만, 이 괴물은 저 여왕과는 다르다. 여왕은 그래도 사람이어서 예의가 있었으나, 이 괴물은 요신(妖神)이라 해를 끼칠까 두려우니 어찌할꼬? 내 세 제자는 내가 여기 갇힌 줄도 모를 텐데, 만약 해를 입는다면 헛되이 목숨을 버리는 것 아닌가?’
여기서 당승의 의지가 이미 견고하지 못하고 어느 정도 타협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 요괴가 채소 만두 하나를 쪼개어 삼장에게 건넸다. 삼장은 고기 만두 하나를 통째로 여자 괴물에게 건넸다.
여자 요괴가 웃으며 말했다.
“어제님, 어찌하여 쪼개서 제게 주지 않으십니까?”
삼장이 합장하며 말했다.
“나는 출가한 몸이라 고기를 쪼갤 수 없습니다.”
그러자 여자 요괴가 말했다.
“당신이 출가인이라 고기를 못 쪼갠다면서, 어찌 지난번 자모하에서 물을 마시고 배가 부르셨습니까? 오늘 또 속에 팥을 넣은 만두를 잡수실 수 있나요?”
삼장이 답했다. “물이 높으면 배가 빨리 가고, 모래에 빠지면 말이 늦게 갑니다(沙陷馬行遲).”
행자가 창틈으로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사부의 진성(眞性)을 어지럽힐까 걱정되어 참지 못하고 본래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서 여자 요괴의 말속에는 날카로움(機鋒)이 숨어 있는데, 당승이 자모하에서 낙태하며 계율을 어긴 것을 지적하고, 지금 다시 팥소를 먹으려 함은 이미 타협할 뜻이 있음을 꼬집은 것이다. 당승이 대답한 말은 이치에 밀려 회피하고 환경에 순응하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 여자 요괴가 만약 한 걸음 더 나아가 색으로 유혹하고 핍박했다면 당승의 원양(元陽)을 여전히 지킬 수 있었겠는가? 다행히 손오공이 나타나 마음이 어지러워진 당승을 구해냈다. 이 난은 지난번 서량녀국에서 계율을 어기고 시험을 통과하지 못해 초래된 것으로, 난이도가 높아진 또 한 차례 고험이라 할 수 있다.
손오공은 그 여자 요괴를 제압하지 못하고 오히려 ‘도마독(倒馬毒)’에 상처를 입었는데, 다행히 관음보살이 나타나 묘일성관(昴日星官)을 청해 오게 했다. 성관이 “산비탈에 서서 본래 모습을 드러내니 원래 두 개의 벼슬이 달린 큰 수탉이었다. 머리를 치켜드니 키가 예닐곱 척이나 되었는데, 요정을 향해 한 번 우니 그 괴물이 즉시 본래 모습인 비파만한 전갈 정령으로 변했다. 성관이 다시 한번 우니 괴물은 온몸이 나른해져 비탈 앞에 죽었다.”
이로써 비로소 당승을 구출할 수 있었다.
《서유기》 제27회에서는 당승을 이렇게 묘사한다.
“그는 본래 금선자(金蟬子)의 화신이며 십세(十世)를 수행한 원체(原體)이다.”
취경의 길에서 만난 여자 요괴는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당승의 고기를 먹어 장생불사하려는 부류이고, 다른 하나는 색으로 유혹해 당승의 원양을 얻으려는 부류이다.
수행의 원체가 이토록 귀중하다면, 과연 수행이란 무엇인가? 《교육부중편국어사전수정본(教育部重編國語辭典修訂本)》에서는 “닦고 익혀 실천함, 부처를 배우거나 도(道)를 배움”이라고 설명한다.
‘수행’이라는 단어는 옛날에도 있었는데, 군자가 덕행을 닦는다는 의미였다. 나중에 불교와 도교에서 ‘교리에 따라 실천하는 것’을 수행, 수도 등으로 부르면서 점차 ‘수행’이라는 단어의 주요 의미가 되었다.
불교의 수행 방식은 오욕(五慾)을 가리고 열반 도를 구하는 것을 최종 귀숙처로 삼는다. 따라서 ‘수행’이라는 단어에는 이미 불교와 도교의 특정 내함이 담겨 있어, 대법의 ‘수련’이라는 단어와는 함의가 다르다. 또한 이는 ‘불이법문(不二法門)’의 문제와도 직결되므로 혼용해서는 안 된다.
“천고에 흘러 전해져 승적(勝跡 빼어난 자취)을 이루었건만,
몇 사람이나 수련하여 진기(真機)를 얻었을까.”
“굳은 마음 한결같은 뜻으로 앞길을 가니,
대도(大道)는 끝내 사람을 저버리지 않으리라.”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469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