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원(雪遠)
【정견망】
《계림풍토기(桂林風土記)》에 이런 기록이 있다.
당(唐) 고종(高宗) 조로(調露) 연간에 계주(桂州) 사람 설갑(薛甲)이 항상 한 승려를 공양했다. 이 승려의 법호는 도림(道林)으로, 도업(道業)과 덕행이 모두 높아 설갑이 그를 각별히 받들어 공경했다. 이렇게 10여 년을 공양했는데, 문득 어느 날 그가 작별을 고하며 말했다. “빈도가 이곳에서 여러 해 동안 번거롭게 해드렸으나 보답할 길이 없었습니다. 지금 낡은 경전 한 상자가 있으니 잠시 댁에 맡겨두었다가, 만약 제가 일 년 동안 돌아오지 않으면 그것을 열어보십시오.“
일 년 남짓 지나 설갑이 경전 상자를 열어보니 황금 천 량이 들어 있었다. 후에 절반을 팔아 땅을 사서 보제사(菩提寺)를 세웠고, 아울러 도림의 진신 소상을 만들어 사찰에서 공양했다. 오늘날까지도 이 소상의 풍모와 의용이 여전히 남아 있다.
설갑에게는 지금 설우빈(薛禹賓)이라는 손자가 있어 계림에서 관직에 몸담고 있다. (《계림풍토기(桂林風土記)》)
고대에는 수행인을 공양하는 전통이 있었다. 많은 이들이 일심으로 불법을 향하며 수행인을 공양함으로써 스스로 복을 빌었다. 또한 어떤 수행인들은 사찰에 있지 않으면서 청수(淸修)하거나 폐관(閉關)하고자 할 때 반드시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했기에, 이와 같이 본문 속의 공양 관계가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나 수행인 역시 공양하는 사람의 공양을 거저 받는 것이 아니며, 그를 위해 복분을 쌓아주기도 한다.
본문의 도림 선사는 금은을 남겨두는 방식으로 설갑에게 보답했다. 그리고 설갑 또한 초심을 잊지 않고 여전히 일심으로 부처를 믿어 금은의 절반으로 사찰을 세웠다. 그리하여 더 많은 사람이 불법을 신봉하게 했으니, 이는 더욱 공덕이 무량한 좋은 일이다.
대법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문제에 대하여 법을 전하는 초기에 내가 여러분에게 말한 적이 있다. 대법수련을 놓고 말한다면 재물을 모집하고 물건을 모을 수 없는 것으로, 그러면 오직 집착을 조장할 뿐 수련에 대해 좋은 점이 하나도 없다고 나는 말했다. 이뿐만 아니라 당신들은 속인 사회 중에서 수련하기에 속인의 공양도 필요 없다.” (《로스앤젤레스시 법회 설법》)
불교는 오늘날에 이르러 이미 안 되게 되었다. 그래서 공양 역시 변질되었다. 고대의 공양은 단지 방 한 칸과 평범한 음식이었으며, 목적은 청수(淸修)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승려가 돈을 요구하고 또 집으로 부치기까지 하니, 도리어 출가인에게 가장 큰 집착이 되었다. 반면 대법 수련은 바로 속인 중에서 닦는 것이므로 더더욱 공양이 필요하지 않다. 많은 사람이 각자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스스로 생활하며, 더군다나 남의 것을 가져서는 안 된다.
공양은 고대 불교에서는 허용되었다. 목적은 일부 수행인이 폐관(閉關)하고 청수하는 데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대법제자들 사이에서는 허용되지 않는다. 법문(法門)이 다르면 요구 사항도 자연히 다른 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