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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오천년〗 화하(華夏) 역사의 진면모: 창세기사(創世紀事) (1)

심연(心緣)

【정견망】

서문

아득한 천지 속에 수많은 중생이 살아가고, 아득히 먼 만사는 눈앞을 스치는 구름과 같다. 긴 세월을 지나 역사를 되돌아볼 때, 우리는 역사가 이미 정해진 궤도에 따라 발전해 왔으며 선철(先哲)들의 수많은 예언이 모두 적중했음을 발견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역사는 정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안배된 것일까? 신(神)이 안배한 것일까? 이 모든 안배는 또 무엇을 위함인가? 정말 신은 존재하는 걸까?

주지하다시피 중화 문명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 중 하나다. 중화 문명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통일되고 연속된 문명이라 할 수 있다. 다른 고대 문명을 연구할 때 현대인은 자기 조상의 문자를 해독하지 못해 문명의 시종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만, 현대 중국인은 수천 년 전의 문자를 읽고 중화 조상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역사를 파악하는 데 강력한 도움이 된다. 조상이 남긴 문자를 연구할 때, 우리는 원고 시대의 중화 문명이 신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다시 한번 발견하고 놀라게 된다. 수많은 신화 이야기는 역사의 진실이 오늘날 우리가 묘사하는 것과 다르며, 우리 조상들이 상천(上天)에 대해 각별한 경외심을 가졌음을 말해주는 듯하다.

오늘날 출토되는 많은 고대 유물과 전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옛사람들이 신을 믿고 숭배했으며, 신이 가르쳐준 도리에 따라 사람 됨됨이와 처세를 지키며 대대로 전해 내려왔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나중에 신화의 내함(內涵)이 후대에 이해되지 않으면서, 사람들은 점차 신화가 단지 막연한 상상일 뿐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비록 역사의 진실 중 많은 부분이 시간의 터널 속에 묻혔고 역사가 우리 앞에 복잡하게 펼쳐져 있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의 주선(主線)이 모든 가지를 긴밀히 연결한 채 진시황과 한무제를 거치고 당태종과 송태조를 지나 오늘날의 역사에 이르렀음을 알지 못한다.

역사의 진실을 가능한 한 복원하기 위해, 우리는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를 해석하고자 합니다. 중화민족의 기원, 발전, 조대(朝代)의 교체, 주요 역사적 사실과 사건, 인물, 사상, 생활 상태, 문화 개설 등을 서술하는 동시에 관련 예언들을 결합하고 그 예견성을 분석함으로써, 중국 역사에 대한 사람들의 새로운 사고를 일깨우고자 합니다.

창세기사

하늘과 땅은 어디에서 왔으며 왜 생겨났을까? 사람은 어디에서 왔으며 왜 생겨났을까? 이 질문들은 여전히 미망 속에 있는 오늘날의 우리를 곤혹스럽게 한다.

천지의 기원에 대해 서양에는 하나님이 천지와 만물을 창조했다는 설이 있고, 중국에는 반고(盤古)가 하늘과 땅을 열었다는 전설이 있다. 《산해경》 기록에 따르면 우주는 반고라는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 우리는 이를 ‘반고 우주’라 부를 수 있다. “반고 우주가 처음 생겨날 때는 마치 모체 안의 배아와 같아서” 아주 미세한 입자에 불과했다고 상상해 볼 수 있다. 혼돈 상태에서 이 우주가 점차 생성되었고, “우주 속 층층의 물질이 층층의 하늘과 땅을 조합해 냈으며, 동시에 층층의 천지 사이에 반고와 같은 신과 층층의 중생을 포함한 만물을 생성했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지구상의 산천초목(山川草木)과 조수충어(鳥獸蟲魚) 등 만물이 포함된다.

지구에 천지와 만물이 생긴 후, 하늘에서 몇몇 신이 내려와 법력(法力)을 운용하여 자신의 모습을 본떠 사람을 만들기 시작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중국인은 여와(女媧)라는 신이 만들었다고 한다. 여와는 아름다운 여신으로, 사료에 따르면 사람의 머리에 뱀의 몸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태평어람》은 여와가 사람을 만든 과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처음에 여와는 황토와 물을 사용해 자신의 모습대로 진흙 인형을 하나씩 빚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인형을 만들었으나 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느껴 넝쿨 줄기에 진흙물을 묻혀 휘둘렀는데, 땅에 떨어진 진흙 점들이 모두 사람이 되었다.”

이 묘사에서 알 수 있듯이 신의 일원인 여와는 인력(人力)이 아닌 법력(法力)으로 사람을 만든 것이다. 사실 “신들은 신통으로 했고 손으로 만들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사람의 신체는 그 구조가 모두 아주 복잡한 것으로 손으로 빚어낼 수 없다. 사람의 아둔한 방법으로는 안 되기 때문에 신은 법력(法力)으로 했다.”(《대뉴욕지역법회 설법》)

중국인은 이때부터 지구에서 번성하며 살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막 태어난 인간은 우주, 생명, 세상만사에 대한 인식 능력이 없었고, 대천세계(大千世界)의 변화에 대한 어떠한 감내력도 없었으며, 당연히 형성된 사상도 없었다.

사람과 신이 공존하던 시기

사람들의 기술을 풍부하게 하고 우주와 지구, 자연계에 대한 인식과 대처 능력을 높여주기 위해 하늘에서 다시 몇몇 신이 내려와 각종 기본적인 생활 기술과 지식을 가르쳤다.

가장 먼저 나타난 신은 유소씨(有巢氏)로, 그는 사람들에게 나무 위에 나뭇가지와 잎으로 누추한 덮개를 만드는 법을 가르쳤는데 이것이 원시적인 가옥이었다. 최소한 맹수와 홍수를 피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배웠고 건축 기술은 날로 발전했으며, 나중에 사람들은 이 방법을 지상으로 옮겨와서도 동일한 효능을 보았다.

중국 역사 전설 속의 삼황(三皇)도 이와 같은 신들이었다. 삼황이 정확히 누구를 지칭하는지에 대해 사학계에는 줄곧 두 가지 관점이 존재해 왔다.

하나는 수인(燧人), 복희(伏羲), 신농(神農)을 말하고, 다른 하나는 복희, 여와, 신농을 말한다. 통상적으로는 수인, 복희, 신농을 가리킨다.

왜 수인, 복희, 신농을 하늘에서 내려온 신이라고 하는가? 사료 기록에 따르면 세 사람은 수인씨, 복희씨, 신농씨로 존칭되는데, ‘씨(氏)’의 원시적 의미는 신령(神祗)이라는 뜻이다. 또한 세 사람 모두 기이한 형상을 가졌으며 지혜가 남달랐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수인씨는 비범하게 총명했다. 복희의 어머니는 화서(華胥)인데, 뇌택(雷澤)이라는 곳에서 거인의 발자국을 밟아 임신하여 12년 만에 복희를 낳았다고 한다. 복희의 생김새는 사람 머리에 뱀의 몸이었으며, 혹은 사람 머리에 용의 몸이었다고도 하는데 지혜와 용맹을 겸비하고 힘이 장사였다. 그는 스스로를 ‘용사(龍師)’라 칭하고 용을 화하족(華夏族)의 족휘(族徽 민족의 상징)인 토템으로 삼았는데, 중화민족을 ‘용의 전인’이라 부르는 것은 아마 여기서 연유했을 것입니다.

신농씨에 대해 《춘추위・원명포》에서는 ‘사람의 얼굴에 용의 형상(人面龍顏)’이며, 태어날 때부터 수정처럼 맑은 배를 가져 오장육부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고 한다. 태어난 지 세 시진 만에 말을 하고 닷새 만에 걸었으며 이레 만에 치아가 다 났다. 또한 인류의 지혜를 초월한 세 사람의 수많은 행위로 볼 때, 막 창조된 인간의 지혜로는 도달할 수 없는 것이었기에 분명 인류를 교화(敎化)하라는 사명을 띠고 인간 세상에 온 신이었을 것이다.

사서 기록에 따르면 수인씨는 먼저 사람들에게 나무를 비벼 불을 얻는 법(鑽木取火)을 가르쳤다. 그는 하늘의 가장 큰 비밀 중 하나인 ‘불’을 인류에게 누설했다. 불은 도처에 있으나 아무도 그것을 얻는 방법을 몰랐다. 수인씨는 나무에서 불을 끄집어내는 법을 가르쳤다. 인류는 불을 얻음으로써 익힌 음식을 먹게 되어 신체가 강건해졌고, 생활 방식에 비약적인 돌파구가 마련되었다. 이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가 하늘의 불을 훔쳐 인류에게 준 기록을 떠올리게 한다.

고고학 및 사료에 근거해 판단할 때, 복희의 부족은 대략 지금의 감숙 일대에 거주했다. 오늘날 감숙 천수시에는 ‘복희괘대(伏羲卦台)’가 있다. 복희의 사명은 사람들에게 그물을 맺어 물고기를 잡고 사냥하며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 정착 생활을 이끄는 것이었다. 또한 불로 요리하는 법을 가르쳤고, 결승기사(結繩記事)를 대신할 문자 기호를 창조하기 시작했다. 그는 관리를 두어 백성을 다스리게 했고 관리들의 몸에 용을 그려 신분을 나타내게 했다.

또한 천지의 수와 오행에 따라 악기인 요금(瑤琴)을 만들고, 봉황의 날개 모양을 본떠 소(簫)라는 악기를 만들었으며 〈가변(駕辨)〉이라는 곡을 지어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했다. 엄격한 혼인 예절을 제정하고 부부 제도를 세워 결혼식을 거쳐야 아이를 낳을 수 있게 함으로써 다음 세대가 부모의 좋은 훈육을 받게 했다. 또한 성씨를 정하여 스스로 풍(風)씨라 성을 삼았으니, 이때부터 중국인에게 성씨가 생기기 시작했다.

특별히 주목할 점은 복희가 음양의 변화에 근거하여 팔괘(八卦)를 창제했다는 것이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복희씨가 어느 날 황하 가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용마(龍馬)가 그림을 지고 나왔고, 이를 얻어 팔괘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황제(黃帝)가 이를 근거로 “희화(羲和)에게 해를 점치게 하고, 상의(常儀)에게 달을 점치게 하며, 유구(臾區)에게 별의 기운을 점치게 했다”고 한다. 이른바 ‘용도를 받고 팔괘를 그리다(受龍圖, 畫八卦)’라는 말이 여기서 내원했다.

옛사람들은 이 그림을 ‘하도(河圖)’라 불렀으며 복희팔괘, 선천팔괘, 가장 원시적인 판본의 역경(易經)이라고도 한다. 그 특징은 흑백의 점으로 수를 나타내어 그림으로 배열한 것이다. 즉 1과 6은 아래에, 2와 7은 위에, 3과 8은 왼쪽에, 4와 9는 오른쪽에, 5와 10은 중앙에 위치한다. 이 하도는 사람들에게 하늘의 뜻을 따르는 방법을 남겨준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중국인은 천상(天象)의 변화와 천명(天命)은 거역하기 어렵다고 늘 말하며 하늘을 무한히 존중하는데, 천지 변화의 이치가 바로 이른바 ‘도(道)’다.

이후 주 문왕이 하도에 근거해 주역을 연역함으로써 역경은 원시 도상에서 문자 괘상으로 변했으니 이것이 이른바 주역, 후천팔괘다. 공자 시대에 이르러 인간이 도와 더 멀어지자 비로소 문자로 역경을 주해하기 시작했으니 그것이 《역경 계사전》이다. 오늘날에도 많은 이가 왜 몇 가지 단순한 괘상이 해석하기 어려운 예측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매우 궁금해한다. 사실 이것은 하늘이 인간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남긴 경전으로, 명백히 인간의 지혜로 창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시기 인류 발전사에 큰 사건이 발생했다. 《회남자・남명편》, 《논형・담천편》에는 당시 공공씨(共工氏)와 축융씨(祝融氏) 두 신령이 부주산(不周山)에서 결투를 벌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공공씨가 패배하자 머리로 부주산을 들이받아 산이 꺾이고 말았다. 부주산은 하늘과 땅 사이를 지탱하는 주요 기둥이었는데, 기둥이 꺾이자 하늘이 즉시 크게 갈라졌다. 대지는 균형을 잃고 동남쪽으로 급격히 기울었으며 홍수가 땅 밑에서 솟구쳐 나와 온 세상이 바다가 되었다. 인류는 울부짖으며 도망쳤으나 숨을 곳이 없었다.

여와는 인류가 고통받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해 산 위의 오색 돌을 채취해 제련한 후, 그것으로 하늘의 균열을 메웠다. 지금도 하늘가에 빛나는 찬란한 노을은 여와씨가 보수하며 붙인 오색 거석들이라고 한다. 그녀는 또한 신령스러운 거북의 네 발을 잘라 네 개의 기둥으로 삼아 대지를 다시 지탱했다. 하늘의 균열로 쏟아진 큰물은 여와가 갈대를 태운 재를 사용해 흡수하여 말렸다. 푸른 하늘이 보수되고 사방이 바로잡혔으며 물이 마르자 천지는 비로소 안정을 찾았고 선량한 사람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우리는 신령 여와가 사람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인류를 구원했음에 감사드려야 한다.

그 후 인류는 계속해서 번성했다. 혼인 예절이 생긴 후 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원고 시대에 백성들은 사냥으로 생계를 유지했으나, 인구가 많아지자 짐승들이 백성이 먹기에 부족해졌다. 또한 인류가 불을 얻고 요리법을 배우면서 더 많은 음식을 필요로 하게 되었는데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다. 하나는 무엇을 먹어도 되고 무엇을 먹으면 안 되는지 모르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질병에 걸렸을 때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었다.

이에 또 다른 신령인 신농(神農)이 세상에 내려와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했다. 신농씨는 인공적으로 재배할 수 있는 식용 식물을 찾기 위해 밖으로 나가 각종 꽃과 풀, 열매를 채취하여 일일이 입에 넣고 씹어 먹어보며 그 성질과 기능을 확인했다. 이렇게 함부로 먹은 결과 하루에도 일흔 번 넘게 중독되기도 했다. 다행히 그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기에 중독되어 죽진 않았다. 마침내 그는 먹을 수 있는 종과 없는 종, 그리고 어떤 것이 약으로 쓰일 수 있는지를 찾아냈다.

그중 상등 약 120종은 양생(養生)에 좋아 먹으면 수명을 연장하고, 중등 약 120종은 양성(養性)에 좋아 기를 보하며, 하등 약 125종은 병을 치료할 수 있었다. 신농씨는 인간 세상에 와서 중국인을 위해 상당히 완전한 의약의 기초를 세워주었으며, 이후 수천 년간 한약의 발전은 사실상 모두 《신농본초경》의 기초 위에 세워졌다. 따라서 신농씨는 중국 의약의 시조로 존숭받는다. 그뿐만 아니라 신농씨는 오현금(五絃琴)을 만들어 사람들의 정신 생활을 풍요롭게 했다. 또한 뇌사(耒耜, 쟁기와 보습)를 발명하여 백성에게 경작을 가르쳤다. 도기를 제작하여 물을 긷고 음식을 굽는 법 등도 가르쳤다. 바로 신농 시대에 중화민족은 농경 사회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인류는 이처럼 수인, 복희, 신농 세 신인(神人)의 도움으로 생활의 질이 높아지기 시작했고, 자연에 대한 인식과 대처 능력을 갖추게 되었으며 기본적인 인간 행동 규범을 갖게 되었다. 갓 태어난 인류는 신의 보살핌 속에서 이처럼 한 걸음씩 요람을 벗어났다. 이때부터 우리 선조들은 야만에서 벗어나 초기 문명으로 전환되었다.

중국사에 기록된 삼황이 겪은 긴 세월을 볼 때, 신이 사람을 창조한 후 중국에는 분명 사람과 신이 함께 공존하는 세월이 있었으며 신이 직접 인류에게 문화를 전수했다. 따라서 중국인이 하늘을 무한히 경배하는 ‘경천(敬天)’은 단지 중국 문화가 신을 믿는 문화임을 대표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신전(神傳) 문화라는 표징(表徵)과 내함이 공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체현이다.

(계속)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0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