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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해삼국 (10): 동요는 본래 예언

유여(劉如)

【정견망 2019년 10월 20일】

“황제는 황제가 아니요,
왕은 왕이 아니로다.
천 승의 수레와 만 마리의 말이 북망산으로 달려가네

(帝非帝, 王非王, 千乘萬騎走北邙).”

이것은 소설에 등장하는 첫 번째 동요다. 영제가 붕어한 후 마지막 두 황제의 운명을 예언한 것이다. 이때부터 저자는 동요를 근거로 천의(天意)의 존재를 보여주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한 명의 황제와 한 명의 왕, 모두 제왕의 명이 아냐

한 영제 중평(中平) 6년(서기 189년) 4월, 영제의 병이 깊어졌다. 태자를 세우지 못하고 계승에 관한 명확한 유조(遺詔)도 남기지 못한 채 붕어했다. 권력을 잡은 환관들은 영제의 생전 염원에 따라 서자(庶子)인 유협(劉協)을 황제로 세우려 했다. 그러나 영제의 적장자인 유변(劉辯)의 곁에는 국구(國舅)이자 대장군으로 국가 병권을 쥔 하진(何進)이 있었고, 어머니는 명실상부한 하태후였다. 따라서 유협을 즉위시키려면 하진을 제거해야 했다.

환관들은 하진을 궁으로 불러 살해하려 했으나 기밀이 누설되었고, 오히려 하진이 환관들을 소탕하려 했다. 하진은 백관을 거느리고 유변(소제)을 즉위시킨 뒤, 하태후에게 환관들을 모두 죽일 것을 청했으나 허락받지 못했다. 이에 하진은 원소(袁紹)의 건의를 받아들여 외방의 장수들을 낙양으로 불러들여 환관을 처단하는 데 도움을 받기로 한다.

이것이 서량자사(西凉刺史) 동탁(董卓)이 대군을 거느리고 도성 낙양에 입성하게 된 배경이다. 외신(外臣)이 군대를 거느리고 도성에 들어오는 것은 역대 제왕들이 가장 금기시한 위험한 일이었다. 일단 군대를 이끌고 도성에 들어오면 강산이 뒤엎어질 가능성이 매우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황제의 조서 없이는 누구도 감히 범할 수 없는 금기였다. 동탁이 아무리 나쁜 마음을 품었어도 함부로 움직이기 힘들었으나, 하진의 행위는 동탁에게 천재일우의 기회를 준 셈이었다.

노식(盧植), 조조 등 신하들이 간곡히 말렸으나 하진은 마치 귀신에 홀린 듯 독단적으로 밀어붙였다. 상서 노식은 관직을 버리고 떠났고 조정 관리 절반이 사직했다. 동탁은 명분을 얻어 도성에 들어와 조정을 장악하려 했다. 동시에 장양(張讓) 등 환관들이 먼저 선수를 쳐 하진을 궁으로 유인해 살해했다. 원소 등이 이를 알고 궁으로 쳐들어가 환관들을 몰살하고 궁궐에 불을 지르니 대혼란이 일어났다.

환관 장양 등은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 소제와 동생인 진류왕 유협을 납치해 밤중에 북망산(北邙山)으로 달아났다. 도중에 황제 형제는 혼란 속에 환관들과 떨어져 강가 풀숲에 숨었다. 당시 소제는 14세, 진류왕은 10세도 안 된 아이였다. 형제는 소리 죽여 울며 이슬에 젖고 굶주림과 추위에 떨다가 새벽녘이 되어서야 백성에게 구조되었고, 이후 백관과 금군에게 발견되어 환궁했다.

이때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일찍이 낙양 아이들 사이에 ‘황제는 황제가 아니요, 왕은 왕이 아니로다. 천 승의 수레와 만 마리의 말이 북망산으로 달려가네’라는 동요가 돌았는데, 이때에 이르러 과연 그 참언(讖)이 응험했다.” 여기서 참언이란 곧 예언을 뜻한다.

낙양의 동요는 일이 일어나기 전 이미 예고를 주었으나 당시엔 아무도 그 뜻을 몰랐다. 일이 벌어진 뒤에야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황제가 황제답지 못하고 번왕이 번왕답지 못한 상황에서, 국가의 수많은 신하와 장수들이 납치된 황제를 찾기 위해 수만 기의 말을 타고 북망산을 분주히 헤맸음’을 뜻한 것이었다.

환궁 후 제왕의 정통 권위를 상징하는 옥새가 사라졌는데, 이는 유변이 곧 제위(帝位)를 잃을 것이며 유협이 마지막 황제가 될 것임을 예언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누가 황제가 되든 권력을 잃고 명목상으로만 존재할 운명이었으니, 이것이 바로 “황제는 황제가 아니요, 왕은 왕이 아니다”라는 말의 실체였다.

동요는 본래 예언: 임금을 경계하고 미래를 말함

많은 이들이 동요를 단순히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로 생각하겠지만, 주조(周朝) 사관(史官)은 동요에 대해 오늘날과는 완전히 다른 정의를 내렸다.

“상천(上天)이 임금을 경계하고자 형혹성(熒惑星, 화성)을 아이로 변하게 하여 유언비어를 짓게 하니, 아이들이 이를 익혀 부르게 한 것을 동요라 한다.” (《동주열국지》)

동주 태사(太史) 백양보(伯陽父)의 설명에 따르면, 하늘이 인간 세상의 군주에게 경고하기 위해 불길함의 징조인 화성의 기운을 아이로 변화시켜 출처를 알 수 없는 노래를 퍼뜨린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대 초기의 동요는 ‘요참(謠讖)’ 즉 예언이었다.

이 정의는 동요가 군주로 하여금 덕행을 바로잡게 하려는 목적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지 않으면 하늘이 내리는 재난(災難)을 피할 수 없다는 경고다. 미래의 흐름과 인물의 운명을 미리 알려주는 신비한 힘을 가진 것이다. 《삼국연의》에는 동한 말 동요가 약 8회나 등장하며, 번번이 응험하여 사람들을 전율케 했다.

영제 말년의 “황제는 황제가 아니요, 왕은 왕이 아니로다. 천 승의 수레와 만 마리의 말이 북망산으로 달려가네”라는 이 동요는 정사 《후한서》에도 기록되어 있다. 사실 《삼국연의》에 나오는 동요의 절반은 사서에 근거한다. 동탁의 파멸을 예언한 “천 리 길의 풀(千里草-董)이 어찌 그리 푸른가. 열흘 뒤의 점(十日卜-卓)은 살 길을 얻지 못하리”가 대표적이다. 사서는 동요가 천의를 전달하는 것으로 보았으며, 동탁이 신하의 신분으로 군주를 능멸하니 곧 멸망할 것임을 예고한 것이라 풀이했다.

이처럼 중국 고대 사서(史書)는 천의(天意)의 존재를 명확히 기록했으며, 이는 소설적 허구가 아니다. 동요는 군주뿐만 아니라 신하에게도 불의하면 악보(惡報)를 받는다는 경고를 보낸다. 저자는 이러한 신전문화(神傳文化)의 역사관을 바탕으로 삼국 이야기를 구성하고 전개했다. 의리(義理)란 자연히 형성된 것이 아니라 하늘이 정하여 인간을 규범화하기 위해 전해준 것임을 보여준다.

《연의》를 통해 《홍루》를 밝히다

《홍루》는 《홍루몽》을 가리킨다. 사실 《삼국연의》만이 신전문화의 각도에서 소설을 구상한 것이 아니라, 4대 명저(名著)가 모두 그러하다. 여러분이 원작의 첫 번째 회인 제1회를 주의 깊게 읽어보기만 하면, 작가가 천의의 안배를 명시한 것을 볼 수 있으며, 인간세상에서 일어나는 이야기가 하늘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다만 주제가 다를 뿐이다.

예를 들어 《홍루몽》 역시 책으로써 도(道)를 전하지만, 전하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세간의 꿈과 같은 가상을 꿰뚫어 보게 하고, 사람에게 도를 깨닫고 도를 닦는 이치를 권하는 것이다. 보옥이 신변 자매들이 이미 정해진 운명을 겪는 과정을 통해 명리정을 꿰뚫어 보고, 인간 세상은 하늘이 정한 큰 연극임을 알게 한다. 사람에게 서둘러 도를 깨달아 고해에서 벗어날 것을 일깨워준다. 제1회에서 이 책의 유래를 밝히고 있는데, 여와가 하늘을 보수하고 남은 거대한 돌 하나에서 비롯되었으며, 거석(巨石)이 세상에 내려온 후 겪은 이야기이다.

돌이 바로 인간세상의 가보옥이다. 인간세상을 흠모하여 고승과 도인으로 화현한 신(神)에게 자신을 데리고 세상에 내려가 환생시켜 달라고 간청했다. 일이 끝난 후 청경봉으로 돌아와, 자신이 평생 속세에서 겪은 일을 글로 바꾸어 자신의 몸에 새겼으며, 장차 인연 있는 사람을 만나 자신의 경력을 필사하게 해서 인간 세상에 전함으로써 인간 세상에 온 보람이 있기를 희망했다. 결국 도를 구하던 공공도인이 와서 돌의 말을 듣고 이를 필사하여 인간 세상으로 가져갔다. 이것이 이야기의 유래이다.

이 공공도인은 이 책을 보았기 때문에 인간 세상의 인연과 운명을 꿰뚫어 보았고, 홍진의 정애(情愛)를 간파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어떤 관계이든 은혜가 있으면 은혜를 갚고, 빚이 있으면 빚을 갚는 것에 불과하며, 인연이 다하면 각자 자신의 길을 간다는 것을 알게 되어 도인은 이로 인해 도를 깨닫고 법을 얻었다.

이는 저자가 여러분에게 이 책을 이해했다면 곧 도를 깨달은 것이라고 알려주는 것과 같다. 절대로 애정 비극이 아니다. 대옥은 보옥이 천상에 있을 때 물을 대준 은혜를 갚기 위해 돌을 따라 세상에 내려온 것이기에, 평생 눈물뿐이었고 일마다 뜻대로 되지 않았다. 저자의 목적은 사람으로 하여금 보옥이 세상에 내려온 경력을 통해 자매들의 정해진 운명을 이해하고, 마지막에 도를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저자가 보기에 보옥은 세간에 미혹된 천만 명의 사람이며 모두 천상에서 왔다. 만약 이곳에서 미혹되어 윤회의 고통을 겪는다면 참으로 끝없는 고해(苦海)이다.

따라서 고대 소설을 읽을 때는 반드시 앞부분을 이해해야 한다. 책 전체에 천의(天意), 정수(定數), 신불(神佛)의 발자취와 의지가 자주 나타나 사람에게 경지가 넓고 신비막측한 느낌을 준다. 그것들은 모두 책으로써 도를 전하며, 사람에게 도를 닦고 깨닫거나 사람으로서 덕을 중시하고 선을 행하며 반드시 의리를 지킬 것을 권한다. 이러한 이념을 전하는 것은 본래 신주(神州) 역사가 달성하려는 두 가지 큰 목적이며, 고대 독서인의 근본 본분이기도 하다. 이 소설들이 명저가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두 제왕이 재난을 당한 후, 이어서 상경한 동탁이 기회를 틈타 조정의 권력을 장악했다. 그는 하진이 필요로 했던 역할을 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소제를 폐위시켰다.

(계속)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54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