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여(劉如)
【정견망】
문무백관과 장수들이 환관에게 납치되었던 한 소제(少帝)와 진류왕(陳留王 훗날의 헌제)을 찾아낸 후, 때맞춰 경성에 도착한 서량자사 동탁(董卓)은 혼란을 틈타 황제를 보호한다는 정당한 명분을 내세워 당당히 대군을 이끌고 소제의 곁으로 돌진했다. 이는 조정의 대신들과 황제를 손아귀에 넣고 납치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곧 황제를 폐위시키는 일을 도모하게 되는데, 이 사건은 동한 말의 대유학자이자 해내외에서 높은 명망을 얻고 있던 상서 노식(盧植 당대 공자묘에 배향됨)이 황제의 폐립에 관해 동탁의 오류를 반박하는 정교한 정견(正見)을 끌어낸다.
동탁, 황제 폐위를 꾀하다
《삼국연의》 제3회에서 소제와 진류왕은 동탁의 이른바 ‘호위’ 아래 궁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옥새는 분실되었고, 동탁의 반역하는 마음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동탁은 성 밖에 군사를 주둔시키고, 매일 철갑마병을 거느리고 성안으로 들어와 거리에서 횡포를 부리니 백성들이 황황하여 불안해했다. 동탁은 궁궐을 드나들며 조금도 거리낌이 없었다. 후군교위 포신(鮑信)이 원소를 찾아와 동탁에게 반드시 딴 마음이 있으니 속히 제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영제 시절, 환관을 총애해 환관이 최고 지휘관 되는 직속 군대인 ‘서원팔교위(西園八校尉)’를 창설했다. 원소, 조조, 포신 등은 모두 이 교위직을 맡아 황제를 수호하는 책임을 지고 있었다. 그러나 환관들이 멸망한 후 이들의 세력은 분산되었고 실질적인 힘을 잃었다. 따라서 동탁의 군대와 대적할 수 없었다. 원소와 사도 왕윤(王允)은 포신의 건의를 따르지 못했고, 포신은 본부 군사를 이끌고 떠나버렸다. 소제 곁의 수호 세력은 더욱 미약해졌다.
동탁은 죽은 대장군 하진(何進) 형제의 군대를 모두 장악한 뒤, 모사 이유(李儒)와 소제를 폐하고 진류왕을 새 황제로 세울 일을 상의했다.
이유는 “지금 조정에 주인이 없으니 이때 일을 도모하지 않으면 나중에 변고가 생길 것입니다. 내일 온명원(溫明園)에서 백관을 소집해 폐립을 알리십시오. 따르지 않는 자는 베어버리면 권위가 오늘 바로 세워질 것입니다”라고 조언했다. 즉 무력으로 대신들을 굴복시키려 한 것이다.
정원(丁原)의 의기(義氣), 찬역의 속셈을 꿰뚫다
다음 날, 동탁은 온명원에서 성대한 연회를 베풀고 공경대신들을 모두 청했다. 동탁이 병권을 쥐고 있었기에 누구도 감히 불참하지 못했다.
백관이 도착하자 동탁은 천천히 말에서 내려 칼을 찬 채 자리에 앉았다. 술이 몇 차례 돌자 음악을 멈추게 하고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천자는 만민의 주인이니 위엄이 없으면 종묘사직을 받들 수 없소. 지금의 황제는 유약하여 총명하고 학문을 좋아하는 진류왕만 못하니, 내 황제를 폐하고 진류왕을 세우고자 하는데 그대들 생각은 어떠하오?”
대신들이 감히 입을 열지 못할 때, 한 사람이 상을 밀치고 나와 외쳤다.
“안 될 말씀! 그대는 누구인데 감히 그런 망언을 하는가? 천자는 선제의 적자로서 아무런 과실이 없거늘 어찌 함부로 폐립을 논하는가? 그대는 찬역(篡逆)을 하려는 것인가?”
그는 바로 형주자사(荊州刺史) 정원이었다. 격노한 동탁이 “나를 따르는 자는 살고 거스르는 자는 죽으리라!”라며 칼을 뽑아 정원을 베려 했다.
이 단락은 동탁과 마찬가지로 외신(外臣)이었던 형주자사 정원이 동탁의 반박에 대응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는 황제를 폐위하는 것에 직접 반대하며 동탁을 찬역으로 규정했다.
아울러 세 가지 기준을 언급했다.
첫째는 소제가 선제의 적자로서 명분이 정당하다는 것이고,
둘째는 소제가 갓 즉위하여 부도덕한 행위가 없었다는 점이다. 이 두 사항은 폐위되는 제왕 본인에게 조종의 예법과 덕행 측면에서 정당한 폐위 사유가 있어야 함을 말한다.
셋째는 이러한 천지개벽할 대사는 결코 평범한 사람이 논의하거나 집행할 자격이 없다는 점이다. 이는 이 일을 집행하는 신하에게 그에 상응하는 자격이 있어야 함을 뜻한다. 이것이 바로 충신들의 보편적인 정견(正見)이다.
그 역시 외신이며 하진의 당초 조령에 응해 군대를 이끌고 입경하여 근왕(勤王)하려 했던 인물이다. 그의 견해는 보편성을 지니며, 당시의 관리와 장수들이 모두 이러한 식견을 갖추고 있었음을 증명한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환관이 황제를 납치하는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거나, 하진이 어리석게도 동탁에게 낙양 경성에 진입할 정당한 명분을 주지 않았더라면, 어떤 신하가 감히 대중 앞에서 이러한 역천도(逆天道)의 왜곡된 논리를 말할 수 있었겠는가. 이러한 황제 폐위 행위는 정상적인 조정에서는 매우 보기 드물고 나타나기 어려운 일이다. 군왕이든 신하든 모두 정통 경서와 사서의 교육을 받았으므로 기본적인 판단력을 갖추고 있었으며, 군신 누구도 제멋대로 행동할 수 없었다.
상서 노식, 미설을 힘써 반박하다
정원의 곁에는 여포(呂布)가 있었기에 이유가 동탁을 말렸고, 정원은 연회장을 떠났다. 동탁은 다시 문신들에게 자신의 폐위 제안이 공도(公道)한지 다그쳤다. 이때 노식이 나서서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동탁의 사례는 솔직히 말해 저자가 곧 왕조가 바뀔 천의(天意)의 각도에서 쓴 것이다. 즉 천상(天象)이 정상이 아니니 일찍이 영제에게 경고를 주었으나 변화시키지 못했으니 필연적으로 군권(君權)을 회수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아들이 즉위하고 옥새를 분실하여 군권을 잃게 되니 한의 멸망은 정해진 이치가 되었으며, 반드시 악인을 이용해 이 일을 완수하게 된다. 그러나 이후에 동탁은 비명횡사하여 천벌을 받게 될 것이며, 그때가 되면 그에 관한 동요 예언도 나타나게 된다. 이것은 저자가 곧 밝히게 될 최종적인 인과응보의 결말이기도 하다.
특수한 시기 이러한 간신들의 광망한 발언인 “나를 따르는 자는 살고 거스르는 자는 죽는다!”는 역사의 주류가 아니며 정상적인 상태도 아니다. 단지 단기적인 득세일 뿐이다. 만약 이러한 난세와 말세에 나타난 악인들의 행위로 정상적인 시기의 중국 문화를 부정하고 먹칠하며 자신의 조상을 추한 모습으로 묘사한다면 그것은 매우 큰 잘못이다.
정원은 결국 외신(外臣)이기에 그의 말은 강도가 분명히 부족했다. 이에 저자는 다시 덕망이 높은 상서 노식을 끌어들여 상세하고 조리 있게 논증을 진행하는데, 이 논증 단락은 신하가 황제를 폐위함에 있어 옳고 그름에 대한 저자의 현명한 견해를 대변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혼란스러운 현상 앞에서 정확한 판단 근거를 파악하게 하고, 옛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고 정치를 논함에 있어 보여준 정교하고 현명한 식견에 감탄하게 한다.
동탁의 잘못을 강력히 논박하는 상서 노식(盧植)
정원의 곁에는 여포(呂布)가 있었기에 이유가 동탁(董卓)을 권고하여 저지했다. 이로 인해 정원은 즉시 살해되지 않고 연회장을 떠날 수 있었다. 군대를 거느린 정원이 떠나는 것을 본 동탁은 더욱 방자해져서 평소 국정에 참여하던 조정의 문신들에게 자신이 제안한 폐립(廢立)의 일이 정당한지 다그쳐 물었다. 이때 노식(盧植)이 나서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명공(明公)의 말씀은 틀렸소. 옛날 태갑(太甲)이 현명하지 못하자 이윤(伊尹)이 그를 동궁(桐宮)으로 내쫓았고, 창읍왕(昌邑王)은 즉위한 지 겨우 27일 만에 3천여 가지의 악행을 저질렀기에 곽광(霍光)이 태묘(太廟)에 고하고 그를 폐위했었소. 지금의 황제는 비록 어리시나 총명하고 인자하며 지혜로우시어 털끝만큼의 과실도 없으시오. 공은 외군(外郡)의 자사로서 평소 국정에 참여한 적이 없고, 또한 이윤이나 곽광과 같은 큰 재능도 없는데 어찌 억지로 폐립의 일을 주관하려 하시오? 성인(聖人)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윤과 같은 뜻이 있다면 가능하나, 이윤과 같은 뜻이 없다면 찬탈이다’라고 하셨소.”
노식의 말은 당대의 대유(大儒)이자 조정에서 가장 식견 있는 대신의 의견을 대표하며, 가장 자격이 있기에 가장 설득력이 있었다. 이는 정원의 견해에 대해 강력한 실증을 제시한 것과 다름없다. 그는 우리 역사상 신하가 군주를 폐위한 가장 유명한 두 가지 사례를 들어 황제를 폐위하는 정당한 이유와 이 일을 집행하는 신하의 자격, 그리고 성인의 가르침을 명확히 설명했다. 논거가 타당하고 조리가 정연했다. 그리하여 노식의 말이 끝나자마자 동탁은 크게 노하여 노식을 죽이려 했다. 이를 통해 이 말이 그의 잘못된 주장을 깨뜨리는 강도가 어떠했는지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말의 구체적인 함의는 무엇인가? 노식은 목숨을 보존할 수 있을 것인가? 다음 글에서 상세히 설명하겠다.
(계속)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548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