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元曉)
【정견망】
우리는 흔히 “털끝만큼의 차이가 천 리의 오류를 낳는다(差之毫釐, 謬以千裏)”라고 말한다. 많은 일이 그러하지만, 특히 의학에서는 더욱 털끝만큼의 편차도 허용되지 않는다.
《일사(逸史)》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당 덕종(德宗) 시기, 한 조정 관리가 말에서 떨어져 발을 다쳤다. 국의(國醫)가 그를 위해 침을 놓았는데, 침을 뽑은 후 구멍에서 연기 같은 기체가 뿜어져 나왔다. 저녁이 되자 환자는 점차 피곤해하며 혼미해졌고,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니 국의 역시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때 한 도사가 문 앞에 와서 말했다.
“이 병은 마침 내가 고칠 수 있소.”
도사는 침을 놓은 자리를 살펴본 후 국의를 꾸짖었다. “그대는 일을 너무 쉽게 보았구려. 사혈(死穴)과 활혈(活穴)은 불과 한 치 차이라오. 인체의 혈맥은 서로 통하고 있어 마치 강하(江河)의 물길과 같으니, 침구술의 관건은 그 요해처를 정확히 분별하는 데 있소. 그대 역시 침술의 고수이나, 안타깝게도 혈자리를 잘못 짚었소.”
이에 도사는 병상을 가까이 옮기게 한 후, 환자의 왼쪽 다리에 기체가 부풀어 오른 곳에 침을 놓으며 말했다. “이 침이 들어가면 원래의 침이 스스로 튀어 나올 것인데, 심지어 처마 천장까지 튕겨 올라갈 것이오.”
말이 끝나자마자 도사의 침이 한 치 남짓 들어갔다. 그러자 원래 박혀 있던 침이 갑자기 솟구쳐 올라 천장 판자에 꽂혔고, 이전에 기체가 나오던 곳도 곧 자연스럽게 닫혔다. 환자는 그 자리에서 완쾌되어 정신이 예전처럼 회복되었다.
그 관리와 국의가 거듭 도사에게 절하며 사례하고 금은 비단을 선물로 주려 했으나, 도사는 일절 받지 않고 차 한 사발을 마신 뒤 홀연히 떠나버려 결국 그가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일사》)
이 이야기는 신기해 보이지만, 바로 중의(中醫) 침구의 진정한 오묘함을 설명해 준다.
침구가 처리하는 것은 단지 표면 인체뿐만 아니라, 다른 공간에 대응하는 사람의 신체와 경락이다. 그러므로 혈자리에 대한 파악은 반드시 절대적으로 정밀해야 한다. 털끝만큼만 차이가 나도 결과는 판이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도사는 어찌하여 이토록 정확하게 올바른 혈자리를 찾을 수 있었을까? 사실 도리는 복잡하지 않다. 혈자리는 본래 실재하는 것이지만, 단지 다른 공간에 존재할 뿐이다. 과거의 많은 진정으로 수양이 있는 중의나 수련인, 예컨대 도사들은 흔히 일정한 특이공능(特異功能)을 갖추고 있어 다른 공간의 인체 경락과 혈자리를 직접 볼 수 있었다. 실제로 볼 수 있는데 어찌 쉽게 실수하겠는가?
특이공능을 갖춘 고대 명의들에게 혈자리를 분별하는 것은 우리가 오늘날 자신의 손발을 보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명확한 일이었다. 반면 그 국의가 실수한 까닭은 바로 그가 다른 공간에서 진정으로 대응하는 혈자리를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법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화타는 조조(曹操)의 머릿속에 종양이 있는 것을 보고 두개골을 열고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자고 했다. 조조는 듣자마자 화타가 그의 머리를 자르려 한다고 생각해 화타를 가뒀으며, 화타는 결국 감옥에서 죽었다. 조조가 병이 재발했을 때, 화타가 생각나서 화타를 찾았으나 화타는 이미 죽었다. 후에 조조는 정말로 이 병으로 죽었다. 화타는 어떻게 아는가? 그는 보았던 것이며, 이는 우리 사람의 특이공능인데, 과거의 대의학자는 모두 이런 능력을 구비하고 있었다.” (《전법륜》 제7강)
오늘날 사람들이 화타를 언급할 때면 모두 그를 신의(神醫)라 여기며 불가사의할 정도로 신기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의 고명함은 완전히 현대인이 상상하는 복잡한 기술 때문이 아니라, 그가 속인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병소가 진정으로 소재하는 곳을 볼 수 있었으니, 자연히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도 알았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신비롭고 현묘하며 불가사의하다고 느끼는 많은 일은 사실 현대인이 오랫동안 무신론의 영향을 받아 신불(神佛)과 다른 공간의 존재를 더 이상 믿지 않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다. 만약 진정으로 신의 존재를 믿고, 다시 이러한 고대 기록을 보았을 때 그리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사실 고인(古人)이 천지, 신불, 인체와 우주에 대해 가졌던 인식은 현대인보다 훨씬 진실에 가까웠다. 현대 과학이 비록 발달했으나 흔히 물질 표면에만 국한되어 있을 뿐, 더 높은 층차의 생명 진상에는 진정으로 닿지 못하고 있다.
정법(正法) 시기에 많은 사람이 오랫동안 무신론 교육을 받은 탓에 신불을 허무맹랑한 전설로 치부한다. 하지만 일단 진정으로 무신론의 틀을 벗어나기만 하면 사람은 우주와 생명을 다시 인식하게 되며, 점차 깨닫게 될 것이다. 사람은 우연히 세상에 온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층차의 사명을 띠고 왔다는 것을 말이다.
원래 우리는 정말로 더 높은 층차에서 왔을 수 있으며, 인간세상에 온 것은 바로 법을 얻고 구도 받을 기연을 기다리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맹목적으로 무신론을 믿음으로써 이 만고에 만나기 어려운 기연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일단 놓치고 나면, 미래에 진정으로 깨달았을 때는 아마도 이미 후회해도 늦을 것이기 때문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245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