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사미
【정견망】
‘기개(氣節)’란 중국 고대 윤리와 도덕 영역의 발전 과정에서 형성된 독특한 범주로, 흔히 한 개인의 도덕적 인격과 정신적 기상을 나타내거나 평가하는 데 사용된다. 선진(先秦) 시기에는 ‘기(氣)’와 ‘절(節)’이 두 단어를 따로 사용했다. ‘기’와 ‘절’을 붙여 ‘기개’라는 한 단어로 합성된 것은 《사기·급정열전》에 처음 보인다.
“급암은 사람됨이 거만하고 예의가 없으며, 사람을 앞에 두고 공격해 남의 허물을 용납하지 못했다. 자신과 뜻이 맞는 사람은 선하게 대했으나 뜻이 맞지 않는 사람은 마주 보는 것조차 싫어했다. 때문에 선비들도 그를 따르지 않았다. 그러나 학문을 좋아하고 의협심이 있었으며 기개와 지조[氣節]를 중시했고, 집안에 있을 때도 품행이 바르고 깨끗했으며 직간을 좋아해 자주 임금의 안색이 변하게 했다. 항상 부백(傅柏)이나 원앙(袁盎)의 사람됨을 흠모했다.”
한조(漢朝)의 유향은 《설원·입절(立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군자(士君子)로서 용맹하고 행실이 과단성 있는 자가 기개를 세우고 의를 행하는 데 힘쓰지 않고, 헛된 이름 때문에 함부로 죽는다면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겠는가!”
이는 사군자(士君子)가 일을 행할 때 마땅히 기개를 세우고 의를 행하는 것을 중시해야 하며, 허명을 위해 망령되이 죽어서는 안 됨을 논술한 것이다. 사군자가 진정 가치 있는 것을 바르고 적절하게 추구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 글에서 유향은 또한 ‘증자가 읍(邑)을 받지 않은’ 이야기를 기록했다. 증자가 해진 옷을 입고 밭을 갈고 있을 때, 노나라 군주가 사람을 보내 성읍 하나를 봉해주며 말했다.
“청컨대 이 성읍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의복을 좀 꾸미세요.”
증자가 받지 않자 사신이 돌아갔다가 얼마 후 다시 왔으나 증자는 여전히 거절했다.
사신이 말했다.
“선생님께서 임금에게 구걸한 것도 아니고 임금님께서 스스로 봉해주신 것인데 어찌하여 받지 않으십니까?”
그러자 증자가 대답했다.
“신이 듣기로 남에게 받는 자는 남을 두려워하게 되고, 남에게 주는 자는 남에게 교만해진다고 했습니다. 설령 임금님께서 하사하시며 제게 교만하게 굴지 않으신다 한들, 제가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끝내 받지 않자 공자가 이를 듣고 말씀하셨다.
“증삼의 말은 그 기개를 온전히 하기에 충분하구나(參之言足以全其節也).” 즉, 증삼의 말이 그의 단정한 품격과 행위를 나타내며 지조의 절개를 지켜냈다는 뜻이다.
절(節)이란 제어함(制)이며 그침(止)이다.
《설문해자》에서는 “절(節)은 대나무의 마디다”라고 했고, 청대 단옥재(段玉裁)는 주석에서 “약(約)은 묶는 것이다. 대나무 마디는 마치 묶어놓은 듯한 형상이다”라고 했다. 대나무 마디로 대나무 몸통을 제약하는 목적은 그것을 더욱 견고하고 튼실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대나무의 마디 하나하나가 쌓이는 과정이자 견고하게 버티는 지지대가 된다.
남송 서정균(徐庭筠)의 시 〈영죽(詠竹)〉에서는 “땅속에서 나오기 전부터 이미 마디가 있으니, 구름 위로 솟아올라도 무심하구나”라고 읊었다.
증자의 이런 작은 일에 대해 공자는 왜 그토록 높은 평가를 내렸을까?
증자가 ‘사람을 두려워함’ 혹은 ‘사람에게 교만함’이라는 내면의 층차에서 문제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의 관심사는 이 일이 초래할 심리적 기울어짐을 피하는 것, 즉 주는 쪽과 받는 쪽 모두의 내면에 부면(負面)적인 심념(心念)의 요소가 생겨나는 것을 방지하는 데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의(義)를 지키고 도(道)를 수호하는 더 높은 경지의 사고방식이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념(一念)의 선악(善惡)이 바로 사람의 도덕적 승화나 하락을 결정하는 관건이기 때문이다.
한편, ‘지(持)’란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음을 뜻하고, ‘수(守)’란 옮기지도 바꾸지도 않음을 뜻한다.
공자는 “독실하게 믿고 배우기를 좋아하며, 죽을 때까지 선한 도를 지켜야 한다. 위태로운 나라에는 들어가지 말고 어지러운 나라에서는 살지 않는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나와서 일하고 도가 없으면 숨는다.(《논어·태백》)”라고 했다.
또한 “지혜로 얻었더라도 인(仁)으로 그것을 지키지 못하면 비록 얻었다 하더라도 반드시 잃을 것이다. 지혜로 얻고 인으로 지키더라도 장중한 태도로 대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존경하지 않을 것이다. 지혜로 얻고 인으로 지키며 장중함으로 대하더라도 예(禮)에 맞게 행동하지 않으면 선(善)이 아니다(《논어·위령공》)”라고 했다.
공자의 말은 ‘지킴(持守)’의 중요성을 부각시켰으며, 이러한 지킴이 있었기에 “도에 뜻을 두고 덕에 근거함(志於道, 據於德)”(《논어·술이(述而)》)이란 세상에 처세하는 가치관 세상에 빠지지 않는 덕성의 함의가 비로소 드러날 수 있었던 것이다.
공자는 또한 “나라에 도가 있으면 벼슬을 하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거두어 마음속에 품고 자신을 감추는구나(《논어·위령공》)”라고 했다. 천하가 맑고 도가 있어 지조를 지키기에 유리하면 나아가 정치를 하고, 천하가 어둡고 도가 없어 절개를 잃고 덕을 손상할 것 같으면 은거하여 벼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어이 세상에서 억지로 행동하며 “이미 넘어진 미친 듯한 거센 파도를 되돌려 세우고, 무너지려는 큰 집을 떠받칠(回狂瀾於既倒, 支大廈於將傾)”(소동파 《문선왕(공자)께 올리는 축문(告文宣王文)》) 필요는 없다.
하안(何晏)과 형병(邢昺)이 편찬한 《논어주소·위령공》에서는 이렇게 설명했다.
【포씨가 말하기를, “거두어 간직한다는 것은 시정에 관여하지 않고 유순하여 남을 거스르지 않는 것을 말한다.”】 즉, 시정에 참여하지 않고 부드럽게 순응하며 남과 맞서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떤 치국 이념이나 정치적 주장을 위해 팽팽한 긴장감으로 남과 다투지 않고, 평화롭고 유순함을 강조하며 남과 겨루지 않고 세상의 옳고 그름을 다투지 않는 것이다. 그리하여 난세 중에도 “그 뜻을 꺾지 않고 그 몸을 욕되게 하지 않으며(不降其志, 不辱其身)”(《논어•미자(微子)》), “도가 행해지지 않으면 뗏목을 타고 바다로 나가는(道不行, 乘桴浮於海)”《논어•공야장(公冶長)》 것이다.
《상서》에는 ‘기(氣)’에 관한 논술이 거의 없으나, 《상서·주서(周書)》에 이르러 ‘절(節)’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상서》, 《주역》 등 선진(先秦) 문헌에서 ‘기’와 ‘절’의 용법을 보면, 맹자 이전에는 ‘절’이 ‘기’보다 먼저 윤리적 함의의 파생을 완성했음을 알 수 있다.
‘절’에 담긴 뜻은 덕성(德性)이란 시야 아래 있는 독립적인 인격 정신이다.
맹자는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제시하며 “나는 말을 알며, 나는 나의 호연지기를 잘 기른다(《맹자·공손추상》)”라고 했다. 맹자가 한 말은 지극히 크고 강하며 바르고 곧은 이 호연지기는 미세한 것까지 꿰뚫고 신명(神明)에 합당하여 비록 말로 형용하기는 어려우나 천지 사이에 꽉 차 있으며 의(義)와 함께 생겨난 것이다. 이것이 늘 내면에 가득 차게 하면 자연히 밖으로 발산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맹자의 ‘호연지기’는 유가(儒家) 기개관의 기초를 닦았으며, 공자의 가르침 이후 변모해 나타난 유가적인 정신 도덕 풍모의 한 가지 체현이 되었다.
후세 사람들은 세상에 뜻을 두고 실생활에 유용하게 쓰려는 가치 지향에 따라, 맹자가 말한 ‘호연지기’를 국가나 민족 같은 정치적 요소와 결합시켜 도의의 함의에 끌어들였다. 그리하여 “천지를 위해 마음을 세우고, 백성을 위해 목숨을 세우며, 옛 성현을 위해 끊어진 학문을 잇고, 만세를 위해 태평성대를 연다(북송 장재의 《장자전서·근사록습유》)”라는 광대한 이상과 호쾌한 기개를 더욱 드러냈다.
역사 발전 과정에서 선덕(善德)에서 벗어나 도덕이 미끄러져 내려감에 따라 기개는 심지어 추상적인 인생 가치관이나 인격의 화신, 인생에서 추구하는 목표로 간주되었다. 동시에 기개의 유무나 높낮이가 인물을 평가하는 하나의 척도가 되었다.
주자청(朱自清)은 〈기개를 논함〉이란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절(節)이란 관념 또한 선진 시대에 이미 있었다. 《좌전》에 ‘성인은 절개에 통달하고(聖達節), 그다음은 절개를 지키며(次守節), 하등은 절개를 잃는다(下失節)’라는 말이 있다. 고대에는 예악(禮樂)을 중시했는데 악의 정신은 ‘화(和)’이고 예의 정신은 ‘절(節)’이다. 예는 절을 위주로 하되 화와 배합되어야 하고, 악은 화를 위주로 하되 절과 배합되어야 한다. 절과 화는 반대되면서도 서로를 완성한다.”
이 도리를 이해한다면 ‘성이 절개에 통달’한다는 등의 ‘절’은 예악에서 비롯해 행위의 표준이나 사람됨의 표준이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절은 사실 전통적인 ‘중도(中道)’다. 따지고 보면 ‘화(和)’ 역시 중도인데, 차이점이라면 ‘화’는 화합(合)에 중점을 두고 ‘절’은 나눔(分)에 중점을 둔다는 것이다. 나눔에 중점을 두기에 범하지 않고 어지럽히지 않는 것을 중시하며, 이는 소극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명말(明末) 사상가이자 동림당(東林黨)의 창시자 고헌성(顧憲成 1550~1612)은 “조정에 있으면서 뜻이 군부(君父)에 있지 않고, 지방관으로 있으면서 뜻이 민생에 있지 않으며, 초야에 거하면서 뜻이 세도(世道)에 있지 않다면 군자는 취할 바가 없다(《명사·고헌성전》)”라고 했다.
군자는 마땅히 ‘세도에 뜻을 두어(志在世道)’야 함, 즉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안케 하는 데 뜻을 두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의 ‘동림서원’ 대련(對聯)은 널리 알려져 있다.
“바람 소리, 비 소리, 책 읽는 소리, 소리마다 귀에 들리고,
집안일, 나랏일, 천하의 일, 일마다 마음을 쓰네.”
風聲、雨聲、讀書聲,聲聲入耳;
家事、國事、天下事,事事關心
동림당 사람들은 명 왕조가 부패하고 몰락해 가던 말기에 환관 위충현이 권력을 잡고 공포 정치를 시행하자, 전통 가치에서 이화(異化)되어 나온 기개를 정치 현실과 융합하여 격앙되고 극단적인 방식으로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조정의 정치적 분쟁과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었다. 청대 진정(陳鼎)이 지은 《동림열전》 원서(原序)에서는 “전조(前朝 명조를 말함) 양계(梁溪)의 여러 군자가 동림에서 강학한 지 50년에 천하가 모두 그들을 따랐으니, 모두 기개를 숭상하고 명의(名義)를 중시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므로 ‘도에 뜻을 둠’의 전통 가치를 지키는 것과 입세(入世)의 정감이 가득한 기개 사이에는 가치 지향, 안으로 제고할 것인지 아니면 밖으로 힘쓸 것인지, 자선(慈善)중화(中和)할 것인지 아니면 격앙된 극단성을 띨 것인지 등 여러 방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실제로 인간 세상의 조대의 흥망성쇠는 모두 그 내재적인 법칙이 있으며, 또한 고층 공간의 고급 생명들에 의해 안배된 것으로 사람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행동함에 있어 할 수 있는 것은 자연에 순응하고 상리(常理)에 따르며, 동시에 선(善)을 지켜 흔들리지 않고 세상의 온갖 어지러움에 견인되지 않으며 끊임없이 도덕을 높이는 것이다. 그러면 광명한 미래를 맞이할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5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