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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명절: 단오절(端午節)

유초극

【정견망 2026년 06월 13일】

머리말

‘단오절’은 중국을 비롯해 일본, 베트남, 한국 등 동남아 국가들의 중요한 전통 명절로, 매년 음력(皇曆) 5월 5일로 지정되어 있다. 음력 새해(춘절), 추석, 청명절과 함께 화인(華人)의 4대 전통 명절로 꼽힌다. 단오절의 ‘단(端)’자는 ‘초(初)’, ‘시작’이라는 뜻이므로 ‘단오(端五)’는 ‘초닷새’를 의미하며, 이에 따라 음력 5월 5일을 ‘단오절’이라 부르게 되었다. 《하도(河圖)》에 따르면 1부터 10까지의 숫자 중 1, 3, 5, 7, 9는 양수(陽數)이고 2, 4, 6, 8, 10은 음수(陰數)인데, 5라는 양수가 겹치는 날이기에 단오절을 ‘단양절(端陽節)’이라고도 부른다. 대만, 최근의 중국 대륙, 홍콩, 마카오, 그리고 한국 모두 단오절을 법정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다.

홍콩에서의 단오절

홍콩은 개항 이래로 줄곧 화인들이 단오절을 성대하게 축하해 왔으며, 1962년 4월에 정식으로 ‘법정 공휴일’로 제정되어 당일 하루를 쉬게 되었다. 단오절 당일이 되면 집집마다 사전에 혹은 당일에 쫑즈(粽子)를 사 와서 먹는다. 수영을 좋아하는 시민들은 온 가족이 해변으로 가 수영을 즐기기도 하는데, 이는 ‘용선수(龍舟水, 용선 경기를 치른 물)’에 몸을 씻으면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고 백 가지 병을 쫓아낼 수 있다는 속설 때문이다. 홍콩의 다푸(大埔), 사틴(沙田), 툰문(屯門), 췬완(荃灣), 애버딘(香港仔), 빅토리아 항구 등 연안 지역에서는 용선 경주(龍舟競渡)가 열린다. 경주가 시작되기 전 대회 측은 한 해의 풍조우순(風調雨順, 기후가 순조로움), 백업흥왕(百業興旺),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제사 의식을 거행하며, 방송사에서도 용선 경주 현장을 생중계한다.

홍콩은 1976년부터 매년 ‘홍콩 국제 용선 초청 대회(the Hong Kong International Dragon Boat Regatta)’를 개최해 왔다. 이 대회는 매년 6월 단오절 직후의 토요일과 일요일에 열리며, 전 세계적으로 가장 명성 높은 국제 용선 대회이다. 참가 인원은 약 5,000명, 총 400여 개 팀에 달한다. 참가 팀은 홍콩 현지뿐만 아니라 중국 대륙, 대만, 마카오, 호주, 캐나다, 영국, 네덜란드, 일본, 한국,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두바이 등 약 15개 국가와 지역에서 찾아와 매우 활기찬 장관을 이룬다.

단오절의 발전

선진(先秦) 시기

‘단오절’은 먼 옛날 선진先秦 시기에는 본래 여름철에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고, 역병을 쫓아내며, 해로운 곤충과 동물을 방제하는 명절이었다. 학자 원일다(聞一多)의 저서 《신화와 시》 중 <단오고(端午考)> 및 다른 학자들의 고증에 따르면, 굴원(屈原)이 강에 투신하기 전부터 오월(吳越) 일대에는 이미 단오절이 존재하고 있었다.

원시 선진 시기에는 음력 5월 5일을 ‘악월악일(惡月惡日)’로 여겼다. 여기서 ‘악’은 ‘가증스럽다’는 뜻의 악인데, 이는 해음(諧音, 동음이의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중국어(보통화)로 ‘오월오일(五月五日)’과 ‘악월악일(惡月惡日)’을 발음해 보면 두 발음이 극도로 유사함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선진 이래의 백성들은 불길한 해음으로 인해 음력 5월 5일을 불길하고 병에 걸리기 쉬운 ‘악월악일’로 보았던 것이다. 더욱이 음력 5월은 ‘봄의 끝자락이자 초여름’으로 봄과 여름이 교체되는 시기이다. 속담에 “5월 쫑즈를 먹기 전에는 겨울옷을 보내지 마라” 혹은 “5월 쫑즈를 먹기 전에는 겨울옷을 장롱에 넣지 마라”는 말이 있듯, 더웠다 서늘했다 하는 이 초여름철은 비가 많이 오고 습하여 세균이 번식하기 쉽고 역병과 유행병이 발생·전파되기 쉽습니다. 이에 옛사람들은 음력 5월 5일을 더욱 불길하게 여겨, 이 ‘악월악일’에 용선을 젓고 쫑즈를 강에 던져 ‘용신(龍神)에게 제사’를 지냈다. 아울러 하늘과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며 매년 풍년과 국태민안을 기원했다. 특히 오월(吳越 현재의 장쑤성, 저장성) 일대에서는 ‘용신제’ 풍습이 널리 퍼져 있었는데, 오월의 백성들은 스스로를 ‘용의 전인(傳人)’이라고 여겼다.

‘하신(河神)’ 오자서(伍子胥)를 제사 지내다

남북조 시대 남조 양나라의 종름(宗懔)이 지은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 제30절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5월 5일 경주를 살펴보니…… 동오(東吳)의 풍습으로, 이는 오자서의 일이지 굴원(屈平)과는 무관하다.” 즉, 이 기록에 따르면 단오절에 용선 경주를 하는 것은 동오 지역의 풍습으로, 사람들이 ‘하신(河神, 강의 신)’으로 추앙했던 오자서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며 굴원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오자서는 춘추시대 초나라 사람으로, 가문이 초나라에서 박해를 받자 오나라로 망명했다. 오왕 합려(闔閭)에게 중용되어 초·제·진·월나라를 정벌하는 데 큰 공을 세우고 상국(相國)의 지위에 올랐다. 그러나 오왕 부차(夫差)가 즉위한 후, 오자서의 ‘제나라와 연합해 월나라를 대항하자’는 전략을 불만스럽게 여겼고, 대간 백비(伯嚭)의 참소를 믿어 오자서에게 자결을 명했다. 그리고 5월 5일에 오자서의 시신을 강물에 던져버렸다. 그 후 백성들은 오자서의 충심을 기리며 단오절에 그를 제사 지냈고, 오자서를 ‘하신’으로 받들었다.

이때부터 단오절의 ‘용신제’ 풍습에 오나라의 충신 오자서를 기념하는 요소가 더해졌고, 동오 지역의 ‘단오 경주’는 오자서를 제사 지내는 행사가 되었다. 단오절에 쫑즈를 먹는 것에 대해서도 명나라 루웅(盧熊)이 편찬한 《수주부지(蘇州府志)》에 “향간의 풍습에 단오날 쫑즈를 바치는 것은 오대부(오자서)를 위한 것이지, 굴원이 아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문헌의 기록대로라면, 춘추시대에 동오의 백성들은 이미 음력 5월 5일 단오절에 용선 경주를 하고, 쫑즈를 먹고 강에 던지며 용신을 달래고 ‘하신’ 오자서를 기념하는 풍습을 가지고 있었다.

‘애국 시인’ 굴원(屈原)을 기념하다

《형초세시기》 제30절에는 또한 이러한 기록도 있다. “5월 5일 경주는 민간에서 굴원이 멸라강(汨羅江)에 투신한 날로 전해지며, 그의 죽음을 슬퍼하여 배를 내어 그를 구하려 한 데서 유래했다.” 이는 전국시대 楚나라의 시인 굴원이 단오절 당일에 밀라강에 투신하여 순국한 사적을 말해준다.

전국시대, 진(秦)나라의 세력이 날로 강대해지자 초나라의 충신이었던 굴원은 제나라와 연합해 진나라에 대항하고자 했다. 그러나 ‘상관대부’ 근상(靳尚)을 비롯한 조정 대신들의 반대에 부딪혔고, 근상은 초회왕(楚懷王) 앞에서 굴원을 모함하여 왕이 그를 멀리하게 만들었다. 굴원은 한직인 ‘삼려대부’로 좌천되었다가 끝내 조정에서 멀리 떨어진 한수(漢水) 일대로 추방당했다. 유배 생활 중에도 굴원은 여전히 나라 정세를 걱정했으나 가슴속 품은 포부를 펼칠 길이 없었다. 기원전 313년, 진나라가 장의(張儀)를 초나라로 보내 제나라와 단교하면 땅 600리를 주겠다고 속였을 때, 굴원은 속지 말라고 간했으나 초회왕은 듣지 않았다. 초나라가 제나라와 단교하자마자 진나라와 주변국의 공격을 받았고, 그제야 큰 실수를 깨달은 초회왕은 급히 굴원을 불러들였다. 굴원은 즉시 제나라로 가 다시 동맹을 맺었으나, 진나라는 또다시 장의를 보내 근상을 포섭했고 초회왕은 재차 제나라를 배신했다. 결국 초회왕은 진나라의 꾐에 빠져 무관(武關)으로 회맹을 하러 갔다가 진나라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뒤이어 즉위한 초경양왕(楚頃襄王) 역시 간신 근상의 감언이설을 믿고 굴원을 더 멀리 유배 보냈다. 굴원은 오랜 유배 생활 중에도 애국심을 잃지 않고 왕에게 간언을 아끼지 않았다. 기원전 278년, 진나라의 무장 백기(白起)가 초나라의 수도 영도(郢都)를 함락하자 초나라는 망국의 길로 들어섰고 백성들은 도탄에 빠졌다. 굴원은 비통함을 이기지 못하고 그해 음력 5월 5일, 밀라강에 투신해 자결했다.

굴원은 평소 초나라 백성들의 큰 사랑을 받던 인물이었기에, 그의 충성스러운 애국심에 감동한 백성들은 모두 배를 몰아 그를 구하려 했다. 설령 구하지 못하더라도 시신이라도 찾아 정중히 안장해 주고자 했다. 시신을 찾는 것이 불가능해지자 백성들은 굴원의 시신이 물고기에게 먹힐까 염려하여 대나무 통에 찹쌀을 채워 쫑즈를 만든 뒤, 배를 타고 강 한가운데로 가 쫑즈를 던졌다. 물고기들이 쫑즈만 먹고 굴원의 몸은 해치지 않아 시신이 온전하기를 바란 것이다. 옛사람들은 죽은 후에도 생명이 이어진다고 보았기에 시신을 온전히 보존하는 것을 중시했다.

굴원이 투신한 후, 오월과 형초 지역의 백성들은 굴원의 애국심을 애도하기 위해 단오절에 오자서를 기념하던 풍습을 굴원을 기념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다만 질병을 예방하고 다스리는 단오 고유의 방식을 그대로 보존하여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단오절의 풍습

용선 경주 풍습

먼 옛날 선진 시기에 옛사람들은 배를 이용해 사악한 기운과 재앙을 멀리 보냈다. 재앙을 싣고 떠나는 배는 바다로 향하며 징과 북을 요란하게 울려 댔는데, 재앙은 빨리 보낼수록 좋았기에 이것이 발전하여 단오절의 용선 경주 풍습이 되었다. 고대에 경주에 사용된 용선은 이미 꽤 화려하게 만들어졌는데, 오늘날의 중형 용선처럼 선체가 좁고 길었다. 배의 머리에는 용두를, 꼬리에는 용미를 달았으며, 선체에는 오채로 용비늘 무늬를 칠하고 채색 띠, 매듭, 우산, 깃발 등으로 장식했다. 용선의 머리 부분에는 큰 북을 두어 고수가 북을 쳤는데, 이 북소리의 리듬에 맞춰 선원들이 일제히 노를 저었다. 배의 꼬리에는 키를 두어 한 선원이 방향을 조종했다. 배 양편에는 건장한 사내들이 앉아 노를 꽉 쥐고 북소리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노를 저어 용선을 전진시켰다.

송대에 이르러 단오절 용선 경주는 매우 성행니다. 경기 시작 전 폭죽을 터뜨렸고, 경기가 시작되면 징과 북소리가 하늘을 찔렀으며 주민들이 모두 나와 강변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환호성이 사방에서 터져 나오며 대단히 열띤 장관을 연출했다.

용선 경주의 의의는 한편으로는 충신 굴원을 기념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악한 기운, 재앙, 병균, 액운을 쫓아내는 데 있니다. 그렇기에 참가하는 이나 구경하는 시민 모두가 매우 몰입하고 기뻐한다.

쫑즈를 먹는 풍습

춘추전국시대 이전, 오월 일대의 백성들은 대나무 통에 찹쌀을 담아 쫑즈를 만든 뒤 이를 강에 던져 용신에게 제사를 지냈고, 하늘과 조상에게 풍년을 기원했다. 그러다 전국시대 초나라의 충신 굴원이 음력 5월 5일에 투신하자 백성들은 그의 시신을 지키기 위해 똑같이 쫑즈를 강에 던졌다.

단오절에 쫑즈를 빚고 먹는 풍습은 동한(東漢) 시대에 이르러 변화를 겪었다. 단오절 전날이 되면 집집마다 찹쌀을 불리고 잎을 씻어 쫑즈를 빚었지만, 더 이상 강물에 던지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자신이 먹을 뿐만 아니라 친지 간에 서로 선물로 주고받았다. 이때부터 쫑즈는 단오절의 전통 음식이 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역병을 쫓는 풍습

선진 시기에는 “단오절 날씨가 더워지니 다섯 가지 독(五毒)이 깨어나 불안하구나”라는 민요가 전해졌다. 임혜진(林惠珍)의 저서 《단오절 오독 동물 특전》에 따르면 오월 일대의 백성들은 뱀, 전갈, 지네, 두꺼비, 도마뱀(벽호)을 ‘오독’이라 칭했다. 독성을 가진 다섯 가지 곤충과 동물이라는 뜻이다.

단오절이 되면 사람들은 이 오독의 모양을 오려낸 오색 종이를 문, 창문, 벽, 온돌 등에 붙이거나 아이들의 팔뚝에 묶어주어 화를 피하고 역병을 쫓고자 했다. 이러한 방식이 오늘날에는 우스꽝스러운 미신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저자의 관점에서는 당시 분명히 가시적인 효과가 있었기에 풍습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즉, 확실한 경각심과 교육적 효과를 주었던 것이다. 옛날에는 정보 전달이 어려웠기에, 사방에 독충의 그림을 붙여놓음으로써 무더운 여름이 왔고 세균과 독충이 활발해지니 전염병을 조심하라고 서로 일깨워 주었던 것이다. 아이들의 팔에 묶어준 것도 아이들이 독충의 생김새를 쉽게 식별하고 제때 피할 수 있도록 한 지혜였다.

창포, 쑥(艾草), 석류꽃, 마늘, 용선화(龍船花)를 합쳐 ‘천중오서(天中五瑞)’라 부르는데, 이는 하늘이 인간에게 내린 다섯 가지 상서로운 존재라는 뜻이다. 고대 단오절에 백성들은 창포와 쑥 같은 향초를 달인 물로 목욕을 하고 머리와 얼굴을 감으며 병균과 역병을 쫓아냈는데, 이를 ‘세백병(洗百病, 백 가지 병을 씻어냄)’이라 했다. 또한 쑥과 창포를 문 안팎이나 집안 구석에 걸어두어 사악한 귀신과 역병을 쫓았다. 민간에는 “청명에는 버드나무를 꽂고, 단오에는 쑥을 꽂는다”는 말도 있다. 석류꽃의 뿌리는 살충 효과가 있어 집안의 어두운 구석이나 벌레가 자주 출몰하는 곳에 두었다. 마늘 역시 강한 냄새가 있어 문과 구석진 곳에 걸어 역병을 물리쳤다. 어떤 이들은 창포로 칼 모양을 만들어 ‘포검(蒲劍)’이라 부르며 요괴와 마귀를 베고 역병을 쫓는 데 썼고, 인형이나 호랑이 모양의 ‘애인(艾人)’, ‘애호(艾虎)’를 만들어 병을 쫓았다. 여인과 아이들은 창포, 쑥, 석류꽃 등으로 화환을 만들어 몸에 지님으로써 정신을 맑게 하고 병을 예방했다.

현대인들은 옛사람들이 향초로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았다는 점을 미신이라 여길지 모르나, 저자가 보기에 선인들은 무작정 미신을 믿은 것이 아니다. 고증에 따르면 옛사람들의 병은 현대인보다 가벼웠고, 당시의 약초들은 오염 없는 천연 환경에서 자라 약효가 특출나게 강해 말 그대로 약을 쓰면 즉시 병이 나았다. 또한 현대인들은 요괴나 귀신, 사악한 영(靈), 부체(附體) 같은 존재가 현실에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저자의 견식으로는 이러한 존재들이 인류 공간보다 한 층 낮은 공간인 ‘음간(陰間)’에 실재한다. 사람의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그것들이 인간 세상으로 침범해 들어오는데,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며 단지 사람들이 모를 뿐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마음이 발라야 한다. 속담에 “한 가지 바른 것이 백 가지 사악함을 누른다(一正壓百邪)”고 했는데, 이는 참으로 틀림없는 진리이다.

생명의 지혜

“舉世皆濁我獨清,
眾人皆醉我獨醒

온 세상이 모두 흐린데 나 홀로 맑고,
모든 사람이 다 취했는데 나 홀로 깨어 있네.”

이 두 구절의 속담은 전국시대 초나라 굴원의 저서 《초사(楚辭)·어부(漁父)》에 나온다. 온 세상 사람들의 도덕이 타락하고 혼탁할지라도 나 굴원만은 고결함을 유지하여 오염되지 않으며, 모든 사람이 취해 선악을 분별하지 못할지라도 나만은 깨어 있어 잘못된 길을 가지 않고 이익을 보고 의리를 저버리지 않겠다는 뜻이다.

맺음말

여러분 모두 “온 세상이 모두 흐린데 나 홀로 맑고, 모든 사람이 다 취했는데 나 홀로 깨어 있네!”를 실천하실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람은 늘 깨어 있어야 하며, 잘못된 길을 가지 않고 이익 앞에서 의리를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중국은 ‘중국공산당’이 아니라는 점이다. 중국은 5천 년의 문화가 깃든 신주대지(神州大地)이며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과 예의염치(禮義廉恥)가 흐르는 중화 문명의 터전이다. 우리는 염황(炎黃)의 자손이지, 결코 ‘마르크스·레닌(馬列)의 자손’이 아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3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