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호랑이가 경을 듣고 시종이 됨은 승려의 법력 때문

안단(顏丹)

【정견망】

중국 역사상 많은 불가와 도가 수련인들이 불가사의한 신통(神通)을 지녔다고 기재되어 있다. 어떤 이는 하늘을 오르고 땅으로 숨을 수 있었고, 어떤 이는 다른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었으며, 어떤 이는 비바람을 부르고 날짐승과 길짐승을 부릴 수 있었다. 요컨대 그들은 흔히 속인들이 할 수 없는 일들을 해내곤 했다.

그들이 이러한 신통을 세인들 앞에 드러내 보이고자 했는지 여부는, 온전히 당시의 사회 환경과 민풍이 순박하고 선량한지, 세인들이 불도(佛道)를 향하는 마음을 품고 있는지에 달렸으며, 어쩌면 서로 간의 숙세(宿世) 인연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원인에서든 그 목적은 흔히 세인(世人)을 일깨우기 위함이었다. 즉 초자연적인 힘은 진실로 존재하며, 불(佛)이나 도(道)를 수련하면 사람의 도덕과 경지를 제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에도 거대한 변화를 일으켜 속인을 초월하는 능력을 나타내게 됨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인간 세상에서 호랑이는 본래 ‘백수(百獸)의 왕’이라 불린다. 보통 사람이 호랑이를 굴복시키려 할 때는 흔히 사냥이나 감금 등의 방식을 통해서만 그 위협을 없앨 수 있다. 마치 호랑이가 죽거나 감옥에 갇힌 후에야 인류가 그것과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호랑이가 일정 경지에 도달한 고승을 만났을 때는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공격성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뿐만 아니라, 도리어 매우 공경하고 온순하게 행동하며 심지어 승려의 처분을 따르기도 했다.

호랑이가 가마꾼이 되다

옛날 귀주(貴州)에 한 승려가 있었는데, 일찍이 용호산(龍虎山)에서 여러 해 동안 거주했다.

하루는 그가 성안의 한 집안에서 열리는 재회(齋會)에 초청받아 가는데, 그가 네 명의 가마꾼이 메는 가마를 타고 오는 것을 어떤 이가 친히 보았다.

주인집에 도착한 후, 승려는 기이한 요구를 하나 했다. 네 명의 가마꾼을 밀실에 가두고 문을 잘 잠근 후, 그들에게 밥과 물을 주지 말라는 것이었다.

주인은 비록 시키는 대로 하면서도 마음속으로 매우 의아했다. ‘이 가마꾼들이 먼 길을 힘들게 가마를 메고 왔는데, 마땅히 무엇 좀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에 그는 살그머니 밥과 반찬을 들고 밀실 문 앞으로 다가갔다. 뜻밖에도 막 가까이 다가가자마자 안에서 맹수가 포효하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주인이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보고는 한순간 식은땀을 흘렸다. 방 안의 네 가마꾼이 뜻밖에도 전부 호랑이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주인이 급히 승려를 청해 연유를 물었으나, 승려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재회가 끝나고 승려가 용호산으로 돌아가려 할 때, 두 사람은 다시 밀실 앞으로 왔다. 주인이 벌벌 떨며 방문을 열자, 안에서 걸어 나오는 것은 뜻밖에도 다시 그 네 명의 가마꾼이었다. 그들은 공경하게 승려를 가마에 모신 후, 가마를 메고 용호산 방향으로 떠나갔다.

나중에 어떤 이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이 승려는 신통(神通)이 광대하여 멀리 갈 때마다 호랑이를 가마꾼으로 변화시켜 자신이 부렸다고 한다.

세상에 이토록 기이한 술법이 있음을 처음 들은 사람들은 모두 놀라워하며 기이하게 여겼다.

호랑이가 호랑이 굴을 양보하다

진(晉)나라 때, 축불조(竺佛調)라는 이름의 고승이 천축에서 멀리 찾아와 불도징(佛圖澄)을 스승으로 모시고자 했다.

어느 날 저녁, 그가 몇 명의 동행자와 함께 산속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큰 눈이 내렸다. 사람들은 멀지 않은 곳에 산굴이 있는 것을 보고 곧 들어가 눈바람을 잠시 피했다.

그들은 이곳이 사실 호랑이 굴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밤이 깊었을 때, 호랑이 한 마리가 굴로 돌아왔다. 축불조 등을 본 후 호랑이는 조금의 적의도 드러내지 않고, 그저 천천히 사람들 곁으로 걸어와 조용히 엎드려 누웠다.

이때 축불조가 호랑이에게 말했다.

“참으로 부끄럽소, 우리가 네 처소를 차지했구나.”

호랑이는 말을 듣고는 즉시 귀를 늘어뜨리고 일어나 산굴을 걸어 나가 곧장 산 아래로 내려갔다.

동행했던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고 모두 눈이 둥그레졌다.

호랑이가 길을 비키다

진조(晉朝) 때 맹호를 굴복시킬 수 있는 고승이 그리 드물지 않았다.

서진 말기, 천축 승려 기역(耆域)이 중토(中土)에 온 후 일찍이 양양, 교주, 광주 등지를 유람했다.

나중에 그가 양양으로 돌아갈 때 배를 타고 강을 건너려 했으나 사공의 난관에 부딪혔다. 사공은 그가 오랑캐 승려(胡僧)라 경시하며 배에 오르지 못하게 했다.

뜻밖에도 배가 건너편 기슭에 도착했을 때, 사공은 기역이 이미 강가에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이때, 길가에서 갑자기 호랑이 두 마리가 튀어나왔다.

사람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하고 있을 때, 두 호랑이가 기역을 보더니 즉시 귀를 늘어뜨리고 꼬리를 흔들며 마치 온순한 집개처럼 그의 곁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였다.

기역이 손을 뻗어 호랑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두 호랑이는 마치 크나큰 만족을 얻은 듯, 공경하게 길가로 물러나 길을 비켜주며 기역에게 먼저 가기를 청했다.

길 가던 이들이 이를 보고 모두 기역에게 엄숙한 공경심을 일으켰다.

호랑이가 경을 듣다

동진(東晉) 시기, 호북 신양현(神陽縣) 부근에 호환(虎患 호랑이로 인한 피해)이 심각했다.

현지 백성들은 맹호를 방어하기 위해 매일 해가 지기도 전에 문을 굳게 닫았다.

하루는 고승 법안(法安)이 이곳을 지나가게 되었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그는 큰 나무 아래에서 가부좌를 틀고 선수행(禪修)을 했다.

이튿날 이른 아침, 호랑이 한 마리가 뜻밖에도 사람 한 명을 등에 업고 나무 아래로 왔다.

그것은 법안을 본 후 먼저 나무 뒤로 돌아가 등에 업은 사람을 내려놓았고, 그러고는 다시 법안 앞으로 돌아와 조용히 엎드려 움직이지 않았다.

법안이 두 눈을 뜨고 호랑이를 한 번 바라보고는, 그것을 위해 불법을 설하고 계율을 해설하기 시작했다.

법안이 강의를 마치자 호랑이는 조용히 떠나갔다.

또 다른 동진의 고승 담유(曇猷)는 장기간 적성산(赤城山)의 석실(石室) 안에서 수련했다.

어느 날 그가 가부좌를 틀고 있는데, 갑자기 호랑이 무리가 에워싸고 몰려와 그의 앞에 엎드려 누웠다.

담유는 눈을 뜬 후 경전을 외우기 시작했다.

한동안 외우고 있을 때, 그중 호랑이 한 마리가 기어이 졸기 시작했다.

담유가 손에 쥔 여의(如意)를 들어 호랑이 머리를 가볍게 한 대 톡 치며 웃으며 물었다.

“왜 진지하게 경을 듣지 않느냐?”

그 호랑이는 고개를 들어 그를 보더니, 기어이 다시는 졸지 않았다.

경문 강의가 끝날 때에야 비로소 호랑이 무리는 제각각 떠나갔다.

호랑이가 사람을 먹지 않다

북위 태무제(太武帝) 시기, 폐불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많은 승려들이 어쩔 수 없이 은거하여 피난해야 했다.

어느 날, 혜시(惠始)라는 이름의 승려가 석장(錫杖)을 쥐고 궁문 밖에 나타났다.

수문장(守將)이 즉시 이 일을 태무제에게 보고했다.

태무제는 듣고서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목을 베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도끼와 칼로 형을 아무리 집행해도 혜시에게 조금의 상처도 입히지 못했다.

태무제는 또 궁궐 북측 정원에 맹호 수십 마리를 기르고 있는 것이 생각나 사람을 시켜 혜시를 호랑이 우리에 던져 넣게 했다.

뜻밖에도 호랑이들은 혜시를 보자마자 잇달아 땅에 엎드렸고, 신색이 두려움에 가득 차 눈동자조차 마음대로 굴리지 못했다.

곁에 있던 관리가 혜시에게 이토록 신이한 점이 있음을 믿지 못하여, 도교의 천사(天師) 한 분을 청해 검증하게 했다.

결과적으로 천사가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그 호랑이들은 즉시 그를 향해 크게 포효했다.

태무제는 이 광경을 보고 크게 충격받았다.

전해지는 바로는 나중에 그가 친히 혜시를 대전으로 모셔 예우했으며, 다시 불교를 받들고 지지하겠다는 뜻을 표했다고 한다.

호랑이가 시종이 되다

수말당초(隋末唐初) 시기, 해릉사에 법향(法向) 선사라는 분이 있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그는 신통이 광대하여 길흉화복을 미리 알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맹수도 굴복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하루는 그가 호랑이 한 마리가 길 가던 사람을 덮쳐 쓰러뜨린 것을 보고 호랑이에게 멈추라고 호령했다.

호랑이는 즉시 그 사람을 놓아주고 한편으로 물러났다.

나중에 또 어떤 이가 친히 보았는데, 법향 선사가 호랑이 무리 가운데에서 경을 설하고 법을 밝히고 있었다. 강의가 끝난 후 호랑이 무리는 기어이 시종처럼 온순하게 그의 좌우를 따랐다.

당나라의 이름난 재상 배휴(裴休)는 평생 불법을 두텁게 믿어 많은 득도한 고승들을 방문했다.

그중에 ‘화림선각(華林善覺) 선사’라 불리는 분이 있었다.

배휴가 담주자사(潭州刺史)를 맡고 있을 때 친히 방문한 적이 있었다.

대화 도중 배휴가 물었다.

“선사께서는 시종이 없으십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한둘 있습니다.”

배휴가 이에 한 번 보기를 청했다.

선사는 곧 초암 뒤편을 향해 높은 소리로 불렀다.

“대공(大空)아! 소공(小空)아!”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호랑이 두 마리가 뜻밖에도 암자 뒤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배휴는 한순간 안색이 크게 변하며 놀랐다.

선사는 광경을 보고 두 호랑이에게 말했다.

“오늘 귀한 손님이 이곳에 계시니 너희는 먼저 물러가 있거라.”

두 호랑이는 말을 듣고는 기어이 몸을 돌려 떠나갔다.

배휴는 이 한 막을 친히 목격하고 선사의 수위에 대해 더욱 경탄과 흠모를 금치 못했다.

참고자료: 《호회(虎薈)》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3037